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정유경 기자】
【도움말 | 서울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원 교수】
【도움말 | 건국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유승호 교수】
서울 강서구에 사는 주부 김 모 씨는 요새 잠을 깊이 자지 못한다. 순하기만 했던 아들 민호(11세)가 부쩍 짜증이 늘고 말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몇 달 전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둬서 가뜩이나 속상하고 무기력한데, 민호는 왜 짜증을 내는지 물어도 말없이 방으로 들어가 버리기 일쑤다. 잘 다니던 학교도 가기 싫다고 떼를 쓰기 시작한다. 민호가 어긋날수록 김 씨의 가슴은 타들어가고 급기야 살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는다. 이런 아내와 아들을 안타깝게 지켜보던 남편 박 모 씨가 두 사람을 데리고 병원을 찾았다. 두 사람의 병명은 모두 우울증.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하늘이 원망스럽지만 함께 극복해 보리라 다짐하고 세 사람은 손을 맞잡았다.
완치할 수 있는 병 ‘우울증’
‘마음의 감기’라고 불리는 우울증. 우울증은 의욕 저하와 우울감을 주요 증상으로 하며 다양한 인지 및 정신·신체적 증상을 일으켜 정상적인 삶에 영향을 끼친다. 우울증은 남녀노소 누구나 피해갈 수는 없는 병이다. 지속적인 스트레스, 생활환경, 가족력, 뇌의 직접적인 손상 등 우울증에 걸릴 수 있는 요인은 매우 다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울증에 걸렸다고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건국대학교병원 신경정신과 유승호 교수는 “우울증은 제대로 치료하면 완치할 수 있는 병”이라고 강조한다. 우울증은 정신과 질환 중에서도 치료가 잘되는 편이며, 빨리 치료를 시작할수록 기간도 짧아지고 완치할 가능성이 높다.
우울증을 그냥 방치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많다. 가장 큰 문제는 우울증이 심하면 자살이라는 비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2008년 한 해 자살한 사람은 1만 2858명에 이르렀으며, 잘 알려진 대로 이들 대부분은 우울증 환자였다. 또한 우울증은 그냥 두면 저절로 낫기보다 증세가 더 악화되기 쉽기 때문에 반드시 빨리 치료를 해야 한다.
따라서 이유 없는 무기력함, 의욕 저하, 우울감, 불면증, 식욕감퇴,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생각 등이 오랫동안 지속되면 우울증이 아닌지 의심해보고 전문의를 찾아 신속한 치료를 받도록 하자.
우울증도 연령별 대책이 필요하다!
우울증에 걸리면 의욕상실, 무기력함, 우울감을 호소하는 것이 보통이다. 일단 병원에 가서 우울증이 진단되면 연령과 심각한 정도에 따라 약물치료와 심리치료 등을 받을 수 있다.
연령별로 우울증이 의심되는 증상과 대처 방법은 약간씩 다르다. 연령이 따라 우울증 증상이 어떻게 나타나며, 그 대처법은 무엇인지 자세히 알아본다.
어린이 우울증은… 가정환경의 영향 크다
나이가 어리면 우울한 기분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울증에 걸렸어도 우울하거나 무기력하다고 말하지 않고 갑자기 이유 없이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곤 하는 경우가 흔하다. 또 원래는 관계가 좋았는데 급격하게 친구나 선생님과의 다툼이 많아졌다면 성격 탓으로 여기지 말고 혹시 우울증 때문인지 살펴봐야 한다.
어린이는 부모의 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에 정서 상태도 부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서울백병원 신경정신과 김원 교수는 “부부 사이가 나빠서 싸움을 많이 하거나 부모가 불안해하면 아이도 불안함을 느끼기 쉽다.”며 “특히 부모 중에 우울증 환자가 있다면 빨리 우울증 치료를 받고, 아이에게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고 충고한다.
또 우울증에 걸린 원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주로 부모의 보호를 받는 아이의 우울증은 가정환경에서 그 요인을 찾을 수 있다. 전문가와 상의해 아이의 생활환경에서 불안감이나 우울증을 유발할 수 있는 요인을 제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청소년 우울증은… 정서적 불안이 주범
우울증은 의욕저하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청소년기 자녀가 이유 없이 성적이 뚝 떨어지거나 유난히 우울해 하고 힘이 없으면 우울증이 아닌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청소년기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는 정서적으로도 불안정한 시기다. 학업과 입시에 대한 부담이 커지고,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많아진다. 이때는 부모와의 다툼이 잦아지기 쉽다. 정서적으로 부모에게 독립을 해야 할 시기임에도 부모의 과도한 관심과 성적 향상에 대한 기대감은 부담으로 작용해 불안감과 우울함을 초래할 수 있다. 부모와의 사이가 나빠질수록 불안은 심해진다. 이럴 때는 무조건 순종하거나 반항을 하는 것보다 부모와의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통해 해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청소년기 자녀가 우울증에 걸리면 부모는 일단 아이를 충분히 안심을 시키고, 우울증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 이 시기는 친구들과의 관계도 정신 건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므로 친구와 편하게 어울릴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것이 좋다.
