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이기옥?기자】
【도움말 | 인제대 의대 서울백병원 비만센터 강재헌 교수】
중견기업의 회계팀 부장인 50대 중반의 K 씨. 사내에서 그의 별명은 ‘7푼이’이다. 복잡하고 까다로운 일 처리를 꼼꼼하게 해내는 베테랑 능력자이지만, 그런 그가 ‘7푼이’로 불리는 이유는 단 하나. 늘 그의 곁을 지키는 커피 때문이다. 얼핏 보면 걸쭉한 한약처럼 보이는 그 시커먼 커피 속에는 설탕 7스푼이 들어있다. 출근해서 한 잔, 점심 전에 한 잔, 점심 먹고 한 잔…. K 씨의 커피잔은 비워지기가 무섭게 다시 걸쭉한 커피로 채워진다. 부하직원의 걱정 어린 시선에 K 씨는 불룩하게 나온 배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단 게 없으면 난 못 살아.”
비단 K 씨만이 아니다. 스트레스와 피로를 달고 사는 현대인들은 스트레스와 피로를 풀기 위해 단 음식을 달고 산다. 단 음식이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순간 스트레스가 풀리고, 피로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안다. 건강을 위협하는 톱3 안에 속하는 것이 바로 설탕이라는 것을. 그럼에도 헤어나오기 어려운 설탕 중독. 새해를 맞아 설탕 중독에서 벗어나 진정한 건강인으로 거듭나기 위한 설탕 중독 탈출법은 무엇일까?
설탕이 건강의 적이 된 사연
1960년대만 해도 설탕은 고급 명절 선물로 여겨졌다. 귀한 몸값을 자랑하며 없어서 못 사던 시절이 있었다. 또 비상사태로 식료품 사재기를 할 때도 빠지지 않는 품목이 설탕이다. 이처럼 귀하고 반드시 필요한 존재였던 설탕이 세월이 흐르면서 값이 저렴해졌다. 그리고 한식 위주였던 우리 식단이 서구화된 식단으로 변하면서 설탕 소비가 많아졌다. 인제대 의대 서울백병원 가정의학과 강재헌 교수는 “우리 식단에 인스턴트식품, 패스트푸드, 과자, 빵, 청량음료 등의 서구화된 식단이 들어오면서 설탕 소비가 많아졌다.”고 말한다.
또한, 이런 음식을 즐겨 찾는 데는 설탕 맛의 특성도 한몫한다. 설탕, 즉 단맛은 먹으면 먹을수록 점점 더 단맛을 탐닉하게 하는 특성이 있다. 즉 달게 먹을수록 역치(자극에 대해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자극의 세기)가 올라가서 전보다 더 많은 양을 먹어야만 달다고 느끼게 된다.
또한 설탕을 많이 먹으면 혈당이 올라가는데, 혈당이 올라가면 우리 몸은 혈당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혈중에 인슐린을 분비한다. 그런데 만성적으로 설탕을 먹거나 혈당을 많이 올리는 음식을 자주 먹으면 평소에도 인슐린 수치가 높아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늘 더 많은 설탕을 갈구하게 된다.
강재헌 교수는 “설탕 중독이라는 의학적 진단명은 없다. 하지만 흔히 말하는 ‘설탕 중독’이란 바로 이러한 설탕의 특성에서 비롯된 것 같다.”며 “‘설탕 중독’이란 설탕을 자꾸 소비함으로써 점점 더 설탕을 탐닉하고 더 많이 소비하고자 하는 욕구가 생기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질환이 아님에도 설탕 중독은 마약 중독, 니코틴 중독, 약물 중독 등의 병적 중독이 갖는 특징도 가지고 있다. 병적 중독은 첫째, 맛을 들이면 점점 더 자주, 점점 더 많은 양을 갈구한다. 둘째, 그 양을 줄이거나 끊게 되면 손이 떨리는 등의 금단현상이 나타난다. 셋째, 금단현상이 있을 때 다시 그 맛을 보면 상태가 좋아진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중독의 특성이 설탕 중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설탕, 즉 단맛을 들이다 보면 점점 더 단맛을, 점점 더 자주 찾게 된다. 처음에는 초콜릿 한 조각이면 충분하지만, 계속 먹다 보면 한 통을 다 먹어야 만족하게 된다. 그러다 안 되겠다 싶어 초콜릿을 끊어보면 몸이 굉장히 불편해진다. 머리가 아프고, 피곤해지고, 안절부절못하게 된다. 그러다가 다시 초콜릿 한 조각을 먹으면 그런 증상이 사라지고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강재헌 교수는 “하지만 그 순간의 행복은 일시적이어서 또다시 금단현상이 나타나고 더 많은 설탕을 찾게 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음식이기는 하지만, 설탕은 마약이나 담배와 굉장한 유사성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심뇌혈관질환을 부르는 동맥경화의 주범, 설탕
설탕의 당은 몸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에너지원이지만 고열량·저영양 음식이기 때문에 많이 먹으면 우리 몸에 문제를 일으킨다. 설탕을 많이 먹을수록 체지방이 늘고 살이 찌며, 칼슘·비타민·미네랄 등 다른 에너지원의 흡수를 방해하고, 세포노화를 촉진한다.
