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이정희 기자】
지금은 경기침체로 사오정(45세면 정년퇴직), 삼팔선(38세면 명예퇴직)이란 말이 익숙해진 시대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현역에서 물러나는 일이 비일비재한 요즘에도 우리나라 기수왕좌는 변함이 없다. 명실상부 대한민국 대표기수로 자리매김해 온 박태종 기수(44세)는 불혹을 훌쩍 넘겼다. 체력소모와 위험부담이 큰 기수생활에서 20~30대 후배들을 압도하며 최고의 자리를 지키는 비결이 뭘까??
‘경마대통령’ ‘세월을 가르는 기수’ ‘한국경마의 살아있는 역사’ ‘최고의 리딩자키’ 등 박태종 기수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들은 유난히 화려하다. 그럴 만도 하다. 우리나라 경마 기록을 줄줄이 갈아치우며 경마역사를 새로 썼기 때문이다. 지난해엔 국내 최초로 개인통산 1만 회 기승 기록을 세웠다. 전체 기수 중 다승기록도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2위와의 다승기록은 무려 1000회도 넘게 차이가 난다. 각종 대회 우승도 휩쓸어 연간 누적 우승 상금이 가장 많다.
기수는 다른 어떤 직업보다도 부상이 잦고, 체력소모가 심한 분야다. 동기들은 부상이나 체력문제, 성적부진 등의 이유로 거의 다 은퇴했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기수를 했던 이들은 대부분 조교사(경주용 말을 훈련하는 사람)로 활동 중이다.
그런데 그는 여전히 잘 나가는 현역이다. 어떻게 세월이 박태종 기수만 비껴갈 수 있었을까? 비결을 털어놓으라는 기자의 채근에 쑥스럽게 입을 열었다. “다른 건 없고, 열심히 사는 거예요. 근면하고 성실하게~ 그게 다예요.”라는 싱거운 대답이 돌아왔다. 기수왕치고 너무 평범하다 싶었다. 그러나 곰곰이 돌아보면 ‘열심, 근면, 성실’은 박태종 기수 삶의 요약이고, 핵심이다.
타고난 약골이 강골로 탈바꿈
앞서 말한 화려한 수식어 외에 그의 또 다른 별명은 ‘경마장의 칸트’다. 휴일과 휴가철 등 공식적으로 쉬는 날을 빼곤 1년 내내 똑같이 살기 때문이다.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5시에 경마장으로 출근한다. 오전 경주마훈련 후 아침 먹고 체력 단련, 점심 먹고 잠시 쉬었다 또 운동을 한다. 그 후엔 집에 돌아가 저녁을 먹고 늦어도 9시엔 잠이 든다. 어쩌다 회식을 해도 잠자는 시간은 어김이 없다.
휴일에는 좀 더 자유롭게 운동한다. 자전거 타기를 즐겨 기본 두세 시간은 탄다. 오래 탈 땐 여섯 시간 정도 탄다는 그는 스스로 “운동 중독 수준”이라고 말한다. 어쩔 수 없다는 말도 덧붙인다. 매일매일 운동하다 보니 운동 안 하는 게 부자연스럽고 몸이 근질근질해서 운동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는 것.
키 150cm에 몸무게 47kg인 왜소한 체격의 박태종 기수. 어렸을 때는 남들보다 체력이 약했다. 타고난 약골이 기수왕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기수가 되면서 체력을 기르고 건강관리를 한 덕분인지 몸이 튼튼해졌어요. 평소에 감기도 잘 안 걸리거든요. 말 타다가 부상을 입은 것 말고, 성인병이나 다른 질병에 걸린 적이 없어요.”
나이 사십이면 타고난 건강체질인 사람들도 당뇨병ㆍ고혈압ㆍ비만 등에 시달리며 약 몇 가지 달고 사는 일이 흔하다. 그는 자신처럼 팔팔하게 살려면 “지킬 것을 지키면 된다.”면서 “건강에 나쁘다는 것을 피하라.”고 강조한다.
