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지영아 기자】
“긍정적인 삶의 자세가 암을 이기는 비결입니다”
위암 말기의 시한부 인생에서 갓 벗어난 기쁨을 다 누리기도 전에 다시금 손순호 씨(51세)를 찾아온 두 번의 유방암.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는 일념으로 다른 사람은 한 번 걸리기도 힘든 암이라는 병마를 야채 위주의 식단과 긍정적인 마음으로 세 번이나 이겨낸 그의 투병기를 들어본다.
위궤양인 줄 알았던 위암 말기
93년부터 아랫배에 뭔가 묵직한 게 느껴지면서 가끔씩 아파왔다. 하지만 손순호 씨는 여느 어머니들이 그러하듯 고등학생인 딸과 중학생인 아들의 뒷바라지로 막상 자신의 병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냥 단순히 소화불량이겠거니 하고 그렇게 몇 달을 넘겼다.
“그러던 어느날, 점심을 먹다가 갑자기 심한 구토감에 그날 먹은 걸 다 토해냈습니다.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어 병원에 가서 위 내시경 검사를 했지요. 결과는 며칠 뒤에 나온다고 그러더군요. 그런데 마침 그 당시 제게 바쁜 일이 있어서 남편이 대신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갔었는데, 의사가 위궤양이라고 했다더군요.”
그러나 그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병원에서 진단 내린 그녀의 병은 ’위암 말기’였다. 그녀의 남편은 아내가 받을 충격을 어떻게든 막아보겠다며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을 꿈에서조차 생각해보지 않았던 손순호 씨는 가벼운 마음으로 수술대 위에 올랐다고 한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어요. 다른 환자들보다 수술시간도 길고 수술 후 바로 퇴원도 하지 못한다는 게 영 납득이 되질 않더군요. 하도 이상해서 담당 주치의를 붙들고 솔직히 말해 달라고 떼를 썼죠.”
마지못해 털어놓은 의사의 말은 마른 하늘의 청천벽력이었다. ’위암 말기’라는 선고를 내렸던 것이다. 그것도 3개월 정도 남은 시한부 인생이라고 못을 박았다.
“위암…그것도 3개월 남짓 남은 위암 말기라는 말에 너무나 황당해서 눈물도 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저와 아이들을 속여가면서 혼자서 짐을 짊어진 남편을 생각하니 고맙고 미안해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더군요.”
며칠 간 그렇게 망연자실, 말라버린 눈물조차 나오지 않을 때쯤, 그녀는 가까스로 자신을 추스릴 수 있었다고 털어놓는다.
“붕 뜬 기분으로 며칠을 보내고나니 이대로 죽을 수 없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더군요. 아직 엄마의 손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할 수 있는 만큼 노력해 보자고 생각했습니다.”
힘든 투병생활은 시작되고…
이때부터 손순호 씨의 본격적인 투병생활이 시작됐다. 항암치료를 받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몸은 날로 수척해갔다. 167cm의 키에 55kg이던 몸무게가 45kg까지 줄어들었고, 그렇게 변해가는 그녀의 모습은 점점 더 낯설어갔다. 모두들 몰라볼 정도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치료를 그만둘까도 싶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거울을 보면서 ’난 암을 이길 수 있어’라고 끝없이 속으로 반복해 말하면서 자신에게 힘을 복돋아 주었다.
“말기 암이라는 판정을 받으니 저에게 남은 시간이 정말 소중하게 느껴지더군요.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들어오는 햇살마저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매일매일 오늘 하루를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랬던 덕분이었을까? 가족들의 끊임없는 보살핌 속에서 어느덧 3개월이 훌쩍 지나갔다. 그러나 그때까지 그녀는 살아있었고 점점 더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더 이상의 암 전이 없이 그녀는 점차 건강을 되찾아 갔던 것이다.
