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박길자 기자】
건설회사 부장 김모 씨(48세)는 매일 밤 ‘술상무’로 변신한다. “술 좀 그만 마셔요!” 아내의 잔소리는 갈수록 심하지만, 경영위기에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다.
키 170cm, 몸무게 89kg. 비만인 그는 아침에 눈을 뜨면 몸이 무겁고 얼굴이 푸석푸석해져 걱정이다. 주말이면 골프는커녕 침대에서 일어나기도 힘들다. 물만 먹어도 살찌는 듯한 느낌이다.
김 씨는 수개월 전부터 양쪽 엄지발가락이 붓고 심할 땐 발목으로 통증이 올라와 병원을 찾았다. 진단 결과는 통풍. 김 씨는 바쁘다는 핑계로 약을 먹지 않았다. 그러다가 결국 한밤에 119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에 왔다. 통증이 뼈를 깎아내는 듯 고통스러웠다.
1. 중세 유럽 봉건영주도 앓아 육류·술 과식이 주요 원인
【도움말 | 서울대병원 류마티스내과 송영욱 교수】
통풍은 ‘제왕병’으로 통한다. 기름기 많은 고량진미를 많이 먹는 왕족과 귀족들에게 흔했기 때문이다. 그리스 의학자 히포크라테스가 살던 시절에도 통풍은 있었다. 그만큼 역사가 오래된 질환이다.
송영욱 서울대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는 “술과 육류, 포도주 등을 즐겨 먹던 중세 유럽 봉건영주들이 통풍으로 고생했다.”며 “과식으로 생기는 성인병인 셈”이라고 말했다. 미식가인 다윈과 괴테, 밀턴 등도 통풍을 앓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2001~2008년 건강보험 진료비 지급자료에 따르면 통풍 환자는 연평균 13%씩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송 교수는 “식습관 수준이 좋아지고 체중 증가, 활동량 감소로 인해 앞으로 통풍 환자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통풍은 바람에 스치기만 해도 통증을 일으킨다. 요산이 관절에 쌓여 생긴다. 요산은 퓨린이라는 핵산물질의 대사과정에서 생기는 부산물이다. 보통 혈액에 녹아 있다 신장을 통해 소변으로 배출된다. 통풍 환자의 경우 요산이 결정화돼 관절에 쌓인다.
통풍은 중년 남성에게 흔하다. 30세 이전 환자는 드물다. 남녀 비율은 9대 1. 여성은 폐경기 후 잘 걸린다. 송 교수는 “통풍의 약 90%가 유전적 원인으로 생긴다.”며 “가족력이 있으면 조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통풍 전 단계인 무증상고요산혈증은 증상이 없어 검사를 안 하면 모른다. 급성통풍성관절염이 생기면 관절이 갑자기 붉게 부어오르면서 심한 통증이 일어난다. 평소 하지 않던 운동을 무리하게 하는 경우, 과음·과식 후, 다른 질병으로 입원하거나 수술 후 잘 생긴다. 일주일 이내 좋아진다. 초기엔 주로 엄지발가락이나 발목, 무릎 등 다리관절에 흔히 생긴다.
통풍이 만성화되면 관절이 파괴되고 신장에 요산이 쌓여 신기능이 낮아진다. 고혈압, 심혈관질환도 일으킨다. 송 교수는 “요산저하제를 투여해 혈중 요산 농도를 낮추면 재발을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요산저하제는 ▶신장 결석이 있거나 과거에 있었던 경우, ▶피부에서 통풍 결절이 발견되거나 통풍관절염이 1년에 2, 3회 이상 재발하는 경우, ▶관절 X-선 검사에서 통풍 관절염에 의한 관절 손상이 확인된 경우는 반드시 필요하다.
운동 후 맥주 한 잔 중년 남성 통풍주의보!
송 교수는 “퓨린이 많이 함유된 음식을 지나치게 섭취하면 체내 요산이 증가한다.”며 “통풍 환자는 퓨린이 많은 음식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육류와 생선, 굴, 게, 시금치, 버섯류, 멸치, 쇠간·콩팥 내장, 생선알, 정어리, 마른 오징어 등은 퓨린이 많은 식품이다. 최근의 연구결과 퓨린이 많은 채소는 통풍 발생과 관련이 없고, 저지방 우유를 섭취하면 요산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식이요법이 약물을 대신하진 못한다. 몸무게를 줄여 적정 체중을 유지하고, 술을 마시지 말고, 물은 충분히 마셔야 한다.
