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박현아 기자】
【도움말 | 사람과직업연구소 정도영 소장】
중견기업 계열사에 근무하던 김민아 팀장(44·서울 관악구)은 회사가 다른 계열사로 합병되던 와중에 짐을 싸야 했다. 입사 2년도 안 돼 거리로 내몰려 폭풍 눈물을 쏟은 김 씨는 반년 넘게 재취업을 못해 더 큰 고통을 겪었다. 면접 기회도 주지 않던 한 회사의 인사 담당자는 “나이와 경력 연차가 채용의 중요한 고려 대상”이라는 내용의 메일을 보내 그의 속을 까맣게 태웠다. 알아봤더니 그 회사 상급자가 김 씨보다 여섯 살이나 어렸다.
구조조정이든, 자발적 결정이든 회사 울타리 밖으로 나온 중장년층은 낭떠러지에 서 있는 기분을 느낄 때가 많다. 30대에는 어디든 뚫고 들어갔으나 중년이 갈 만한 일터를 구하기란 만만치 않다. 경력이 길거나 나름 화려(?)하다 보니 회사측의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독신인 김 씨와는 달리 가장은 더욱 애간장을 끓인다. 박석철 씨(50·경기도 군포시)는 요즘 부인에게 실직 사실을 숨긴 채 비자금으로 생활비를 주고 있다. 박 씨는 “전에 알던 분이 퇴직 후 아파트 수위가 낮에 빈둥대는 자신을 볼까봐 바깥출입도 안 하더라.”며 “그땐 ‘설마 그럴 필요가 있나’ 싶었다. 그런데 나 역시 그러더라. 아내 모르게 새 직장을 찾고 싶다.”며 우울해했다.
중년 재취업은 전략이 필요하다
보통 6개월 이상 실직 상태면 장기실직자로 구분한다. 하지만 중년 재취업은 1년을 훌쩍 넘기기 예사다. 이쯤 되면 경력을 살려 취업하는 것은 고사하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 사이트를 들락거린다.
사람과직업연구소 정도영 소장은 “정년이 평균 55?56세일 때도 핵심 경력에서 밀려나는 이탈자는 52세였다. 정년이 60세로 연장됐으나 혜택을 보는 중년은 많지 않다.”며 “고령화는 빠르게 진행되는데 공급 인력이 많다 보니 재취업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정도영 소장은 “20년 안으로 1?2차 베이비부머를 포함해 1500만 명이 은퇴를 맞게 될 것”이라며 “특히 50대는 더 암담하다. 아무리 이력이 좋아도 헤드헌터가 돌아보지 않는다. 회사에 재직 중일 때 인맥과 경험, 자산과 브랜드를 준비해둬야 한다.”고 당부했다.
실직 후에야 허겁지겁 경쟁력을 갖추려는 것은 고3이 수능시험을 한두 달 남겨놓고 수능에서 대박이 나길 기대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년 재취업은 완전히 불가능한 일일까? 절대 그렇지는 않다. 설마 산 입에 거미줄이야 치겠는가? 중요한 것은 용기와 자신감을 잃지 않는 것이다. 중년이 다시 당당하게 직업 시장에 편입될 수 있는 7대 취업 전략을 취재했다.
중년 재취업에 성공하는 7가지 전략
1 히든잡(Hidden job)을 찾아라
최고의 전략은 사람을 통해 움직이는 것이다. 6단계만 거치면 웬만한 사람이 다 연결된다는 ‘케빈 베이컨의 법칙’을 명심하자. 40대 중반 이후면 구직 활동의 초점을 사람에 맞춰야 한다. 온라인 사이트를 뒤지는 일은 가장 쉽지만 가장 효과가 떨어진다. 신입사원은 공개해서 뽑지만 부장 이상 임원은 내부 직원으로부터 추천을 받은 후 정 안 되면 기관에 의뢰하는 회사가 많다. 시니어급 일자리의 80%가 이렇다.
그런데 주변에 퇴직 사실도 알리지 않고 온라인 사이트만 뒤지면서 답이 없는 구직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체면이나 자존심을 이유로 잘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구직 시장의 20% 자리를 놓고 20대와 피 터지게 싸우는 형국이다. 더욱이 요즘 구인 광고는 나이 제한이 없다. 이러니 아무리 이력서를 내도 ‘대답 없는 메아리’다.
사실 좋은 평판 없이는 인맥도 소용없다. 아는 사람이라도 능력이 없는데 소개시켜주지 않는 시대다. 인맥을 활용한 취업을 불편해하지 말자. 실력파라는 평판도 실은 퇴직 후가 아니라 재직 중에 미리 관리해둘 일이다.
2 회사와 눈높이를 맞춰라
정도영 소장은 “눈높이를 낮추라는 말에 본능적으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구직자들이 있다.”며 “무조건 하향 지원을 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욕심이 있다면 발뒤꿈치를 들고 회사와 눈높이를 맞춰보고, 치열하게 할 자신이 없으면 눈높이를 낮추라.”고 조언한다.
사실 연봉이나 복지 혜택이 절반으로 깎이는 상실감을 이겨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이전 직장의 연봉 절반을 주는 자리도 쉽게 오지 않는다. 부장이나 이사로 있던 사람이 과장으로 가겠다고 마음먹어도 취업의 문이 열리는 사회 환경이 아니다. 이런 현실을 좋든 싫든 인정해야 장기 실직의 늪에 빠지지 않는다.