그는 더 이상 나쁘다는 것을 말할 필요도 없을 만큼 사회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금연, 금주는 기본이라고 말한다. 커피는 조금만 마신다. 식사도 규칙적으로 한다. 여태껏 밥을 굶어보질 않았다는 그는 한 끼라도 굶으면 기운이 없다며 꼭 챙겨 먹는다. 입맛이 당길 땐 때때로 과식도 한다. 그럴 땐 많이 먹은 만큼 운동을 충분히 한다. 그의 몸무게는 기수생활 내내 항상 똑같다. 살이 쪄봐야 500g, 또 빠져봐야 500g이다. 일정한 몸무게야말로 건강의 청신호라고 덧붙인다.
먹을거리는 되도록 안전한 것을 먹는다. 구제역 소식이 들리면 돼지고기를 끊고, 광우병이 논란이 되면 쇠고기를 먹지 않는다. 여름에는 회를 멀리하고, 조류독감이 돌 때는 닭을 먹지 않는다.“주변에 건강식이 얼마든지 있잖아요. 꺼림칙한 것은 아예 피해요.” 건강식으로는 흑염소, 삼계탕, 홍삼 등 기운 나게 하는 음식을 즐긴다.
잦은 부상에도 후유증 없는 비결은?
이렇게 건강한 생활을 실천하다보니 질병은 ‘경마장의 칸트’를 따라오지 못했다. 기수생활 24년간 아파서 병가를 낸 적이 한 번도 없을 정도다.그러나 기수라는 직업의 특성상 부상은 끈질기게 그를 따라왔다. 기수 경력이 아무리 오래됐어도 살아있는 동물인 말을 타는 일은 위험부담이 상당한 일이다. 자신보다 10배나 무거운 경주마를 시속 60㎞로 몰다 보면 때때로 돌발 상황이 생긴다. 말에서 떨어지는 일도 흔하다.
기수 데뷔 후 지금까지 동료 기수 5명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심한 부상으로 은퇴를 한 경우도 많았다.
그는 낙마로 10번가량 부상을 입었다. 1995년 무릎 측방인대파열, 97년 십자인대파열, 99년 척추압박골절 등 전치 3개월 이상의 중상도 여러 번 있다.특히 99년 허리를 다쳤을 때는 ‘기수생활이 끝났다.’고 생각할 정도로 두렵고 괴로웠다.주변에서는 너무 위험하다며 말리기도 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끝낼 순 없었다. 다시 달리고 싶었다. 자꾸 움직이면 안 좋다는 주치의의 말에 머리를 밀기까지 했다. 머리를 감으려면 몸을 움직여야 하므로 아예 밀어버린 것. 좀 찝찝하지만 샤워도 되도록 참았다. 당시 담당의사는 “이렇게 모범적인 환자는 처음 봤다.”며 감탄을 했다고 한다.
여러 번 입원하다 보니 다양한 환자들을 봤다. 먹기 싫다고 약을 안 먹고, 움직이지 말라는데 매일 씻으러 다니고, 심지어 몰래 병실에서 술을 먹는 환자들까지 가관이었다. 그러다 강제로 퇴원당하는 환자도 있었다. 박태종 기수는 부상을 입어도 금세 회복해 재기에 성공하는 비결을 이렇게 말한다.
“제가 부상을 입어도 후유증 없이 건강하게 달릴 수 있는 건, 성실하게 치료받은 덕분이에요. 빨리 나으려면 착한 환자가 되어야 해요. 주치의를 믿고 제때 약 먹고 주사 맞고, 주의사항을 지키면 돼요.”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달린다
얼마 전 받은 건강검진 결과는 역시 ‘아무 이상 없음’으로 나왔다. 이상 없을 뿐만 아니라 신체나이는 훨씬 젊은 편이란다. “몸이 허락하는 한 계속 말을 탈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의 기억 속엔 1995년도 인도에서 열린 국제경마대회 때 한 기수의 인상이 강하게 남았다. 기수복을 갈아입는데 머리가 하얗게 센 어르신이 들어왔다. 대회장에서 일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기수복을 갈아입는 것이었다. 깜짝 놀랐다. 당시 59세인 영국기수였던 것. 이듬해인 60세에 은퇴했다. 박태종 기수는 다짐했다. ‘나도 저 나이가 되도록 기수를 해야지.’ 주변에서는 그를 두고, 이대로라면 50대 기수도 가능할 것이라며 혀를 내두른다. 건강하면 못 할 게 없다며 환하게 웃는 그. 과천벌의 희망질주는 오늘도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