20~30대 우울증은… 산후우울증 각별 조심
성인이 되면 사회적인 스트레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20대와 30대는 이성 문제, 취업, 군대, 결혼 등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많다. 이제는 모든 것을 자신이 해결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압박이 되어 돌아오고, 자신감이 떨어지며 포기하고 싶어져 우울증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이럴 때는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스트레스는 쌓아두지 말고 즉각 해소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꾸준히 운동을 해서 심신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우울하다고 해서 술로 해결하는 버릇을 들여서는 안 된다. 술은 일시적으로 기분을 좋게 할 수는 있지만 뇌에 직접적으로 안 좋은 영향을 주기 때문에 반드시 피해야 한다.
김원 교수는 “20~30대 여성들의 우울증은 산후우울증이 흔하다.”며 “임신과 출산의 과정에서 여성호르몬의 급격한 변화가 생기고, 또 경험하지 못했던 육아로 인해 몸이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산후우울증을 유발하기 쉽다.”고 말한다.
이럴 때는 남편도 육아를 분담하고, 여행 등으로 기분전환을 자주 하는 것이 산후우울증의 치료와 예방에 도움이 된다.
40~50대 우울증은… 화병 형태로 온다
40~50대의 우울증 증상은 의욕저하와 우울감 이외에도 가슴이 두근대거나 답답하고, 얼굴이 화끈거리는 등 흔히 말하는 화병의 형태로 오기도 한다. 이 시기는 교육비와 주택 구입비 같은 경제적인 문제, 자녀 독립에 따른 상실감, 배우자와의 불화 등이 우울증 요인이 될 수 있다. 특히 감정의 골이 깊어진 부부 사이 때문에 우울증이 발생했다면 배우자도 우울증 치료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
전문가를 찾아 사이가 멀어진 이유와 좋아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실천하기 쉬운 일부터 차근차근 해나간다. 극도로 사이가 나쁘다면 사이가 좋아지는 노력과 함께 서로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활력소가 필요하다. 평소에 하고 싶었던 취미생활을 시작하거나 소일거리를 찾아서 하루하루가 즐겁다면 배우자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다시 생기기 쉽다.
노인 우울증은 … 상실감, 외로움이 발병 주범
노인 우울증은 어린이 우울증과 마찬가지로 증상이 우울증과 거리가 멀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우울한 감정이 아니라 몸 구석구석이 아프고, 기억력과 인지능력이 떨어져 치매 같은 다른 질병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노인 우울증은 상실감이나 경제적인 어려움에서 그 요인을 주로 찾는다. 가족이나 배우자 등 주변 사람이 자신을 떠난 후의 외로움 때문에 우울증에 걸렸다고 의심이 되면 가족들과 함께 살거나 자주 방문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꼭 가족의 도움이 아니어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겨낼 수 있다. 유승호 교수는 “지역의 복지관에 가면 어르신들이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다. 특정 기술을 가르치기도 하고 자원 봉사를 하기도 한다.”며 “이러한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친구도 생기고, 즐거움과 보람을 느껴서 우울증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조언한다.
《우울증을 극복하는 10가지 방법》
1. 꾸준히 운동을 하라.
2. 술과 담배를 삼가라.
3.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라.
4. 우울증이 의심되면 바로 전문의를 찾아라.
5. 증상이 좋아져도 정해진 치료를 받아야 재발 가능성이 적다.
6. 자살 충동이 들면 주변 사람이나 의사에게 알려라.
7. 남의 시선과 행동에 크게 신경 쓰지 말라.
8. 우울한 기분을 잊을 수 있는 취미생활을 하라.
9. 가능하다면 우울증을 만드는 환경을 피하거나 없애라.
10. 우울증은 완치할 수 있으므로 적극적으로 치료해라.
김원 교수는 대한정신약물학회 비상임이사와 대한우울조울병학회 재무이사를 역임하고, 대한불안장애학회 정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유승호 교수는 대한신경정신의학회 교육위원, 대한신경정신의학회 학술위원을 역임하고, 성북구치매지원센터 센터장, 건국AMC 더클래식500 진료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