체질량 지수가 27.5 이상인 사람은 25 미만인 사람에 비해 4배, 20 미만인 사람보다 통풍 위험이 16배 늘어난다는 보고가 있다. 통풍 환자는 술을 끊어야 한다. 매일 50g 이상의 에탄올(25도 소주 한 병엔 72g의 에탄올이 들어 있다)을 먹으면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에 비해 통풍에 걸릴 비율이 약 2.5배 늘어난다. 양주, 소주보다 맥주를 마실 때 위험도가 높아진다. 하루 350cc가량 맥주를 마시면 약 1.5배 증가된다. 포도주 1~2잔은 괜찮다.
통풍은 당뇨처럼 평생 관리해야 한다. 치료를 잘 받으면 후유증 없이 좋아진다. 6개월이나 1년에 한 번씩 검사하면 된다. 통풍약인 알로퓨리놀은 일부 피부 발진이 생길 수 있다. 내년에 부작용을 줄여주는 일본산 치료제 페북소스태트가 출시될 예정이다.
2. 한방에서 추천하는 통풍 예방법 4가지
【도움말 | 경희의료원 한방병원 이재동 침구과장 대한침구학회장】
통풍은 부적절한 생활습관으로 생긴 어혈이 몸속의 순환을 막고 방해하기 때문에 생기는 병이다.
이재동 경희의료원 한방병원 침구과장은 “통풍은 사회활동이 활발한 40~50대에 가장 많이 생긴다.”며 “부적절한 식습관이 체내의 과영양상태(어혈의 구성물)를 불러오고, 스트레스·운동부족 등은 혈류상태 악화(어혈의 원인)를 불러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통풍은 특히 밤에 증상이 심해진다. 가을에 생기는 병은 아니다. 다만 차가운 환경이 어혈을 조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환절기에 주의해야 한다. 술은 인체 내의 경락을 타고 들어가 전신의 기운을 과도한 흥분상태(과운동상태)로 만들어 놓는다. 이로 인해 어혈이 전신 곳곳에 파급되고 병소는 넓어진다. 통풍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비만은 습담이라는 어혈의 초기 단계로 볼 수 있다.
통풍을 예방하려면 규칙적인 생활, 적절한 운동, 균형 잡힌 식단이 필요하다.
첫째, 자고 깨는 시간이 일정해야 한다. 우리 몸의 피는 수면 중에 간에 저장돼 정화된다. 충분한 수면시간은 어혈이 생기는 것을 예방해준다.
둘째, 식사시간과 식사량을 조절해야 한다. 식사 간격을 일정하게 해야 폭식을 막을 수 있고, 혈액내의 과도한 영양분 축적을 막아준다.
셋째, 적절한 유산소 운동을 해야 한다. 운동은 체내의 불순물을 생리적으로 배출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다.
넷째, 기공·요가와 같은 이완요법을 실천한다. 이완요법은 우리 몸의 기혈순환을 도와 혈류내 어혈의 생성을 억제해준다.
한의학에서 보는 통풍 환자의 금기법을 알아보자.
“신맛은 근을 상하여 늘어지게 하고, 짠맛은 골을 상하여 위병(근육의 위축이 오면서 힘을 잃게 되는 병증)을 만든다. 이것이 변하여 통비(통풍의 이명)와 마목(마비질환을 통칭함) 증상이 생긴다. 이를 피하려면 생선, 비린 것, 밀가루, 간장, 술, 식초를 조심해야 한다.”고 기록돼 있다.
또 “고기는 양에 속하고 화(火)를 크게 도와주기 때문에 통풍 등의 질환에서는 피해야 한다.”고도 했다.
허준의 <동의보감> 등 한의학 문헌에 나오는 식습관 수칙이다. 육류를 과다하게 섭취하지 말고, 조미료를 많이 넣지 말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운동은 통풍에 유익하다.”며 “어혈의 구성물이 될 수 있는 과도한 영양물질을 소비해 적정량을 유지해주고, 체내에 쌓인 불순물을 배설해 정화해준다.”고 조언했다.
통풍 치료는 어렵다. 현재 한방치료는 피를 맑게 하는 탕약과 봉독요법(벌침), 뜸요법 등을 한다. 탕약은 체내의 어혈을 깨뜨려 적절히 배출한다. 봉독요법은 벌의 독을 뽑아 침치료점인 경혈에 주입하는 방법이다. 침 효과와 봉독의 생화학적인 약효를 함께 얻을 수 있다. 항염·진통 효과가 뛰어나며 신진대사를 촉진해 피를 맑게 해준다.
이 교수는 “급성기 통증 발작이 줄어도 치료는 꾸준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