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이수희 기자】
처음부터 수술은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굳힌 그는 우선 ‘암을 알아야 이겨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암 전문 서적은 물론 한방, 양방, 대체의학 등 각계의 전문의를 찾아다니며 암을 공부했고 자신의 의지에 따라 투병생활을 시작, 힘든 역경을 이겨내고 새로운 인생의 기쁨을 맛보고 있다.
현재 ‘한국 암을 이겨내는 사람들의 모임’ 회장으로 새롭게 봉사의 삶을 살고 있는 그를 만나 그간의?심경을 들어봤다.
”그냥 담담했어요.”
소변줄기에서 갑자기 피가 쏟아져 나와 황급히 병원을 찾았다는 ‘한국 암을 이겨내는 사람들의 모임’ 이정갑 회장.
20여일의 검사 끝에 그에게 내려진 진단은 방광암 말기였다. 6개월을 넘기기 힘들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지만 이상하리만치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예기치 못한 사고로 갑작스럽게 사랑하는 아내를 떠나보냈고, 그 뒤에 힘겨운 일들을 연속으로 겪은 뒤였지요. 그런데 저까지 죽음을 선고받고 보니 슬프다던가, 화가 난다던가 하는 여유로운(?) 생각은 들지가 않더군요. 그냥 망치로 뒷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멍하기만 했었어요.”
암 공부 후 치료 선택해도 늦지 않아
1995년 방광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그는 애초부터 수술은 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을 했다. 대신 한방 치료에 희망을 걸기로 했다. 이런 그에게 주변의 핀잔이 오갔으나 개의치 않았다.
“먼저 암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슨 처방인지도 모르고 의사들이 그저 시키는 대로 수동적으로 끌려가고 싶지가 않았거든요. 최소한 의학용어만이라도 알아들을 수 있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그런 후에 본격적인 치료를 시작해도 늦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우선 그는 병원에서의 치료기록을 전부 받아 일본으로 갔다.
일본 게이오 대학 교수로 <암과 싸우지 말라>는 책을 펴내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암 전문의인 곤도 마코토 교수에게 상담을 요청, 암에 관한 많은 정보를 얻었다. 하지만 곤도 마코토 교수는 한방치료를 받고 싶다는 그에게 “그 분야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더 이상의 조언은 힘들다.”면서 대신 자신의 환자 중에 동양의학 치료로 호전된 사람을 소개해 주면서 어떤 치료를 받을 것인지에 대한 선택을 하라고 했다.?
“우리나라는 환자에게 선택할 기회도 주지 않고 너무 수술부터 서두르는 경향이 많은 것 같다.” 는 그는 최소한 환자를 납득시키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암이 전이되었더라도 건드리지 마라”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차마 가족들에게 털어놓을 수가 없었던 이 회장.
“갑작스런 아내의 죽음으로 상처받은 아이들이 겨우 제자리를 찾았는데, 또다시 상처를 주는 것 같아 마음이 무척 아팠지요.” 하지만 일본으로 건너가 치료를 받는 중에 통역을 도와주던 아들한테까지 그것을 숨기기란 불가능했다. 다른 가족에게는 알리지 않고 아들과 중국으로 둘만의 여행을 떠났다.
“할말이 무척 많으리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눈을 마주치기만 해도 가슴이 찡해와서….” 정작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여행을 끝내야 했다.
본격적으로 치료를 결심한 그는 중국에서 중의학과 대체의학으로 치료를 시도했다. 심지어 중국에서는 독성이 강한 부자, 복어알, 유황까지도 처방을 받아 사용했을 정도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어떤 것이 가장 효과가 있었냐고 물어오면 솔직히 난감하다.”며 너털웃음을 보인다. 확실한 것은, 그동안 치료에 사용해 왔던 많은 방법들이 비록 암을 녹여내지는 못했더라도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도록 억제시킨 것만은 분명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암 발병 3년 후 암세포가 요도를 막아 어쩔 수 없이 수술을 하게 되었을 때 더욱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고.
“암이 다른 곳까지 퍼져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6개월밖에 못산다던 제가 3년을 견뎌냈으니 제 나름대로 선택한 방법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는 자신이 있었지요. 그래서 혹시라도 다른 장기에 암이 전이되었더라도 나는 내 방법대로 치료할 것이니 손대지 말아달라.”며 병원측에 단단히 다짐을 시켰었다고. 그리고서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아들을 수술실에 입회시키는 동안 만감이 교차됐다.
그간 노력의 대가였을까? 다행히 암세포가 자라거나 다른 곳으로 전이되지 않았다.
그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던 의사들도 믿기지 않는다며 이같은 사실에 놀라워했다.
