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정소현】
【도움말 | 가톨릭대학교 강남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 예은주 자원봉사 팀장】
피하고 싶은 신의 선물이 있다면 바로 ‘죽음’이 아닐까? 무거운 죽음의 정적에 휩싸여 있을 것 같은 호스피스 병동에서 “천사님”으로 불리는 사람들. 힘든 시간을 함께 울고, 웃으며 환자가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또 남겨진 가족에게 위로가 되어주는 사람들.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들의 하루 일과를 담아봤다.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곳
천사님, 천사님~~ 우리 천사님!! 인간 세상에 감히 천사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어둡고 축축한 죽음의 그림자가 가득할 것 같은 호스피스 병동에서 환자들과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며, 그들과 함께 아기자기한 행복을 꿈꾸는 이들은 환자들에게 천사 같은 존재다.
“천사님~” 병동에서 들리는 소리다. “천사?” 그렇다. 환자들로부터 천사라고 불리는 사람 중의 한 사람. “천사라고 불릴 때마다 창피한 마음에 구석으로 숨고 싶어져요.”라고 말하는 강남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의 예은주(47세) 호스피스 자원봉사 팀장의 고운 볼이 사춘기 소녀마냥 불그스레해진다.
많고 많은 봉사활동 중에 호스피스 자원봉사를 선택한 예은주 팀장은 가톨릭 신자다. 늘 무엇인가 봉사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선뜻 실천하지 못하고 있던 어느 날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나오는 길에 호스피스 안내문을 보고 자신이 해야 할 봉사가 ‘바로 이것’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그렇게 시작하게 된 호스피스 자원봉사활동은 올해로 6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강남성모병원의 호스피스병동은 16개의 병상에 52명의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들이 활동하고 있다. 또 매주 화요일마다 의사, 약사 종교인, 간호사, 자원봉사자 등의 호스피스병동의 구성원이 팀 모임을 통해 각 환자들의 상태에 따른 의견을 제시하고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자원봉사자들은 7~8명의 인원이 한 팀을 이루어 일주일에 한 번씩 팀별로 봉사활동을 하는데, 이들의 하루 일과는 공식적으로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진행된다.
10시 이전에 도착하여 시작기도를 하고 환자의 상태에 대해 나눔 활동을 한 이후 △10시부터 각 봉사자들이 환자의 수족이 되어 목욕, 책읽어주기, 마사지 등 각 환자들에게 필요한 봉사활동을 한다.
△12시 30분부터 한 시간 가량의 점심식사 시간 이후 귀가 시간인 4시까지 환자를 돌본다.
봉사활동을 하다보면 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간다.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들에게 내일은 없다. 환자가 그들에게 도움을 요구하면 바로 실행해야 한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환자들을 돕는 일이기 때문에 ‘오늘은 집안 일이 바쁘니까 내일 해드려야지’란 가정이 있을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작은 실수 하나도 용납되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예은주 팀장은 “생명과 직결되는 봉사활동이기 때문에 작은 일 하나에도 주의를 기울여 실수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삶의 희로애락이 녹아 있는 곳
삶과 죽음의 문턱이 바로 눈앞에 있는 곳이기 때문에 봉사자들이 겪는 스트레스가 클 것 같지만 예은주 팀장은 “집에서 아프다가도 이곳에만 오면 아프지 않을 정도로 호스피스 자원봉사 활동으로 많은 것을 얻고 있어요.”라며 밝게 웃는다.
그녀는 특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죽기 직전까지도 풀지 못한 문제를 가슴에 담아두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호스피스 병동에서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들과 병동 사람들의 도움으로 환자의 가슴 속에 담아둔 문제가 해결될 때 더욱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이처럼 호스피스 자원봉사는 환자의 수족이 되는 병상봉사 이외에 환자 임종 시 장지수행 등 장례절차에도 도움을 주고 있으며, 남겨진 가족들을 위해 사별가족 관리 프로그램 등을 통해 환자 가족에 대한 마음의 위로도 하고 있다.
봉사활동을 하기 전에는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고 막연히 부정적으로만 생각했지만, 지금은 죽음에 대해 좀더 겸허해졌다는 예 팀장. 그녀는 “흔히들 호스피스 병동에 대해 죽음을 맞이하는 곳이란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지만 호스피스 병동에도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삶의 희로애락이 있는 곳”이라며 “만 60세, 호스피스 자원봉사 정년퇴임 때까지 여건이 되는 한 봉사활동을 계속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생과 사를 오가는 환자와 환자 가족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오랫동안 호스피스 자원봉사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준 그녀의 가족에게 고맙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호스피스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면…
호스피스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면 우선 호스피스교육 절차를 밟아야 한다. 종교의 유무와 상관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교육기관마다 일정과 교육시간 및 교육내용 등이 조금씩 다르다. 강남성모병원의 경우 상반기, 여름, 하반기 등 1년에 3차례에 걸쳐 1, 2차 호스피스 교육을 진행하고 있으며, 금년도 하반기 교육은 이미 종료된 상태다. 1, 2차 호스피스 교육을 수료한 사람에게는 자원봉사 지원 자격이 주어지며 이후 서류전형과 구술면접을 통해 통과한 자에 한하여 3개월간의 수습기간을 거쳐 최종적으로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를 선발하게 된다.
예은주 팀장은 “호스피스 교육은 그것으로 다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호스피스 봉사활동을 하면서 꾸준히 관련 교육을 받게 됩니다. 호스피스 자원봉사를 하려면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관심과 측은지심’의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라고 조언한다.
*한국호스피스협회(http://www.hospicekorea.net/)는 전국 지역별로 호스피스 기관을 소개 및 호스피스와 관련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 현재 보건복지부에서 선정한 말기 암환자 호스피스 지원기관은 강남성모병원, 고려대구로병원, 서울대병원, 샘안양병원, 한동대선린병원, 세브란스병원, 영남대·전북대·충남대병원을 비롯하여 30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