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백경미 기자】
병으로 인해 힘들게 살아온 지난 시간을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현재 간질협회사무실에서 상담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많은 사회 활동을 하고 있는 안용숙 씨(51)다. ‘간질병? 그게 어떠냐?’며 늘 당당하고 자신 있게 고개를 들고 살아왔다고 말하는 그녀. 시간을 되돌아보니 참 뻔뻔하게 산 것 같다고 크게 웃는 그녀에게, 병이라는 어두운 그림자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발작을 일으켰던 과거와는 안녕하고 더할 나위 없이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갑자기 찾아온 발작
장애인데도 불구하고 겉으로 보이는 장애가 아니라서 장애 사이에서도 차별받는 병이 있다. 갑자기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발작 ‘간질’이다.
안용숙 씨는 10살 때쯤 자신에게 발작이 처음 찾아왔다고 말한다.
“정확한 원인은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저희 집에 도둑이 들었었는데 어린 나이에 그 사건이 꽤 충격으로 다가왔나 봐요. 그 뒤로 시름시름 앓더니 발작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부모님은 원인도 모르는 발작을 치료하기 위해 딸을 데리고 개인병원을 전전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6~70년대에는 간질이라는 병명이 정확히 노출이 되지 않은 상태. 또한 간질은 뇌파에도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안용숙 씨는 심한 발작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제대로 손도 못써 본 채 스무 살이 될 때까지 그렇게 지냈어요. 어머니께서는 발작에 좋다는 민간요법을 여기저기서 알아 오시곤 했죠. 올빼미를 잡아서 달여 약으로 쓰는 등 증명되지 않은 그런 치료법 말이에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그 시간이 길게만 느껴졌다고 말하는 그녀. 스무 살이 되면서 그녀는 자신의 정확한 병명을 알게 되었고 본격적인 치료에 나서기 시작했다.
계획적인 생활이 중요!
치료를 시작했지만 20대에 간질 증상은 심각했다. 아무래도 젊은 혈기에 왕성하게 활동하다보니 몸이 조금은 무리를 느꼈는지도 몰랐다. 약도 많이 먹었다. 잦은 발작 때문에 사회생활이 좀 힘들었지만 꾸준한 약 복용과 계획적인 생활로 안정을 찾아가면서 발작 증세는 점점 호전되기 시작했다.
“간질병은 삼박자가 잘 맞아야 치료가 잘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환자의 자신감, 자신에게 맞는 약 그리고 의사선생님과의 정확한 의사소통과 믿음이요. 전 이 세 가지가 모두 잘 맞았던 것 같아요.”
20대에 잦았던 발작이 치료를 하면서 점점 그 횟수가 줄어 30대에는 3, 4년에 한번 꼴로 있었고 현재는 10년에 한 번 정도라고.
그녀는 우울하거나 어둡고 음침한 분위기가 건강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면서 되도록 그런 분위기를 피해야 한다고 말한다. 즐거운 것만 보고 최대한 즐겁게 사는 것이 발작의 횟수를 줄인다고. 또한 취미생활을 갖는 것도 좋은데, 본인은 20년이 넘도록 등산을 꾸준히 해왔다고 한다.
“전 늘 하루를 계획적으로 살았어요. 이게 중요해요. 밥 먹는 시간, 약 먹는 시간, 잠자리에 드는 시간을 딱딱 맞춰서 계획적으로 일상을 보내는 것이 치료에 큰 도움이 된답니다.”
하루 하루를 기록하는 습관도 도움이 됐다. 자신이 오늘 무엇을 언제 했는지 날씨는 어땠고 그 날 기분은 어땠으며 건강상태는 어땠는지 꼼꼼히 기록한다. 그리고 나중에 확인해보면 내가 어느 때 왜 상태가 나빠지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어 발작을 일으키는 요소를 미리 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바르게 살다보니 결국 간질병도 안용숙 씨에게 항복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늘 자신 있는 모습으로
놀랍게도 그녀는 20년 간 직장생활을 꾸준히 해왔다. 병 때문에 직장을 포기한다거나 권고사직을 당했던 경험이 한 번도 없었단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간혹 발작이 있었지만 상사와 동료들의 배려 덕분에 어렵지 않았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본인의 병을 자세히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다고 한다.
“회의하다가 갑자기 멍해지고 의지와는 상관없이 잠깐 정신이 다른 곳에 팔리기도 하는데, 이것 역시 발작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어요. 소발작이죠. 이럴 때 곁에서 누군가 나를 흔들어서 얘기해주고 도움을 주는 것이 필요해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먼저 나의 병과 증상을 설명해주는 것이 중요하죠.”
일이라는 것은 찾아 하기 나름이라고 말하는 안용숙 씨. 간질병을 앓는다고 해서 못할 일이 없으니 본인에게 가능한 일을 찾아서 하라고. 혼자서 찾을 수 없으면 도움을 받아서라도 스스로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녀는 현재 대학입시라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있다. 간질이 심해서 제대로 하지 못한 공부를 이제 시작한 것이다. 복지 쪽으로 갈 생각인데, 간질 환우들을 가르칠 때도 알고 가르쳐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어떤 일에 종사를 하던 간에 간질 환우와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할 예정”이라고 말하는 그녀.
“아픈 것 때문에 학교에서 놀림 받고 왕따를 당해 우울증이 동반되어 자살을 시도하는 간질 환우들이 있습니다. 사회적 차별이나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 때문에 견디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라고 말하고 “옆에 당신의 친구가 간질로 쓰러지면 아무거리낌 없이 붙잡아 주세요. 그리고 따뜻한 시선으로 이해하고 배려해주세요. 그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답니다.”라고 덧붙인다.
사람들이 하루빨리 간질에 대한 편견을 모두 버려서, 모든 간질 환자들이 안용숙 씨처럼 자신감 넘치는 삶을 살아가길 간절히 바래본다.
주위에서 발작을 일으키면…
일반적으로 발작이 시작되면 아무도 그것을 정지시키지 못한다. 발작이 일어나면 일단 바닥에 눕히고 혀를 깨물거나 질식 위험 방지를 위해 고개를 돌려준다. 이때 환자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팔다리를 꽉 잡는 것은 위험하니 피하고, 몸에 조이는 것들은 풀어주도록 한다. 경련이 10분 이내에 끝나지 않거나 반복적으로 계속될 때, 머리에 손상이 있을 때는 빨리 구급차를 부르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