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박길자 기자】
【도움말 |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심장혈관내과 손일석 교수】
【도움말 |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영양건강관리센터 이금주 팀장】
건설회사 부장 이남석 씨(50세·서울 강남구)는 부동산 경기가 나빠지면서 스트레스를 이만저만 받는 게 아니다. 고3 수험생인 딸의 학원비를 내기 어려워져서다. ‘대학 2년생인 아들을 군대라도 보내면 등록금 걱정은 안 할텐데….’ 키 172cm, 몸무게 92kg인 이 씨는 체력이 떨어지고, 뱃살도 툭 튀어나온 게 걱정스러워 얼마전 건강보험공단에서 무료검진을 받았다. 혈압은 155/95mmHg로 고혈압이고, 공복혈당은 108mg/dL로 약간 높았다. 심전도 검사 결과 심장이 크고, 콜레스테롤은 255mg/dL이었다. 진단 결과는 고지혈증. 그의 머릿속으로 4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져 거동이 불편한 부친이 스쳐 지나갔다.
“지난해 고지혈증 진료 환자 92만 명”
고지혈증高脂血症은 말 그대로 혈액에 지방이 많아진 상태다. 핏속에 넘쳐나는 콜레스테롤이 혈관 벽에 쌓여 기름때가 생기고 혈관 벽이 두꺼워지면서 딱딱해지는 동맥경화로 진행된다. 두꺼워진 기름때가 혈관을 막으면서 뇌경색, 심근경색 등 혈관이 막히는 치명적인 병에 걸린다. ‘침묵의 살인자’로 불리는 혈관질환의 ‘뇌관’인 셈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고지혈증 진료 환자는 92만 235명이다. 2005년 45만 5442명에서 두 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이중 여성 환자는 54만 2025명으로 남성 환자 37만 8210명보다 40% 더 많았다. 특히 여성의 경우 매년 40대에서 50대로 접어들면서 진료인원이 평균 2.2배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나 주의가 필요하다고 심평원은 지적했다.
원인은 다양하다. 당뇨병, 갑상샘질환, 신장병 등 대사질환 환자가 잘 걸린다. 비만과 운동 부족 등 생활습관의 서구화로 생긴 ‘선진국병’이기도 하다.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심장혈관내과 손일석 교수는 “삐쩍 마르고 운동도 열심히 하는 채식주의자인데 고지혈증에 걸리는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유전적 소인도 있다는 얘기다.
손 교수는 “예전에는 50~60대 환자가 많았는데 요즘은 20대부터 80대까지 연령층이 다양하다.”며 “젊은층은 서구화된 생활습관, 노인층은 운동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여성호르몬은 몸의 저밀도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고밀도 콜레스테롤을 올리는 효과가 있다. 중년여성은 폐경 후 여성호르몬 생산이 중단된다. 손 교수는 “고지혈증 여성 환자가 남성보다 약간 적거나 비슷하다가 폐경기인 55세 이후 여성 환자가 남성을 앞지른다.”고 전했다. 남성 역시 ‘중년의 위기’가 시작되는 45세 이전에 부친이 동맥경화나 심근경색으로 조기 사망한 경우 주의해야 한다.
혈관질환의 ‘뇌관’… 폐경기 여성 주의해야
고지혈증은 심해지면 간혹 피부 밑에 쌓인 지방이 보이지만, 스스로 알아채긴 어렵다. 고혈압처럼 증상이 없어 더 위험하다는 것이다.
약물치료는 혈중 나쁜 콜레스테롤 160mg/dL 이상이면 시작한다. 총콜레스테롤 240mg/dL, 중성지방은 400mg/dL 이상이면 동맥경화 위험이 높아지므로 약물을 투여한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정상이어도 동맥경화로 인한 관상동맥질환, 뇌혈관질환 등 합병증이 있으면 약물치료를 한다.
손 교수는 “접대를 자주 해야 하는 직장인들은 고위험군”이라며 “폭음을 하면 지방간이 생기고 술안주가 육류나 짠 음식, 콜레스테롤이 많은 음식이므로 고지혈증이 잘 생기기 쉽다.”고 말했다.
