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서울메디칼랩 김형일 의학박사】
선무당 사람 잡다
S그룹의 P 이사는 갑자기 가슴이 뻐근했다. 시내 병원에 갔더니 별거 아니고 감기로도 그럴 수가 있다고 하며 약을 지어 주었다. 그 약을 먹었지만 그날 밤에는 더욱 아팠다.
날이 새자마자 B대학병원으로 가서 심장정밀검진을 받았다. 손쉬운 심전도부터 어렵고 힘든 조영촬영과 CT까지, 이틀 동안 입원하여 꼬박 검사만 받았다. 결과는 아무것도 없으니 안심하고 퇴원하라는 것이었다. 병원에서 주는 약을 먹어서인지 좀 덜 아픈 것 같았지만 그래도 가슴팍이 따끔거리고 뻐근한 증상은 없어지지 않았다.
며칠 후 토요일에 목욕탕에 갔는데 옆구리에 뭔가 뽀골뽀골한 것이 열을 지어 나와 있었다. 그것은 대상포진이었다.
P 이사가 아무런 약도 안 먹고 심장검사 같은 것도 안 받았더라면 그것을 좀 더 쉽고 편안하게 지나가버릴 수 있었을 것을, 선무당이 사람 잡는 식으로 몸을 혹사하고 필요 없는 약을 몽땅 먹어댔으니 대상포진은 더 크게 자리 잡고, 더 넓게 퍼져 나갈 수밖에 없었다.
흉통이라고 심장병 속단은 금물
가슴이 아프면 일단 심장병부터 생각하고 걱정하는 경우가 많다. 심하면 약까지 사먹는 사람도 있다. 완전히 심장병 환자가 되어 별걱정 별검사 별난리를 다 피워대는 경우가 흔하다. 이것은 진실로 개인적인 손실이고 국가적인 낭비다. 물론 관상동맥질환이나 협심증, 심근경색증, 혈전증, 혈관장애 등에서 흉통이 나타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훨씬 더 많은 소화기관의 이상에서도 가슴이 아픈 것으로 느껴지는 경우가 더 많다. 위궤양, 위염, 식도질환, 탈장증, 췌장질환, 담도질환, 담석증이어도 가슴이 많이 아프다. 물론 가슴 속에 있는 허파와 기관지질환에서는 당연히 가슴에 통증이 생겨야 옳을 일이며, 기흉이나 늑막염이 생기면 더욱 큰 통증이 생긴다. 또한, 늑간 신경통이나 늑골장애, 경추신경장애가 있어도 흉통이 생긴다. 류머티스나 근육염, 관절염에서도 흉통이 온다. 임파선염, 임파선암, 백혈병, 종양 등에서도 흉통이 동반됨은 말할 나위도 없다. 요새 중년들에서 볼 수 있는 40견, 50견에서도 어깨통증과 가슴통증이 구분되지 않으며, 테니스나 골프 같은 운동 후유증으로도 흉통이 생긴다. 갑상샘질환, 빈혈증, 저혈당증, 심신증 또는 어떤 약물중독에서도 흉통이 나타난다. 이런 것들은 모두 CT나 MRI로는 진단되지 않는다.
흉통의 원인을 심장병으로 속단해버리는 것도 위험하지만, 소용없는 난리를 피워대는 것은 더욱 위험할 수도 있다. 자신의 증상을 정확하게 표현하여 전문의에게 꼼꼼하게 알려주고 상의하는 것이 가장 경제적이고 발빠른 해결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