대기업 퇴직자들이 한동안 중소기업을 만만하게 보는 경향이 있었다. 중소기업을 도와주러 가겠다는 마인드를 가진 이들이 많았다. 지금은 대기업 퇴직자들이 쌓여 있어 중소기업들이 선별해서 고르는 실정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토양이 다르다. 중소기업은 부장급이 삽을 들 때도 있다. 일부 자수성가한 사주는 독선적이고 전제적이다. 이를 못 견뎌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마음을 열고 마인드를 확 바꿔야 활로가 생긴다.
3 입사 지원 횟수를 늘려라
고령자는 취업 시장에서 불리하다. 30대보다 40대가 불리하고, 40대보다 50대가 더 불리하다. 직업 시장의 시스템을 바로 알아야 한다. 그런데 지원 횟수는 30대가 가장 많고, 40대가 적고, 50대는 더 적다. 일단은 지원 횟수를 늘려 시장 반응을 체크해야 한다. 군대에선 사격 전에 영점사격을 한다. 한두 발의 총을 쏴서 조준한 대로 총이 제대로 맞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지원 횟수조차 적으면 자신이 일자리를 못 잡는 이유를 파악하기 어렵다.
4 타깃을 정해 먼저 접근하라
채용 공고가 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먼저 움직여라. 자신이 갖춘 능력을 필요로 하는 회사에 제안서를 써서 접근하는 타깃 마케팅을 해보라는 얘기다. 어떤 회사에서 개발 중인 기술을 갖고 있다면 내게 이런저런 능력이 있으니 채용 계획이 없느냐고 문의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5 고용센터나 일자리센터를 활용하라
고용노동부 고용센터는 실업급여를 받을 때나 가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고용센터나 노사발전재단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 지역 일자리지원센터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사실 회사를 20?30년간 다닌 사람들은 일이 몸에 배어 있다. 이들은 실직하면 삶에 구멍이 뻥 뚫린 것처럼 힘들어한다. 할 일이 없다는 무기력감으로 폭삭 늙기도 한다. 생활비가 충분해도 일 자체가 필요하기 때문에 무료로 진행되는 공공기관에서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고용지원센터에 이력서까지 써달라고 하는 것은 곤란하다.
6 가족의 지원을 받아라
퇴직자는 절대적으로 가족의 지원이 필요하다. 그런데 평소 가족관계를 위해 노력하지 않은 경우 퇴직 후 가족이 전혀 힘이 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불안을 가중시키는 가족 관계는 실직자를 더 큰 고통에 빠지게 한다.
7 소통 능력을 길러라
회사가 중장년층 채용을 꺼리는 이유 중 하나가 소통 능력이 떨어질까 봐서다. 자신도 잘 모르는 새에 비판적이고 경직된 사고를 갖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면접 현장에서 면접관을 가르친다고 나섰다가 말다툼도 한다. 불통은 중년 취업의 적이다.
취업 불패 전략! 이것만은 하지 말자
1 나이 탓 하지 마라
나이 차별은 사실 심각하다. 하지만 나이를 탓하면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없다. 활동력만 자꾸 떨어진다. ‘내 잘못은 없어.’라는 값싼 위안을 하려고 나이 탓을 하지 않는지 냉정하게 바라보자. 나보다 나이가 많은데도 취업 시장에서 성공하는 사람들이 많다.
2 과거의 노예가 되지 마라
이력이 훌륭한 사람일수록 옛날이야기에 집착한다. 새로운 회사가 다가와도 기뻐하지 않는다. 정도영 소장은 “퇴직한 지 5년 된 분을 컨설팅하려고 한 시간 동안 만났는데 55분 내내 과거 이야기만 하더라.”며 “새로 만날 여자를 앞에 두고 옛 연인의 장점만 이야기하는 형국”이라고 지적했다. 화려했던 과거에 발목 잡히지 말자. 그래야 새로운 문이 열린다.
3 에너지를 방전시키지 마라
에너지가 있는 사람은 실직 문제를 어떻게든 풀어낸다. 눈높이를 맞춰서 새 직장에서 바닥부터 다시 시작할 수도 있다. 아무리 경력이 좋아도 에너지가 없으면 못 풀어낸다. 지금 당장 운동하러 나가라. 운동만 꾸준히 해도 활력을 얻을 수 있다. 또 책을 많이 읽어 마음의 평안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실직이 장기화되면 기가 죽고 수동적으로 바뀐다. 어떤 일자리에 누구는 목숨 걸고 덤비는데, 누구는 ‘안 되면 말고’라는 마인드로 덤빈다면 결과는 뻔하다. 중년 재취업 시장에선 적극적인 사람이 승리한다. 희망을 잃어선 안 된다.
4 선후배와 연락을 끊지 마라
갑자기 퇴직 통보를 받고 청춘을 불살랐던 일터에서 내몰린 후 1년 내내 분노에 젖어 사는 사람들이 있다. 마음이 연옥에 있으니 선후배를 만나기도 창피해진다. 하지만 실직 중에도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한다. 사회적 네트워크는 이전처럼 유지해야 한다.
정도영 라이트매니지먼트코리아 컨설턴트, 노사발전재단 인천중장년일자리센터 컨설턴트로 일했다. 현재 인덱스루트코리아 이사 겸 사람과직업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내게 맞는 직업 만들기> <마흔 이후 두려움과 설렘 사이>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