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이정희 기자】
【도움말 | 을지대 을지병원 순환기내과 최재웅 교수】
나는 혈액입니다. 내가 원활하게 돌아야 사람의 몸이 건강할 수 있어요. 그러려면 내가 혈관에 주는 압력인 혈압이 높지도 낮지도 않게 정상적으로 유지되어야 합니다. 몸 구석구석까지 산소와 영양분을 운반하려면 적절한 압력이 필요하죠. 혈압이 늘 일정한 것은 아니라서 계속 조금씩 오르락내리락거립니다. 조금 차이 나는 것은 정상인데 혈압이 너무 낮아지면 쉽게 피곤하고 빈혈이 생기기 쉬워요. 반대로 혈압이 너무 높아지면 뇌나 심장, 신장 같은 중요한 곳에 이상이 생겨 생명을 위협하는 합병증에 걸릴 수가 있지요. 혈압이 자꾸만 정상치를 벗어나면 나는 몸을 돌아다니기 불편하지만 사람들은 큰 병에 걸리기 전에는 잘 몰라요. 티가 안 난다고 마냥 괜찮은 게 아니라는 걸 좀 알아줬으면…….
혈압관리는 건강의 지름길
“어질어질해. 저혈압인가 봐.” “열 받아. 혈압 올라.”
일상생활에서 혈압에 대해 말하는 일은 흔하다. 자주 말하는 만큼 혈압 관리도 잘 하고 있을까? 2005년 질병관리본부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고혈압 환자의 24.5%를 차지하는 30~40대 인구 10명 중 7명은 자신이 고혈압인 것을 몰라 뇌졸중ㆍ심근경색 같은 치명적 합병증을 키우는 것으로 드러났다.
을지대 을지병원 순환기내과 최재웅 교수는 “고혈압하면 보통 뒷목이 뻣뻣하고 머리가 아픈 것을 떠올리지만 실제로는 큰 문제가 생길 때까지 이렇다 할 증상이 없어 더 무섭다.”고 말한다.
혈압은 몸의 균형을 유지하는 자율신경에 따라 결정된다. 스스로 내 혈압을 얼마만큼 맞춰야겠다고 생각하는 대로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자율신경은 교감신경, 부교감신경으로 나뉜다. 교감신경이 강한 사람은 혈압이 조금 높다. 주로 남성이 많다. 부교감신경이 강하면 혈압이 조금 낮게 유지된다. 반대로 여성인 경우가 많다.
최재웅 교수는 “혈압은 개인차가 있기 때문에 조금 높거나 낮은 것에 일일이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지만 일정치를 넘거나 미치지 못하면 여러 문제가 생긴다.”면서 “혈압 관리는 건강을 유지하는 필수요소”라고 강조한다.
‘너무 낮거나’ 혹은 ‘너무 높거나’
대한고혈압학회가 정하고 있는 정상혈압은 120/80㎜Hg다. 앞 숫자가 수축기, 뒷 숫자는 이완기혈압이다. 수축기혈압은 심장이 수축을 해 혈액을 온몸에 순환시킬 때의 압력이고, 이완기혈압은 심장으로 혈액이 들어갈 때의 압력이다.
보통 병원에서 측정한 혈압이 140/90㎜Hg 이상일 때 고혈압이라고 한다. 수축기혈압이 120~139㎜Hg이거나 이완기혈압이 80~89㎜Hg일 때도 정상은 아니어서 고혈압 전단계로 분류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당뇨인은 합병증이 생길 위험이 더 높기 때문에 125/85㎜Hg를 넘지 않도록 권장한다. 반대로 저혈압은 90/60㎜Hg 보다 낮은 상태다.
먼저 8년간 무려 40%나 늘었다는 저혈압을 살펴본다(2008년 국민건강보험공단 통계). 저혈압은 혈압이 낮아져서 다른 문제를 유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심부전증, 대동맥판막협착증, 심근경색증 등의 심장혈관계를 비롯해 부신선이나 갑상선 등 내분비 및 대사성 질환 등으로 인해 이차적으로 저혈압이 온다. 약물복용으로 생기기도 한다. 쇼크나 출혈로 인한 저혈압은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어 위험하다. 저혈압이 더 위험하다고 흔히 말하는 것은 이런 상황일 때다.
평소에 혈압이 낮은 경우엔, 혈압을 꼭 높여야 하는 건 아니다. 혈압이 낮더라도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다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최재웅 교수는 “혈압을 조금 높인다고 질병에 걸려 사망할 위험이 낮아지는 것은 아니다.”고 말한다. 다만 쉽게 피로하고 빈혈이나 현기증을 일으키기 쉽다. 앉아 있거나 누워 있다가 갑자기 일어날 때 어지럼증, 어깨결림, 불면증, 집중력 저하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지만 전문의와 상의해 생활습관을 적절히 바꾸면 증세가 나아진다.