동맥경화의 4대 위험인자는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병, 흡연이다. 흡연은 고지혈증을 일으키진 않지만 동맥경화를 일으키는 주범이다. 스트레스로 인한 몸 대사의 불균형이 동맥경화로 이어질 수 있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과음·과식하고 운동 부족으로 비만이 되기 때문이다.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영양건강관리센터 이금주 팀장은 “고지혈증 치료는 적어도 6주일 이상 적극적으로 생활습관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고 설명했다. 유산소운동과 적절한 몸무게 유지, 채소 위주의 식습관, 콜레스테롤 함량이 높은 음식 줄이기부터 시작한다. 일주일에 3회 이상, 하루 30분?1시간 걷기나 속보, 조깅, 등산, 수영, 자전거타기 등을 하는 게 좋다.
손 교수는 “삼겹살은 ‘지방덩어리’인 줄 알지만 닭고기, 오리고기 지방은 별로 신경 쓰지 않고 과식하는 이들이 있다.”며 “콜레스테롤이 많이 함유된 오징어나 굴, 새우, 계란노른자 등을 과다 섭취하지 않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는 말이 있다. 2005년 발표된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를 보면 탄수화물 섭취 비율이 64%나 된다. 이 팀장은 “탄수화물 섭취를 낮추면 혈중 중성지방 농도를 떨어뜨리는 데 영향을 준다.”며 “탄수화물 비중을 50~60%로 낮춰야 치료에 효과적”이라고 조언했다. 소식이 고지혈증 개선에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하루에 한두 잔 술을 마시는 사람이 전혀 마시지 않는 사람에 비해 심장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이 낮다. 몸에 좋은 콜레스테롤(HDL)이 증가해 관상동맥질환 위험도를 30~50% 줄여준다. 적포도주나 흑맥주에 함유된 플라보노이드성분은 α-토코페롤보다 항산화 효과가 크고, 포도 껍질에 함유된 레스베라트롤이 나쁜 콜레스테롤(LDL)의 산화를 방지한다.
그러나 혈액 내 중성지방 농도는 알코올 섭취 용량에 따라 늘어난다. 이 팀장은 “술은 하루에 남성 1~2잔, 여성 1잔 정도가 고지혈증에 좋다.”면서도 “어쩌다 마실 때 이렇게 제한하고, 일부러 마시거나 음주량을 늘릴 필요는 없다.”고 당부했다.
고지혈증 환자에게 좋은 식단
● 생선은 콜레스테롤이 함유돼 있으나 포화지방산이 적다. 고기류보다 생선을 자주 섭취한다.
● 조개, 갑각류의 콜레스테롤 함량은 식품별로 다르다. 콜레스테롤이 많은 새우, 가재 등도 포화지방산량은 적기 때문에 가끔 먹어도 된다.
● 버터나 라드 같은 포화지방산이 많은 기름은 피하고 불포화지방산이 많은 식물성기름을 사용한다. 식물성기름 중 코코넛기름이나 야자유(팜유) 등은 포화지방이 많다. 식품에 ‘식물성기름 사용’ 또는 ‘동물성기름 사용 안함’ 이라는 표시가 있어도 불포화지방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코코넛기름, 야자유 등은 제과·가공식품, 라면, 팝콘, 커피프림 등에 이용하므로 표시를 꼼꼼히 읽어봐야 한다.
● 과일과 채소는 비타민, 섬유소, 무기질 등이 풍부하다. 식사 때마다 충분히 섭취한다. 다만 혈액 내 중성지방 수치가 높으면 과일은 너무 많이 먹지 않는다.
● 밥, 빵, 감자, 고구마 같은 곡류와 콩은 당질과 단백질이 풍부하면서 지방은 적으므로 제한할 필요는 없다. 섬유소는 혈중지질을 떨어뜨린다. 도정이 덜된 곡류나 콩을 먹으면 좋다. 과다 섭취로 칼로리가 늘어나지 않도록 주의한다.
● 견과류(땅콩, 호두, 잣)에는 불포화지방은 많으나 지방량과 칼로리가 많다.
고지혈증 환자에게 좋은 조리법
● 찜, 구이, 조림 등 기름이 적게 쓰이는 조리법을 선택한다.
● 조리 시 소금을 많이 넣지 않는다=고혈압이나 심장질환이 있는 경우는 물론이고 정상일 때도 염분 사용량은 제한한다. 한국인은 보통 하루 15~20g 소금을 섭취한다. 5~6g이면 충분하다. 음식을 싱겁게 조리하고 소금이 많이 든 젓갈, 장아찌, 인스턴트식품, 베이킹파우더, 화학조미료 등을 줄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