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이은혜 기자】
“오늘 즐겁게 살 수 있는 것… 그것만으로도 저는 행복해요”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인생인가보다. 누가 감히 짐작이나 했을까? 어느 날 느닷없이 폐암 말기 진단을 받을 줄.
서울 중곡동에 사는 조병숙(58세) 씨는 2006년 가을을 결코 잊지 못한다. 삶과 죽음의 문턱에서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나날들… 그러나 오늘은 지난 세월을 이야기하며 웃는다. 그 비결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폐암 말기… 짧으면 3개월, 길면 6개월이라는 시한부 생명을 선고받았지만 그 시련을 이겨내고 누구보다 은혜로운 삶을 산다는 조병숙 씨의 조금 특별한 삶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당기다!
한 남자의 아내, 두 아이의 엄마… 조병숙 씨는 자신의 자리에서 행복한 사람이었다. 별 탈 없이 잘 커주는 아이들이 고마웠고, IMF 여파로 조금 힘들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다복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남편을 사랑했다.
그러나 2006년… 그녀 나이 55세 되던 해 가을 어느 날, 갑자기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당기는 증상이 나타났다. 처음에는 별일 아니겠지 생각했다. 나이가 들면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는 허릿병 정도로만 여겼다. 그런데 통증이 좀체 줄어들지 않았다. 안 되겠다 싶어 동네 정형외과에 갔다. X-레이 사진이나 찍어볼 요량이었다.
그런데 X-레이 사진에 이상한 것이 나타났다. 폐 부위에 허옇게 보이는 것이 있었던 것이다.
“의사가 그러더군요. 혹시 폐결핵을 앓은 적이 있냐고. 제가 아니라고 했더니 CT촬영을 한 번 해보자더군요. 하지만 그 당시 마음이 썩 내키지 않아 CT 촬영은 다음에 하자며 서둘러 병원을 나왔어요.”
그리고 어영부영 하는 사이 40여 일이 흘러갔다. ‘병원에 가야지, 가야지’ 하면서 흘러간 시간이었다. 다들 그렇듯 하루하루 사는 것이 바쁘고, 또 병원 가는 길이 썩 즐거운 일은 아닌 탓도 있었다.
“그런데 마음에 조금 걸리는 것이 있었어요. 친정 아버지가 20여 년 전에 폐암으로 돌아가셨거든요.”
하지만 그녀는 ‘설마’했다. 폐암은 담배가 주범이고, 담배는 입에도 대지 않는 그녀에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으리라 확신했었다. 폐 부위가 허옇게 보이는 것은 자신도 모르게 앓고 지나간 폐결핵 같은 거겠지 생각했다.
“그런 와중에도 허리는 계속 아팠어요. 다리도 당기고. 심하게 아플 때는 약국에 가서 진통제를 사다 먹었고 조금 덜하면 또 일상적인 활동을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그 날은 온 가족이 모여 김장김치를 하는 날이었다. 친정인 충청도 청양에 다들 모였다. 이런 저런 얘기 끝에 그녀의 병원검사 얘기도 나왔다.
“X-레이 사진을 찍었더니 폐에 뭔가 이상한 것이 있다는 말을 했더니 동생들이 깜짝 놀랐나봐요. 왜 병원에 가지 않고 있느냐며 어찌나 성화든지…결국 그 다음날 바로 병원에 가서 미뤄왔던 CT를 찍었습니다.”
CT촬영, 우려하던 일은 결국 현실로…
차일피일 미루던 CT를 촬영하던 날, 병원 관계자는 미리 말했다. CT 촬영을 해서 이상이 있으면 의료보험이 적용되고, 그렇지 않으면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이상이 없으면 촬영 비용은 본인 부담이라는 말이었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CT 촬영. 그리고 몇 시간 후 검사 결과가 나왔다. 그런데 의사가 CT 사진을 건네주면서 비용의 일부인 4만 원만 내라고 했다. 그리고 말했다. 빨리 큰 병원에 가보라고.
