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통곡물자연식운동본부 강지원 변호사】
“현미식은 종합영양제입니다”
한식의 세계화에 불철주야 바쁜 사람! 약이 되는 생명 밥상을 차려내 약선요리 대사부로 불리는 사람! 약선요리 명인 정영숙 씨(65세)다. 그런 그녀는 현미식의 대중화에 30여 년을 바쳐온 주인공이기도 하다. 왜일까? 현미식을 먹어야 하는 이유, 들어봤다.
약선요리 대사부로 불리는 정영숙 씨는…
대한민국 한식협회 초대 공동대표, 세계 약선요리 대사부 인증, 한국 예총 주관 약선 한식 명인 선정, 대한민국 신창조인 대상 선정, 한식요리 100인의 달인 등록….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벅차다. 굵직굵직한 것만 뽑아도 그렇다. 끝없이 이어지는 프로필이 혀를 내두르게 한다.
그동안 펼쳐온 활동도 전방위적이다. 한식의 날 기념행사로 광화문에서 1만 2,013명의 비빔밥 행사를 주관하기도 하고, 한·중 수교 20주년 기념으로 2,011명의 비빔밥 퍼포먼스 시연회를 펼치기도 했다. 또 한국과 키르키즈스탄 20주년 수교기념으로 100명의 한식을 준비해서 행사를 치르기도 했다.
한식의 세계화에 두 팔 걷어붙이고 열심인 사람! 정영숙 명인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다. 또 음식이 약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서 또 한 번 대중들의 관심을 사로잡는다.
실제로 그녀는 부산과 김해에서 약선요리 전문점 ‘정림’을 운영하면서 약이 되는 밥상을 세상에 선보이고 있기도 하다. ‘한 끼의 밥상이 한 첩의 보약이 되게 하라.’ 그녀의 소신이다. 약이 되는 밥상의 중심에 현미오곡밥을 놓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일찍이 현미식의 중요성을 자각하면서 약선요리사의 길로 들어섰던 그녀다. 건강의 기초는 누가 뭐래도 현미식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녀다. 나이 서른에 인생의 변곡점을 마련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나이 서른에 운명처럼~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다니던 은행을 그만두고 약선요리사의 길로 들어선 것은 운명처럼 느껴진다.”고 말하는 정영숙 명인! 비로소 ‘내 길이다.’ 여겼다고 한다. 비로소 ‘해야 할 일을 찾은 것 같았다.’고 한다.
그것은 어릴 적부터 남다른 환경에서 성장해온 배경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향토 명의로 불렸던 부친은 어린 그녀에게 “토끼가 좋아하는 풀은 간을 고칠 수 있다.”고 가르쳤다. 또 “음식으로 각종 질병을 고칠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였을까? 우연히 듣게 된 자연생활요법 강의는 그녀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밥상으로 건강을 지켜야 한다는 강의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연식을 하고 현미식을 먹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영숙 명인은 “그 강의를 들으면서 ‘바로 이것이다’ 했다.”고 한다. 완전 현미식으로 돌아선 것도 이때부터였다. 부친의 가르침을 하나둘 떠올리면서 현미 자연식을 실천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5년…정영숙 명인은 다니던 은행을 그만뒀다. 서른둘의 나이에 주부들을 대상으로 약이 되는 밥상 강의를 새롭게 시작했다.
그런 그녀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강조하고 나선 것은 현미식이었다. 현미를 주식으로 하는 건강밥상을 주창했다. 그 이유를 묻자 정영숙 명인은 “5년간의 체험을 통해 현미식의 우수성을 제대로 실감했다.”고 말한다. 변비가 없어지고 머리가 맑아졌다. 하루하루 몸이 개운하고 상쾌했다.
이 같은 사실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직접 요리를 해서 먹여가며 열정적으로 강의를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사람들 반응도 뜨거웠다. 정영숙 명인은 “그렇게 4~5년 했는데 한계가 보이더라.”고 말한다. 강의가 강의로서 끝나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알면서도 실천을 잘 못했다. 1990년 부산 동래에 약선요리 전문점 ‘정림’을 선보인 것도 그래서였다.
직장인들을 위한 건강 밥상을 차려보자며 시작한 일이었다. 약이 되는 현미식 밥상을 누구든지 먹게 하고 싶어서였다.
그렇게 문을 열었던 약선요리 전문점 ‘정림’은 현미식을 전파하는 산실로 30여 년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그 저력은 뭘까?
