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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 마음의 지옥 ‘실직 스트레스’탈출법

2009년 10월 건강다이제스트 풍성호 58p

【건강다이제스트 | 박길자 기자】

【도움말 | 인제대 서울백병원 신경정신과 우종민 교수】

【도움말 | 광운대 산업심리학과 탁진국 교수】

경영난이 심각한 대기업 계열사 A사에 어느 날 구조조정 풍문이 나돈다. 본사 고위직 임원이 ‘점령군’처럼 대표이사로 등장한다. 그는 직원들을 강당으로 소집한다. 구조조정안이 발표된 후 한 달도 못돼 직원의 70%가 퇴사한다. 실직의 공포는 누구나 예외가 아니다. 더욱이 중장년에게 실직은 심각한 스트레스다. 어떻게 대처해야 ‘마음의 지옥’에서 벗어날까? 전문가들에게 해법을 물었다.

우리 사회에서 실직은 일상화된 일이다. 광운대 탁진국 교수(산업심리학)팀이 2006년 한국심리학회지에 발표한 논문 ‘자발적 실직자와 비자발적 실직자 간의 구직활동과 정신건강의 차이’에 따르면 자발적 실직자보다 비자발적 실직자의 정신건강이 더 나쁜 것으로 나타났다. 불안, 우울, 신체화 기능이 자발적 실직자보다 좋지 않았다. 신체화란 신경을 쓰면 소화가 안 되고 잠을 못자는 것을 말한다.

아무런 예고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사표를 쓴다면 누구라도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자발적 실직의 외피를 덮더라도 희망퇴직이 아니라 정리해고일 가능성이 크다. 상사의 암묵적인 강요에 떠밀려 퇴사하는 것이다. 얄팍한 실업급여라도 받기 위해 회사의 의도대로 하는 게 근로자들이다.

일부 실직자는 주변 사람들과 연락을 끊는다. 이들의 마음은 중층적이고 복합적이다. 분노를 못 이겨 술을 찾는다. 때론 자책감에 스스로를 몰아친다. 위기상황에서 살아남은 동료와 비교해 무능을 탓한다. 옛 직장 동료들이 해고 사실을 알까봐 전전긍긍한다. 상사를 살해하고 싶은 충동에 시달린다. 심하면 자살 충동을 느낀다. 이렇게 길을 잃다 동굴에 갇히고 만다.

실직 스트레스 왜 생기나?

중장년 실직자는 더 심리적인 충격이 크다. 4050세대 중 상당수가 ‘회사 인간’이다. 우리나라 회사문화는 직무 중심이 아니라, 연공서열식이다. 나이 차별이 심하다. 재취업이 힘든 구조인 것이다. 유럽이나 미국보다 사회안전망도 취약하다. 중장년에겐 실직이 인생의 고비다.

우종민 서울백병원 신경정신과 교수는 “비자발적 실직은 예측이 불가능하고, 타의에 의해 진행되는 데다, 수용하기 어려워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말했다. 미국은 평가가 엄격하고 평가 성적이 있는 반면 한국은 상당수가 부당해고라고 느낀다. 친분관계나 인맥으로 해고 대상자가 결정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분노와 적대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우 교수는 “비자발적 실직자는 거부 → 분노 → 우울 → 수용 → 문제해결의 단계를 거친다.”고 설명했다. 처음에는 실직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분노 반응을 거쳐 우울에 빠진다. ‘내 인생은 왜 이 모양일까?’ ‘난 문제가 있어!’자기 잘못으로 돌리면 우울증에 빠지고, 남 탓으로 돌리면 화병이 된다. 그러다가 ‘이미 일어난 일, 어쨌든 나도 살아야겠다.’라고 생각하면 수용하게 된다. 이어 문제해결 단계에 들어선다.

세상은 공정해야 한다. 그러나 공평을 기대하긴 힘들다. ‘정글 사회’에서 공평을 절대 선으로 여기면 답이 안 나온다. 시스템을 바꿀 순 없지만, 자신은 바꿀 수 있다. 문제 해결에 집중해야 한다.

실수와 실패를 자신과 분리하라

탁 교수는 “실패와 자신을 연계시키면 자존감이 낮아진다.”고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합니다. 실수와 자신을 분리시키는 학생은 ‘시험 한 번 못 볼 수 있지’라고 넘깁니다. 그런 반면 ‘나는 역시 무능해. 이래가지고 어떻게 대학 가나?’라고 생각하는 학생도 있습니다. 실수나 실패는 수많은 행동 중 하나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범합니다. 다음에 잘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2009년 한국은 누구나 실직할 수 있는 ‘불안의 시대’다. 이를 무능과 연결 짓는 것은 바보다. 탁 교수는 “실직 원인을 외부로 돌리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이를 심리학에선 ‘외적 귀인’이라고 한다. 실패를 타인이나 상황, 운으로 돌리는 것이다.

자존감을 높이려면 어떤 훈련을 해야 할까? ‘나는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마인드 컨트롤을 해보자.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성공의 경험이 있다. 그 경험을 오래된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탁 교수는 “구직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려면 긍정적 정서를 유지해야 한다.”며 “매일 밤 잠들기 전, 하루 동안 즐거웠던 일이나 기분 좋은 사건·사례를 세 가지 꼽아 이유를 써볼 것”을 조언했다.

