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이정희 기자】
【도움말 | 이주은부부상담심리센터 이주은 원장】
‘뜨거운 이름 가슴에 두면 왜 한숨이 나는 걸까/ 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그대 나의 사랑아~’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은 사랑하는 이와 헤어진 사람들을 울린 명곡으로 지금도 자주 불린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법. 사랑과 정을 나눈 연인이나 배우자, 가족 등 소중한 사람과 이별한 후 상처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이 불행 앞에서 어떻게 마음을 치유해야 할까?
인류의 오랜 숙제, 이별
“저는 도저히 지금 제 운명의 수레바퀴를 감당할 수가 없어요. 손가락 마디마디가 아프고 입술은 바싹 타고 있어요. 오, 그대가 내 아픔을 느낄 수 있다면. 오, 누가 내 고통을 이해할 수 있을까.”
2500년 전 그리스의 여성 시인 사포는 지독한 실연의 고통을 시로 표현했다. 인류학자들은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를 거쳐 시베리아까지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이별의 아픔을 노래한 문구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슬픔을 정상적인 애도 반응, 우울증을 비정상적인 애도반응으로 나눴다. 그가 말하는 비정상적인 애도 반응은 ‘고통스러울 정도의 낙심, 외부에 대한 관심 중단, 사랑할 수 있는 힘 상실, 자기를 비난하다 누가 벌을 주기라도 했으면 하는 상태’다. 물론 지금은 프로이트가 나눈 비정상적 상태도 자연스러운 과정 중 일부로 보지만, 이별 후유증이 지속되면 병이 난다는 것을 정리해 의미가 있다.
이별은 인류의 오래된 숙제다. 밥이 넘어가지 않고, 온 몸이 아프다. 삶에 대한 의욕도 잃는다. 2008년 유명 슈퍼모델 코르슈노바는 실연의 아픔으로 우울증을 앓다 20세의 나이로 자살했다.
이주은부부상담심리센터 이주은 원장은 “만남만큼 헤어짐도 중요하다.”면서 “공격적이 되거나 자기 파괴로 가지 않게끔 이별 후의 시간을 잘 보내야 한다.”고 말한다. 심리학적으로 실연 후 느끼는 감정은 3단계로 나뉜다. ▶1단계는 ‘상실의 단계’ ▶2단계는 ‘수용과 치유의 단계’ ▶3단계는 ‘성장의 단계’다.
슬퍼하라, 떠나보낼 수 있을 때까지
▶상실의 단계인 이별 직후는 눈앞이 캄캄하다. 이주은 원장은 “범죄나 자살 같은 극단적인 방향을 제외하고, 일단 하고 싶은 것은 다 하라.”고 충고한다. 떠난 연인이나 배우자를 미워하고, 실컷 분노한다. 매운 음식을 먹으면서 땀을 빼거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달려도 좋다. 친구를 만나 신나게 수다를 떨거나 반대로 잠시 동안 혼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숨어 지내도 괜찮다. 울컥하면 굳이 참지 말고 운다.
이주은 원장은 “특히 남자들은 우는 것을 못나게 보는 경향이 있어 참으려 애쓴다.”며 “그것을 남성다움으로 착각하지 말고 본인 감정에 솔직해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수용과 치유의 단계에서는 자기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 상대방이 나를 버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주은 원장은 “연인이나 부부가 헤어질 때 가해자와 피해자를 나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한다. 상대방이 헤어짐을 결심하기까지 가장 가까운 사이인 자신이 감지하지 못했다는 것은 스스로 반성할 일이다. 상대방은 내게 수십 수백 차례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상관없다고, 별로 불편하지 않다며 ‘수동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지는 않았나 돌아본다.
반대로 내가 상대방에게 너무 잘못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려 자기 파괴적인 방향으로 치닫기도 한다. 술과 담배, 방탕한 생활로 몸과 마음을 좀 먹는다면 점점 더 수렁으로 빠질 뿐이다.
이주은 원장은 “두 가지 편향을 경계하면서 마음을 추스르다보면, 이별은 고통스럽더라도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죽음, 영원한 이별에 대처하기
이별 중에서도 영원히 볼 수 없는 사별을 겪는다면 어떻게 치유해야 할까?
이주은 원장은 “여러 이별 중에서 사별 스트레스가 가장 크다.”고 말한다. 영원히 볼 수 없다는 상실감은 막대한 후유증을 남긴다. 이주은 원장은 “죽은 사람의 존재를 부정하면 더 힘들다.”면서 “눈에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지만 그 사람이 사라진 게 아니라 내 가슴에 남아있다는 것을 명심하라.”고 말한다. 나와 주고받았던 기운, 사랑과 추억은 내가 기억하는 한 평생 같이 가는 것이다.
미국 시카고 로욜라대 심리학과 프레드 브라이언트 교수팀은 “하루에 20분씩만 아름다운 추억에 잠기면 1주일 전보다 훨씬 기분이 좋아지고, 현재의 삶에 대해 생각할 때보다 더 행복감을 느낀다.”고 밝힌 바 있다. 추억은 의욕을 불러일으켜, 삶의 의미와 목적을 생각하게 해주는 마음의 고향과도 같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캘리포니대 심리학과 소냐 류보미르스키 교수팀은 “이별 같은 안 좋은 추억을 떠올릴 때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것보다 글로 적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큰 상처는 글로 적고 나면 더 담담해져 돌아보기 수월하다.
이주은 원장은 ‘가슴대화법’을 추천한다. 힘들어 방황하고 있다면, 죽은 이가 이런 나를 보고 무슨 말을 건넬 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소중한 사람이 주저앉아 있는 모습을 본다면, 틀림없이 가슴 아파할 테다. 예를 들어 어머니라고 가정한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녀가 자신을 그리워하며 힘들어한다면 어떻게 말할까? “엄마는 괜찮다. 잘 있으니 걱정 말고, 밥 먹어라.”
주변 사람은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이주은 원장은 “돕고 싶지만 많은 도움을 줄 수 없는 게 사실”이라며, “옆에서 기다려 주는 게 최선”이라고 말한다. 이때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그런다고 간 사람이 돌아오느냐!”며 질책하는 일은 삼간다. 죽은 사람이 당신에게 귀중한 인물이었다는 것을 인정해주는 말이 좋다. “알아. 많이 힘들 거야. 하지만 간 사람에게 네가 중요하듯 나한테도 네가 중요해.”와 같이 실의에 빠진 이의 가치를 존중해 주는 말이 도움된다.
우울한 날을 보내더라도 평균 1년 반에서 2년이면 괜찮아진다. 이 기간을 잘 보내지 못하면 후유증은 더 오래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