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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희망가] 위암 수술 후 20년 임대상 씨의 위암 극복기

2016년 08월 건강다이제스트 휴식호

【건강다이제스트 | 정찬희 객원기자】

임대상1

사람이 살다 보면 억울하게 고통을 받을 때도 있다. 암 수술을 받은 것만으로도 감당하기 힘들었을 텐데 말기암에 걸리고, 소송에 휘말려 억울한 옥살이까지 하고… 인생의 ?큰 파란을 겪고도 건강한 삶을 살고 있는 흔치 않은 사례가 있어 소개한다. 분당에 사는 임대상 씨(64세)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를 인터뷰하기는 쉽지 않았다. 끈질긴 설득 끝에 겨우 용기를 내주었다. “혹여 저처럼 큰 고통을 겪고 있는 다른 환우들에게 작은 희망이라도 되지 않을까 하여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말기 위암과 인생의 고비를 이겨내고 황혼의 나이에도 전기 특급기술자로 열정적인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임대상 씨. 그에게는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1995년 5월, 위암 말기라니…

1995년 5월, 임대상 씨는 그의 생애에서 가장 황당한 경험을 해야 했다. 평소 소화가 좀 안 되고, 답답함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이 그의 인생에서 시한폭탄이 될 줄은 미처 몰랐다.

1995년 5월 어느 날, 그는 ‘위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말했다. “위암 말기입니다. 위 절제 수술을 해야 합니다.”

그 말을 들었을 그 황당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사실은 너무 황당해서 충격이라는 것도 느끼지 못했다고 말한다.

“위암이라고, 그것도 말기라는 말을 듣는데 의사가 저한테 하는 말인데도 꼭 남의 얘기 같더라고요. 의사의 암 선고는 드라마에서나 듣는 말인 줄 알았지 저 같은 사람한테 생길 일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식도와 십이지장을 연결하다

암 진단이 던진 파문은 상상 이상이었다.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몸도 마음도 초주검이 되다시피했다. 그런 와중에 회사에 휴가를 내고 곧바로 수술일정도 잡았다.

“당시 공기업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하루아침에 위암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니 다들 믿지 못하더라고요.”

그만큼 충격적이고, 느닷없는 암 진단이었다. 그것도 말기 위암이었다. 패닉 상태에서 길고 지루한 검사가 장장 열흘 동안 계속됐다. 그런 검사가 모두 끝났을 때 위 전체를 절제하고 식도와 십이지장을 연결하는 수술을 했다.

아직도 그날의 기억은 생생하다. 1995년 6월 15일, 서울아산병원에서 아침 10시에 수술실에 들어가 저녁 7시가 되어서야 수술실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마취에서 깨어나 병실에서 눈을 떴을 때 가족들의 얼굴에 드리워져 있던 걱정스런 모습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핏기하나 없던 아내의 메마른 얼굴도, 당시 중학생, 초등학생이던 두 아이의 풀죽은 모습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항암치료의 긴 터널은 고통스러웠다

수술은 잘됐다고 했다. ‘한 고비는 넘겼나 보다.’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기나긴 항암치료라는 고통의 터널이 기다리고 있었다.

“말도 마세요. 항암치료라는 게 고행이다, 힘들다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알겠더라고요.”

몸에 있는 털이란 털은 전부 빠지고, 먹지도 못하고, 헛구역질은 수시로 올라왔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반쯤 넋이 나간 모습으로 누워 있는 날도 부지기수였다.

그러면서 수술 전 70kg이던 건장한 체구는 하루가 다르게 변해갔다. 살이 빠지면서 볼품없이 변해갔다.

“지금도 그 후유증은 남아 있습니다. 위암 수술한 지 20년이 지났는데도 한 번 빠진 살은 다시 찌지 않아 몸무게가 49kg입니다. 병원에서는 저체중이라 하더군요.”

그렇게 6개월 동안 방사선과 항암주사, 그리고 병원에서 처방해주는 경구용 항암제를 먹으면서 임대상 씨는 그의 생애를 통틀어 가장 고통스런 나날을 보냈다고 말한다.

항암도 그냥 내 생활이다 생각했다

그래도 임대상 씨는 운이 좋은 편이다. 비슷한 시기에 수술한 동기 암 환자 중에 많은 이들이 죽어갔지만 그는 살아남았다.

“암 환자들끼리는 같은 애환이 있다 보니 같은 병실에 있으면 친해지고 나중에 퇴원해서도 동창회 하듯이 모임도 갖고 연락도 주고 받아요. 그런데 그때 알던 사람들 중에 지금까지 살아있는 사람은 저뿐이에요.”

하지만 위암 말기, 목숨 건 수술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고 해서 드라마틱한 환희의 나날이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니었다. 먹고 사는 문제, 가족 부양의 의무는 여전히 그의 어깨 위에 드리워진 짐이었다.

더군다나 회사의 배려로 격무를 피할 수 있어서 매달 병원검진을 받으며 회사를 다닐 수는 있었지만 암 수술 후 관리와 직장생활을 병행하는 것은 꽤나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아내와 아직 학생인 아이들이 있어서 공기 좋은 데로 훌쩍 떠나 요양을 하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었다.

다만 ▶식단을 조금 바꾸고 ▶음식을 천천히 조금씩 먹고 ▶몸에 좋다는, 그러나 구하기 쉬운 자연재료들을 이용한 것들을 주로 섭취하면서 암 수술 이후의 삶을 살았다. 그때 그가 가슴에 품었던 생각은 ‘항암도 내 생활이다.’ 받아들이는 거였다고 한다.

갑작스러운 옥살이, 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꾸준히 경구 항암제를 먹으며 항암관리를 하는 생활을 하던 그에게 2007년 12월, 또 다른 불행이 찾아왔다.

