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이명선 기자】
“암세포마저도 사랑하세요. 그럼 희망이 보입니다”
아침부터 서두르다보니 너무 일찍 약속장소에 나왔나 싶었다.
만나기 전에 이것저것 꼼꼼하게 물어봐야지 생각하고, 취재수첩을 질문거리로 채우다보니 훌쩍 약속시간을 넘겼고, 먼 발치에서 기자를 향해 걸어오는 모습은 만들어 둔 질문거리들을 무색하게 했다.
굉장히 밝은 미소와 단정한 매무새로 씩씩하게 걸어오는 김혜경 씨가 이달의 투병인인지, 건강인인지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일단은 점심을 시켜놓고 김혜경 씨가 정말 폐암 3기를 선고받았던 적이 있는지부터 물었다.
예, 2000년 12월 4일날 폐암 3기라는 확진을 받았습니다. 평생 잊혀지지 않을 날짜예요. 왜냐하면 그 날이 새 삶을 시작하는 날이었거든요.”
하늘이 무너진 날이 아니라, 삶이 새로 Set up된 날이라니….
김혜경 씨는 약사로 재직 중이던 지난 2000년 겨울 수능 본 아이들이 대견해서 조그만 선물이라도 마련해 두려고 가까운 측근들과 외출을 나왔던 참이었다.
그 중 한 친구가 손가락 모양이 영 이상하다며 정형외과에 가서 검사를 한 번 받아보라는 것이었다.
선보러 나가거든 손만 보이고 있어라 할 정도로 섬섬옥수를 자랑하던 그녀에겐 적잖은 충격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손가락 모양이 마치 ‘곤봉’ 모양으로 자세히 보니 형태가 좀 이상하다 싶어 본인도 병원을 찾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정형외과에 가서 손가락 검사를 겸하면서 기본적으로 X-ray 촬영과 혈액검사를 했는데, 문제는 손가락이 아니었다.
“엑스레이 상으로 볼 때 폐에 계란 만한 혹이 보인다고 말해주더군요. 제가 봐도 보이는 혹이었어요. 정신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의사는 이미 림프절과 횡경막에 암이 전이돼 수술조차도 힘들겠다는 말을 전했다.
남들처럼 기침을 많이 했다든가, 통증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 흔한 담배 한 가치를 피워본 적도 없는데 이렇게 소리 소문 없이 폐암이 찾아왔다는 것이 거짓말처럼만 느껴졌다.
최고의 타이밍을 잡아라
폐암은 다른 암과는 달리 전이와 진행속도가 빨라 그 누구도 남은 생을 예측하기가 어렵다. 때문에 최고의 타이밍을 맞추는 것이 관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의사는 일단 상태를 말해주고, 결정은 제가 내려야 한다고 그러더군요.”
힘든 순간이었다. 몸도 아프고, 마음도 아픈데 최대한 조속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니 더욱 기력이 없었다.
그러나 살아야 한다는 의지는 그녀에게 결단을 내리게 했다.
수술 결과는 만족스러웠지만 항암치료가 남아있었고, 방사선 치료도 30회를 더 견뎌야 했다.
항암치료가 힘든 것은 그 치료가 주는 특유의 고통과 심한 탈모 때문이었다. 머리를 감다보면 하수구가 막힐 지경이었다. 삭발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해? 고민하는 그녀에게 식구들은 중론 끝에 직모, 곱슬머리, 긴머리, 짧은 머리 등 다양한 가발과 털모자를 들이밀고는 능숙하게 쓰는 연습을 해보라며 힘을 북돋았다.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끝내자마자 여름휴가를 떠났다. 실로 밝고 유쾌한 사람이다.
1차 수술 3일 앞두고는 32년만의 폭설도 마다 않고 도봉산 등정을 했다니, 그 엉뚱한 고집과 유쾌한 심보(?)에 병도 두 손, 두 발 다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해 10월 폐암은 다시 재발했다.
재발 이후 2차 수술을 위해서
그때의 절망과 가슴 무너지는 심정은 말로 다 못한다. 아무리 씩씩한 그녀라도 충격이 가시지 않았다.
수술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도 선뜻 결정이 내려지지 않았고, 그야말로 공포였다.
