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허미숙 기자】
“암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어요”
그을린 피부, 건장해 보이는 몸!
‘설마’했다. 몇 달 전까지 요양병원에 있었던 사람이라곤 믿기지 않아서였다. 그런데 빗나갔다. 대장암을 이겨내고 5년 생존의 주인공으로 소개받은 정태구 씨(57세)였다. 너무도 건장한 모습에 어리둥절할 정도로 건강미 철철 넘치는 정태구 씨! 지난 5년간 그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엎친 데 덮친 격
정육점을 하면서 착실히 돈을 모아 건물도 사고 집도 사고…. 그런대로 잘 풀리는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누가 시샘이라도 한 걸까? 2008년 정태구 씨는 모든 것을 잃었다. 주식투자 실패가 화근이 됐다. 집도 건물도 남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보면서 피눈물을 흘렸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2010년 10월 말, 그는 동네 병원을 찾았다. 항문에서 피가 나와 치질 검사를 해볼 생각이었다. 의사는 말했다. “치질은 별 이상이 없으니 대장내시경을 해보자.”
대장내시경을 했다. 나이 50줄에 들어섰으니 한 번 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랬던 분위기는 급반전됐다. 담당의사가 말했다. “빨리 큰 병원으로 가보는 게 좋겠다.”고.
“100% 암이라고 했어요. 암이 터져 있는 상태라고 했어요. 그래서 피가 나온다고 했어요.”
그 후의 일은 지금도 악몽이다. ‘이 나이에 죽어야 하나?’ 그 생각만 들었다고 한다. ‘주식 실패로 모든 걸 잃었는데 죽을병까지….’ 너무 억울했다고 한다.
가혹한 운명에 치를 떨었지만 절망만 하고 있을 수도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수술 일정이 잡히고, 정태구 씨는 그의 생애에서 결코 잊지 못할 하루를 맞았다.
하행결장 12.5cm를 잘라내다
2010년 12월 4일은 정태구 씨에게 뚜렷이 각인돼 있는 날이다. 생사의 기로에서 느꼈던 절망감과 함께 기억되는 날이다.
이날 그는 하행결장 12.5cm를 잘라내는 수술을 했다. 대장암 3기라는 진단도 함께였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암의 위치는 좋았다고 했다.
다만, 잘라낸 부위에 9개의 림프가 있는데 한 개가 벗어나 있어 그게 조금 걸린다는 게 수술을 담당한 의사의 말이었다. 그래서 항암치료를 해야 한다는 거였다. 12회를 하자고 했다.
“그래도 이제 살았구나 했어요. 수술하기 전 온갖 상상을 다했었는데 눈을 뜨고 보니 암 수술도 별것 아니구나 생각까지 들 정도였어요.”
하지만 이 같은 그의 생각은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산산조각이 났다. 세상에 그런 고통이 있을 줄 몰랐다.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머리숱 빠지고, 손톱 빠지고, 심한 변비에, 심한 불면증까지…그의 온몸은 나날이 만신창이가 되어갔다.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것은 제대로 먹을 수가 없다는 거였다. 울렁증 때문이었다. 매운 음식도 복병이었다. 고춧가루 한 톨이라도 들어가면 먹을 수가 없었다. 항암치료로 점막이 헐어버린 때문이었다. 입안, 식도 점막이 모두 헐어서 매운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다.
“그때 유일하게 먹을 수 있었던 것이 잔치국수와 주먹밥이었어요. 고춧가루가 들어가지 않은 잔치국수와 맨밥에 김가루를 묻힌 주먹밥으로 힘든 항암치료를 견뎌냈어요.”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 근처만 가도 역하게 풍겨오던 항암약 냄새는 지금도 심한 울렁증과 함께 기억된다고 한다.
축령산에 텐트를 치다
6개월로 예정됐던 항암치료는 9개월 만에 끝이 났다. 면역수치가 너무 떨어지면 항암치료도 받을 수 없어 장장 9개월이나 걸렸다.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고통 속에서 초주검이 됐던 정태구 씨는 항암치료가 끝나자 모진 결심을 하게 된다.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축령산으로 갔어요. 그곳에 텐트를 치고 살기 시작했어요.”
항암치료가 끝났을 때 담당의사에게 물었다. “이제 다 나았어요?”
그러자 의사는 “항암치료 효과는 20~30%밖에 안 된다.”며 “치료 효과가 그리 높지 않다.”고 말했다. 힘든 항암치료가 끝났지만 여전히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그래서였다. 세상과 단절되고 아는 사람도 없는 곳에서 생각을 좀 해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렇게 시작된 산속 생활은 피폐해진 그의 몸과 마음에 따뜻한 위로가 되어주기에 충분했다. 숲속의 햇살도 좋았고, 숲에서 부는 바람도 좋았다. 아내가 봉지봉지 싸준 된장찌개와 청국장을 혼자서 끓여 먹으며 햇살 따뜻한 곳에 자리를 깔고 누워 있기도 하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산도 오르내렸다.
그렇게 4개월이 지난 2011년 11월경이었다. 독한 항암제로 까맣게 탈색이 되었던 팔 혈관도 서서히 제 빛깔을 찾아가기 시작하던 때였다. 겨울도 산속에서 날 마음을 먹고 있었던 그는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듣게 된 기타 소리에 ‘바로 저거다.’ 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이 기타를 치고 있었는데 그 소리를 듣고 바로 하산을 결심했어요. 만약 내가 살게 되면 앞으로는 즐겁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러기 위해 기타를 배우자 결심했어요.”
