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허미숙 기자】
미국산 수입 쇠고기 파동으로 한차례 광풍이 지나간 지금 우리 식탁문화에 작은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어 관심을 끈다. 채식 붐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이 같은 신드롬에 대해 일부 영양학자들은 우려를 나타내지만 채식이야말로 우리 몸이 가장 좋아하는 식생활 문화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채식만으로도 얼마든지 건강을 지킬 수 있다고 주장하는 채식 예찬론자, 그들이 말하는 채식의 진가는 과연 뭘까?
채식을 실천하는 사람들
20년 채식 사랑 이원복 씨?“실제 나이는 40대지만 건강 나이는 30대 청년이래요”
“20여 년 동안 채식을 실천해왔어요. 그런데 일 년에 한 번씩 꼭꼭 병원에 가서 종합검진을 받는데 의사가 그러더군요. 비록 나이는 40대이지만 생체 나이는 30대 초반이라고. 건강이나 체력 모두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인사동의 한 채식식당에서 만난 이원복 씨(43세)의 말이다. 40대 남성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뽀얀 피부에 혈색도 좋다.
그런 그의 채식 사랑은 스물 두 살 때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특별한 동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어느 날 문득 식탁 위의 고기가 먹기 싫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채식으로 들어선 경우다. “아마 어릴 적 시장에서 본 닭 죽이고 개 죽이는 장면들 때문인 것 같아요. 동물도 생명인데 왜 죽여서 먹을까 하는 것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식물도 죽여서 먹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 이 같은 반문에 돌아온 그의 대답은 색다르다. 동물을 죽이는 건 손가락을 자르는 것이요, 식물을 죽이는 건 손톱을 자르는 것과 같다는 것.
이렇게 시작된 그의 채식 사랑은 완전 채식을 지향한다. 육류는 물론 물고기, 우유, 계란도 먹지 않기 때문이다. 그 대신 현미잡곡밥을 주식으로 하면서 다양한 채소류를 먹는다. 고구마, 감자 등의 뿌리채소와 오이, 당근 등의 열매 채소, 그리고 나물, 상추 등 잎채소로 식탁을 차린다고 한다.
“다들 그래요. 이렇게 먹으면 단백질이 부족하지 않냐고? 그러나 그것은 잘 모르는 말씀이에요. 두부 한 모, 땅콩 한줌만 먹어도 우리 몸이 필요로 하는 하루치의 단백질 양을 충분히 섭취할 수 있습니다. 반드시 섭취해주어야 하는 것으로 알려진 필수아미노산도 마찬가지입니다. 로이신, 리신, 아르기닌 같은 필수아미노산도 꼭 육류에만 함유되어 있는 게 아닙니다. 사과 한 개, 바나나 한 개만 먹어도 충분하죠.”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채식을 하고 싶어도 단백질이 부족할까봐 못한다.’는 말을 들을 때가 가장 답답하다는 이원복 씨. 그런 탓에 그는 늘 강조한다. “우리나라 사람들 중 가장 장수하는 부류는 스님들입니다. 그분들이 육식을 해서 장수합니까? 아닙니다. 채식을 하기 때문에 오래오래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는 “우리의 식생활 문화가 채식으로 바뀔 경우 성인병의 발병률을 3/4 정도는 줄일 수 있을 것” 이라고 밝히고 “채식과 육식을 두고 벌이는 영양 논쟁 자체는 이미 가치가 없는 일” 이라고 잘라말한다.
오늘도 ‘채식 마니아’를 자처하며 채식의 진가를 알리는 일에 여념이 없는 이원복 씨. 한국채식연합이라는 비영리 민간단체 대표를 맡고 있기도 한 그는 믿고 있다. 채식이야말로 우리 몸의 건강을 살릴 뿐만 아니라 하나뿐인 지구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그런 탓에 그의 꿈도 하나다. 채식의 대중화다. 이를 위해 채식에 관련된 최신정보를 수집하고 채식의 올바른 요령을 알리고…이원복 씨의 하루 일과 대부분은 이 일을 위해 쓰여지고 있다.
☞ 한국채식연합 이원복 대표가 밝히는 걱정되는 영양소 이렇게 하면 문제 없어요!
양질의 단백질은 = 현미, 콩을 섭취하세요.
양질의 칼슘은 = 녹황색채소와 미역, 다시마, 파래 등의 해조류가 좋아요.
양질의 철분은 = 잡곡류, 콩류, 잎채소, 참깨, 들깨 등의 종실류를 드세요.
