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윤말희 기자】
“주위 분들의 사랑이 저를 살렸습니다”
담도암은 예후가 너무 안 좋아 악명 높은 암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담도암을 진단 받고 7곳의 장기를 수술하고도 8년 넘게 아무 탈 없이 살아가고 있는 주인공이 있다. 이상용 씨(57세)다. 가족의 사랑과 주위 사람들의 관심으로 암을 이겨내고 다시 건강한 모습을 되찾은 그. 한때는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몸부림칠 때 생은 짧지만 맡은 임무를 다하고 고통 없이 죽는 하루살이가 부러웠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하루살이보다 더 길고 소중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상용 씨. 죽음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그의 투병담을 들어본다.
올해로 쉰 일곱인 이상용 씨는 부산에서 기중기 임대업 사업을 한다. 호리호리한 체격과 밝은 표정은 전혀 병마와 무관한 사람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는 8년 전 담수종과 담도암이라는 병마로 죽음의 문턱까지 내몰리면서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갑작스런 복통으로 시작된 병마
1998년 IMF로 인해서 사업실패를 맛본 이상용 씨는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온통 틀어진 자신의 사업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있었는데 하루는 온몸에 진땀이 사탕발림처럼 빠지더니 며칠 내내 찢어지는 복통으로 응급실에 실려가게 되었다. 소화불량이라고만 생각했던 그의 생각과는 달리 병원에서는 쓸개가 일반인보다 훨씬 커졌다는 진단을 받게 되었다.
그 후 부산에 있는 모 대학병원에서 담수종 판정을 받고 수술을 받았다. 병원에서는 간단한 수술이니 염려 말라고 했건만 4개월만에 또다시 복통이 시작되었다. ”그제서야 비로소 병의 심각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의 권유로 서울에 있는 큰 병원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담도암을 판정받게 되었고 무려 18시간이라는 대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간, 담낭, 담도, 췌장, 위장, 십이지장, 공장 무려 7곳을 조금씩 떼어내는 대수술을 하고 난 후 그를 더욱 힘들게 했던 것은 약 9주일을 굶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꼬박 9주를 영양제로 연명한 체 젓가락 소리만 들어도 쓸개즙이 막 쏟아져 나오는 듯한 기분으로 산송장처럼 지냈다. ”아프기 전에는 몸무게가 118Kg으로 술과 담배도 좋아하고 운동은 가리지 않고 다 즐겼습니다. 그중 유도를 했을 정도로 몸이 참 좋았는데 수술도 하고 몇 주 내내 굶고 나니 사는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병실에서 식사시간은 고통의 시간이었고 사람들이 스쳐만 지나가도 점심에 무엇을 먹었구나를 다 알아차릴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9주가 거의 지났을 무렵 그의 몸무게는 20Kg이상이 빠진 상태였고 자연스럽게 막혀야 할 췌장액은 마르지를 않아 병원에서는 재수술을 권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하지만 하루가 멀다하고 불공을 드리는 아내와 그의 집안 친척들의 은공에 하늘도 놀랐는지 그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아프면서 참 이상한 경험을 했습니다. 하루는 낮잠을 자는데 검정부처가 침상벽에 나타나서 미소를 보이더니 저의 몸에 있는 붕대를 풀어주는 게 아니겠어요. 꿈에서 깨보니 묘한 느낌이 들더라구요. 아마도 주위 분들의 많은 사랑과 제 자신이 살겠다는 의지가 많이 작용한 것 같아요. 그래서 종합검사를 다시 받으니 자연적으로 췌장액이 어느새 막혀 버린 거예요.”
이렇게 놀랍게도 췌장액이 마르고 병원에서는 더 이상의 다른 처방은 없다며 15일분의 소화제를 주고서는 퇴원을 시켰다. 하지만 담도암은 워낙 예후가 안 좋고 병실에서마저도 퇴원 후에 가장 먼저 사형선고를 받을 사람으로 이상용 씨를 뽑을 정도로 가망이 없어보인 상태였다고 한다.
