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허미숙 기자】
2018년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올 한 해도 굵직굵직한 건강 이슈가 우리 사회를 강타했습니다.
우리 모두를 경악시킨 라돈 침대의 역습부터 미세플라스틱의 위험한 경고까지 대형 이슈들이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습니다. 여기에다 세균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까지 바꾸어 놓은 장내세균 신드롬까지 다양한 건강 이슈들이 올 한 해를 뜨겁게 달구었습니다.
2018년을 마무리하면서 올 한 해를 휩쓴 건강 키워드가 우리에게 남긴 의미를 정리해봅니다.
PART 1. 라돈 침대가 우리에게 남긴 것
【건강다이제스트 | 허미숙 기자】
【도움말 | 서강대학교 화학과 이덕환 교수】
2018년 5월, 한 방송을 통해 전해진 뉴스는 온 나라를 패닉 상태로 몰아넣었다.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침대 매트리스에서 라돈이 기준치 이상으로 검출됐다는 보도였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가 1급 발암물질로 분류하고 있는 라돈이 우리 집 안방까지 파고 들었다는 사실에 모두들 경악했다.
그러면서 드러난 사실은 점입가경이었다. 우리 사회의 총체적 난맥상이 그대로 드러났다.
잊을 만하면 터지는 화학물질의 역습! 올해도 어김없이 라돈 침대 파문으로 이어지면서 온 나라를 발칵 뒤흔들어 놓았는데 이 논란에서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뭘까?
라돈이 뭐길래?
침대 매트리스에서 라돈이 검출됐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라돈은 하루아침에 전 국민이 다 아는 단어가 됐다. 라돈이 1급 발암물질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됐다는 사람도 참 많다. 도대체 라돈이 뭐길래?
이 물음에 서강대학교 화학과 이덕환 교수는 “라돈은 핵연료로 사용하는 우라늄이나 토륨과 같은 무거운 방사성 원소가 붕괴하는 과정에서 방출되는 방사성 원소”라고 말한다.
화학적으로 반응성이 거의 없는 기체 상태의 원소라는 것이다. 화강암처럼 극미량의 우라늄이 들어 있는 토양에서 주로 방출되기 때문에 지하실이나 콘크리트 건물의 내부에서 검출이 되기도 하는 물질이다.
이러한 라돈이 위험물질로 떠오른 것은 1988년도의 일이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천연 라돈을 1급 발암물질로 지정하면서부터다. 토양, 모래, 자갈에서 방출되는 극미량의 천연 라돈에 장기간 노출되면 폐암에 걸릴 수 있다고 밝힌 것이다.
실제로 라돈은 흡연에 이어 두 번째로 중요한 폐암의 원인물질로 알려져 있다. 라돈이 방출되는 실내에서 오래 생활하면 폐암이 발생하는 것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발암물질로 분류된 라돈이 어떻게 우리 집 안방에 놓인 침대 매트리스까지 파고들 수 있었을까?
침대 매트리스에서 웬 라돈?
처음에는 다들 반신반의했다. 침대 매트리스와 라돈이 만날 수 있는 접점을 도무지 찾기 어려워서였다.
하지만 드러난 사실은 황당무계 그 자체였다. 그동안 끊임없이 건강에 좋은 물질로 회자되었던 바로 그 ‘음이온’이 문제의 발단이 됐다.
천연 방사선 물질의 수입, 생산, 유통을 담당하는 주무부서인 원자력안전위원회의 발표에 따르면 “라돈침대의 논란은 침대 매트리스에 사용된 음이온 파우더가 문제가 됐다.”며 ”음이온을 만들어내기 위해 사용한 모나자이트라는 광물질에 미량의 우라늄과 토륨이 들어 있어 이들이 붕괴하면서 라돈이 검출되었다.”고 밝혔던 것이다.
음이온이 나온다며 비싼 값에 팔았던 침대가 실상은 라돈을 뿜어내는 발암침대였던 셈이다.
이덕환 교수는 “침대 같은 생활밀착형 제품에 모나자이트 같은 광물질이 쓰인 것은 지극히 비정상적인 일”이라고 말한다.
