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정유경 기자】
“갑자기 심해진 당뇨는 췌장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외과의사가 오랫동안 수술해온 전문 분야를 바꾸는 것은 드문 일이다. 국내 췌장암 수술 권위자로 불리는 서울아산병원 간담도췌외과 김송철 교수는 원래 신장, 췌장 등 장기이식 전문가였다. 그랬던 김송철 교수는 췌장암으로 전문 분야를 서서히 바꿨다. 이유가 참으로 고맙다. 췌장암 수술을 하는 의사는 있지만 높은 사망률로 인해 췌장암만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의사가 드물고 수술 후 췌장암 환자 관리가 부족한 것을 그냥 볼 수 없어서였다.
그 후 행보도 남달랐다. 복강경을 이용한 췌장암 수술을 개척하고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이후 로봇수술을 시작해 더 큰 치료 가능성을 열었다. 하지만 이러한 수술 실력보다 더 김송철 교수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환자에게 무한 신뢰를 받는 의사라는 점이다. 벼랑 끝에 내몰린 췌장암 환자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의사로 정평이 나 있다. 환자가 보증하는 진정한 명의, 김송철 교수의 건강비결을 들어봤다.?
마법사로 불리는 의사
‘검사 결과 들으러 병원에 가는 날이 설레고 기다려진다.’ ‘췌장암 선고로 극도로 불안한 환자를 안심시키고 희망을 준 것이 고맙다.’ ‘귀가 어두운 보호자가 했던 말을 다시 물어도 한 번도 찡그리거나 불편한 내색이 없어서 감사했다.’ ‘신정 연휴에 수술을 해줘서 고맙다.’ ‘같이 입원한 환자 사이에서도 칭찬이 자자했다.’
서울아산병원 홈페이지 칭찬 코너에는 김송철 교수를 향한 칭송이 이어진다. 환자와 보호자는 김송철 교수를 칭찬할 때 주로 편안, 희망, 신뢰, 친절, 배려 등의 단어를 사용했다. 환자의 칭찬으로 김송철 교수의 인성을 알았다면 별명을 통해서는 실력을 알 수 있다. 환자들은 김송철 교수를 ‘해리 포터 교수’라고 부른다. 영화 속 주인공인 해리 포터는 뛰어난 마법사다. 김송철 교수의 전문 분야인 췌장암은 80%가 수술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야 발견된다. 암의 진행 속도가 무척 빠르고 재발도 잘 돼서 사망률도 무척 높다. 이러한 췌장암을 말끔하게 치료하는 것은 어쩌면 마법 같은 일일지도 모른다.
난공불락 췌장암 조기 발견이 최선
걸리면 죽는 암이라는 인식이 팽배한 췌장암은 조기 발견이 어려운 암이다. 췌장암인 것을 바로 알아차릴 만한 특별한 증상이 없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에 수술할 수 없을 정도로 암이 커지고 전이되어 버린다.
“이야기를 나눠보면 배가 좀 불편한 정도의 증상만 있었다는 췌장암 환자가 많습니다. 심각한 증상이 아니라 속이 더부룩하고 소화가 안 되는 가벼운 증상에 불과하지요. 하지만 위내시경을 해도 별 문제가 없다면 췌장암도 고려해 봐야 합니다. 위내시경만 하느라 시간을 허비해 암이 커져서 치료 시기를 놓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또한 당뇨병 환자인 경우 잘 조절되던 혈당이 심하게 조절되지 않으면 췌장암이라는 신호일 수 있다. 마찬가지로 갑자기 심한 당뇨가 생겨도 췌장암을 의심해볼 수 있다. 많은 암이 체중 감소를 동반하지만 췌장암은 특히 감소폭이 심하다. 당뇨병이 있거나 부모나 형제 중 췌장암 환자가 있는 경우라면 급격한 체중 감소의 이유가 췌장암이 아닌지 복부 검사를 할 필요가 있다.
췌장암을 예방하려면 가장 먼저 담배부터 끊어야 한다. 담배는 췌장암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술은 췌장암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밝혀지지 않았지만 췌장염과는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만성 췌장염은 췌장암으로 발전할 수 있으므로 술도 멀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췌장암은 치료할 수 있는 단계여도 다른 암에 비교해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져 치료에 집중하기 힘든 병이기도 하다. 수술할 수 있는 환자가 적어 연구도 덜 되어 있어 정복하려면 갈 길이 멀다. 그런데도 김송철 교수는 췌장암 환자에게 늘 희망을 꺼내 든다. 췌장암을 이겨내는 사람은 대부분 이 희망을 믿은 사람이기도 하다.
