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이은혜 기자】
“자유롭게 배설할 수 있는 것만큼 큰 행복도 없어요”
자궁경부암? 쉽게 생각했다. 치료도 잘 되고 예후도 좋다는 의사의 말은 큰 위안이 됐다. 무엇보다 비교적 일찍 발견된 것은 행운이라면 행운이었다.
하지만 수술과 항암제로 암세포는 없어졌지만 예기치 못한 후유증이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몰랐었다. 그렇게 힘든 고통이 기다리고 있을 줄. 배설기능에 적신호가 켜진 것이다.
배뇨감을 느낄 수 없는 몸.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짐작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체면조차 용납하지 않는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 고통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하루하루가 살맛난다고 말하는 사람 안효주 씨(57세). 그런 그녀가 고민 고민하다 용기를 내어 털어놓은 자궁경부암 후유증 극복기를 소개한다.
엎친 데 덮친 불행
불행은 종종 악의적이다. 언제나 친구하여 오는 경우가 많다. 안효주 씨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느 날 갑자기 간암 진단을 받고 손써 볼 시간조차 없이 유명을 달리한 남편. “남편은 30대 초반부터 간염을 앓아온 간염 보균자였어요. 그런데 그 증상이 3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간경화에서 간암으로 진행이 되면서 진단 받은 지 한 달 만에 돌아가셨어요. 세상에 이런 일도 있나 싶더군요.”
전혀 예기치 못했던 일이었다. 그렇게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날 줄 짐작조차 못했었다. 그 여파 때문이었을까?
남편을 여의고 1년 정도 지난 2007년 6월 중순의 어느 날이었다. 소변을 보는데 피가 섞여 나왔다.
덜컥 겁이 났지만 ‘병원에 가야지, 가야지’ 하면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세 달이 훌쩍 흘러갔다. 그래도 계속 하혈을 하자 안 되겠다 싶었다. 가까운 산부인과에 갔더니 진찰을 해본 의사가 말했다. “자궁에 염증이 심한 것 같다.”고. 그러면서 치료를 해보자고 했다. 치료를 위한 각종 검사가 이어졌다. 소변검사, 자궁검사가 행해졌다. 그런데 의사가 조직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조금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고 했다.
조직검사 결과는 10일 정도 지났을 때 나왔다. 담당의사를 만나러 갔을 때 직감했다. ‘별로 좋은 소식은 아니구나.’
예상은 적중했다. 담당의사는 검사 결과 자궁경부암 조짐이 보인다면서 큰병원으로 가보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간 곳은 안산에 소재한 대학병원. 곧바로 입원을 하고 전반적인 검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자궁경부암 1~2기 정도 된다는 진단이었다. 그것은 2007년 10월 초순의 일이었다.
자궁경부암 1~2기 진단을 받다
자궁경부암 진단을 받고도 의외로 담담했다고 말하는 안효주 씨.
“여성암 중에서 자궁경부암은 비교적 치료가 잘 되고 예후도 좋다고 하니까 그리 크게 상심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치료를 시작하자는 의사의 말을 뒤로 하고 그녀는 조금 색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수술 대신 약으로 다스려 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중국에 암을 약으로 완치시키는 곳이 있다는 풍문을 듣고서였다.
“수술을 하면 자궁을 들어내야 하고 난소, 나팔관도 들어내야 한다는 말을 듣고 그것이 못내 걸리더군요.”
그래서 택한 중국행. 세 차례 정도 중국을 드나들며 약을 지어와 열심히 먹었다. 그리고 6개월 정도 지났을 때 궁금했다. 혹시 암세포가 사라진 건 아닐까?
들뜬 마음으로 다시 찾은 병원. 하지만 검사 결과는 참담했다. MRI 검사 결과 암세포는 더 커져 있었고, 2기 말이라는 진단도 함께 나왔다. 의사는 서둘러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암세포가 너무 커서 2회 정도의 항암치료부터 해야 했다.
땅을 치고 후회했지만 이미 늦은 일. 의사가 권하는 대로 항암치료부터 시작했다. 붕붕 떠다니는 기분, 기운 없고,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카락은 뭉텅뭉텅 빠지고… 다들 겪는다는 항암치료의 부작용은 그녀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 고통을 견뎌내며 2회의 항암치료가 끝났을 때 그녀는 수술대 위에 올랐다.
수술은 결코 끝이 아니었다!
수술해서 암 세포를 없애면 모든 고통이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수술은 결코 치료의 끝이 아니었다. 자궁을 들어냈다는 허전함도 잠시. 생각지도 못한 고통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소변을 제대로 볼 수 없는 고통이었어요. 배뇨감을 전혀 느낄 수 없었으니까요.”
자궁 경부가 방광과 가깝다 보니 배뇨와 관련된 신경도 함께 제거돼 버린 탓이었다. 그 후유증은 상상을 초월했다. 대변을 보는 것도, 소변을 보는 것도 통제할 수가 없었다. 아무런 느낌 없이 소변이 나왔고, 대변도 나왔다.
“그것은 참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었어요. 자존심도 상하고 말 못할 수치심도 느껴지고… 그래도 살아지는 것이 세월이더군요. 소변을 보고 싶다는 느낌조차 없는 상태에서 차츰차츰 시간에 맞춰 소변 보는 연습도 하면서 그럭저럭 적응해가기 시작했으니까요.”
하지만 포기해야 하는 것들도 많았다. 외출 한번 하려 해도 쉽지 않았고, 여행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그래도 그 정도는 견딜 만했어요. 수술 후 1년 반 정도 지났을 때는 장이 탈장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까요. 소변 볼 때 배에 힘을 너무 많이 줘서 그렇게 됐다더군요.”
다행히 탈장된 장은 수술을 통해 봉합됐지만 그녀에게 남겨진 고통의 무게는 여전했다. 배뇨곤란은 여전히 그녀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고, 하루하루 힘든 나날을 살아내야 했다. 그랬던 그녀가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외출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됐다고 좋아라 한다. 도대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다시금 부르는 행복 찬가
2010년 8월 현재, 안효주 씨는 하루하루가 꿈만 같다고 말한다. 외출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됐고, 사람들을 만날 때 불안감도 말끔히 없어졌다고 털어놓는다.
배뇨감을 느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배뇨감을 느낄 사이도 없이 주르르 흘러내리던 소변을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게 되면서 하루하루 살맛이 난다고 말한다. 그 비결을 묻는 질문에 안효주 씨는 “장기능을 좋게 해준 덕분인 것 같다.”고 말한다.
“그동안 배뇨감을 회복하기 위해 안 해 본 것이 없을 정도예요. 복근운동에 괄약근운동에 호흡운동까지 좋다는 방법은 모조리 다해보았지만 좀체 효과를 보지 못했어요. 그런데 서너 달 전부터 콩을 발효시켜 만들었다는 유산균을 먹기 시작하면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어요.”
어렴풋하게 배뇨감이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소변을 시원하게 볼 수 있게 됐던 것이다. 그것은 정말 신의 선물과도 같은 일이었다고 털어놓는다.
이제는 웬만큼 소변도 조절할 수 있게 되면서 무너졌던 그녀의 자존심도 회복됐다고 말하는 안효주 씨.
사람이 배설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만큼 큰 행복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하는 그녀는 이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오늘 또 새롭게 주어진 하루에 감사하며 가능한 한 충실히 살려고 최선을 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