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정유경 기자】
【도움말 | 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김재현 교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믿고 먹는 약. 그러나 그 약이 오히려 건강을 위협할 수도 있다. 얼마 전부터 자주 도마 위에 오르내리는 스테로이드제 이야기다. 강력한 항염작용을 앞세워 등장한 스테로이드제는 기적의 약이라 불리며 그 진가를 뽐냈다. 지금도 병원과 약국에서 많은 환자를 고통의 수렁에서 꺼내주는 희망의 약으로 쓰이고 있다. 그러나 빠른 치료와 효과에 가려진 대가는 혹독했다. 장기간 사용하고, 필요보다 많이 우리 몸에 들어왔을 때 그 부작용이 치명적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김재현 교수는 “환자도 스테로이드제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약 주고 병 주지 않는’ 바람직한 스테로이드제 사용법을 살펴본다.
스테로이드제가 뭐길래?
우리 몸의 신장 위에는 부신이라는 기러기 모양의 작은 기관이 있다. 부신은 다시 안쪽 수질과 바깥쪽 피질로 나누는데, 특히 피질에서 만드는 부신피질 호르몬은 우리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호르몬이다. 이 부신피질 호르몬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치료에 사용하고 있으며, 이것이 흔히 ‘스테로이드제’라고 불리는 약물이다.
스테로이드제는 류머티스관절염, 천식, 아토피, 궤양성대장염 등 다양한 면역계 질환과 만성질환에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항염증 작용이 탁월하고 몸에 들어가면 곧바로 효과가 나타난다. 김재현 교수는 “효과가 빠르고 탁월한 만큼 잘못 사용하면 부작용 또한 치명적”이라고 경고한다.
강력한 효과만큼 부작용도 커
스테로이드제를 처방받은 환자는 증세가 금방 좋아진다. 아파서 떨어졌던 밥맛도 생겨서 ‘이제 좀 살만하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약효가 떨어지면 다시 증세가 나타나는 것이 보통이다. 바로 이때부터 스테로이드제는 주의해야 할 약물이 된다. 김재현 교수는 “한 번 스테로이드 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으면 효과가 바로 나타나니까 약물에 의존하기가 쉬워진다.”고 설명한다. 약효가 떨어지면 다시 약을 찾게 되고, 또 약효가 떨어지면 약을 찾는 일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스테로이드제를 장시간 복용하거나 오남용 했을 경우 따르는 부작용은 사뭇 심각하다. 팔과 다리는 근육이 약해져서 가늘어지는 반면 복부지방은 늘어난다. 피부는 작은 충격에도 멍이 잘 들며 얇아진다. 뼈는 점점 약해져서 잘 부러지며, 골다공증이 올 수 있다. 당뇨병이나 고혈압 등 합병증이 생기기도 한다. 얼굴이 보름달처럼 커지고 급격히 살이 찌기도 한다.
특히 스테로이드제가 몸속으로 많이 들어오면 우리 몸은 부신 기능이 정상이라도 부신피질 호르몬을 만들지 않게 된다. 스테로이드제를 끊는다고 해도 호르몬이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김 교수는 “스테로이드제를 너무 많이 사용하면 다른 장기들은 스테로이드가 많아서 고통에 시달리고, 정말로 필요할 때 부신에서 몸을 보호하는 호르몬이 나오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럴 때는 면역 기능이 떨어져 평소에는 이겨냈던 세균성 질환 등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스테로이드제는 강도에 따라 지속 효과가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몇 주, 몇 개월 동안 이어지게 된다. 강도가 센 주사일 경우에는 3번 정도 맞아도 위와 같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스테로이드제의 강도가 세고 오래 사용할수록 따르는 부작용이 많아진다. 마찬가지로 호르몬이 나오는 부신 기능이 억제되는 시간도 길어진다.
김 교수는 “이러한 부작용들은 스테로이드제가 꼭 필요할 때보다 불필요하게 썼을 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인다.
무조건적 불신보다 오남용 막아야
심각한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는 만큼 스테로이드제는 전문가의 처방 후에 사용하는 것이 기본이다. 예전에 비해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일부에서는 강력한 스테로이드제가 보약, 영양제 등으로 둔갑해서 환자들을 유혹하기도 한다.
퇴행성관절염, 디스크 등 만성 통증에 시달리는 환자들이 치료 방법 중 하나라고 여기고 비전문가를 찾아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는 일도 있다. 이는 올바른 치료 방법이 아니며 오히려 부작용만 키우는 길임을 알아야 한다.
환자 스스로도 스테로이드제의 효과와 부작용에 대해서 바로 알고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 가능한 적은 약으로 견디는 연습을 해야 한다. 할 수 있다면 끊어보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스테로이드제를 계속 사용해야 한다면 전문가가 정해준 투약 방법을 잘 지켜야 최대한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이밖에 환자들도 병원에서 받는 처방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자신이 먹고 있는 약이 어떤 약인지 아는 것도 스테로이드제 오남용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한편 스테로이드의 부작용이 드러나면서 또 다른 부작용도 생기고 있다. 환자가 스테로이드제 처방을 거부하는 일도 생겼다. 스테로이드제가 들어갔다고 하면 해로울까 봐 약을 먹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스테로이드제의 부작용이 두렵다고 해서 무조건 기피하는 것은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김 교수는 “스테로이드제는 필요한 양을 쓰고 반복해서 쓰지 않는다면 부작용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막연한 거부감보다 오남용을 막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TIP. 스테로이드제, 제대로 알기!
먹는 약과 주사보다 바르는 연고나 흡입제는 부작용이 적을까? 피부 질환자들을 위한 연고 형태의 스테로이드제와 천식 환자를 위한 흡입하는 스테로이드제가 치료약으로 쓰이고 있다. 이들은 스테로이드제가 불필요한 부위로 흡수되지 않고 필요한 부위에만 쓰일 수 있게 만든 형태다. 즉,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약의 강도는 먹는 약과 주사와 마찬가지로 천차만별임을 명심해야 한다.
스테로이드제를 피부에 지나치게 바른다면? 스테로이드제는 피부질환을 치료할 때도 좋은 효과를 보인다. 아토피, 건선, 습진용 연고 등에 주로 사용되고, 염증이 생긴 부위를 잘 아물게 하고 가려움증을 없애준다. 그러나 스테로이드제가 들어 있는 연고를 필요 이상으로 바르거나 장시간 사용하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주로 피부가 얇아지고 혈관이 확장되며 다른 피부질환이 생길 가능성도 커진다. 심할 경우 모낭염, 발진, 다모증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으므로 반드시 전문가의 처방을 통해 약을 발라야 한다. 매일 바르는 화장품에 스테로이드제를 넣는 행위가 법적으로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는 것도 이와 같은 부작용 때문이다.
스테로이드제 연고, 가족이 돌려쓰기는 금물 의사에게 처방을 받은 스테로이드제 연고가 치료에 도움이 됐다고 가족들이 돌려쓰거나 나중에 다시 바르는 일이 적지 않다. 스테로이드제는 대부분 전문 의약품이기 때문에 전문가의 처방 지시에 따라서 쓴 다음 남아도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이렇게 처방 없이 스테로이드제 연고를 바르는 경우가 부작용을 부르는 흔한 예이다.
김재현 교수는 부신, 갑상샘 질환과 당뇨병을 전문으로 진료하며 대한당뇨병학회 정회원과 대한내분비학회 수련위원 등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