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정유경 기자】
【도움말 | 강동경희대학교병원 심장혈관내과 박창범 교수】
눈에서 안 보이면 마음에서 멀어지는 것은 사람뿐이 아니다. 우리 혈관도 그렇다. 흔히 볼록 나온 배를 보며 망가진 몸매를 걱정하지 그 배 안의 상황에는 별 관심이 없다. 배가 볼록 나올 정도면 우리 혈관의 노화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데도 말이다.
혈관은 눈에 잘 띄지 않고 대부분은 혈관질환이 있어도 통증이 없기 때문에 관리에 소홀하기 쉽다. 하지만 건강하게 오래 살기 위해서는 건강한 혈관이 필수다. 혈관이 건강해야 혈액이 쌩쌩 돌면서 몸 전체에 산소와 영양분을 제대로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통계를 보면 약 1/3가량은 뇌경색이나 심근경색, 협심증과 같은 심혈관계 질환으로 사망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혈관 건강을 지킬 생활습관을 유지하는 데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이 투자법은 많은 돈이 들지 않고 어렵지도 않다. 혈관의 시계를 천천히 흐르게 할 혈관테크법을 소개한다.
나쁜 습관이 만드는 나쁜 혈관
지구를 두 바퀴 반이나 돌 정도로 길고 긴 우리 몸속 혈관은 심장에서 분출한 혈액을 몸 구석구석까지 운반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우리 몸이 나이를 먹듯 혈관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늙는다. 혈관이 늙는다는 것은 혈관의 탄력이 줄어들고, 혈관이 좁아지거나 늘어나는 것이다. 이는 혈관이 막히거나 터질 확률이 높아져 혈액을 제대로 운반할 수 없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강동경희대학교병원 심장혈관내과 박창범 교수는 “혈관 노화 현상은 비만이나 고혈압, 당뇨병, 흡연 등에 의해 그 속도가 빨라지게 된다.”며 “하지만 반대로 혈관을 잘 관리하면 혈관의 노화를 늦출 수 있고 혈관과 관련된 합병증으로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문제는 요즘 혈관과 관련된 질환의 발병 연령이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운동 부족, 고지방·고칼로리 음식 과다섭취, 비만, 음주, 흡연 등의 나쁜 생활습관과 더불어 조기 당뇨병 및 고혈압 유병률이 높아지는 것과 관계있다.
만약 매일 술과 기름진 음식, 흡연에 노출되어 있다면 혈관에 해로운 일만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잦은 회식과 스트레스가 많은 직장인에게 흔한 일상이다. 또 폐경 전후 여성도 주의해야 한다. 폐경 전까지는 여성이 남성보다 심·뇌혈관질환과 같은 혈관질환 발병 우려가 낮지만 폐경 이후에는 같은 연령대의 남성에 비해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높아지기 때문에 이때는 더욱 혈관건강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건강백세의 기본! 혈관테크법 4가지
1. 혈관 관리의 첫 단계는 올바른 식습관!
박창범 교수는 “음식은 매일 먹는 만큼 올바른 식습관으로 혈관을 관리하고 신경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혈관을 건강하게 하는 식이요법의 기본적인 원칙은 고칼로리, 고지방 음식을 피하는 것이다. 동물성 지방인 포화지방을 피하고 식물성 지방으로 대체한다.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충분히 먹는 습관도 필요하다. 중국에서 시행한 연구에 따르면 50여만 명의 대상자를 약 6년간 추적 관찰한 결과 매일 과일을 먹는 경우 먹지 않은 경우보다 혈압을 약 4mmHg 정도 낮추고 혈당을 90mg/dL 낮추며 심·뇌혈관질환을 40% 정도 줄일 수 있었다고 한다.
2. 혈관을 튼튼하게 하는 운동하기!
규칙적인 유산소 운동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떨어뜨리고 심폐기능을 향상한다. 빠르게 걷기, 수영, 등산, 에어로빅, 자전거 타기와 같이 생활 속에 손쉽고 꾸준히 할 수 있는 자신만의 운동법을 찾는 것이 건강한 혈관을 유지하는 현명한 방법이다.
3. 비타민제에 의존하지 말고 습관을 바꾸기!
박창범 교수는 “삶의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고 비타민제나 항산화제에 의지하는 것은 좋은 습관이 아니다.”라며 “현재까지 많은 연구에서 상품화된 비타민제나 항산화제가 심혈관질환을 줄였다는 보고는 거의 없다.”고 설명한다.
1992년부터 2004년까지 45세 이상 여성 3만 9876명을 대상으로 10년간 600단위의 비타민 E를 하루 간격으로 복용하게 한 후 심혈관질환 및 종양의 발병률을 비교한 연구에서 비타민 E는 위약(가짜약)에 비하여 심혈관질환과 종양의 발병률을 유의하게 낮추지 못했다. 또한 프랑스인 1만 3017명을 대상으로 비타민 C, E, 베타카로틴 등의 항산화제를 평균 7.5년간 투여한 연구에서 항산화제를 투여함으로써 심혈관질환의 발병률을 줄이지 못한다고 보고한 바 있다.
박창범 교수는 “과일과 같이 신선한 상태로 그 자체를 섭취하는 것만이 혈압과 혈당을 줄일 수 있고 심혈관질환을 줄일 수 있다.”고 당부한다.
4. 스트레스를 줄이는 삶으로 바꾸기!
스트레스가 증가하면 심장과 뇌혈관질환의 발생률이 높아진다. 경기는 자꾸 안 좋아지고 경쟁은 더 치열해지는 바람에 많은 이가 살아남아야 한다는 스트레스에 묶여 어쩔 줄을 몰라 한다. 물론 돈은 살면서 꼭 필요하고 성공도 하면 좋다. 그러나 너무 필요한 것 이상을 얻으려고 나를 소모하고 있진 않은지, 별거 아닌 것에 아등바등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최근 ‘Work-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의 줄임말인 워라벨이 화두다. 박창범 교수는 “어렵더라도 업무 스트레스를 줄이도록 노력하고 일과 삶의 밸런스를 맞추도록 노력해보자.”고 조언한다.
지금이 혈관관리하기 딱 좋은 때!
나이를 먹는 것을 부정한다고 해서 나이가 드는 것을 막을 수는 없고 나이가 들어서 변화된 몸을 다시 되돌릴 수는 없다. 이미 생긴 고혈압과 당뇨병을 증상이 없다고 만만하게 보지 말고, 관리가 어렵다고 포기하지도 말자. 고혈압의 경우 약을 먹고 잘 관리되는 상태에서 운동을 꾸준히 하고 건강한 식이요법을 하며 체중을 조절하면 50% 이상은 먹는 약을 줄였고, 약 10% 정도는 약을 끊었다. 당뇨병은 꾸준한 치료와 관리를 통해 약물 개수가 증가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박창범 교수는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인식하고 나이가 들어 변화된 몸을 좀 더 관리한다면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고 말한다.
박창범 교수는 강동경희대병원 심장혈관센터 심장혈관내과에서 협심증, 심근경색, 말초혈관질환 등을 전문으로 진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