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정유경 기자】
【도움말 | 이지브레인의원 이재원 원장】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이미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모 카드회사 광고 카피다. 귀찮은 것을 안 하고 싶다는 의미의 카피지만 가끔 우리에게 이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마음이 필요하다. 도대체 무엇을 그토록 격렬하게 안 해야 하느냐고? 바로 디지털과의 접촉이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없이 못 산다면 더더욱 가끔은 격렬하게 떨어져 있어야 한다. 이름하여 디지털 디톡스다. 지금은 디지털 디톡스가 꼭 필요한 시대다.?
스마트폰 없이는 못살아!
정말 어마어마한 사랑이다. 항상 손에 들려있다. 떨어져 있어도 신경은 온통 그것을 향한다. 심지어 화장실 갈 때도 들고 간다. 귀한 대접 제대로 받는 스마트폰 이야기다.
지금은 스마트폰에 밀려서 주춤하지만 여전히 컴퓨터도 많은 이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사랑은 일터가 아닌 집에서도 이어진다. 컴퓨터로 마땅히 할 일이 없어도 습관처럼 켜는 사람이 많다. 할 일을 찾는 것은 그 다음이다. 의미 없는 인터넷 서핑, 필요 없는 인터넷 쇼핑을 하느라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른다.
이렇게 살고 있다면 조금은 찜찜할 것이다. 이렇게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오래 사용해도 되는지.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될 것인지. 그런 물음의 답을 찾고 있다면 세계적인 IT회사인 구글의 에릭 슈밋 회장의 말뜻을 곱씹어 보자.
에릭 슈밋 회장은 2012년 보스턴대 졸업식 축사에서 “인생은 모니터 속에서 이뤄질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하루에 한 시간이라도 휴대폰과 컴퓨터를 끄고 사랑하는 이의 눈을 보며 대화하라.”고 덧붙였다.
그렇다. 진짜 인생은 온라인이 아니다. 오프라인이다. 그런데 하루가 온라인에서 시작되고 끝나면서 서서히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스마트폰 중독, 현실감 상실, SNS 집착 등 때문에 일상의 행복이 줄었다.
이 시점에서 주목받는 단어가 있다. ‘디지털 디톡스’다. 디톡스가 해독을 의미하는 것은 알 것이다. 디지털 디톡스는 잠깐도 쉬지 않고 사용하는 스마트폰, 컴퓨터, 노트북을 끄고 휴식하는 것을 말한다. 왜 디지털 디톡스가 필요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자세히 알아보자.
운동처럼 디지털 디톡스 규칙적으로
‘그까짓 스마트폰, 컴퓨터 안 하면 그만이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진짜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쉽게 꺼버릴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제 디지털 기기의 사용이 일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노력하지 않으면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 디톡스는 필요하다.
이지브레인의원 이재원 원장은 “앞으로 규칙적인 운동으로 체력을 유지하는 것처럼 규칙적인 디지털 디톡스를 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한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일단 사람은 본능적으로 얼굴을 좋아한다. 그런데 진화의 과정을 보면 항상 사용하는 기능은 잘 유지되고 잘 사용하지 않는 기능은 퇴화한다. 얼굴을 보고 마음을 읽어내는 능력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가진 감정은 무한해서 수백 개, 수천 개의 이모티콘으로도 다 표현할 수 없다. 너무 오랫동안 사람 얼굴이 아닌 디지털로 소통한다면 사람과 진심으로 소통하는 능력이 점차 퇴화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또 있다. 이재원 원장은 “디지털 기기만 보고 있으면 내가 누군지 잘 알 수 없다.”고 설명한다. 디지털 기기를 통한 소통은 아바타처럼 나 자신을 얼마든지 가리고 꾸밀 수 있다. 그러다 보면 내가 아바타라는 착각이 들고 심하면 현실감이 무너지는 현상까지 생길 수 있다. 현실을 접해야 진짜 내가 보인다.
이재원 원장은 “사람을 만나야 내가 보이는데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나를 잘 볼 수 없게 되고 결국은 우울, 불안, 자신감 상실 등의 정신적인 건강에도 빨간불이 들어 올 수 있다.”고 말한다.
디지털 때문에 위축되는 ‘우리 뇌’
디지털 디톡스는 잠자는 뇌를 깨우는 의식이라고 볼 수 있다. 현실에서 얻는 정보와 디지털에서 얻는 정보는 그 성격이 매우 다르다. 직접 만나는 대인관계에서는 사람, 장소, 시간, 날씨, 옷차림, 말버릇, 감정표현 등 일일이 말하기도 힘들만큼 많은 정보가 들어오고 그것들을 처리하느라 뇌가 바빠진다.
