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이기옥 기자】
【도움말 | 국립암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김종흔 교수】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는 말이 있다. 스트레스가 정신적·신체적으로 현대인의 건강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인식되면서 스트레스 해소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제는 “스트레스는 안 받는 것이 아니라 잘 풀어야 한다.”는 인식도 확산되어 많은 이들이 스트레스 관리와 해소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스트레스 관리와 해소는 질병으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받는 환자들에게도 필요하다. 특히 극심한 신체적 고통은 물론 생사의 기로에서 정신적 고통까지 이중고를 겪는 암 환자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암 환자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인 ‘디스트레스’는 무엇이고 그 관리법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보았다.
PART 1. 디스트레스(Distress)? 유스트레스(Eustress)?
‘스트레스’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지만 ‘디스트레스’라는 말은 익숙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스트레스를 나쁜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어떤 일을 앞두고 느끼는 약간의 긴장과 초조는 집중력을 높여 오히려 더 좋은 성과로 이끄는 자극제가 된다. 반면에 긴장과 초조로 정신적 압박을 심하게 받을 경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스트레스가 되어 충분한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한다.
이렇게 스트레스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 이를 구분해서 부를 때 긍정적인 스트레스를 ‘유스트레스’라고, 부정적인 스트레스를 ‘디스트레스’라고 한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가 흔히 쓰는 ‘스트레스’는 ‘디스트레스’라고 할 수 있겠다.
전문의들 사이에서는 암 환자의 생존율 증가를 고려하여 암을 만성질환으로 보는 견해도 적지 않지만, 일반인들에게 여전히 암은 곧 ‘죽음’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암 진단을 받은 순간부터 치료 과정, 그리고 5년 이상의 암 생존자가 되어서도 엄청난 정신적 스트레스를 안고 산다.
이러한 ‘암 환자가 겪는 정신적 고통’을 미국 종합 암 네트워크(NCCN)에서 ‘디스트레스(distress)’라고 정의했고 암 환자의 디스트레스 관리가 치료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인식하기 시작했다.
PART 2. 디스트레스 관리의 필요성
2009년 보건복지가족부와 국립암센터가 조사한 우리나라 암 환자의 디스트레스 유병률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의 42.1%가 디스트레스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자들이 경험한 디스트레스 유형은 불안장애, 우울장애, 불면증, 외상후스트레스 장애 등 다양했다. 암 환자들이 신체적 고통과 더불어 극도의 정신적 고통까지 겪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일반인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없던 병도 생긴다. 그렇다면 암 환자는 어떨까? 암 환자의 디스트레스는 암 치료에 직·간접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국립암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김종흔 교수는 “암 환자는 한 번 충격 받는 것이 아니라 연타를 맞는 경우가 많기에 더욱 힘들다.”며 “이 때문에 자살도 하기에 정신건강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암 환자의 디스트레스는 고스란히 환자의 가족에게 전해져 암 환자와 가족 모두의 삶의 질이 떨어진다. 치료를 거부하기도 하고 안락사를 요청하거나 자살을 하기도 한다. 경제적으로 입원 기간이 길어지고, 필요 이상의 의료 비용이 증가해 더욱 큰 부담을 안긴다. 무엇보다도 암 환자의 디스트레스는 암 재발률과 생존율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암 환자의 디스트레스 관리가 필요하다.
PART 3. 암 환자의 디스트레스 관리법
암 치료만큼이나 중요한 암 환자의 디스트레스 관리. 디스트레스를 줄이고 암 치료 효과를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김종흔 교수는 “좋은 태도를 유지하고 지지를 많이 확보해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 건강한 생활습관과 건전한 생활방식을 실천하라. 환자가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 미심쩍은 신체 증상이 계속되면 제때 병원을 찾아라. 암은 조기 진단이 가장 중요하다.
⊙ 암에 걸렸다고 자신을 탓하지 마라. 자신의 성격 때문에 암이 생기지는 않는다.
⊙ 병원에서 권하는 의학적 치료를 충실히 받아라. 생존을 위한 최선책이다.
⊙ 사람마다 암 투병 방식이 다르다. 자기 개성에 맞는 투병이 가장 효과적이다.
⊙ 자신이 암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한다고 느낀다면 정신건강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라.
⊙ 스트레스, 우울과 같은 감정이 암의 발병이나 재발의 위험을 높이진 않는다.
⊙ 스트레스가 있다고 암이 더 잘 생기거나 환자가 더 일찍 사망하는 것은 아니다.
⊙ 환우회와 같은 자조 모임에 참석하라. 디스트레스와 고독감을 덜 수 있다. 단,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체질이 아니고 모임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굳이 참가하지 않아도 된다. 모임에 들지 않으면 나쁜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걱정은 하지 마라.
미국 슬로언 – 케터링 암센터의 지미 홀랜드 박사가 전하는 암 대처에 있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1 “암은 사형선고와 마찬가지다.”라는 말은 옛말이다. 더는 믿지 마라. 암에 걸리고도 살아 있는 사람들이 미국에만 1,000만 명이 넘는다.