각종 식이요법의 시작, 그리고 희망
퇴원 후 다시 부산으로 내려온 그는 1년 동안 요양의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는 자신과 같은 병실에 있던 환우들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곤 했는데 60명 중에 20명이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에 ’자신도 설마’ 라는 생각으로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살아야겠다는 굳은 집념으로 그는 식습관부터 차근차근 바꿔 나가기 시작했다. ”몸이 아픈 후부터는 작은 건강정보도 예사롭게 들리지 않더군요. TV에서 하는 건강프로나 암 관련 서적들을 접하면서 ’바로 저것이다’하는 것이 있었어요. 바로 약초였어요. 이 세상에 있는 병은 이 세상에 있는 약초로 다 고칠 수 있다는 말은 큰 울림으로 다가왔어요. 그래서 산이며 들로 나가서 쑥, 민들레, 부처손, 질경이, 씀바귀, 엉겅퀴 등을 채취해서 즙, 나물, 가루를 내서 먹기 시작했습니다. 약초들은 절대 씻지 않고 손으로 툭툭 흙만 털어 삶아서 흙물이 가라앉으면 마셨습니다.”
특히 이상용 씨는 그의 꿈에 나왔던 검은 부처를 생각하면서 자신의 몸에는 검은색 음식이 약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하고는 숯, 검은콩, 검은깨, 미역 등을 즐겨 먹었다고 한다. 숯은 가루 내어 하루에 3번을 먹었고 미역은 환을 만들어 하루에 15알 정도 하루에 3~4번을 먹었다. 된장은 남들과는 달리 친구 부인이 담근 토종된장을 미지근한 물에 풀어서 마시곤 했다. 된장을 끓여 먹으면 우리 몸에 이로운 발효균의 효과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방법도 간단해서 된장 한 티스푼을 물에 타서 마시거나 만약 된장을 많이 넣어서 짠 경우에는 오곡 미숫가루로 간을 맞춰서 마셨다고 한다.
특히 그는 현미겨, 보릿가루, 통밀가루 등을 반죽한 뒤 수제비나 칼국수를 해서 먹기도 했다. ”여러 가지 잡곡들을 넣어서 묽게 반죽을 한 다음에 올리브에 구워 지짐이를 만듭니다. 그 위에 홍단무나물, 호박나물, 무나물 등을 넣어서 김밥처럼 돌돌 말아서 식사 대용으로 먹었습니다.” 아프고 난 후부터 지금까지 이런 방법들은 이상용 씨의 생활이 되었다. 외식은 거의 안하고 집에서 모든 식사를 해결한다. 잡곡밥과 유기농야채 그리고 초마늘로 건강을 챙기고 있다. 늘 지천에 깔린 향기 좋은 잡풀을 끓여서 마시고 무쳐 먹으면서 지낸 세월도 무려 8년. 지금 그는 누구보다 건강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늘 감사하는 마음 잊지 않아
이제 몸도 마음도 문제 될 것이 없는 그는 아프기 시작하면서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더욱 많다고 한다. 사촌에 팔촌에 이웃까지 그의 건강을 염려해주고 좋은 것이 있으면 권해주고 챙겨주는 마음 씀씀이에 감동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한다. 그럴 때마다 더욱더 감사히 여기면서 먹고 고마워 했던 탓에 아무래도 자신이 살아 숨쉬고 있다고 말한다. ”사랑하는 가족, 사람, 친구들이 가져다 주는 모든 것들이 귀한 것들입니다. 비록 한사람 한사람에게는 그 고마움을 표시하지는 못하지만 주위 분들이 아니면 아마도 지금 저는 이 자리에 없을 것입니다. 또한 죽고 사는 것은 하늘에 달린 일입니다. 생사는 하늘에 맡겨두고 최선을 다하면서 하루를 살아야 합니다.” 라고 그는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