【건강다이제스트 | 전용완 기자】
【도움말 |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엄중식 교수】
2017년 7월,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건강키워드는 단연 ‘햄버거병’이었다. 4세 여아가 용혈성 요독 증후군(HUS)에 걸려 신장장애 2급을 받을 정도로 돌이킬 수 없는 신체적 손상을 입었고, 부모 측은 그 원인을 당시 먹은 햄버거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얼마 뒤 불고기버거에서 식중독균이 기준치의 3배 이상 초과 검출됐다는 보도가 연달아 터졌다. 설상가상 햄버거를 먹은 8명이 집단 장염에 걸렸다는 주장이 추가로 제기되면서 햄버거 업체는 전국 모든 매장에서 불고기버거 판매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햄버거병 도대체 뭐길래?
‘햄버거병’으로 알려진 병의 정식 명칭은 ‘용혈성 요독 증후군’이다.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엄중식 교수는 “용혈성 요독 증후군은 독소에 의하여 신장의 기능이 갑자기 감소하여 생기는 증상들을 일컫는 말”이라며 “우리 몸의 대사작용으로 혈액에서 발생한 불순물이나 독성물질을 신장이 제대로 거르지 못하고 소변으로 배출하지 못하면서 발생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 질환을 햄버거병이라고 부르게 된 이유는 뭘까? 햄버거의 패티를 통해 집단 발병하는 사례가 유독 많았기 때문이었다. 엄중식 교수는 “용혈성 요독 증후군은 세균 감염이 가장 흔한 원인인데 그중에서도 장출혈성 대장균(E. coli O157:H7)에 의한 발생이 가장 많다.”며 “햄버거 패티를 통한 장출혈성 대장균 감염이 잘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장출혈성 대장균은 독소를 가지고 있는데 음식을 통해 우리 몸에 들어오면 독소를 방출하고 장 표면에 달라붙어 설사를 일으키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혈액으로 침투하면 신장에서 혈액응고작용을 일으켜 신장을 손상시키기도 한다는 것이다.
왜 햄버거가 문제일까?
유독 햄버거로 인한 식중독 사고가 많은 것은 햄버거의 패티 조리방법이 그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깨끗하고 위생적인 상태에서 도축되고 정육된 날고기는 대장균에 오염될 가능성이 굉장히 낮다. 설사 균이 묻는다 하더라도 속까지 침투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여러 부위의 고기를 갈아 섞어 만든 햄버거 패티는 오염된 부분이 겉에만 묻는 게 아니라 패티 속까지 들어가서 남아있기 때문에 전체가 오염될 수 있다. 햄버거 패티는 균이 완전히 사멸할 때까지 철저한 조리가 반드시 필수인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인해 패티의 조리법에 의문이 제기됐다. 햄버거 업체는 조리과정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지만 패티가 덜 구워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결국 이러한 결함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대처가 미흡했던 점은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면역력이 약한 소아나 노인에게 치명적
용혈성 요독 증후군은 심한 설사(혈변)와 구토, 복통, 미열 등이 발생하고 혈압이 높아지면서 경련, 의식저하, 혼수 등이 발생한다. 특히 면역력이 약한 소아나 노인, 환자의 경우에는 종종 치명타가 되기도 한다.
엄중식 교수는 “용혈성 요독 증후군이 무서운 것은 명쾌한 치료법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항생제 치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정설이다. 중증인 경우 혈장 교환술 같은 특별 시술을 하기도 하지만 한계가 있다. 신기능이 떨어지면 투석을 하는데 환자의 약 10~20%는 신장 기능을 완벽히 회복하기 어렵기 때문에 지속적인 투석을 받아야 한다. 이로 인한 사망률은 발생 환자의 5~10%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예방은 어떻게?
엄중식 교수는 “용혈성 요독 증후군은 덜 익힌 고기가 들어간 음식을 먹었을 때 주로 발생하기 때문에 고기를 먹을 때 충분히 익혀서 먹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햄버거와 같이 주로 짧은 시간에 조리되는 패스트푸드와 관련이 깊은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그 예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엄중식 교수가 추천하는 장출혈성 대장균 감염 예방 팁은 다음 7가지다.
1. 면역력이 약한 영유아에게는 햄버거와 같은 패스트푸드를 가능한 먹이지 않는다.
2. 고기는 충분히 익혀서 먹는다.
3. 살균 처리된 우유를 섭취한다.
4. 날고기가 다른 음식물에 닿지 않게 주의한다.
5. 날고기를 조리할 때 사용한 조리기구로 다른 식자재를 조리하지 않는다.
6. 고기를 만진 후, 식사 전 그리고 화장실에 다녀온 후에는 반드시 손을 씻는다.
7. 설사 및 구토, 복통 등의 이상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병원을 찾고, 보건당국에 신고하여 문제가 된 식품 샘플을 확보한다.
햄버거병 논란은 지금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편리하다는 이유로, 빠르다는 이유로 인스턴트식품, 레토르트식품이 우리 식탁을 점령한 현실에서 과연 우리는 제대로 잘 살고 있는 것일까? 오늘 던지는 이 물음이 우리 삶을 새롭게 리셋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해본다.
엄중식 교수는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대한의료관련감염관리학회 정책이사, 대한의사협회 국민건강보호위원회 감염분과 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를 역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