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박길자 기자】
【도움말 | 서울대병원 내과 송인성 교수(대한내과학회 이사장)】
【도움말 | 비에비스나무병원 민영일 병원장】
자영업자인 박진석 씨(35·서울 강남구 논현동)는 평소 조금만 신경 쓰면 속이 아프고 소화를 못시킨다. 개인사업이 안 풀려 스트레스가 심한 박 씨는 증상이 악화돼 집 근처 내과에서 위내시경 검사를 받았다. 특별한 이상이 없었지만, 밥을 먹으면 더부룩하고 가스가 차는 증상은 여전했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신경 쓸 일이 생기면 속이 더 아파왔다. 종합병원에서 상복부 초음파검사와 CT촬영을 했더니 의사는 ‘기능성 소화불량증’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스트레스 많은 직업군에서 다발
기능성 소화불량증은 식사한 뒤 속이 불편하고 가스가 차고 메스꺼우며 조금만 먹어도 속이 금방 차는 것 같은 증상을 통틀어 가리킨다. 이중 내시경, 초음파, 컴퓨터 촬영 같은 일반 검사로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를 ‘기능성 소화불량증’이라고 부른다.
비에비스나무병원 민영일 병원장은 “국민 4명 중 1명은 기능성 소화불량증으로 추정된다.”며 “젊은 층에서 많이 걸리고, 60대 이상은 적은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업, 예컨대 은행원이나 교사, 택시운전기사 등이 잘 걸린다. 남성보다 성격이 세심하고 꼼꼼한 여성이 더 많이 앓는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서울대병원 내과 송인성 교수(대한내과학회 이사장)는 “위암과 기능성 위장장애를 구별하는 신호는 나이와 기간”이라며 “45세 이하로 증상이 6개월 이상 지난 경우라면 특별히 검사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체중 감소나, 밤에 속이 쓰려 일어나거나, 대변에 피가 나온다거나, 구토를 한다면 주의해야 한다. 송 교수는 “이 같은 증상 없이 6개월 이상 소화불량이면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덧붙였다.
음식물을 소화하는 데 가장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는 위는 자율신경계의 영향을 받는다. 자율신경은 자신의 의지로 제어할 수 없는 신경을 일컫는데, 감정이나 정서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즉 불안이나 우울, 스트레스, 긴장 같은 자극은 자율신경계를 자극하고 위의 운동을 방해한다.
이렇듯 스트레스 같은 정신적 요인으로 위의 운동이 저하돼 소화불량증이 생기면 ‘신경성 위염’이라고 얘기하는데, 정확히 말하면 ‘기능성 소화불량’증세다.
민 원장은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며 “위 근육의 운동 장애, 위 점막 지각 장애, 위산 분비의 증가, 헬리코박터 파이로리균 감염과 불안, 우울감 같은 심인성 요인 등이 원인으로 추정될 뿐”이라고 말했다.
저녁식사 적게! 고지방 고칼로리식 금물
기능성 소화불량 예방 1수칙은 스트레스 해소다. 요가나 명상, 걷기 등으로 스트레스를 다스려야 한다. 기능성 위장장애는 수년 또는 수십 년간 지속되면서 증상이 좋아졌다 나빠진다. 민 원장은 “평생 식습관과 생활패턴을 조절해야 한다.”며 “병에 대해 지나치게 스트레스를 받으면 오히려 증상이 악화된다.”고 조언했다.
맵고 짜고 자극적인 음식은 먹지 않는 게 좋다. 고추에 들어 있는 캅사이신은 위 점막에 해롭다. 매운 음식이 위에 나쁘지만, 길게 보면 짠 음식은 세포 변화를 일으키므로 더 나쁘다. 송 교수는 “소금 섭취량과 위암은 비례한다.”며 “서구인들의 소금 섭취량은 하루 5~10g인데 반해 한국인들은 하루 15~20g으로 너무 많다.”며 “젓갈류는 위에 좋지 않고, 국은 덜 먹는 편이 좋다.”고 당부했다.
고지방, 고칼로리식도 소화불량을 일으킨다. 동물성 지방보다 생선류를 먹는 게 좋다. 자신이 먹고 나서 고생하고 힘들었던 음식을 잘 기억해 뒀다 가급적 먹지 말아야 한다.
음식은 천천히 오래 씹어 먹는다. 침 속에는 아밀라아제라는 당분 분해 효소가 있어 음식물과 침이 잘 섞이면 소화가 잘된다. 일정한 시간에 규칙적으로 먹되, 소식하는 습관이 좋다. 아침식사는 챙겨 먹어야 한다. 아침을 거르면 점심이나 저녁에 허기를 느껴 과식하기 쉽다. 저녁에 과식하면 다음날 아침 허기를 덜 느끼고, 다시 아침을 거르는 악순환을 반복한다. 잠들기 2, 3시간 전 야식은 해롭다. 밤늦게 음식을 먹으면 역류성 식도염이 생길 수 있다. 뇌가 쉬듯 위도 쉬어야 한다는 얘기다.
위에는 신선한 채소와 과일 등 섬유소가 많은 음식이 좋다. 하루 200?300cc 우유를 마시면 좋다. 배가 부글부글대고 설사가 나는 사람은 유당이 분해된 우유나 유산균 발효유를 먹으면 된다.
소화되기 힘든 딱딱한 식품-오징어, 낙지, 쥐포, 육포, 말린 과일, 말린 콩-도 위 배출 속도가 떨어져 위산 분비를 자극하므로 좋지 않다. 탕수육, 생선튀김, 삼겹살, 갈비, 닭튀김 등 지방 함량이 높은 음식은 위에 오래 머물며 위산 분비를 촉진시킨다.