양용은이 타이거 우즈를 꺾고 메이저 골프대회에서 우승한 일은 어떤가?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상사가 밝게 인사해 기분 좋았던 일도 상관없다.

전 직장 사장이나 상사를 떠올리다 가위에 눌리는 것보다 10배 이상 낫다. 실직 충격에서 벗어나려면 자신을 옭아매는 ‘옛 상사의 그림자’를 떨쳐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배반감에서 벗어나기 어디 쉬운가. 내가 망가지는 걸 뻔히 알면서도, 분노를 삭이기 힘들다.

탁 교수는 “심상 이미지 기법을 활용해 분노를 치유해볼 것”을 권했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긴장 이완기법을 활용한다. 몸의 일정부분을 긴장시켰다가 이완시켜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그다음 자신을 해고한 사장이나 상사를 떠올린 후 그에게 하고 싶은 모든 말을 쏟아낸다. “나는 회사를 위해 모든 열정을 쏟았다.” “당신이 어떻게 나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스스로 원하는 대로 내면에서 모든 분노를 표출한다.

이어 역할 바꾸기를 해본다. 사장이나 상사의 역할을 맡아 답변을 하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었어.” 사장이나 상사에게 직접 들은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상사도 어쩔 수 없었다. 나쁜 사람만은 아니다.’라는 이해심이 약간이라도 생길 수 있다.

가족은 제1의 지원군… 우군을 확보하라

실직자는 가족관계, 부부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처음엔 안타깝게 바라보던 가족들이 점점 무능하다는 시선으로 본다. 경제적 곤란을 겪는다면 갈등이 심해진다.

우 교수는 “우군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흔히 사람은 자격지심이 생기고 절망에 빠질수록 우군을 적군으로 만들기 쉽다.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솔직함이 최선의 방법이다. 일단 가족회의를 소집한다. “열심히 일했는데 회사를 떠났다. 끝은 아니다. 아빠가 더 노력할 거고, 너희도 도와달라. 구직 기간이 길면 경제적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원망을 쏟아내는 자녀는 많지 않다. “고생 많으셨어요. 우리도 아르바이트할게요.” 이렇게 말할 공산이 크다. 가족의 정서적 지원이 가장 중요하다. 마음이 편하고 긍정적일 때 일에 대한 욕구가 생긴다. 그래야 구직도 술술 풀린다.

지인들과도 연락해야 한다. 적극적으로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자. 사적 네트워크가 중요한 시대다. 직장을 소개해주지 않아도 정보를 줄 순 있다.

왜 실직했는지 실패 사례를 분석하라

어느 정도 감정이 조절되면 과거의 실패 사례를 분석한다. 내가 왜 실직했는지를 논리정연하게 따져보는 것이다. 치열한 고민 후에야 내게 맞는 직장에 취업할 수 있다. 혼자 하기 어려우면 노동부 고용지원센터를 찾거나 상담소에서 심리검사, 적성 직업검사를 받는 것도 방법이다.

재취업한 직장이 ‘괜찮은 일자리(decent job)’라면 적응력이 생긴다. 그런데 이전 직장보다 형편없다면 방황은 깊어진다. ‘직장 쇼핑’ 증세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

탁 교수의 진단. “실직자들은 이전 직장보다 좋거나, 적어도 비슷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해야 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입니다. 평소부터 이 같은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아이는 늘 어른에게 공대해야 할까요? 약속은 반드시 정시에 지켜야 할까요? ‘반드시 해야 한다.’에서 ‘그렇지 않을 수 있다.’로 바꾸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자신이 선택한 행동·결정과 자신을 분리시키는 습관은 여기에도 적용된다. “내가 이번에 취업했는데 직장이 별로 안 좋네. 급한 마음에 빨리 결정 내려 이런 거야. 내가 무능력하거나 별 볼일 없는 존재여서 그런 것은 아니야.”

파랑새 증후군을 버려라

우 교수는 그러나 “학습된 실패나 무기력이 가장 위험하다.”고 강조했다. ‘내가 이런 데 있을 사람이 아닌데….’라는 생각에 자꾸 직장을 옮기면 문제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조직에서 갈등이 깊어지고 대인관계도 나빠진다. 물론 발전의 원동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현실에 비해 이상이 너무 크면 자칫 파랑새 증후군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새 직장에선 일(work)과 삶(life)의 균형을 취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업무가 자신의 전부라고 여기지 말아야 한다. 회사도 바뀌어야 한다. 탄력근무제를 늘려 직원들이 회사를 곧 자기 자신으로 동일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실직 후 정신적인 고통이 심하면 병원을 찾는 것도 방법이다. 희망나눔센터나 상담소에서 온라인·전화 상담을 받는 것도 도움이 된다. 불면증이나 불안초조, 악몽 등이 심해지면 문제해결 능력이 떨어진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은 의식하지 말자. 실제 남 일에 신경 쓰는 사람은 많지 않다. 괜한 자격지심일 가능성이 높다.

인간 수명 100세 시대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경력계발은 죽기 전까지 끊임없이 해야 한다. 실직은 지나가는 바람이다. 겨울이 지나면 새 봄이 온다. 인생 설계를 차근차근 해보자. 독립적 성품에 프런티어(개척자) 정신이 있다면 1인 기업에 도전해보자. 100세까지 사는 긴 인생에서 실직은 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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