이 결심은 그의 인생 지침을 돌려놓게 된다. 비로소 삶에 대한 의욕이 생기게 했고, 봉사하는 삶의 기쁨도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정태구 씨는 “기타는 오늘의 저를 있게 한 암 치유제 중 하나였다.”고 말한다.
5년 생존의 또 다른 비밀병기는 ‘벌침’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한 요양병원에 머무르면서 기타를 배워 봉사활동을 시작한 정태구 씨.
기타를 치고 봉사활동을 다니면서 그의 삶에도 적잖은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불안하지 않게 됐다고 말한다. 그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낼 수 있게 되면서 암도 더 이상 두렵기만 한 존재가 아니게 됐다고 말한다.
그렇게 2년이 지난 2013년 어느 날이었다.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보게 된 신문 한 귀퉁이 광고가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벌침으로 암도 고칠 수 있다는 책자광고였어요. 설마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길가의 코스모스 꽃에 앉아 있던 벌을 잡아 손등에 맞아 보았어요.”
그런데 괜찮았다. 아무런 부작용도 없었다.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산책길에서 만난 벌을 잡아 몸 이곳저곳 벌침을 맞아 보았다. 조금 붓기는 했지만 금세 가라앉았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나중에는 문방구에서 매미 담는 통까지 샀다. 거기에 벌침을 잡아두고 벌침을 맞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달 정도 꾸준히 맞았을 때 왠지 모르게 몸이 좋아진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결심했어요. 학원에 가서 본격적으로 벌침을 배워보자.”
그로부터 1년 뒤 그는 요양병원과 멀지 않은 남양주 산 속에 벌통 5개를 두고 취미처럼 벌을 치기 시작했다. 하루 일과의 대부분을 벌과 같이 보냈다.
그러면서 그의 몸도 나날이 좋아졌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항암 후유증으로 손발이 차고 저리던 증상이 말끔하게 없어져 너무도 좋다.”며 “벌침은 5년 생존의 또 다른 비밀병기와 같다.”고 말한다.
그런 때문일까? 벌에 대한 그의 예찬은 끝이 없다. 돈 안 드는 가정상비약이라고 여긴다. 내 손에 있는 의사라고 생각한다. 벌침뿐 아니라 벌에서 나오는 꿀도, 화분도, 로열젤리도, 프로폴리스도 그에게는 너무도 고마운 존재들이다. 지금의 건강을 선물해준 기적 같은 물질로 여기기 때문이다. 정태구 씨는 “벌을 알게 된 것은 제 인생에서 큰 행운이 됐다.”며 “지금은 벌로 인해 20~30대로 회춘한 것 같다.”며 좋아한다.
2016년 7월 현재 정태구 씨는…
오늘도 여전히 벌을 치고 기타도 치며 즐거운 인생을 살고 있는 정태구 씨!
그에게는 좋은 일도 있었다. 2015년 11월 암 완치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암 수술 후 5년 생존의 주인공이 됐던 것이다.
정태구 씨는 이 모든 것이 기타 치고 벌을 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기타를 치고 벌을 치면서 암에 걸리기 전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게 됐다고 좋아한다.
그래서 그에게 암은 전화위복이 됐다고 말한다. 암에 걸리지 않았다면 사업 실패의 덫에서 아직도 시달리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암에 걸리지 않았다면 기타 치며 봉사하는 행복도 몰랐을 것이기 때문이다. 암에 걸리지 않았다면 벌 치는 기쁨도 몰랐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4월에는 5년 남짓 있었던 요양병원에서도 퇴원을 했다. 지금의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벌농장에서 벌과 함께 보낸다. 벌침도 맞고 꿀도 따며 보낸다. 5통으로 시작했던 벌통은 50통으로 늘어났고, 이제 벌은 그의 생업이 되었다.
기타 치며 봉사하고, 하루 종일 벌농장에서 벌과 함께 보내는 지금의 시간을 최고의 행복으로 여기는 정태구 씨!
그런 그가 5년 암 생존율의 비밀로 전하는 메시지는 하나다. 기존의 생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내 몸에 암을 만든 생활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에게도 암에서 벗어나는 출발점이 되었다고 말한다.
정태구 씨가 지금도 실천하는 항암노트
대장암 3기 진단을 받고 수술, 항암을 거치면서 만신창이가 되었던 정태구 씨는 지금 딴 사람이 됐다. 한때 생사의 위험지대에서 힘들어했던 사람이라곤 여겨지지 않는다. 어떤 비밀이 있을까? 정태구 씨가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실천했다는 방법들을 모아봤다.
1. 벌침을 수시로 맞으면서 꿀+화분+로열젤리+프로폴리스 등 벌 봉산물 네 가지를 섞어 만든 로열킹을 매일 한 숟가락씩 먹었다. 지금도 즐겨 먹는다.
2. 장모님이 직접 만들어준 청국장을 말려서 생것으로 먹었다. 지금도 청국장은 가장 좋아하는 식품이다.
3. 계피가루와 꿀을 섞어서 하루 2~3번 먹었다. 항암제로 여기고 지금도 먹고 있다.
4. 기존의 생활과 180도 다른 생활을 실천했다. 육류를 좋아하던 식성을 버리고 생선 위주로 먹고 야채 위주로 먹었다. 지금도 그 생활을 실천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