췌장암을 이기는 긍정의 힘
췌장암이었다가 다시 건강을 되찾은 사람은 화제가 되기 일쑤다. 김송철 교수에게 췌장암을 이겨낸 사람들의 공통점을 물었다.
“가족 중 한 명이 췌장암에 걸리면 집안이 풍비박산 난 상태로 찾아오는 일이 많습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도 많이 느끼고요. 그런데 이겨내신 분들을 보면 성격이 밝고 긍정적인 경우가 많아요. 보호자도 그렇고요. 제가 희망을 말씀드리기 전에 이미 희망을 품은 분들이죠. 힘든 암이어도 나을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면 치료 의지도 강하고 면역력도 생겨서 건강을 되찾을 확률이 높아집니다.”
긍정의 힘은 췌장암을 이겨낸 환자뿐 아니라 김송철 교수도 가졌다. 특히 스트레스를 대하는 자세가 남다르다. 김송철 교수는 스트레스를 나쁘게만 생각하지 않는다. 내 몸과 마음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것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항체가 생긴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 몸을 아프게 하는 것도 스트레스지만 강하게 해주는 것도 스트레스다. 스트레스가 생기면 ‘또 내 몸을 건강하게 해주려고 오네.’라고 생각해버린다. 스트레스를 이겨내야 할 이유와 힘이 동시에 생긴다. 물론 아직은 매번 스트레스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지에는 오르지 못했다. 그래도 몸과 마음에 아무리 나쁜 것이 들어와도 기쁘게 이겨낼 수 있는 자신감이 있다. 이 자신감은 건강한 체력에서 시작된다.
운동, 강골 외과의사를 만들다
췌장암을 이겨낸 사람처럼 밤새 수술하고도 지친 내색이 없던 김송철 교수도 놀라움의 대상이다. 다른 의사들도 김송철 교수처럼은 못 산다고 혀를 내둘렀다. 원래 건강 체질인 것도 있지만 강철 체력을 완성한 것은 꾸준한 운동이었다.
일주일에 이틀은 꼬박 수술하고, 이틀은 외래 환자를 보고, 병원에서 로봇수술센터 소장 등의 보직을 맡고 있지만 아무리 바빠도 운동을 자주 한다. 예전에는 암벽등반과 테니스를 즐겼고 지금은 조깅, 웨이트트레이닝, 골프 등을 하고 있다.
“저는 걷고, 가볍게 조깅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장운동이 잘 되는 중이라고 생각하면서 한강 변을 걷거나 뛰어요. 그리고 평일에 하루, 주말에 하루는 체육관에 가서 근력운동과 스트레칭 등을 충분히 하고 옵니다. 특히 스트레칭은 정말 중요해서 더 신경을 쓰는 편입니다. 간혹 중요한 일이 있어서 운동을 못 할 때가 있는데 그러면 그 다음 주에 몸이 무겁고 더 힘들어요.”
운동을 해서 체력을 기르고 그 체력을 췌장암 환자를 살리는 데 쓴다면 그보다 기쁜 일이 없다. 특유의 부지런함으로 얻은 건강은 이렇게 오래도록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는 삶을 선물한 셈이다.
희망을 주는 의사는 내 운명
사실 의대에 다닐 때만 해도 외과의사가 될 생각은 전혀 없었던 김송철 교수였다. 하지만 강원도 태백 탄광촌에서 군의관 생활을 하면서 외과의사가 꼭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실감했다.
그 시절 태백의 탄광촌은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대부분 생명이 위급한 환자였다. 생사의 갈림길에 있던 광부들에게 외과의사는 꼭 필요한 존재였다. 죽을 뻔한 사람을 살렸을 때 자신도 살아있음을 느꼈다. 인턴 시절 서울 보라매병원으로 파견 나갔을 때는 추위를 못 참고 불 위에 엎드려 잠들어 심한 화상을 입은 사람을 많이 만났다. 그들을 치료해서 눈으로 직접 좋아지는 것을 확인할 때는 마냥 행복했다.
그로부터 25년이 넘게 흘렀지만 그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밤새 땀 흘리며 수술해도, 수술한 환자에게 긴급 상황이 생길까 봐 좌불안석으로 하루를 보내도, 환자와 보호자에게 모진 소리를 들어도 환자가 건강을 되찾기만 한다면 그걸로 됐단다.
이러한 초심이 유지되는 한 김송철 교수로부터 시작된 마법 같은 이야기는 끝없이 쓰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