2 자신이 암을 불렀다고 자책하지 마라. 어떤 특정한 성격이나 정서 상태, 또는 괴로웠던 인생사 때문에 암이 생긴다는 속설은 과학적인 근거가 없다. 본인의 흡연이나 기타 나쁜 습관 때문에 발암 위험이 커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제 와서 자책하고 자학해보았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
3 과거에 겪은 위기 상황에서 문제 해결과 위기 극복에 유용했던 방식이 있으면 그런 방식으로 대처하라. 남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것이 편하다면 대화 상대를 찾아라. 말수가 적고 내성적인 사람에게는 이완이나 명상과 같은 방법들이 이로울 수 있다. 우선 예전에 도움이 되었던 식으로 대처하되, 그 방식이 이번에는 소용이 없다면 상담을 받아 다른 대처 방식을 찾아보라.
4 한 번에 다 하려고 하지 말고 오늘은 오늘 일만 생각하는 방식으로 암에 대처하라. 암 투병이라는 것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엄청나 보여도 조금씩 나누어서 차근차근 해결할 수 있다. 병을 앓는 중이라고 할지라도 이렇게 하면 중요한 일들에 더 잘 집중할 수 있다.
5 사람이 늘 긍정적으로만 지낼 수는 없으니, 그런 태도를 유지하지 못한다고 해서 죄책감을 느끼지는 마라. 아무리 대처 능력이 뛰어난 환자라도 가끔은 슬럼프에 빠지기 마련이다. 일시적으로 기분이 침체된다고 해서 건강을 해치거나 암이 더 빨리 자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울감이 잦아지거나 정도가 심해진다면 정신건강 상담을 받아라.
6 고통을 묵묵히 혼자 견디려고 애쓰지 마라. 지지집단이나 자조모임이 본인과 잘 맞으면 거기에 참석하라. 그것이 내키지 않더라도 혼자 감당하지는 마라. 대신에 가족이나 친구, 의사, 성직자 또는 자조 모임에서 만난 동료 환자의 도움을 받아라.
7 불안증이나 우울증으로 정신건강 전문가를 찾아 상담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라. 디스트레스가 감당이 안 되면 불안하고 우울해져서 잠도 잘 못 자고, 밥도 잘 못 먹고, 집중력도 떨어지므로 일상적인 기능이 어려워진다. 이런 문제들은 상담을 통해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8 두렵고 속이 상할 때,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이용해 감정을 조절하라. 이완, 명상 또는 영적인 수행법들을 이용해보라.
9 어떤 질문이든 받아주고, 환자를 존중하며, 신뢰감을 주는 의사를 찾아라. 의사와 동반자적인 관계를 맺어라. 어떤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며, 어떻게 대비를 해야 하는지 질문하라. 문제를 이미 예상하고 있으면 훨씬 다루기 쉬워진다.
10 가까운 사람에게 자신의 걱정, 그리고 신체적이나 심리적인 증상을 숨기지 마라. 치료에 대해 상의하러 병원에 갈 때에는 함께 가달라고 부탁하라. 불안할 때 혼자서는 의사의 설명에 집중하기 어렵다. 같이 간 사람이 있으면 함께 들었던 정보를 더 잘 해석할 수 있다.
11 영적인, 또는 종교적인 믿음과 수행을 통해 과거에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면 그것을 다시 추구해보라. 기도나 명상이 도움 될 수 있다. 종교적이거나 영적인 사람이 아니라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신념이나 철학에서 지지를 얻을 수 있다. 무엇인가를 믿는다는 것은 마음에 위안을 주고, 더 나아가서 투병 경험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해준다.
12 대체요법이나 보완요법을 받느라고 정규 치료를 외면하지 마라. 정규 치료와 병용해도 해가 되지 않는 안전한 요법만을 이용하라. 대체보완요법을 받고 있거나 받으려고 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의사와 상의하라. 항암화학요법이나 방사선치료를 받는 동안에는 멀리해야 하는 요법들도 있기 때문이다. 요법을 선택할 때에는 스트레스 받으면서 혼자서 판단하지 말고, 좀 더 객관적인 사람과 함께 장단점을 잘 따져보고 선택하라. 보완요법 중에서 심리적·사회적 또는 영적인 방법들은 득이 크고 안전하므로 요즘은 의사들도 이용을 권장한다.
13 수첩을 준비해서 치료 일정, 검사 결과, 각종 증상 및 심신 상태를 꼼꼼히 기록하라. 이런 정보는 암을 치료하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하며, 본인보다 그것을 더 잘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김종흔 교수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였고,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학교 암센터 및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연수를 받았으며, 한국정신종양학회 회장, 한국정신신체학회 암전문화위원장, 한국정신분석학회 수석총무이사,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학술부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국립암센터 정신건강클리닉 책임 의사 및 국립암센터 지원진료센터 센터장으로서 암 환자의 정신건강을 전문으로 진료하고 있다. 저서로는 <암환자를 위한 스트레스 관리>, 역서로는 <나쁜 소식 어떻게 전할까> <암에 대처하는 최선의 방법>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