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정소현 기자】
【도움말 | 원자력병원 진단검사의학과 이진경 과장】
나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갈까? 원시적인 질문이면서도 쉽게 답을 찾기 곤란한 질문이다. 생물학적으로 접근하면 문제는 조금 단순해지지 않을까 싶다. 부모의 정자와 난자가 만나 하나의 생명체로 태어난 이상 부모의 특징이 나에게로 전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것은 특정한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신호인 DNA가 부모를 거쳐 나에게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리로 DNA를 분석하여 개인 및 혈연관계 여부를 밝혀내기도 하고 나아가 인간의 건강 증진을 위해 활용되기도 한다. DNA를 분석하여 내 건강, 어디까지 알아볼 수 있는지 함께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DNA 검사하면, 범죄?불륜을 다룬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그 장소에 있던 혈흔이 범인의 것인지 아닌지, 혹은 친자인지 아닌지 등을 알아보기 위해 나오는 것이 대부분이다.
원자력병원 진단검사의학과 이진경 과장은 DNA검사는 친자확인, 범죄수사뿐 아니라 고고학, 생물학, 실종자 확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범죄 수사나 친자확인에 이용되는 DNA검사가 개인식별을 목적으로 한 검사라면 의학분야에서는 질병의 진단과 예측을 목적으로 DNA검사를 하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한다.
서로 꼬이고 엉켜서 염색체를 이루고 있는 DNA. 엉키고 꼬인 이것을 어떻게 분석해낼까?
DNA를 분석하는 기술은 소량의 DNA를 대량으로 증폭하는 기술, 즉 중합효소연쇄반응(PCR)의 개발과 더불어 획기적으로 발전했고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DNA검사의 대부분이 이 PCR검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DNA검사 어떤 질병 잡아낼까?
질병 진단을 위한 DNA검사는 감염성질환부터 시작됐다. B형 간염이나 결핵 등이 의심되는 환자 검체에서 추출한 DNA에서 간염바이러스 혹은 결핵균의 존재여부와 최근에는 그 양까지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외에 헌팅턴이나 루게릭병처럼 한 개의 유전자 돌연변이가 질병을 유발하는 단일유전자질환의 경우 DNA검사가 질병 진단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기도 한다.
특히, 암 진단 DNA검사는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로 자녀에게 유전되는 체세포 유전자와 전혀 다른 성격의 유전자 변이가 검사의 대상이 된다.
이진경 과장은 암세포에서 발견되는 유전자 변이는 암 환자의 암세포에만 존재하고 환자의 몸을 구성하는 다른 정상세포에는 존재하지 않아 자녀에게도 물려지지 않기 때문에, 환자의 치료를 계속하면서 몸 속에 남아있는 암세포 수를 헤아리거나 재발된 암세포를 좀 더 조기에 찾아내기 위해 암세포에서 발견된 변이 유전자를 찾아 측정한다.고 한다.
DNA검사, 누가 받아야 할까?
전체 암의 5~10%를 차지하는 유방암, 대장암 등 유전성 암을 예방하기 위해 가족력이 있는 경우, 40세 이하 젊은 나이에 발병한 경우, 양쪽 모두를 포함하는 경우, 이들은 부모로부터 특정 암에 걸리기 쉬운 돌연변이 유전자를 물려받았다는 얘기가 된다.
때문에 유전성 암을 의심할 수 있으므로 질병예방을 위한 DNA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다.
이는 암세포에서 관찰되는 유전자 변이가 유전되지 않는 것과 달리, 자녀에게 물려주는 배세포 돌연변이로 BRCA1, BRCA2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 두 유전자 중 하나에서 돌연변이가 있는 경우 유전성 유방암에 걸릴 위험도가 일반인에 비해 몇 십 배 증가한다는 보고도 있습니다.라는 게 이진경 과장의 설명이다.
하지만 돌연변이 유전자를 가졌다고 해서 모두 병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현재까지 보고되어 있는 대부분의 위험도 통계가 서양을 위주로 발표된 것이기 때문에 확대해석하거나 맹목적으로 신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이 과장은 질병 예측을 위한 DNA검사는 반드시 전문의료기관에서 받아야 하며 검사결과 향후 검진계획도 의학적인 측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한다.
외국의 경우 유전성 암이 확실한 가계에서 돌연변이 유전자가 양성으로 판명되면 예를 들어, 유방암의 경우 유방절제술을 받거나 예방적 항암치료를 받는 경우도 있다.
현재 DNA검사를 포함한 유전자 검사는 2005년 시행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에 의해 의료기관에서 시행하거나, 의료기관으로부터 의뢰받은 경우에 한해 비의료기관에서도 시행할 수 있다. 따라서 질병 예측 등 건강관리를 목적으로 한 DNA검사는 반드시 전문의료기관에서 받아야 한다.
전문의료기관이라고 하더라도 모든 질병에 대한 DNA검사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비만, 지능, 체력, 우울증, 알코올분해, 장수, 폭력성, 호기심 등과 같은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거나 논란이 됐던 14개의 DNA검사는 현재, 법적으로 금지돼 있으며 특히 치매, 암, 백혈병, 강직성척추염 등 6개의 DNA검사는 전문의의 진료행위에 의해서만 검사를 의뢰할 수 있도록 엄격히 제한되고 있다.
DNA검사로 많은 질병을 예측하여 그를 예방하는 것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바라는 일이지만, 극히 일부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다.
이진경 과장은 심혈관질환, 당뇨 등 성인병의 경우 질병 발생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몇몇 유전자가 보고되어 있기는 하지만 성인병은 유전적인 요인과 식생활 습관 및 환경적인 요인이 함께 작용하는 다인자성질환입니다. 이를 대상으로 일부 기관에서는 DNA검사를 통해 발병 여부를 예측한다고 광고하는 데 이는 과대광고에 가깝습니다.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유전자 돌연변이가 다인자성 질환과 관련이 있기는 하지만 생활습관 및 환경 등 발병 원인이 다양하고 복잡해 한두 개의 유전자 검사만으로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식습관이나 생활환경을 개선함으로써 발병 위험률을 현저히 낮출 수 있다는 점도 그 이유가 될 수 있다.
아직은 우리가 바라는 대로 DNA검사로 모든 질병을 예측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하지만 사람의 혈액, 구강세포, 모근 등에서 추출한 DNA는 수십 년 이상 영하 20도 이하에서도 안전하게 보관이 가능한 DNA은행도 있다고 하니, 현재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많은 유전자 정보가 미래에 밝혀지면 수십 년 동안 보관하고 있던 DNA를 녹여 추가 검사를 시행할 수도 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먼 훗날 나를 위해서 혹은 내 후손을 위해서 소중히 쓰일 DNA를 잠시만이라도 상상해 보는 것은 허몽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