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강요식 (칼럼니스트)】
상대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는다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마음에 안 들어 조언이나 충고를 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정답고 부드러운 어조로 말하여 마음의 상처를 남기지 않아야 한다.
섣부른 역정이나 큰소리는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 힐책의 말보다는 격려의 말이, 충고의 말보다는 부탁의 말이 선행되어야 한다.
설사, 격한 어조로 힐책하고 싶더라도 이야기가 끝난 뒤의 결과를 고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람은 감정이 격해지면 내쏘는 한마디 한마디에 어딘가 모르게 허점이 노출되기 마련이다. 특히 상대의 주장을 뒤엎으려는 의도에서 출발한 것이라면 즉흥적인 편견으로 인해 오히려 당할 수도 있다.
이종린 박사가 어느 날 대학에서 강의를 할 때의 이야기다.
평소에 통계수치나 기록, 역사적인 연대에 해박한 것으로 유명한 그가 그만 실수를 하고 말았다. 정치사를 강연하는 도중에 프랑스 대혁명의 연대를 잘못 말했던 것이다. 그때 한 짓궂은 학생이 그것을 꼬집어내 이렇게 말했다.
“교수님, 프랑스대혁명은 1798년이 아니라 1789년에 일어났습니다.”
컴퓨터처럼 정확하기로 유명한 교수의 실수를 지적하자, 강의실은 온통 웃음바다가 되고 말았다. 그때 무안을 당한 교수가 조용히 그 학생에게 말했다.
“자네 무슨 과인가?”
“네, 정치학과입니다.”
“자네는 당장 전공을 바꾸는 것이 낫겠군 그래.”
“무슨 말씀이십니까?”
“정치학을 전공한다는 학생이 교수가 연대 하나 실수한 것을 지적할 정도로 아량이 없다면 어찌 배포 큰 정치를 하겠나? 당장 전과하는 것이 낫겠네!”
직선적으로 꼬집기보다 제 3자의 예를 든다
사람은 누구나 어떤 상황에서든지 자기 합리화를 위한 변명거리를 끄집어낼 수 있다. 그러므로 말재주만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금물이다. 우선 상대의 기분을 맞춰주고 나의 의견에 동조하도록 만드는 여유가 필요하다. 상대의 문제를 직선적으로 꼬집는 것은 벌집을 건드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어느 자동차가 공사를 위해 맨홀 뚜껑이 열려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그대로 달리다가 바퀴가 맨홀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당황한 운전자는 어떻게 해서든 빠져나오려고 애를 썼지만 차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운전자는 119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맨홀에 자동차 바퀴가 빠졌는데 도저히 손을 쓸 수가 없군요.”
119대원들은 즉각 달려왔고 온갖 수동식 장비를 동원하여 빠져나오려고 애를 쓰다 더욱더 깊이 박혀 버린 타이어를 빼내기 위해 애를 썼다. 하지만 수동식 장비로는 도저히 타이어를 빼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중장비를 동원해야겠다는 의견을 모으고 있었다.
그때 한 소년이 그곳을 지나가다가 그 모양을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저씨! 바퀴가 빠졌군요. 지난 번에도 이런 일을 당한 사람을 보았는데…. 그때, 구조대원들은 아주 쉽게 바퀴를 빼내시던데….”
“뭐라고! 어떻게 했단 말이냐?”
“마구잡이로 위에서 잡아당기면 일이 더 어렵게 되죠. 그 아저씨들은 그냥 간단하게 타이어에 펑크를 내서 바람을 뺀 다음 꺼내던데요.”
그 소년은 생각이 짧은 어른들을 보고 다른 사람의 사례를 들어 조언을 해주었던 것이다.
짧고 굵게 말한다
인간은 본래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야기가 길어지면 이런저런 불평을 쏟아내거나 심지어 자리를 뜨기도 한다.
이야기는 짧을수록 인상이 선명하고 이해도 빠르다. 아무리 길더라도 3분을 넘기면 곤란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2분도 길게 느껴진다.
낯선 사람을 만나 “10분만 시간을 내주시겠습니까?”라고 말하면 선뜻 들어주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 “3분만 시간을 내주시겠습니까?”라고 하면 어느 정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특히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돌아가며 이야기를 할 경우에도 2, 3분 정도가 적당하다. 5분만 넘어도 듣는 사람에게는 지루하고 장황하게 느껴진다.
영국의 에드워드 7세는 식사예법에 몹시 엄격한 왕이었기 때문에 손자인 왕자들은 언제나 식사시간을 두려워했다. 특히 요크 대공은 태어나면서부터 말더듬이었는데, 어느 날 할아버지와 함께 식사를 하다가 갑자기 더듬거리며 뭐라고 말하려 하였다.
그러자 왕은 벼락같이 호령을 내렸다.
“버릇이 나쁘구나!”
그 말에 왕자는 입을 다물어버렸고 식사가 끝난 뒤, 왕이 말했다.
“아까 하고자 했던 말을 이제는 해도 좋다.”
하지만 요크 대공은 급하게 머리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이 이제는 느, 늦었어요.”
“늦었다고? 무슨 일이냐?”
“그, 그때 하, 할아버지께서 이, 입에 넣으신 새 샐러드에 더, 더러운 버, 벌레가 묻어 이, 있었는데 그만….”
글쓴이 강요식 님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부산대에서 경영학 석사학위, 고려대 정책대학원 최고위정책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청소년신문 사장, 시사타임즈 논설주간, (사)한국청소년운동연합 자문위원, 구로도서관 운영위원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구로동 겨울나무>, <神마저 버린 땅 소말리아> 등이 있다.
이 글은 그의 저서 <이기는 습관을 지닌 인생을 살아라>(일송미디어 刊(02-711-4643) 중의 일부분을 옮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