비타민 B12의 결핍을 우려할 때는 = 된장, 고추장, 김치 등의 발효식품과 해조류를 먹으면 걱정 없어요.
?7년 채식 실천자 김영애 씨?“임신 중에도 채식만…그래도 건강한 아이 낳았어요”
금호생명에서 재정 컨설턴트로 우먼파워를 과시하고 있는 김영애 씨(30세). 아직도 끔찍이 사랑해주는 남편과 다섯 살 배기 아들 하나를 두고 있는 그녀 또한 철저한 채식 마니아다. 그런 그녀의 채식 사랑은 지금으로부터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 시작은 소박했어요. 다이어트 때문이었으니까요. 제법 통통해 보이는 몸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다가 고기를 멀리하기 시작했죠.”
이렇게 시작된 그녀의 고기 금식은 뜻밖의 계기를 맞게 된다. 다이어트를 위해 채식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이것저것 참고 자료를 뒤적이다가 동물들이 길러지는 과정, 도축 과정 등을 접하곤 그 날로 일절 육류를 먹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 “정말 충격이었어요. 그렇게 동물들이 길러지고 있는지 몰랐거든요. 그 과정을 제대로 알고 나니 정말 거짓말처럼 고기를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그런 그녀의 채식 실천은 결혼을 한 후로도 계속 이어졌다. 혹시 남편의 불평은 없었을까? “애석하게도 남편은 고기를 무척 좋아하는 편이었어요. 그래서 남편을 위해 가끔씩은 식탁에 고기류를 올립니다. 고기를 먹지 말라고 강요하지는 않지만 고기의 안 좋은 점은 꼭 얘기를 해주는 편이죠.” 그래도 남편에게는 늘 고마움을 느낀다는 김영애 씨다. “특히 아들 영찬이를 가졌을 때도 제 뜻을 꺾지 않고 제 의견을 따라주어 너무 고마웠어요.”
아이를 가졌을 때도 김영애 씨는 채식을 했다. 일절 육류 섭취를 하지 않았다. 그러자 주위의 우려도 컸다. 혹시 아이에게 좋지 않은 건 아닌지… 모두가 걱정했지만 그녀는 자신의 소신대로 했다. 계란도, 우유도, 고기류도 먹지 않았다. 그 대신 두부나 해초류, 견과류, 된장은 반드시 꼭꼭 챙겨 먹었다고 한다. 그리고 아들 영찬이가 태어났다. 정상체중으로 아주 건강하게 세상에 첫 울음을 터뜨렸다. “산부인과 의사가 그러더군요. 어떻게 양수가 이렇게 깨끗하냐고? 저는 그것이 채식을 해서 그렇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태어난 영찬이는 3살 때까지 고기 맛을 모르게 키웠다고 한다. 고기류를 먹이지 않았던 것이다. 모유 수유에 이유식도 채식으로 만들어 먹였다. “아빠는 조금 걱정을 했어요. 그래도 또래보다 키도 크고, 건강하니 제 뜻을 따라주었어요. 그런데 영찬이가 4살이 되고 밥을 먹기 시작하면서 어른들이 제 몰래 고기를 주었나봐요. 그때부터 고기를 먹기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영찬이 스스로 먹지 않을 거라 확신해요. 어릴 적 식생활 습관을 잊지 못한다 그러잖아요.”
이제는 채식이 일상생활이 되어버렸다는 김영애 씨. 회사 동료들과 회식을 할 때도 채식을 해서 어려운 점은 전혀 못 느낀다고 한다. “삼겹살 집에 가도 삼겹살 대신 오이를 먹고, 양파를 먹으면 되죠. 전혀 불편한 점 없어요.” 무엇보다 채식을 하면 마음이 너그러워지는 것 같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먹는 음식이 사람을 만든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채식하는 사람들을 만나보면 다들 온순한 것 같아요. 그것은 아마도 순한 식물의 성질을 닮아서 그런 것 아닐까요?” 그러면서 김영애 씨는 상추 한 장으로 쌈을 싼 뒤 너무도 맛있게 먹었다.
채식하는 의사 박병섭 박사?“채식을 신앙처럼 실천하면 건강에 이로운 점 많아요!”
내과 전문의인 박병섭 의학박사는 의료인으로서는 드물게 채식 예찬론자다. 그 자신이 직접 채식을 실천하면서 채식의 우수성을 알리는 데 누구보다 열심이다. 그것은 그가 의학도 시절부터 해온 일이기도 하다.