반대로 고혈압은 어떨까? 2008년 국민건강영양조사를 보면 우리나라 30세 이상 성인의 25~30%, 60세 이상 노인의 과반수가 고혈압 환자다. 혈압이 높아지면 혈관에 과도한 스트레스를 주기 때문에 혈관기능을 저하시킨다. 오랫동안 지속되면 혈관 벽을 손상시켜 동맥경화증을 유발한다. 혈압이 높으면 심장의 좌심실에서 혈액을 짜내는데 더 많은 힘이 필요하므로 좌심실 근육두께가 두꺼워지는 좌심실비대가 생긴다. 이는 협심증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각종 콩팥질환이나 혈관이 막히는 말초혈관장애도 생길 수 있다.
혈압이 140/90㎜Hg 이상이라면 그 이하인 사람보다 10년 안에 뇌졸중이 생길 위험이 3배, 심부전은 3.5배, 관상동맥질환은 2.2배 높다. 최재웅 교수는 “쉽게 말해 혈관과 맞대고 있는 곳에 합병증이 다 생길 수 있다.”며 “치료가 어렵고, 후유증도 많이 남는다.”고 경고한다.
정상혈압 유지 비법
‘침묵의 살인자’라고 불리는 고혈압. 다행인 점은 늘어나는 고혈압 환자 수에 비해 환자의 관리능력이 좋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한고혈압학회가 보건복지부의 국민건강영양조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1990년부터 2005년까지 15년간 고혈압 관리 성적을 나타내는 인지율과 치료율, 조절율 등으로 본 관리지표는 증가세로 돌아섰다. 이런 추세에 발맞춰 정상혈압을 유지하는 방법을 알아보자.
? 수시로 혈압을 재본다
‘잴 때마다 고혈압과 저혈압을 오간다, 나는 어떤 환자냐?’고 묻는 경우가 많다. 혈압은 늘 변하고 있어 정확하게 재기가 어렵다. 하루 중 언제 재느냐, 어떤 상태에서 재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 최재웅 교수는 “병원에 오면 긴장하는 사람이 많아 조금 높게 나오는 경향이 있다.”며 “제대로 된 수치를 알려면 집에서 편한 마음가짐으로 일정한 시간에 재서 기록해 둘 것”을 권한다.
혈압을 잴 때 방은 조용하고 약간 어두운 편이 좋다. 온도는 너무 춥거나 덥지 않게끔 에어컨이나 난로 옆은 피한다. 옷은 조이는 소매나 바지를 벗고, 편한 차림을 한다. 최소한 10분 정도 앉아서 안정을 취한 후, 혈압계를 심장 높이에 맞춰놓고 잰다. 이때 팔은 매회 같은 쪽, 잘 쓰는 쪽을 재는 게 좋다. 2?3번 재고 평균을 낸다.
? 저염식은 필수
오랜 식습관을 바꾸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더 오래된 인류 역사에서 본다면 인류가 소금 간을 하는 식습관을 들인 것은 얼마 되지 않는 기간이다. 최재웅 교수는 “원래 우리 몸은 저염식에 길들여져 있다.”며 “고농도의 염분을 처리할 수 없어 혈압을 올리게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저염식은 고혈압뿐만 아니라 저혈압에도 좋다. 맛이 강한 것, 기름기가 많은 것을 피한다. 면류는 건더기가 많은 것을 고르고, 장국은 다 마시지 않는다. 덮밥보다는 정식을 먹는다.
? 잔잔한 음악으로 혈압 걱정 뚝
지난해 이탈리아 파비아대 연구팀은 음악의 템포를 점점 빠르게 하면 혈압과 심박수가 높아지는 반면 템포를 점점 늦추면 혈압과 심박수가 낮아진다고 밝혔다. 미국 시애틀대 연구팀도 혈압이 높은 사람이 클래식음악이나 편안한 특수음향을 들으면 혈압이 안정적으로 떨어진다고 발표한 바 있다. 클래식음악은 모차르트나 쇼팽처럼 잘 알려져 있는 음악가의 곡이, 특수음향은 파도소리처럼 잔잔하고 익숙한 소리가 좋다.
최재웅 교수는 순환기계, 심장분야 전문의로 중앙길병원 심장내과 과장을 역임했고 현재 을지병원 순환기내과 과장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