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정유경 기자】
숨을 참은 채로 속으로 숫자를 세어봤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미처 스물을 세기 전에 참았던 숨을 못 참고 황급히 내쉬어버렸다. 대부분이 이럴 것이다. 잠시만 숨을 참아도 고통스럽다. 숨을 참는 동안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다. ‘빨리 숨 쉬고 싶다!’
하지만 매 순간 매 순간 숨 쉬기가 힘들다면? 숨 좀 쉴 만하면 기침이 몰아친다면? 그때부터는 숨과의 전쟁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폐에 생긴 병과의 전쟁이다.
이 전쟁을 원천봉쇄하고 이겨내는 방법을 환자에게 다정히 전해주는 의사가 있다. 분당서울대학교병원 호흡기내과 이춘택 교수다. 일생을 편히 숨 쉬는 방법에 골몰하며 폐를 치료해온 이춘택 교수가 말하는 평생 숨 잘 쉬는 법을 들어본다.
폐암 걸리는 새로운 공식
폐는 늘 우리 몸 그 자리에 있다. 그런데 폐를 둘러싼 병은 좀 달라졌다. 일단 사망률이 높기로 악명 높은 폐암이 달라졌다. 잘 알려진 ‘폐암=흡연자’라는 공식이 있다. 담배를 오래 피우면 폐암에 잘 걸린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담배와 폐암은 분명히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 때문에 많은 이가 간과한 것이 있다. 담배를 안 피우면 폐암에 안 걸릴 거로 생각한 것이다.
“90년대에 진료할 당시에는 폐암 환자면 거의 담배를 피우는 남자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저에게 오는 폐암 환자 중 흡연자와 비흡연자의 비율이 6:4정도예요. 폐암이라고 말씀드릴 때 담배도 안 피웠는데 왜 폐암이냐고 억울해하시는 분이 많아요. 특히 두드러지는 점은 남성 폐암은 서서히 줄어들고 있지만 여성 폐암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비흡연자의 폐암은 그 발병 연령이 낮은 편이다. 흡연자의 폐암은 70대 이후가 많지만 비흡연자 폐암은 50~60대에서 잘 발견된다. 또 한 가지! 흡연자와 비흡연자는 주로 폐암이 생기는 부위가 다르다.
“흔히 알기 쉽게 폐를 나무로 비유합니다. 가지는 기관지, 나뭇잎이 폐라고 하죠. 담배가 만든 발암물질은 입자가 비교적 커서 기관지에 걸려 기관지 쪽에서 암이 생기고, 비흡연자에게 암을 일으키는 발암물질은 입자가 작아 기관지를 통과해 모세 기관지, 폐 말초 부위에 주로 발생합니다.”
눈치가 빠르다면 입자가 작다는 말에서 짚이는 범인이 있을 것이다. 그 예상이 맞다. 미세먼지다.
결핵 사촌의 무차별 습격
아직 미세먼지의 위험성이 밝혀진 지 얼마 안 돼 미세먼지가 폐암을 일으킨다는 확실한 연구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많은 의사는 과학적 데이터가 없어도 미세먼지를 비흡연자 폐암의 주요 원인으로 보고 있다. 이춘택 교수도 마찬가지다.
“폐암을 예방하려면 담배는 반드시 끊고 최대한 미세먼지를 피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특히 여성 폐암의 원인으로 거론되고 있는 지지고, 볶고, 튀기는 요리를 할 때 나오는 미세먼지도 위험합니다. 요리할 때는 꼭 후드를 켜고 충분히 환기하세요.”
또 다른 폐질환의 뚜렷한 변화는 결핵이 줄어들고 결핵의 사촌이라고 불리는 비결핵항산균증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비결핵항산균증은 서서히 폐와 기관지를 망가뜨리는 병입니다. 예전에는 결핵 환자가 비결핵항산균증 환자보다 월등하게 많았지만 지금은 그 반대입니다. 진료볼 때 결핵 환자가 1명 온다면 비결핵항산균증 환자는 10명 이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기침, 가래가 흔한 증상인 비결핵항산균증은 결핵처럼 사람에서 사람으로 옮겨가지 않는다. 건강한 폐에는 잘 생기지 않으며 과거 폐결핵을 앓았거나 기관지확장증, 만성폐쇄성폐질환 등의 폐질환이 있었던 경우 잘 생긴다.