그 순간 조병숙 씨는 직감했다. ‘뭔가 이상이 있구나.’ 그 이후부터의 일은 마치 뿌연 안개 속에 펼쳐진 파노라마 같다고 말한다. 멍한 상태로 찾아간 서울아산병원에서는 이것저것 검사에 들어갔고, 그리고 얼마 후 결과가 나왔다. 폐암이었다. 그것도 폐암 말기였다.
수술도 할 수 없다고 했다. 이미 양쪽 폐에는 마치 콩을 뿌려놓은 듯 자잘한 암세포가 점점이 퍼져 있었고 큰 암세포는 5.5cm나 됐기 때문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실감이 안 났어요. 온몸의 힘이 쫙 빠져나가면서 마치 피부 껍데기만 남아있는 듯한 느낌, 붕 떠 있는 느낌, 걷는 것조차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으니까요.”
그리고 곧이어 찾아온 감정…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나?’ 억울했다. 원망스러웠다. 누구한테 크게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그녀는 피맺힌 절규를 했지만 정작 그 해답을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눈부시게 발전한 현대의학에서도 해줄 것은 별로 없었다. 다만 폐암 치료제로 알려진 이레사를 하루에 한 알씩 먹으라는 처방과 함께 퇴원을 해도 좋다는 말이 전부였다.
조금 특별한 선택을 하다
길면 6개월, 짧으면 3개월… 시한부 생명을 선고받고 퇴원을 할 수밖에 없었던 조병숙 씨.
그런 그녀가 퇴원 후에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쉴새없이 흐르던 눈물도 말라갈 즈음, 그녀는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한 요양병원을 찾아들었다. 위암에 걸린 친구의 남편을 낫게 해준 곳이기도 했다.
남편과 함께 찾아든 요양병원…그곳의 생활은 조금 색달랐다. 지금까지의 모든 생활습관을 버려야 했다. 그 대신 건강의 기초가 되는 8가지를 반드시 실천해야 했다.
“균형 잡힌 영양 섭취를 위해 현미밥과 채식, 견과류, 과일을 먹었고, 틈만 나면 뒷산에 올랐어요. 또 하루 8잔 이상의 물은 꼭꼭 마셨어요. 이외에도 적당한 햇빛 쪼이기, 절제하는 마음 갖기, 적당한 휴식 취하기, 깊은 신앙심 갖기를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미친 듯이 웃으면서, 그리고 매사 긍정적으로 정말 열심히 실천했어요.”
그랬던 덕분이었을까? 3개월 정도 지났을 때 조병숙 씨의 몸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무엇보다 사는 즐거움을 새롭게 찾게 된 건 커다란 소득이었다.
“늘 웃고 다니고 미친 듯이 웃고 다니다보니 언제부턴가 제가 처한 현실, 말기 폐암 환자라는 사실이 조금씩 조금씩 무뎌지더군요. 오히려 하루 아침에 사고를 당해 죽는 것보다 암에 걸리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까지 들었으니까요. 암은 그나마 준비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는 주잖아요.”
조병숙 씨의 그런 마음은 그녀의 암세포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5~6개월 정도 요양병원 생활을 마치고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본 결과 놀랄 만한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양쪽 폐에 콩알처럼 점점이 박혀있던 자잘한 암세포가 깨끗이 없어진 거예요. 그리고 제일 큰 5.5cm 암세포도 3.2cm로 줄어들었다는 진단 결과를 들었을 때는 ‘아, 이젠 살았구나’ 싶더군요.”
시골로 내려가다
암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 암은 누구나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가슴에 품고 요양병원을 나왔다는 조병숙 씨. 그런 그녀는 요양병원을 나오자마자 시골로 내려갔다. 친정집이 있는 충청도 청양에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손수 농사를 짓기 시작했던 것.