이제서야 암의 끈질김과 무서움이 실감이 나면서 김혜경 씨는 정신이 번쩍 났다. 사람이 일평생 한 번은 죽고, 나도 언젠가는 죽지만 암으로 죽진 말아야지 생각하며 철저한 마인드 컨트롤에 들어갔다.
열 일을 제치고 친정인 충주로 내려갔다. 그리고 나서 병에 대해서 집중했다. ‘이 싸움에서 밀리지 말아야지’ 결심하며 암세포마저도 사랑해야지, 하루하루 병을 이기는 나를 실컷 칭찬해야지, 절망을 잊고 즐거운 일만 생각해야지 하는 그녀의 마인드 컨트롤은 큰 의지가 되었다.
2차 수술을 받기 전에 몸이 최상의 상태가 되어야 했다. 적어도 항암치료를 견뎌낼 체력을 다지는 것이 급선무였다.
“폐를 잘라낸 상태라 많이 걸으면 숨이 차요. 그러나 하루도 등산을 거르진 않았죠. 충주에 있는 남산은 600m정도 되는 높이인데 오르내리는 데 한 두어 시간 걸려요.”
지금도 ‘날 살린 것은 산’이었다며 등산 예찬론자인 그녀는 산에서 내려오면 집에서 손에 쑥뜸을 떴다. 체질이 워낙 냉해서인지 쑥뜸이 잘 맞았고, 하고 나면 컨디션이 한결 좋아졌다. 또한 면역력을 키우는 데는 이것만한 것이 없다며 꾸준하게 홍삼을 달여 보내는 친구 덕분에 홍삼도 거르지 않고 먹었다.
처음 수술하고 나서는 몸이 허해서인지 개고기와 장어를 아예 대놓고 먹었었다. 실제로 입에서 당기기도 했거니와 지방이 적고 단백질이 많은 음식이 환자에겐 최고라고 들었다. 또 몸을 보하는 데 개고기와 장어 만한 것이 없다는 주위 말에 실컷 먹고 돌아서기가 무섭게 또 먹어 치웠다.
그러나 개소주, 흑염소 등이 몸을 회복시키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하지만, 암을 활동적으로 만드는 데도 일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결국, 2차 수술을 앞두고는 남편이 챙겨주는 자연식 위주의 식사와 녹즙, 과일 등을 챙겨 먹게 되었다.
“녹즙 한 잔 만드는 데 얼마나 힘든지 모르시죠? 그 많은 야채를 깨끗이 씻고 닦고, 그리고 전부 갈아 놓고 나면 딱 한 잔만 나오는데 얼마나 야속한지…. 이래서 녹즙이 몸에 좋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예요.”
느림이 빠름을 이기는 철학
2차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의사는 암이 있던 자리가 놀랄 만큼 깨끗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끊어졌던 생리도 시작되고, 머리카락도 다시 나기 시작했다. 철저한 자기관리 덕분이라는 생각에 그녀의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항암치료를 끊은 지 6개월째로 접어들고 있다는 김혜경 씨. 앞으로의 1년이 중요하지만 그녀는 상당히 낙관적이다.
“제 동생이 그러는데 저는 이 먹성과 또라이 정신만 있으면 폐암 정도는 끄떡없이 극복할 거라고 해주더군요. 제가 생각해도 그래요.”
실제로 그녀는 주문한 스파게티를 무척이나 맛있게 먹었고, 시종일관 웃음과 여유를 잃지 않으려는 모습에서 병색은커녕 건강미(?)가 흠뻑 느껴졌다.
“건강하다는 이유로 내가 마치 20대인냥 일과 공부로 매진하며 몸을 혹사시켰어요. 그것도 하나의 ‘오만’이죠. 이젠 내 삶을 더 진지하게 돌아보고, 반성하는 마음을 갖는 것, 또 내 가정을 지킬 수 있는 건강을 다지는 것이 저의 가장 큰 목표입니다. 그렇지만 급하게 생각 안 해요. 느림이 빠름을 이기거든요”
이제 완치된 것 같다는 말을 건네자 그녀는 재발을 겪어서인지, 완치라는 말을 아꼈다. 다만 매우 희망적이고, 밝은 웃음으로 답변을 대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