디지털은 이런 것들이 모두 생략된다. 고작해야 ‘^^’ ‘ㅠㅠ’ 같은 이모티콘이나 그림으로 된 스티커가 감정 표현의 일부를 대신할 뿐이다. 그래서 뇌는 처리해야 할 것들이 별로 없다. 긴장감도 없다. 이재원 교수는 “디지털을 사용하는 순간은 뇌를 충분히 사용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설명한다.
디지털에서 멀어지면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내가 누군지도 알게 되고 내가 몰랐던 장점들도 곰곰이 생각해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무의미하게 느껴졌던 시간에 의미를 입힐 수 있다. 그러면서 뇌는 더욱 활발히 일하고 일상도 균형을 되찾는다.
디지털 디톡스 어떻게? 상황별 매뉴얼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끄는 것도 좋지만 그러면 그냥 답답함만 느껴질 수 있다. 상황에 맞는 효과적인 디지털 디톡스법을 소개한다.
1 종일 컴퓨터 앞에서 목을 쭉 빼고 일하는 거북이의 디지털 디톡스법 – 사람이 휴식이다!
컴퓨터로 일하면 무작정 컴퓨터를 끌 수 없다. 이럴 때는 쉬는 시간을 일부러 만들어 모니터 앞을 떠나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자. 지나가는 동료에게 말을 걸어도 좋고 선배에게 인생 상담을 하는 것도 좋다. 상대방과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나를 돌아보고 그 속에서 안정을 찾을 수 있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시간이 20~30분이라도 있다면 호흡훈련과 명상을 해보자. 호흡훈련은 3초 들이키고 7초를 내쉬는 방식으로 하면 된다. 이게 질리면 명상으로 갈아타자. 오늘 하루 무엇을 했는지 생각해보는 것이다.
이재원 원장은 “내가 어느 장소를 거쳐서 여기까지 왔는지 생각해보는 것을 해보라.”고 권한다. 하루를 떠올리기가 쉽다면 전날로 넘어가도 된다.
그것도 쉬우면 그곳에 오기 전까지 만난 사람들을 떠올려 봐도 된다. 이렇게 명상을 하면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2 SNS ‘좋아요!’, ‘추천!’에 목말라 잠을 잊은 올빼미의 디지털 디톡스법 – 과연 누구를 위한 ‘좋아요’일까?
SNS상의 ‘좋아요’ ‘추천’은 마치 나를 응원하고 내 편이 많은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SNS는 서로의 ‘좋아요’ ‘추천’ 개수를 공개해서 경쟁하게 한다. 그래서 좋아요 하나에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이것은 일종의 상술이다. 좋아요 때문에 서비스 이용이 많아지면 이득이 생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가끔은 SNS 알람을 끄고 취미, 운동 같은 ‘나만의 좋아요’를 누리자.
이재원 원장은 “무엇이든 적당히가 중요하다.”며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목표로 정한 개수가 있다면 조금 낮추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3 스마트폰 게임왕의 디지털 디톡스법 – 영원히 기억되는 게임 레벨은 없다!
스마트폰 게임의 레벨에 목숨 거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하지만 과연 게임의 레벨이 내가 많은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만약 현금까지 투자해 레벨을 올리고 있다면 게임이 대리만족이나 현실 도피처로 사용되고 있을 수도 있다. 이렇다면 게임에서 더욱 빠져나오기 어렵고 중독될 수 있다.
이재원 원장은 “새로운 게임은 계속 나온다.”며 “지금 나의 레벨이 영원히 기억되거나 영광스러운 것이 아니다.”고 말한다. 왜 내가 레벨을 올리는 데만 에너지를 쏟는지 생각해보자. 그리고 일상에 지장을 준다면 과감히 게임을 중단하자. 굳이 왕이 되고 싶다면 게임왕 대신 운동왕, 봉사왕이 되어보는 건 어떨까?
4 항상 데이터가 부족한 데이터 구걸족의 디지털 디톡스법 – 데이터 사용량 체크!
언제 어디서나 스마트폰에서 눈을 못 떼는 사람은 많다. 정말 많다. 안 보면 심심해서, 불안해서, 궁금해서 등 이유도 가지각색이다. 그렇게 종일 들여다보니 데이터가 부족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데이터를 요청하기도 한다.
데이터가 무제한으로 제공된다면 스마트폰을 더 오래 사용하게 된다. 무제한 요금제에 가입했다고 해도 자주 데이터 사용량을 체크해보자. 이재원 교수는 “데이터 사용량 모니터링은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조절하는 능력을 키우는 좋은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누가 봐도 데이터를 많이 쓰고 있다면 심각성을 깨닫고 가끔은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고 살아보자. 메모, 가계부, 사진촬영 등 늘 스마트폰으로 했던 것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것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는 좋은 방법이다.
이재원 원장은 이지브레인의원에서 ADHD, 인터넷 게임, 스마트폰 중독, 불면증, 분노조절장애 등을 전문으로 진료한다.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이며 강남을지병원 중독브레인센터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