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조아름 기자】
【도움말 |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환경의생물학교실 용태순 교수】
안녕하세요. 저는 기생충이에요. 불과 70~80년대만 하더라도 뱃속에 저를 가득 데리고 있는 분들이 참 많았어요. 아마 매년 하던 대변검사와 1년에 두 번 가족 또는 학교 친구들과 함께 먹던 구충제를 추억으로 떠올리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정부가 대대적인 기생충 박멸에 나선 후 저는 사람들 몸에서 살기가 힘들어졌어요. 하지만 ‘날 것’을 즐겨먹는 분들과 해외여행이 잦은 분들 때문에 저는 다시 여러분 곁으로 다가가고 있답니다. 제 이야기 한 번 들어보실래요?
저는 점점 다양해지고 있어요
불과 50년 전만 해도 모든 국민들의 뱃속엔 회충, 구충, 요충 등 저와 제 친구들이 득실득실 했어요. 머리와 피부에는 빈대와 이도 많았죠. 몸 안에 있냐, 밖에 있냐만 다를 뿐이지 인간의 몸을 숙주로 삼아 살아간다는 것은 똑같아요. 그러다가 정부가 1960년대 후반 대대적인 기생충 소탕 작전에 돌입하면서 저는 점점 설 자리를 잃었어요. 당시 기생충 감염은 대부분 회충이나 구충, 편충 등 토양을 매개로 감염이 이루어지는 기생충들이 대부분이었거든요. 얘네들은 구충제 한 알로도 잘 죽었기 때문이에요.
1971년 제1차 정부조사 때는 기생충 감염률이 84.3%에 달했지만 1997년(제6차)에는 한때 2.4%까지 떨어졌어요. 하지만 문제는 이렇게 떨어졌던 감염률이 2000년대 들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죠. 2000년대 들어 이루어진 첫 정부조사(제7차, 2004년) 때는 3.7%로 올라갔고, 여러 민간 병원의 조사 결과 이후 꾸준히 감염률이 증가하고 있어요.
다른 나라와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외국인들도 많이 들어오고, 한국 사람들도 여행이나 봉사 등을 계기로 많이 해외로 나가잖아요. 그런데 열대·아열대 지역의 말라리아 같은 외국 풍토병에 대한 인식은 많이 부족한 것 같아요. 저 때문에 사망할 수도 있는데, 그저 괜찮겠거니 안일하게 생각해선 안 된다고요. 또 정력에 좋다고 해서 혹은 맛있다고 해서 ‘날 것’을 무분별하게 먹어도 안돼요.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환경의생물학교실 용태순 교수는 “과거에 주류를 이루던 회충과 구충, 편충 등 토양을 매개로 하는 기생충들은 줄어든 반면 환경과 생활이 변하면서 새로운 기생충들이 부각되고 있다.”라고 말해요.
저(간흡충)는 암을 유발시키기도 해요!
요즘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기생충은 바로 저‘간흡충’이에요. 아주 혁혁한 공로를 세우고 있어 용태순 교수가 요주의 기생충으로 손꼽고 있죠. 2004년 정부조사 때도 총 기생충 감염의 약 32%가 간흡충 감염이었어요.
저는 주로 참붕어, 몰개, 붕어 등의 민물고기를 먹을 때 감염될 수 있어요. 사람의 간 속에 들어와 담관에 기생하면서 성충이 되는데, 황달이나 복통 같은 간질환 증세가 나타나요. 소화불량, 허약, 상복부 불쾌감 등도 동반하죠. 그러다가 합병증으로 담도염이나 담도암, 간경변 등을 일으키기도 해요. 제가 발암물질이라니, 이제 좀 무서운가요?
질병관리본부가 재작년 7월 영산강과 섬진강, 낙동강 등 여러 강 유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기생충을 조사한 결과 대상 주민의 약 13%가 기생충에 감염되어 있었고 그중 90% 이상이 바로 저, 간흡충 감염이었어요. 그러니 강가에 사는 사람들과 민물고기 회를 즐겨먹는 사람들이라면 절 특히 조심해야 될 거예요.
저(요충)는 아이들을 좋아해요!
단체 생활을 막 시작하는 아이들은 특히 위생에 신경 써야 해요. 요충인 저는 특히 위생 관리가 취약한 어린이들을 좋아하거든요. 요충의 암컷은 알을 낳을 때 대장에서 내려와 항문 밖으로 기어 나와 항문 주위 피부나 점막에 알을 낳아요. 항문이 가려워 무심결에 만지거나 긁은 아이들의 손을 통해 다른 아이나 가족들에게 감염될 수 있어요.
그래서 유치원을 갈 무렵의 아이들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에게 감염률이 높아요. 음식을 먹을 때는 손을 깨끗하게 씻고, 무심결에 손가락을 빠는 습관은 고쳐야겠죠?
