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양미경 기자】
“암환자라는 생각을 버리니 암도 달아나더군요”
순천(順天), 하늘의 도리에 따른다는 지명을 가진 도시. 그곳에 살고 있는 주재경 씨는 지명처럼 삶을 사는 사람이다. 누구에게 해 한 번 끼친 적 없을 것 같은 순한 얼굴로 대장암도 고개를 숙이게 만든 주재경 씨의 투병이야기를 들어본다.
주재경 씨는 마흔 여덟의 가장이다. 눈에 애교가 묻어나는 예쁜 부인과 딸 하나, 아들 하나의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단란한 가족 구성원. 겉으로만 보면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주재경 씨 가족은 조금만 이야기를 펼쳐 놓으면 참으로 놀라운 면면들을 가지고 있다.
”언젠가부터 배가 살살 아파오긴 했지만 뭐 죽을 만큼 아프다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그냥 그러려니 하며 살았죠 뭐.”
처음 어떤 증세 때문에 병원을 찾게 됐느냐는 질문에 어색하지만 덤덤한 웃음을 짓는 주재경 씨.
”이 사람 성격이 굉장히 특이해요. 무슨 도 닦는 사람도 아니고 평생 한 번 아프거나 힘든 감정을 내색하는 걸 못 봤어요.”
천상 소녀 같은 외모와 말투로 투정을 부리듯 말하는 부인 홍순복 씨. 그 살벌했던 순간들이 그들의 입을 통해 펼쳐질 때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삶의 한 순간처럼 느껴진다.
대장암이 간까지 전이돼
”처음에 병원을 갔더니 의사가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무조건 서울에 있는 큰 병원으로 가라고 말하더라구요. 뭔가 심상치 않은 예감은 했지만 남편한테 내색할 수도 없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남편도 이미 뭔가 큰 병에 걸렸구나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대요.”
부인 홍순복 씨는 널뛰는 가슴을 안고 남편을 데리고 서울아산병원에서 처음 정밀 진단을 받았다. 그런데 대장암이 진행될 대로 진행돼서 간까지 전이된 상태였다. 병원 측에서는 2개의 장기를 한꺼번에 수술할 수 없으니 만반의 준비를 하고 다시 오라고 했다고 한다.
”글쎄 그런 이야기를 듣고 제 마음이 어땠겠어요. 그런데 그때 남편이 뭐라고 그런 줄 아세요? 아직 준비할 시간은 많으니까 일단 하던 일은 마저한다며 덤덤하게 회사로 가는 거예요. 정말 내 남편이지만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존경스럽기까지 하더라구요.”
주재경 씨는 예의 그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죽음이 뭐 피한다고 해서 피해지는 것도 아니고 그냥 받아들이려고 했을 뿐입니다.”라고 이야기한다.
주재경 씨는 마치 감기에 걸린 사실을 받아들이듯 그렇게 암을 받아들였다.
술과 육식의 나날이 몰고 온 대장암
”제가 워낙 고기를 좋아했습니다. 대장암은 30~40%가 식습관이 원인이라는데 제약회사에 다니면서 술도 엄청 마셨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술을 마셔도 다음날이면 너끈히 회사에 출근하는 건강체질이라 제가 암에 걸렸다니까 동료들이 모두 건강검진을 받으러 갈 정도였습니다.”
주재경 씨는 암에 걸리고 나서 건강에 너무 자만했던 스스로의 모습을 후회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 순간 가장 절실했던 건 자신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 남아있을 부인과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가장 최악의 상황을 먼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내가 과연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하나하나 되짚어 보니까 오히려 마음이 단단해지면서 원망도 슬픔도 들지 않았습니다.”
수술을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해서도 단 한 번도 어두운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주재경 씨. 그 덕분인지 의사들은 성격이 좋아서 수술도 아주 성공적이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수술 후에 미음이 나왔는데 입맛이 전혀 없었던 모양이에요. 한 숟갈도 제대로 먹지 못하더라구요. 그래도 다른 환자들은 한 술 뜨다 말고 그릇을 밀어 놓는데 제 남편은 한 술 뜨고 넘어가지 않으면 일어나서 조금 걷고 또 한 술을 뜨고 해서 한 그릇을 비웠어요. 그때처럼 남편이 자랑스럽고 예쁜 적이 없었어요. 아프고 힘들어서 당연히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을텐데 가족들 생각하면서 그렇게라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너무너무 듬직했답니다.”
적은 돈으로 실천할 수 있는 식이요법
수술 후 한 달도 되지 않아 퇴원을 결심한 주재경 씨.
”항암치료를 권고 받았지만 입원 기간동안 틈틈이 보았던 건강관련 책자들을 참고해 식이요법을 결심했습니다. 그때 아무 반대도 없이 저를 믿고 제 뜻을 따라 준 아내에게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제약회사에 다닌 탓에 어느 정도 건강 상식을 가지고 있었던 주재경 씨는 검증되지도 않은 비싼 대체 식품들에 매달리는 대신 적은 돈으로도 실천할 수 있는 식이요법을 찾기 시작했다.
”가장 손쉽고 효능이 좋은 식이요법은 녹즙이었습니다. 그래서 민들레, 씀바귀, 컴프리, 신선초, 케일, 돗나물, 돌미나리 등 주위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을 1일 3회 식전에 한 컵씩 마셨습니다. 그렇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마시지 않으면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저보다 5~6개월 전쯤 유방암으로 입원하신 형수님에게도 녹즙을 권해드렸지만 별로 반기지 않으시더군요. 그리고 병원만 전적으로 믿으셨는데 얼마 뒤 돌아가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병원에만 너무 의지하지 말고 암환자 스스로가 암에 대해 현명해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제 아무리 몸에 좋은 음식이라도 스스로가 즐기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란 것도 깨달았습니다.”
식사는 강낭콩, 율무, 현미, 보리를 섞은 잡곡밥 위주로 하고 간식으로 효모를 첨가한 콩즙을 수시로 마셨다는 주재경 씨. 물 대신 운지, 영지, 아카리쿠스버섯, 상황버섯 중 하나를 선택해 황련, 계피, 생마늘 등을 넣고 끓인 물을 마셨다고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육류, 붉은 살 생선, 감기약, 항생제, 화학 조미료, 인공 색소 음료, 인공 첨가물, 튀긴 음식, 인스턴트 식품은 절대 먹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하는 주재경 씨.
”나의 사랑, 나의 꼬붕’이란 인터넷 소설을 히트시켜 책까지 출간한 소설가 딸 자랑에 함박웃음을 머금는 그는 분명 우리나라의 평범한 아버지이자, 암도 달아나게 한 강한 의지의 소유자임에는 틀림없었다.
”힘들고 어려웠던 터널이었지만 오히려 제 식습관과 삶의 태도를 되돌아볼 수 있었던 기회라고 여기고 싶습니다. 암환자라는 것을 너무 의식하지도, 너무 힘들어하지도 않으면서 그저 그 순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것이 암으로 인해 자신을 피폐시키지 않고 암을 이길 수 있는 최선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재경 씨는 이제 다시 한 가정의 가장으로 돌아가 남편으로, 아버지로의 삶을 행복하게 가꾸어 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