또한, 만성적으로 설탕을 많이 먹거나 혈당을 많이 올리는 음식을 자주 먹으면 우리 몸은 늘 혈당을 낮추기 위해 평소에도 인슐린 수치를 올려놓는다. 즉 고인슐린혈증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혈관의 약한 부분에 염증이 생기기 시작하고, 염증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면 혈관이 딱딱해지면서 동맥경화가 된다.
강재헌 교수는 “예전에는 기름진 음식 섭취, 즉 콜레스테롤 때문에 동맥경화가 생긴다고 생각했지만, 최근에는 이보다 설탕이 동맥경화에 더 큰 영향을 끼친다고 본다.”며 “만성적인 설탕 섭취로 인슐린 수치가 높은 상태가 지속되면 당뇨병, 심혈관·뇌혈관질환관·대사질환이 생길 위험이 커지고 비만이 될 확률도 높은데 특히 복부비만은 이런 심각한 악순환을 더 심화시킨다.”고 말한다.
혹시 나도 설탕 중독?
스트레스나 피로를 풀기 위해 설탕이 듬뿍 든 음식을 주로 찾는 사람이라면 ‘내가 혹시 설탕 중독이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한 번쯤 해보았을 것이다. 과연 정말 그럴까? 다음 테스트를 통해 자신의 설탕 중독 정도를 가늠해보자.
<설탕 중독 자가 진단 테스트>
● 단 음식을 먹어야 집중이 된다.
● 단 음식을 먹어야 스트레스가 풀린다.
● 전과 비슷한 정도의 단 음식을 먹어도 만족스럽지 않다.
● 배가 부를 때까지 단 음식을 먹는다.
● 식사 후에 늘 단 음식을 먹는다.
● 단 음식이 없으면 불안하다.
● 이유 없이 짜증 나고 의욕 없을 때가 많다.※ 3개 이상이면 설탕 중독일 확률이 높다.
설탕 중독에서 탈출법~
1 과일의 단맛을 길들이자
강재헌 교수는 “똑같은 단 음식을 먹더라도 설탕보다는 과일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조언한다. 진한 설탕 맛에 길든 사람이라면 과일의 달콤함이 약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설탕 중독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과일의 단맛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단 음식을 먹지 않은 상태에서 단 과일을 먹도록 하자.
2 식사를 거르지 말자
강재헌 교수는 “식사를 규칙적으로 할 수 없을 때에 단 것이 당기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너무 바빠서 식사를 거르고 일을 하다 보면 밥보다는 초콜릿이 먹고 싶어질 수 있다. 그럴 때 단 음식을 보면 참기도 어려워진다. 단 음식의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면 끼니는 거르지 않도록 하자. 단 음식이 계속 먹고 싶을 땐 혈당지수가 낮은 음식을 먹는다. 고구마, 사과 등이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
3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을 찾자
스트레스가 심할 때도 단 음식이 당긴다. 단 음식이 아닌 운동이나 취미생활 등으로 스트레스를 풀어야 한다. 스트레스를 단 음식으로 풀려고 할수록 점점 더 설탕에 중독된다. 강재헌 교수는 “단 음식을 먹었을 때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는 뇌가 세로토닌 호르몬을 분비하기 때문”이라며 “가벼운 운동을 해도 세로토닌이 분비된다.”고 조언한다. 가벼운 산책이나 스트레칭을 해보자.
4 혈당 지수가 낮은 음식을 먹자
음식에는 혈당을 빨리 올리는 음식과 천천히 올리는 음식이 있다. 초콜릿, 청량음료 등은 당 지수(GI 지수)가 높아 혈당을 빨리 올리고, 채소나 과일류는 GI 지수가 낮아 혈당을 천천히 조금씩 올린다. 따라서 단 음식을 먹더라도 당 지수가 높은 것보다는 낮은 것 위주로 먹는 게 좋다.
강재헌 교수는 “설탕은 독극물이 아니다. 설탕을 먹는다고 무조건 당뇨병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설탕이 문제가 되는 것은 ‘많이 먹을 때’다. 설탕만이 아니라 매실엑기스나 꿀 등의 대체당 섭취도 주의하고, 하루 열량섭취량의 10% 이내에서 먹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