현미식을 전파하는 산실 ‘정림’의 인기 비결
현미식을 전파하기 위해 약선요리 전문점 ‘정림’까지 오픈했다는 정영숙 명인! 시작부터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줄을 서지 않으면 못 먹었다. 매일 출근도장 찍듯 오는 사람도 많았다. 그 비결을 묻는 질문에 정영숙 명인은 “한 끼 식사가 그야말로 약이 되는 밥상이 되도록 온갖 정성을 다했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 그녀가 들인 노력은 말로 다 못 한다.
1. 날마다 새벽 4시면 새벽시장으로~
하루 4시간 이상 자본 적이 거의 없다. 날마다 새벽시장으로 달려가 가장 신선한 식재료를 골랐다. 새벽시장에 나온 야채들을 보면서 그날의 메뉴도 결정했다.
정영숙 명인은 “계절의 변화를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는 새벽시장은 요리의 영감도 가장 많이 떠오르는 곳”이라며 “30년이 지난 지금도 새벽바람 가르며 행복한 마음으로 새벽시장을 간다.”고 말한다.
2. 메뉴의 기본은 현미식으로~
누구나 현미식을 실천했으면 했다. 외식도 현미식으로 먹을 수 있게 하고 싶었다. 약이 되는 밥상의 기본은 현미식이 되어야 한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탓에 현미오곡밥을 기본으로 한 채식 밥상으로 한 끼 식사가 보약이 되도록 했다.
3. 맛내기는 세월에 묵힌 양념으로~
정영숙 명인이 가장 소중한 보물로 여기는 것은 5년 이상 발효시킨 양념을 보관하는 장독대다. 여기에는 매 계절마다 약성이 가장 좋은 100여 가지 약초를 채취해 5년 이상 발효, 숙성시켜 만든 효소액이 가득가득 들어 있다.
어릴 적부터 약초에 대한 조예가 남달랐던 그녀다. 약이 되는 식물 연구도 게을리 하지 않았던 그녀다. 어디에 무슨 약초가 있는지도 꿰뚫고 있다. 쑥부쟁이는 포항 가는 길에 있고, 흰 민들레는 통도사 옆에 군락을 이루고 있다는 것도 안다.
시간 날 때마다 약이 되는 식물을 찾아 나서는 그녀는 약초로 발효액도 만들어 쓰고, 약초를 말려서 분말로 만들어 된장국에도 넣는다. 산과 들에서 캐낸 온갖 약초들을 숙성시켜 양념으로 쓴다. 일체의 화학조미료 대신 단맛부터 새콤한 맛까지 직접 만들어 무침, 조림에 쓰면서 그야말로 약이 되는 밥상을 차려낸다.
현미식은 종합 치료제!
오늘도 밥상이 약상이 되게끔 차려서 약선요리 대사부로 불리는 정영숙 명인!
지금도 어김없이 새벽 4시면 일어나 새벽시장으로 달려가는 그녀다. 시간 날 때마다 산과 들로 약초도 캐러 다니는 그녀다.
부산과 김해에서 약선요리 전문점 ‘정림’을 운영하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아무리 바빠도 강의 요청은 거절 하지 않는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현미식의 진가를 알리고 싶어서다. 현미식을 30년간 몸소 실천하면서 매일매일 놀라고 있기 때문이다. 당뇨? 고혈압? 전혀 걱정 없다. 정상 혈압, 정상 혈당으로 건강하다. 피검사에서 20대 혈액을 유지하고 있다는 말까지 들었다.
정영숙 명인은 “이 모두가 30년간 실천해온 현미식 때문인 것 같다.”면서 “현미식을 먹는 것은 종합영양제를 먹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현미식은 우리 몸속의 노폐물을 말끔히 배설시켜 주는 놀라운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현미에 풍부한 식이섬유는 콜레스테롤도 배설시켜 주는 몸속의 청소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실을 널리 알리기 위해 지자체 강의도 하고 대학 강단에서 강의도 하고 주부들을 대상으로 강의도 한다. 밥만은 꼭 현미식이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건강하게 장수하는 비결은 밥상이 좌우하기 때문이다. 최고의 건강 밥상은 현미식이기 때문이다. 현미를 한 번 씹으면 배꼽이 한 번 웃고, 현미를 두 번 씹으면 배꼽이 두 번 웃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이 시간에도 정영숙 명인은 현미식 대중화에 아낌없는 열정을 쏟아 붓고 있다. 현미식 생명밥상으로 우리 몸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열일 제쳐두고 열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