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이은혜 기자】
“암은 새로운 깨달음의 도구였어요”
앳된 모습이다. 까르르 까르르 소녀처럼 웃는다. 너무도 해맑은 모습에서 무거웠던 마음이 일시에 사라진다. 말을 꺼내기조차 쉽지 않은 일. 그런데 선수를 친다.?
“아직도 제 몸속에는 암세포가 있어요. 하지만 걱정 안 해요. 벌써 5년이 지났네요.”?
그래서 오늘 주어진 하루하루가 너무나 고맙고 감사하다는 이선희 씨(51세). 어느 날 느닷없이 찾아든 암과 더불어 5년 동안 공존하며 유쾌 발랄하게 살아온 그녀의 지난 이야기를 들어봤다.?
심한 편두통 뒤의 후폭풍?
자녀가 없어서 남편과 단둘이 오붓하게 살아왔다는 여자. 숱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식이 없는 데는 하나님의 뜻인가 보다 믿으며 즐겁게 받아들였다는 여자. 그래서 늘 감사하며 살아왔다는 여자. 이선희 씨를 함축적으로 정의하면 그렇다. 그러나 매사 감사하며 살아도 인간인 이상 감당해야 할 시련은 있나 보다.
2005년 12월경, 그녀 나이 45세 때의 일이었다. “교회 사람들과 말레이시아로 봉사활동을 떠났을 때였어요. 그런데 원인을 알 수 없는 편두통으로 봉사활동 내내 힘들었어요.” 그래서 하게 된 건강검진. 그런데 검사 결과가 조금 뜻밖이었다. “폐를 재검사하라는 진단이 나왔던 거예요.”
조금 의아했지만 동네병원에 가서 폐 검사를 해보기로 했다. CT 검사를 했다. 그런데 의사의 표정이 복잡하다. 그러면서 하는 말, “형태가 안 좋습니다. 큰 병원에 예약해드릴게요. 꼭 가보세요.”
그것은 불행의 전조였다. 누가 봐도 그랬다. 하지만 이선희 씨 생각은 조금 다르다. 그것은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다고 말한다. 왜?
‘만 명에 한 명꼴’의 주인공
동네병원 의사가 예약까지 해줘서 가게 된 종합병원. 각종 검사가 이어지고 드디어 나온 결과는 누가 봐도 충격적이었다. 폐암이었다. 1.5기였으며, 2cm 크기의 암세포가 자라고 있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하지만 정말 불행 중 다행이었을까요? 의사 선생님이 그러더군요. 이런 경우는 만 명에 한 명 정도 있을까 말까라고. 이렇게 일찍 발견하기도 힘든데 정말 운이 좋았다며 많이 놀라워했어요.”
그래서 너무도 감사했다는 이선희 씨. 머리가 아파서 건강검진을 하지 않았다면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말기에 이를 수도 있었을 것이고, 만약 그랬다면? 생각만으로도 아찔했다.
“그리고 그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것은 하나님이 나를 낫게 하기 위함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나으려고 하는 과정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암이 나를 어찌 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안 했어요.”
그런 때문이었을까? 그녀는 너무도 담담히 암을 받아들였고 병원에서 하라는 대로 착실히 따랐다. 수술만 하면 된다고 했다. 항암치료나 방사선 치료는 필요 없고, 재발 확률도 거의 없다는 의사의 말에 ‘정말 운이 좋다.’며 기꺼이 수술대 위에 올랐다.
수술 후 회복도 빨랐다. 2주일 만에 퇴원을 했고, 남편의 극진한 보살핌 속에서 다시금 예전의 이선희 씨로 돌아왔다. 그것은 지난 2006년 1월의 일이었다.
암 재발은 삶의 터닝포인트
암 수술을 한 이후에도 3개월에 한 번씩 병원에 가서 체크를 하는 것만 빼고 달라진 것은 별로 없었다는 이선희 씨. 그러나 너무 방심했던 걸까? 그렇게 1년 4개월이 지났을 때 이선희 씨는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맞게 된다.
“3개월에 한 번씩 하던 정기검진날 의사 선생님이 그러더군요. 재발한 것 같다고. 한쪽 폐에서 양쪽 폐 모두에 모래를 뿌려 놓은 것처럼 퍼진 것 같다고.” 믿을 수 없었다. 재발은 걱정 말라더니…. 하지만 원망의 마음도 잠시였다. 그 상황을 기쁘게 받아들이자 생각했다.
“사실 암 수술을 한 후 신앙적으로 많은 갈등을 겪고 있었어요. 하나님이 제게 새로운 삶을 주었을 때는 뭔가 의도하는 바가 있었을 텐데 예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은 나, 여전히 세속의 희로애락에 연연해하는 제가 싫었어요.”