송 교수는 “보약이나 항생제를 과다 섭취하면 위에 해롭다.”며 “소화불량을 고치려고 양파·감자를 갈아 먹거나 양배추죽, 나무뿌리, 홍화씨를 먹는 사람들이 많은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위는 우리 몸에서 가장 튼튼한 기관”이라며 “방어체계가 잘 돼 있으므로 특정 음식을 챙겨 먹기보다 관리만 잘해주면 문제없다.”고 덧붙였다.
위암 환자 소화불량 오인, 병 키우기 쉽다
송 교수는 “습관적으로 소화기능촉진제를 먹는데 이는 플라시보(위약) 효과일 뿐”이라며 “만성췌장염 환자 외에는 소화효소가 부족해 소화가 안 되는 이들은 거의 없다.”고 강조했다. 시판 중인 위기능 촉진 약을 즐겨 먹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소화불량증을 앓는 이들의 위 배출 기능을 검사하면 정상이라는 얘기다.
소화기관 문제나 특정 질환 때문에 생기는 기질성 소화불량과 달리 기능성 소화불량은 원인 질환 없이 여러 요소가 복합돼 나타나므로 치료가 쉽지 않다. 식이요법, 생활습관 개선, 규칙적 생활, 적당한 운동 등을 통해 증상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
약물은 기능성 소화불량 중 궤양성 소화불량증이냐, 운동이상형 소화불량증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궤양성 소화불량증은 내시경 검사에서 궤양이 발견되지 않지만, 궤양과 비슷한 증상이 나타난다. 속이 쓰리거나 윗배가 불편하고 아프다. 궤양 치료와 같이 위산 억제제를 사용한다.
운동이상형 소화불량증은 식후 포만감이 빨리 나타나고, 속이 더부룩한 증세가 주로 나타난다. 위장의 운동 이상으로 음식물이 위에서 제때 배출되지 않고 지연되는 현상과 관련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주로 위장운동 촉진제를 사용해 치료한다.
기능성 소화불량은 건강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거나 위암 등 다른 질병으로 진행되진 않는다. 다만 재발이 잦아지면 생활이 불편해진다. 하지만 궤양이나 악성종양 등이 새로 생긴 경우에도 증상이 비슷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자가진단은 금물이다. 기능성 소화불량과 중병을 혼동할 수 있으므로 적어도 1년에 한 번쯤 내시경 검사를 받는 게 좋다.
위암의 경우 초기에는 증상이 없거나 속이 불편한 소화불량 증세만 있는 경우가 많다. 민 원장은 “위암 환자가 자가진단으로 기능성 소화불량이라고 판단, 병을 키우는 경우가 있다.”며 “평소 앓던 기능성 소화불량 증상의 양상이 달라지거나 체중이 줄고 혈변을 보는 증상이 생기면 병원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흡연은 만성 소화불량 부른다
민 원장은 “식사 후 앉아만 있거나 누워만 있으면 위장 기능이 떨어질 수 있다.”면서도 “식후 곧바로 과도한 활동을 하는 것은 금물”이라고 설명했다. 운동을 많이 하면 팔다리의 근육에 전달되는 혈액 양이 늘면서 위장으로의 혈액 순환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식사 뒤 20~30분 쉰 후 산책 등 가벼운 활동을 하는 게 좋다. 저녁식사 후엔 활동량이 더 부족해지기 쉬우므로 평소 소화불량을 자주 겪으면 가벼운 활동이 효과적이다.
술은 기능성 소화불량증의 증상을 악화시키므로 되도록 마시지 않는다. 애연가들은 식후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소화가 안 되는 것 같다고 한다. 민 원장은 “흡연은 만성 소화불량을 부른다.”며 “니코틴에 대한 중독 증상일 뿐 소화와는 아무 관계가 없으며, 실제로는 오히려 속을 더 버린다.”고 말했다.
식후 커피 한 잔은 위액 분비를 촉진시켜 소화를 도와주고 각성 효과를 줄 수 있다. 하지만 지나친 카페인 섭취는 카페인이 식도와 위장 사이를 막고 있는 괄약근을 자극해 느슨하게 한다. 이 괄약근이 약해지면 위액이 식도 쪽으로 역류해서 가슴 통증을 일으킬 수 있다. 커피로 인해 위 점막에 가벼운 출혈이 생기는 미란성 위염이 생기기도 한다.
음식을 빨리 먹거나 식사 중 말을 많이 하는 경우, 위 안에 공기가 쌓여 답답함을 느낄 수 있다. 탄산음료를 먹고 트림을 하면 속이 편해진다는 사람들도 많다. 탄산음료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먹으면 식도와 위를 연결하는 괄약근의 기능을 약화시키고, 이로 인해 위산이 역류해 오히려 소화에 방해를 줄 수 있다.
민 원장은 “유전적으로 소화기능이 약하다거나, 유독 신경이 예민하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성향이 있다면 기능성 소화불량에 걸릴 확률이 높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송인성 교수는 고 노무현 대통령 주치의를 지낸 소화기질환 분야 권위자다. 대한소화기학회 이사장 등을 역임했고 현재 세계내과학회 이사로 있다.
민영일 병원장은 울산대 의대 서울아산병원 소화기센터소장을 거쳐 동국대 일산병원 소화기병센터장을 지냈다. 전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장. 현재 의학한림원 정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