모나자이트는 세륨 등의 희토류 원소와 우라늄, 토륨으로 이루어진 광물질로 토륨이 방사선 붕괴를 하는 과정에서 알파선, 감마선 등 방사선이 방출되고 특히 몸에 해로운 라돈이 방출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이다.
관련법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터진 후 생활주변방사선안전관리법이 제정됐기 때문이다.
이 법은 모나자이트 같은 방사선 물질의 오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제정된 법이기도 했다. 모나자이트 같은 천연 방사선 물질의 관리는 원자력안전위원회가 담당하고, 방사선 물질을 사용한 공산품이 유통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책임은 산업통상자원부에 맡겨졌다.
이덕환 교수는 “법이 규정한 대로 관리하고 감독만 잘 했어도 라돈침대 파문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라돈을 방출하는 모나자이트의 위험성은 전혀 관리되지 않았고, 심지어 모나자이트를 이용한 상품에 특허까지 내주며 생산과 유통을 묵인했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총체적 부실을 드러낸 또 하나의 대형 참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라돈 침대 파문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들
또다시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던 라돈침대 파문!
지금도 그 파문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라돈을 내뿜는 모나자이트가 침대뿐 아니라 다양한 생활용품에 무분별하게 사용된 것으로 속속 드러나면서 확산일로를 걷고 있다. 그 종류도 다양하다. 음이온 건강팔찌, 목걸이뿐 아니라 속옷, 생리대, 비누, 소금까지 전 방위적이다. 전문가가 아니면 쉽게 알 수도 없는 모나자이트라는 방사성 물질이 우리 생활 곳곳에서 방출되고 있는 셈이다.
이덕환 교수는 “모나자이트 제품을 만지기만 해도, 혹은 라돈에 노출되기만 해도 당장 폐암에 걸릴 것처럼 호들갑을 떨 이유는 없다.”면서도 “모나자이트를 사용한 제품은 라돈 방출량에 상관없이 당장 폐기할 것”을 당부한다.
10년 동안 아무런 제재도 없이 국가품질인증까지 달고 비싸게 팔렸던 라돈침대 파문은 우리 사회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국가는 과연 국민을 제대로 보호하고 있는가?’
음이온이 건강에 좋다는 엉터리 정보에 소비자도 속고, 정부도 방임하면서 우리는 생명을 담보로 한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10년 동안 문제의 라돈침대를 썼다는 한 신문사 기자는 “10년간 하루 4갑 방사선과 살았다.”며 공포 체험기를 쓰기도 했지만 판매업체는 “정해진 법령을 준수해서 과실이 없다.”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어쩌면 또다시 가습기 살균제의 악몽이 재현될지도 모른다. 관련업체는 발뺌하고, 국가는 한없이 무능했던 그 참사 말이다.
이덕환 교수는 “라돈 침대 파문을 통해 우리는 좀 더 현명해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며 “건강을 지켜주는 기적의 제품을 기대하는 마음은 버릴 것”을 주문한다.
기적을 바라는 마음을 버리고 과학적으로 확인된 사실을 합리적으로 활용할 때 건강도 함께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당부한 말은 하나다. 라돈이 무섭거든 당장 금연부터 하라는 것이다. 라돈 때문에 폐암에 걸려 사망하는 비율은 3~14% 수준이지만 흡연 때문에 폐암에 걸려 사망하는 비율은 80~90%에 이르기 때문이다.
이덕환 교수는 서울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코넬대학교 화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프린스턴 대학교의 연구원을 거쳐 현재 서강대학교 화학과와 과학커뮤니케이션 협동 과정의 교수로 재직 중이다. 비선형 분광학, 양자화학, 과학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했으며, 과학에 관한 많은 책을 번역해왔다. 2004년에 대한민국 과학문화상을, 2006년에 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기술인상을 수상한 바 있고, 과학기술훈장 웅비장(2008)을 수상했다. 주요 저서로는 <이덕환의 사이언스 토크토크>, <이덕환의 과학세상>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