그래서 늘 ‘이래도 되나?’고민하고 갈등했다. 그런데 암 재발…. 이선희 씨는 생각했다. ‘암 재발은 분명 내 삶을 새롭게 변화시키라는 신의 뜻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생활도 바꾸고 생각도 바꾸다!
암 재발은 누가 봐도 비관적이었다. 수술도, 방사선 치료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선희 씨는 절망부터 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서둘러 향한 곳은 남양주에 있는 한 요양병원이었다.
“그곳에서 실천하고 있는 건강 원리에 끌렸기 때문입니다. 몸과 마음뿐 아니라 정신과 신앙까지도 새롭게 교정해주는 생활치료의 산실로 알려져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해서 찾아간 요양병원. 이곳에서의 생활은 조금 색달랐다. 가장 먼저 한 일은 그동안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몸에 밴 잘못된 생활습관을 바로잡는 거였다. 이를 위해 실천한 행동 강령은 크게 5가지.
●첫째, 영양 밸런스를 맞춘 완전채식을 실천했다. 현미잡곡밥에 잎채소, 뿌리채소, 견과류 등으로 차린?식사를 했다.
●둘째, 햇빛을 받으며,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운동도 열심히 했다.
●셋째, 일주일에 2~3회 정도는 암에 대한 공부도 하면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방법도 찾았다.
●넷째, 웃음치료, 수치료, 발마사지, 고주파치료, 온열요법, 숯팩, 비파치료 등 각종 천연치료를 실천하면서 우리 몸이 가지고 있는 자연치유력 회복에 힘썼다.?
●다섯째, 기도하고 또 기도하면서 병든 몸뿐만 아니라 마음속 갈등까지 떨쳐버릴 수 있었다. 늘 온전히 사랑하지 못해 느끼는 자책감마저 털어버릴 수 있게 해주었던 것이다.
“비로소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됐고 생명의 소중함도 알게 됐습니다. 용서하고 용서받는 따뜻한 마음을 알게 되면서 새로 태어난 것 같은 기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암이 더 이상 두렵지 않게 됐다는 이선희 씨. 암은 감춰진 감사의 조건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구름 속의 무지개를 발견한 것처럼 그녀 삶에 있어서 고난도 축복의 경로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한다.
“세상의 모든 게 아름답게 보이고 떨어지는 낙엽도 예쁘고, 봄에 핀 꽃을 보고도 ‘물 한 번 안 줬는데 꽃을 피워서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어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감사의 조건이었으며, 자신의 암도 재앙이 아니고, 고난이 아니고, 축복의 통로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이선희 씨는 말한다. 그것은 1년 6개월 동안 요양병원에서 생활하면서 알게 된 너무나 소중한 깨달음이었다.
5년째 암과 동거해도 삶의 기쁨은 늘 충만
암 진단과 재발, 그리고 새로운 깨달음까지…. 누구보다 치열한 삶을 살아온 이선희 씨.? 2011년 12월 현재 그녀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암은 여전히 제 몸속에 머물러 있어요. 3개월마다 한 번씩 체크를 하는데 검사할 때마다 의사 선생님이 그래요. 그대로 있거나 눈에 보이지 않게 조금씩 자라고 있다고. 진전이 느린 것 같고, 정지일 때도 있다면서 이 정도라면 항암은 권하지 않는다고 하네요.”
하지만 5년이란 세월은 암에게도 결코 짧은 세월은 아니었다. 5년이 경과하는 동안 암도 5cm 크기로 자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선희 씨는 걱정 안 한다. 5cm의 암이 그녀를 해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설사 그로 인해 잠들더라도 얻은 것이 너무 많아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고 말한다.
“지난 5년이란 시간은 제 인생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마음의 눈으로 비로소 볼 수 있게 됐으니까요.” 그래서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더 많다고 말하는 이선희 씨. 오늘 그녀는 누구보다 행복하다. 그런 때문일까? 전하는 메시지도 명쾌하다. “암은 결코 두려운 존재가 아니다.”는 것이다. 암을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그 속에서 삶의 진정한 기쁨을 찾을 수도 있기 때문이란다.?
조금 특별한 이선희 씨가 사는 법
1. 모든 것에 감사하는 삶을 산다.
2. 현미밥에 각종 나물, 채소, 견과류, 밀고기 등으로 채식식단을 차린다.
3. 토마토는 늘 먹는다.
4. 과일과 야채를 섞어서 먹지 않는다. 한 끼는 야채만, 한 끼는 과일만 먹는다.
5. 식사는 건식식사를 한다. 밥과 반찬만 먹고 국은 잘 먹지 않는다.
6. 간식은 멀리한다.
7 성경은 최고의 항암제. 늘 말씀을 듣고 읽는다.
8. 혈액순환을 도와주는 천연치료를 한다. 온열기, 반신욕 하기, 족탕요법 실천하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