저(말라리아 원충)는 해외 체류자를 통해서 들어오기도 해요!
저 말라리아 원충은 말 그대로 사람들에게 말라리아를 일으켜요. 얼룩날개 모기류에 속하는 특정 암컷 모기들 중 말라리아 원충에 감염된 모기가 인간들을 물면서 사람들은 말라리아에 걸리죠. 잠복기가 있기 때문에 곧장 알기 어렵고,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모기에 물릴 수 있어요.
국내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지만, DMZ 지역이나 몇몇 지역에서는 가끔 말라리아 모기가 발견되기도 해요. 용태순 교수는 열대지역으로 봉사활동·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은 모기 서식처를 최대한 피하고, 모기에 물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된다.”고 충고해요.
? 저(회충,구충,편충)는 채소에 붙어 있기도 해요!
가장 흔한 친구들이 바로 회충, 구충, 편충과 같은 토양 매개성 기생충들이에요. 채소에 붙어 있거나 먼지에 섞여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요.
회충은 기생하는 숙주에 따라 돼지회충, 개회충, 고양이회충 등으로 구분되며 인간이 감염되었을 경우에는 유충의 상태로 지내면서 간이나 뇌, 안구 등에 침범해요. 아무 증상이 없을 수도 있지만, 심하면 사지마비가 올 수도 있어요.
구충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십이지장충을 가리켜 말해요. 구충에 감염되면 붉은 반점과 물집이 생기죠. 편충은 맹장에 기생해요. 이러한 토양 매개성 기생충들은 그 수가 많이 줄었지만, 아직도 농촌지역에서는 심심치 않게 나타나요. 그러니 채소는 깨끗하게 씻어 먹자고요.
저는 구충제 한 알로 해결되지 않아요!
많은 사람들이 구충제 한 알로 저를 소탕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그건 오산이에요. 특히나 간흡충은 일반 구충제로는 절대 죽지 않죠. 디스토시드라는 전문의약품을 처방받아 먹어야 해요. 익히지 않은 민물 게, 가재를 통해 감염되는 폐흡충도 이 성분의 약을 처방해주죠.
그 밖에도 흔하지는 않지만 익히지 않은 생선을 통해 감염되는 아니사키스, 익히지 않은 돼지고기와 쇠고기를 통해 감염되는 유구조충, 낭미충, 무구조충 등은 내시경으로 제거해야 돼요. 드물지만 개구리나 뱀을 익히지 않고 먹었을 때 감염될 수 있는 스파르가눔이라는 기생충은 일단 몸속에 들어오면 눈, 척수, 심장, 뇌까지도 파고들어 정신분열이나 뇌경색을 일으킬 수도 있는 굉장히 무서운 녀석이에요. 치료약도 없어 수술로만 제거할 수 있답니다. 하지만 회충과 구충, 편충, 요충은 알벤다졸, 메벤다졸 등 일반 구충제로 박멸 가능해요.
여러분~ 첫째도 청결, 둘째도 청결이에요!
여러분이 가장 염두에 둬야 할 부분은 바로 청결과 위생이에요. 채소는 깨끗이 씻어먹고, 특히 민물고기나 야생동물은 완전히 익히거나 끓여 먹는 것이 좋아요.
만약 발열과 오한, 복통 등의 증상이 나타났을 경우 일반 구충제를 먹는 것은 효과가 없기 때문에 꼭 병원을 찾아 기생충 감염 여부를 확인해 봐야 해요. 특히 임산부의 경우 이 같은 기생충에 감염되었을 경우 기형아를 출산하거나 유산이 될 수 있답니다.
또 아이들의 경우 특히 요충의 감염을 막기 위해 손을 씻는 습관을 들이고, 흙이나 더러운 곳에 떨어진 음식 등을 함부로 주워 먹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해요. 또 평소 속옷이나 침대 시트 등은 깨끗하게 빨아 청결하게 유지해야겠죠? 요즘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정이 많은 만큼 개나 고양이의 건강, 위생 상태에도 주의해야 되고요.
더불어 해외여행을 갈 경우 구충제는 대비해서 먹어두고, 특히 말라리아 유행지역을 방문할 경우에는 2주 전부터 예방약을 복용해야 된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백신이 없거든요.
자아~ 이렇게 제 이야기를 쭉 들어보니 어떠세요? 아직도 그저 만만한 기생충으로만 보이나요? 저를 얕보시면 안돼요. 전 작지만 센 ‘기생충’이라고요~.
용태순 교수는 현재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환경의생물학교실 교수로, 한국패류학회 이사, 대한기생충학회 평의원, 한국원충학회 이사로 활동하며 해외지역 기생충 퇴치에도 앞장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