비결핵항산균증의 가장 큰 문제는 치료가 오래 걸리고 또 치료된다고 해도 재발이 흔한 것이다. 이것이 결핵보다 더 고약한 병으로 취급받는 이유다.
“기침이 2달 이상 가면 그 원인을 찾아 빨리 해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폐가 망가지면 양쪽 폐 사이에 위치한 심장도 위험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폐와 심장 혈관은 체인처럼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폐가 망가지면 심장이 망가지고, 심장이 망가지면 폐까지 망가진다.
폐 건강 좀먹는 알레르기
폐는 몸의 안쪽에 있는 기관이지만 쉬지 않고 몸의 외부와 연결되는 유일한 기관이다. 365일, 24시간 내내 우리는 폐로 숨을 쉬고 있기 때문이다. 외부 공기가 계속 들어가기 때문에 외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알레르기도 그중 하나다.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원인 모를 기침, 재채기 때문에 괴로운 사람이 많다. 그럴 때 이춘택 교수가 권하는 방법은 알레르기 검사를 해보는 것이다. 자신은 모르고 있지만 자신이 접하는 환경에 알레르기 물질이 있을 수 있다.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흔한 물질은 집먼지진드기, 동물의 털 등이다. 이러한 알레르기는 기침을 일으키고 폐와 기관지를 예민하게 만든다. 숨 쉬는 것을 방해하는 천식, 비염 등도 유발한다. 간단한 검사를 통해 알레르기 유발 원인을 알아내 그것을 피하면 훨씬 편하게 숨 쉴 수 있다.
알레르기를 피하는 것 외에도 폐를 건강하게 만들 확실한 방법은 규칙적인 운동이다. 폐 건강에는 걷기와 수영이 좋다. 반면 폐질환을 앓은 후 달리기나 등산으로 폐를 단련해보겠다는 생각은 접자. 이러한 운동은 오히려 폐에 부담이 된다.
“폐에는 걷기 운동이 제일 좋습니다. 걷기는 폐에 부담도 덜하고 오래 할 수 있는 운동이지요. 폐가 건강하더라도 너무 심하게 숨이 차는 운동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춘택 교수는 걷기를 좋아한다. 골프도 좋아하긴 하지만 자주 할 수 없어서 주로 걷기로 운동한다. 시간이 날 때마다 집 근처 탄천변을 걷는 것이다. 이때 혼자 걷지 않고 아내와 함께 걷는다. 둘이 운동을 함께 할 때 큰 장점은 꾀를 부릴 수 없다는 것이다. 나가기 싫은 날도 서로의 손에 이끌려 나가다 보면 저절로 규칙적인 운동이 된다.
정밀의료로 폐암 제압 중
요새 이춘택 교수가 유난히 신경 쓰는 분야가 있다. 정밀의료다. 정밀의료센터장도 맡아 힘을 쏟고 있다.
환자의 라이프스타일, 유전체, 환경, 생물학적 특성 등이 축적된 빅데이터를 다각도로 분석해 정확한 치료법을 제시하는 것이 정밀의료다. 폐암 치료에 정밀의료를 대입하면 암세포를 통해 어떤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일어났는지 알아내 그에 대한 표적 치료가 가능하다. 예전과 달라진 추세를 보이는 폐암이지만 정밀의료를 통해 폐암 환자가 숨 쉴 구멍을 조금씩 크게 내주는 데 앞장서고 있다.
암 중에서도 폐암은 부동의 암 사망률 1위다. 그래서 폐암이라고 하면 벌벌 떤다. 또 만성폐쇄성폐질환, 기관지확장증, 폐렴은 어떤가? 남들 다 하는 숨쉬기를 방해해 순간순간을 고통스럽게 만든다. 이춘택 교수를 찾는 사람은 대부분 이렇게 숨쉬기가 어려워 삶을 위협받는 사람이다. 이런 환자들을 보면 볼수록 드는 생각은 하나다. 버텨낼 힘이 되어주어야겠다는 것이다. 숨구멍이 되어줘야겠다는 것이다.
내내 밝았던 이춘택 교수의 얼굴이 살짝살짝 굳어지는 순간은 한결같았다. 숨을 못 쉬는 환자 이야기를 할 때, 호흡기질환 약의 발전이 느리다는 고민을 전할 때 등 언제나 환자가 아픈 순간이었다. 환자를 향한 진심이 전해졌다. 앞으로도 이춘택 교수가 진료실을 지키는 한 편안하게 숨 쉬는 사람이 더 많아질 것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