“정말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억울하고 분해요. 도장을 잘못 찍어준 가등기 계약서 때문에 제 소유였던 집이 넘어가 소송을 했는데 오히려 무고죄로 옥살이 까지 하게 됐어요.”

세상에 이럴 수도 있나 싶었다. 억울하고 분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20여 년간 몸담았던 직장도 하루아침에 잃었다.

그러자 항암제를 먹으며 다스리던 암 증세도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진짜 인생 하루아침이더군요. 믿기지가 않았어요. 암 증세도 급격히 나빠지면서 수시로 암병동 응급실로 실려가야 했어요.”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온몸이 화끈 달아오른다고 한다. 세상 밖에는 흰 눈이 펄펄 내리고 캐롤은 사방에 울려 퍼지고 있었지만 임대상 씨는 “살고 싶지 않았다.”고 말한다.

마음을 고쳐 먹으니 세상은 달라졌다!?

하루하루 죽지 못해 살던 임대상 씨가 새롭게 마음을 고쳐 먹은 건 봄이 오면서였다.

“세상을 원망하며 지내는데 갑자기 눈에 무슨 꽃도 아닌 것이, 진짜 시시한 잡풀이었는데, 그게 다 녹지도 않은 땅에 파랗게 돋아난 걸 보니 ‘아, 봄이 오는구나. 내 고통도 이 계절처럼 지나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세상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독한 항암제로 온몸의 기력이 하나도 없어도 “무좀약 한 통을 들이부어도 낫지 않던 악성 무좀이 항암제 덕분에 타 죽었다.”며 좋아라 했다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더 이상 응급상황으로 병원에 실려가는 일도 없어졌다. 병원은 정기검진일만 가면 되었다.

도리어 세상일에 대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서 오히려 암이 호전되어 마치 요양을 하는 것 같았다고 말한다.
그렇게 억울한 옥살이를 10개월 정도 하고 나왔을 때 임대상 씨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지금도 그 억울함을 풀기 위해 재심청구소송은 하고 있지만 그런 와중에도 건강은 그가 가장 먼저 챙기는 덕목이 됐다.

빨리 먹던 습관을 버리고 천천히 조금씩 자주자주~

임대상 씨는 암 진단 전 늘 급하게 식사를 하고, 배부를 때까지 먹는 식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위암으로 위 절제 수술을 한 이후부터는 식사습관을 바꿨다. 임대상 씨는 그 당시 자신의 위 상태를 “자극적인 것은 먹을 수 없는 갓난아기 상태였다.”고 말했다. 그래서,

1. 아무것도 넣지 않은 찹쌀죽 미음을 한 달간 먹었다.

2. 아무것도 넣지 않은 찹쌀죽을 6개월간 먹었다.

3. 찹쌀죽 식사를 수술 후 2년간 지속하며 양념으로 조선간장, 묽은 김치국물 그리고 단백질 보충을 위해 갈치나 고등어 살을 섭취했다. 죽과 생선살을 포함하여 하루 두 숟가락 정도의 양을 하루 10번씩 섭취했다. 된장국은 수술 후 1년이 지나 먹게 되었다.

4. 비빔밥은 임대상 씨가 현재까지 즐겨먹는 메뉴로 수술 후 2년이 되어서 먹게 되었다. 채소를 골고루 맛있게 섭취할 수 있어 자신에게 잘 맞는 것 같다고 말한다. 밥 양은 적게, 채소를 많이 넣어서 먹었다. 찹쌀죽과 비빔밥을 번갈아 먹었다.

임대상3

5. 지금은 자극적이지 않으면 일반음식도 섭취 가능한데 그 상태가 되기까지 5년이 걸렸다.

“그렇게 하다 보니 이제는 음식을 천천히, 조금씩 먹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어요. 현재는 아주 자극적인 음식만 아니면 못 먹는 것은 없고요. 다만 술은 일절 입에 대지 않습니다. 항암에 좋대서 어성초도 가끔 물로 끓여 마십니다.”

하지만 임대상 씨는 잘 알고 있다. 무엇을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이라는 것을.

“제 경험으로 볼 때 ‘나 암걸렸다, 죽으면 어떡하지’ ‘고통스럽다, 원망스럽다’ 하고 불안과 공포를 느끼면 더 나빠지는 것 같아요. 그냥 항암도 내 생활이다 받아들이고 그냥 편하게 사니까 더 좋아졌으니까요.”

안달복달한다고 더 살고 못 사는 건 아닌 것 같다고 말한다. 그 또한 암에 걸리기 전에는 ‘카터칼’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작은 것 하나도 매사 정확했는데 암에 걸리고 보니 그렇게 산 세월이 많이 후회스러웠다고 말한다.

“며칠 전에도 출장 때문에 분당에서 구미까지 장거리 운전을 했어요. 아마 위암 말기 환자가 20년이나 살아서 환갑 넘은 나이에도 무사히 장거리운전을 할 정도로 건강을 유지한다면 다들 깜짝 놀랄 거예요. 그런데 뭐든 급하고 안달하던 성격과 삶을 바꾸니 이렇게 살아 있네요.”

그런 탓에 임대상 씨의 당부도 하나다. 암을 미워하지 말라고 한다. 누구나 몸에 암세포는 가지고 있고, 다만 그게 암증으로 나타나느냐 아니냐의 차이만 있기 때문이다.

임대상 씨는 “저는 암을 미워하지 않아서 산 것 같습니다. 그냥 내 삶인가 보다 받아들였던 것이 최초 암 진단 후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큰 탈 없이 지낼 수 있게 된 비결인 것 같습니다.” 그것은 지금 그가 세상을 즐겁게 살아가는 노하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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