뜸과 구운 마늘 상복으로 효과
대부분의 암 환자들이 그렇듯 이 회장도 지금까지 암에 좋다는 방법은 안 해 본 것이 없을 정도로 사용해 보았다. 최첨단의 현대의학으로도 완치시키지 못하는 암을 “나는 이렇게 이겨냈다.”며 끊임없이 소곤대는 소리를 뿌리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넘쳐나는 암에 대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어떠한 방법이 자신과 맞는 것인지도 알 수 없었고 사람마다 효과 또한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가능한 모든 방법을 직접 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온갖 대체요법과 ‘비방’이 난무하는 현실에 중심없이 휩쓸려서는 안된다고 이 회장은 조언한다. 사람에 따라, 또 그 방법에 따라 약효가 나타나는 시간이 다른 만큼 자신이 선택한 방법에 대해서는 일단 꾸준히 실천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 회장은 오랜 시간 받은 뜸 치료가 효과가 있었다고 말한다. 직구영구법으로 뜸을 뜬 그의 몸 곳곳은 그간의 힘겨웠던 시간들을 말해주듯 여기저기 움푹 패여 있었다.
이외에도 현재까지 꾸준히 실천하고 있는 건강법이라면 마늘을 빼놓을 수 없다. 초기에는 하루에 50통까지 먹기도 했지만 지금은 10통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생마늘은 먹기 힘드므로 구워 먹거나 가루내어 먹기도 하고 나중에는 더 간편하게 환으로 만들어 복용하기도 했다. 간혹 마늘이 지겨워(?)질 때는 마늘 가루에 꿀을 반죽해서 콩가루 또는 선식가루를 뿌려먹기도 하는 등 다양한 마늘 건강법을 실천하고 있다.
낙천적 성격, 마음을 비워내는 노력 중요
일본과 중국을 오가면서 치료를 받은 것 외에도 그는 지리산에서 오랜 시간 요양기간을 보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모든 가능성을 타진 해 보기 위한 것이었을 터.
이 회장은 그곳에서 “식생활과 생활환경 그리고 욕심없는 마음이 암을 이겨내기 위한 가장 큰 조건”임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특히 자신의 낙천적 성격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일본에 갔을 때 곤도 마코토 교수가 제 진료카드를 보고 그러더군요. “이 차트의 내용을 봐서는 당신은 6개월 정도밖에 못 살 것이 확실합니다. 그렇지만 당신의 눈빛과 의지를 보니 일찍 죽을 것 같지는 않군요.”라고 말입니다.
‘죽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니까 마음 비우기가 훨씬 수월하더군요. 두려운 마음도 없어지구요. 사람은 고비를 느낄 때 좀더 인간적으로 성숙해지는 것이 정말 맞는 말.”이라는 그는 그 자신이 죽음을 목전에 두고 인생의 가치관이 전부 바뀌었음을 고백한다.
사업, 돈, 명예, 부귀를 쫓아 지금껏 달려왔는데 한 순간 그 모든 것들이 ‘죽음’ 앞에서는 아무런 가치가 없더라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인생을 뒤돌아보니 곧 죽을 목숨이라도 지금 이 순간 살아있다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고 감사하다고 말한다.
자신의 병에 대해 공부하라
투병생활을 거치면서 이 회장은 암 환자들이 대부분 자신의 질병에 대해서 너무 무지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저, ‘의사가 하라는 대로’, ‘그들이 낫게 해주겠지’ 라며 기대하는 경향이 짙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자신의 “질병을 제대로 이해하고 치료의 방법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의사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의 공부는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다양한 투병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한국 암을 이겨내는 사람들의 모임’을 창단, 암에 대한 각종 정보와 스스로 치료의 방법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더 나아가 “환자들이 고통을 극복하고 보다 인간적인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인 만큼 앞으로 암 환자 전용 휴양시설 건립을 모임의 장기사업으로 추진할 계획도 갖고 있다.
이 회장은 상담을 요청해 오는 환자들에게 가장 먼저 “특효약은 없다”는 것과 “스스로 암을 공부하라”고 조언한다. 그래서 암을 이해하고 치료법을 선택하면 거기에 매진할 것을 당부한다. 다른 사람의 말만 듣고 선택하는 것은 미련이나 후회가 남기 때문이다.
특히 이 회장은 암 환자들과 많은 상담을 해본 결과 대부분의 사람들이 암 발생 몇 년 전에 커다란 사건 즉, 부도, 강제퇴직, 배우자 사망, 이혼 등 평범치 않은 사건 등으로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받아왔다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이러한 스트레스는 암 발생 원인의 가장 큰 적인 만큼,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미움과 원망으로부터 마음을 비워내도록 노력하면서 여유있는 마음으로 포용심을 가진다면 스트레스로부터 멀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충고를 잊지 않는다.
인터뷰 내내 밝고 자신에 찬 모습으로 “암은 극복할 수 있다”며 희망을 전하고자 노력했던 이정갑 회장.
“암 환자라는 것을 왜 숨겨야 합니까?”
암 환자라고 하면 왠지 가까이 하려고 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부터 바뀌어야 한다며 오히려 “감기환자보다 암 환자 친구가 훨씬 낫지 않느냐?”며? 사람좋은 웃음을 지어보인다.
▲ 방광암 말기로 6개월을 넘기기 힘들다는 판정을 받았던 이정갑 씨는 현재 ‘한국암을 이겨내는 사람들의 모임’ 회장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