그렇게 4년이 흘렀다. 하지만 그 기쁨을 누리기도 잠시, 위암 수술을 한지 4년 후인 1997년, 정기검진을 위해 병원에 들렀던 그녀는 또 한 번의 아득한 절망감과 맞닥뜨려야 했다. 이번에는 유방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던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조기발견이라 간단한 수술로 왼쪽 가슴에 생긴 종양을 제거할 수 있다는 의사의 말이 그나마 큰 위로가 되었다.
또다시 수술대 위에 누웠다. 제발 이 시련이 끝나기를 기도하면서. 그러나 그녀의 이런 기도는 그로부터 2년 후 오른쪽 유방에 또다시 종양이 생기면서 깊은 절망감만 안겨주었다.
“참으로 원망스러웠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한 번 걸리기도 힘든 암이 저에게 세 번 씩이나 찾아올 줄은 몰랐으니까요. 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 아무나 붙잡고 한 번 따져보고 싶을 정도였어요.”
무엇보다 가족들이 얼마나 걱정을 하던지, 두 번째 유방암 수술을 받을 때는 가족들 몰래 혼자 가서 수술을 받고 나왔다고 손순호 씨는 털어놓는다.
된장과 생야채 위주의 식단 덕분이었을까?
그렇게 세 번의 암 수술을 마친 손순호 씨는 몸과 마음은 너무 지쳐있는 상태였다.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지 화가 나기도 했고 약해진 몸 때문에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 답답했다.
“아픈 이후부터는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져 가족들이 전부 나가고 난 후에는 너무 우울했습니다. 왜 암이라는 병이 나를 찾아왔는지 원망도 하고 바닷가에 나가서 혼자 울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다고 나아질 것은 하나도 없더군요. 어차피 내가 안고 가야 할 암이라는 병마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때부터 손순호 씨의 병세는 눈에 띄게 호전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 있다는 생각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된장과 야채 위주의 식단을 지켜나갔다. 하루 식사는 5~6번씩 보통 밥그릇의 1/3 정도의 잡곡밥에 생야채를 된장에 찍어서 먹었다. 외출 할 일이 있으면 호두, 밤, 대추를 넣은 약식을 한 입 크기로 만들고 전복을 달인 물을 보온병에 넣고 다녔다. 또 인삼을 말린 건삼을 갈아서 꿀과 섞어 환으로 만들어서 먹곤 했다.
“저는 야채를 갈아서 먹는 것보다는 생으로 된장에 찍어 먹었습니다. 물처럼 마시는 것보다 씹어서 먹는 것이 포만감도 좋고 맛도 느낄 수 있어 좋더군요. 특히 항암효과가 좋은 토마토와 당근은 항상 곁에 두고 간식처럼 애용했습니다.”
“정신은 육체를 지배해요”
“세 번의 암 수술을 받으면서 제가 느낀 것은 우선은 마음을 비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암에 걸렸다고 비관하거나 아프다고 가족을 힘들게 해서는 안 됩니다. 암 환자 자신이 먼저 환자라는 생각을 버리고 긍정적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손순호 씨는 오히려 암은 단 몇 개월간이라도 자신을 생각하고 주위를 돌아볼 시간이 있어 교통사고 같은 불의의 사고보다 더 행복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 남은 기간 동안 충분히 행복한 시간을 누릴 수 있으며, 자신이 힘들다고 해서 주변의 사람들까지 힘들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세 번의 암을 이겨내면서 혹독한 시련을 겪었던 손순호 씨. 그 세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그녀에게는 조금 두둑한 배짱도 생겼단다. 그런 그녀가 이 말은 꼭 하고 싶단다.
“암에 걸린 사람들 중 어떤 사람은 자신이 힘들다고 가족까지 힘들게 합니다. 저는 그런 분들을 뵐 때마다 이렇게 말하죠. ’암 이라는 존재가 뭐 그리 대단한가요? 별 거 아닙니다. 가족들을 괴롭히지 말고 자신이 이겨 나가야죠. 암은 자신과의 싸움입니다.’라고 말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나는 할 수 있다’, ’이겨낼 수 있다’고 다짐하면서 긍정적으로 살아가면 암이라는 병마는 결코 이기지 못할 대상은 아니라고 손순호 씨는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