“밭을 갈고 씨를 뿌려서 농약이나 비료를 일체 주지 않고 먹거리를 키우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해가 지면 뜨끈뜨끈한 황토방에서 온몸을 누이고 휴식을 취했습니다. 때마침 내려간 시기가 봄철이라 온 산천에 지천으로 깔린 쑥이며 갖가지 나물들을 뜯어다가 반찬삼아 먹고 그야말로 자연 속의 일부로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시골생활은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금은 서울에 있는 시간과 시골에 있는 시간이 반반이에요. 아이들 때문에 서울 생활을 청산할 수 없어 서울에 있을 때도 있는데 만약 몸이 개운치 않다 싶으면 바로 시골로 내려갑니다. 공기가 좋아서 그럴까요? 시골에 며칠 있으면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어요.”
올해 새롭게 시작된 2009년 봄… 조병숙 씨는 요즘 한창 바쁘다. 고구마, 더덕, 감자, 고추, 상추, 콩, 땅콩, 옥수수 등을 직접 길러서 먹으려면 이 시기를 놓쳐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밭도 갈아야 하고 씨도 뿌려야 한다. 이런 일들이 살아있는 기쁨을 느끼게 한다는 조병숙 씨.
그런 탓에 그녀의 폐에는 아직도 없어지지 않은 암세포가 남아있지만 그리 걱정하지 않는다. 병원에도 가지 않는다. 암과 친구처럼 지낸다. 길어야 6개월이라던 생명이 벌써 몇 년인가? 그것만으로도 족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꼭 기억해야 할 한 가지! 그녀의 생활은 철두철미하다. 언제나 즐겁게 생활하고 철저한 자연식을 실천하기 때문이다.
그런 탓에 그녀의 마지막 당부도 한 가지이다. 오늘 하루를 감사하게 생각하고, 온갖 욕심을 놓아버리라는 것이다.
천년, 만년을 살 것처럼 끌어모으고 움켜쥐고 사는 대신 베풀며 살고, 나누며 살 것을 당부한다. “그것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참모습이 아닐까요?”
그녀의 반문이 긴 여운을 남기는 것은 아마도 그 속에 숨어있는 평범한 진리 때문은 아닐까?
폐암을 이겨낸 조병숙 씨의 조금 특별한 생활 실천법
1. 생각은 긍정적으로∼
모든 것을 좋은 쪽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리고 오늘 최선을 다해 살자고 다짐합니다. 오늘 하루를 감사하고 또 감사히 여깁니다.
2. 식단은 현미 잡곡밥에 채식하고 견과류 위주로∼
직접 농사 지은 조, 수수, 옥수수 등 다양한 잡곡을 넣은 현미밥을 먹고, 채소도 직접 농사를 지어 먹습니다. 무농약, 무비료로 농사 지은 도라지, 고구마, 더덕, 감자, 고추, 콩, 땅콩 등을 최대한 단순하게 요리해서 먹습니다. 특히 요리를 할 때 주요 양념은 다시마, 호박, 양파 등을 넣고 끓인 국물로 국도 끓이고 나물도 무쳐 먹어요.
3. 최대한 많이 움직인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것 자체가 최고의 운동인 것 같아요. 서울에 있을 때는 아침마다 집 근처에 있는 어린이대공원을 산책하거나 아차산을 오릅니다.
4. 일주일에 한 번씩 찬양 부르러 다니는 봉사활동도 실천
암이나 각종 질병에 걸린 사람들의 모임이 있어요. 목요일마다 모여서 서로 친목도 다지고 용기도 주고 받고 하는데 이 모임의 멤버가 주축이 되어 봉사활동도 한답니다. 암을 이긴 사람들의 합창단이라는 뜻인데 이를 줄여서 ‘암이사합창단’이라고 부릅니다. 주로 요양원 같은 데 가서 찬송가도 부르고 친구도 돼드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늘 즐겁게 살고 마음의 짐, 마음의 욕심 같은 건 놓아버리고 산다면 암도 즐겁게 이겨낼 수 있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