“의학공부를 하다보니 육식과 관련이 질환이 너무 많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현대인들을 괴롭히는 고혈압이나 당뇨병, 각종 암 등이 모두 육식과 관련돼 있었으니까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성인병의 시작은 동맥경화로부터 시작된다는 게 박병섭 박사의 말이다. 동맥경화증이 오면서 고혈압이 생기고 당뇨병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맥경화를 일으키는 주범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육류의 LDL 콜레스테롤 때문입니다. 한 가지 놀라운 것은 LDL 콜레스테롤은 식물성 식품에는 없어요. 그러나 동물성 식품에는 다 들어있어요. 상당량이 포함돼 있죠.”
따라서 비록 같은 지방이라 하더라도 동물성 지방과 식물성 지방은 질적으로 다르다는 게 박병섭 박사의 주장이다. 이 차이에 의해 고혈압이나 당뇨, 각종 암 등의 위험 인자에는 반드시 동물성 지방이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성인병 예방을 위해서는 채식이 좋아
현대 성인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채식 위주의 식생활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박병섭 박사. 그런 그가 밝히는 일명 ‘채식을 하면 좋은 점’은 관심을 끈다.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우리 인간의 몸이 구조적으로 육식을 하도록 되어 있지 않다는 데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몸은 채식을 하는 동물과 그 구조가 비슷합니다. 치아나 소화기관을 보면 알 수 있죠.”
일반적으로 육식을 하는 동물들을 보면 송곳니가 발달되어 있지만 채식을 하는 동물들은 어금니가 발달되어 있다고 한다. 또 육식동물은 소화기관이 짧은 반면 채식동물은 소화기관이 길다는 것. 따라서 태초부터 우리 인간은 채식을 하도록 되어 있다는 게 박병섭 박사의 말이다.
채식을 하면 좋은 또 하나의 이유는 영양 흡수가 잘 된다는 데 있다고 한다. 음식이 우리 몸에 들어와 소화되는 과정에서 채식은 영양소로 흡수가 잘 된다는 것. “그러나 육식은 그렇지 않습니다. 육식은 소화기관에 무리를 줘서 영양이 제대로 흡수되지 못하게 하죠.” 특히 질병적 측면에서 보면 채식을 해야 하는 이유는 더욱더 분명해진다는 게 박병섭 박사의 귀띔이다.
채식을 하게 되면 혈당이 정상화되고 혈압이 내려가기 때문이다. 또 콜레스테롤은 분해되고 면역기능이 강해진다고 한다. 채식을 하면 피가 맑아지고 혈액순환이 촉진되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몸 면역계의 총사령관인 T-임파구의 활성을 높여줘 감기를 비롯한 각종 전염병에 대한 저항력이 강해지고 암의 치료 및 예방도 가능하게 된다고 박병섭 박사는 강조한다.
채식을 할 때는 요령이 필요하다!
혹 이번 기회에 채식을 실천해볼까? 생각 중이라면 무작정 시작해서는 안 된다. 올바른 요령을 알고 시작해야 한다. 박병섭 박사가 알려주는 올바른 채식요령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채식을 할 때는 4~5가지 이상의 채소와 함께 반드시 과일, 견과류를 포함시켜야 한다. 채소는 제철에 나는 뿌리채소, 잎채소, 열매채소를 골고루 먹도록 한다.
2. 약간 모자란 듯이 소식을 해야 한다. 채소라도 너무 많이 먹으면 과유불급이다.
3. 한 가지 음식을 집중적으로 먹는 것은 금물. 일례로 콩이 좋다고 하여 매일매일 콩만 먹어서는 안 된다. 골고루, 균형있게 섭취하도록 해야 한다.
4. 규칙적으로 먹어야 한다. 아침, 점심, 저녁에 두루 골고루 먹어야 하고 간식은 먹지 않도록 한다. 또 저녁 7시 이후로는 채소라도 먹지 않도록 한다.
5. 가공식품보다는 자연 그대로의 식품을 먹도록 해야 한다.
박병섭 박사는 “꼭 채식주의자가 아니더라도 식생활 자체를 채식 위주로 짜는 것은 건강에 많은 도움이 된다.” 고 밝히고 “채식을 하면 영양의 불균형을 초래한다는 말은 오늘날의 현실과는 결코 맞지 않는 말” 이라고 단언한다.
우리 몸이 필요한 대부분의 영양소는 채식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제공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통곡류, 콩, 과일, 채소, 견과류 중심의 올바른 채식요령을 신앙처럼 여기고 실천하면 분명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그의 당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