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박길자 기자】
【도움말 |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안상훈 교수】
‘주당’인 김진철 씨(48세, 경기 수원시 거주)는 얼마 전 간경변 진단을 받고 독하게 술을 끊었다. 간암으로 작고한 아버지의 뒤를 잇고 싶지 않아서다. 아버지는 간에 20cm짜리 혹이 생길 때까지 별다른 이상을 느끼지 못했다. 김 씨는 “피부를 꼬집으면 바로 아픈데 간은 신경세포가 없어서 찔러도 통증을 못 느낀다더라.”며 “간이 80%까지 나빠졌는데도 전조 증상이 없었다. 결국 황달과 복수가 생겨 병원을 찾았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고 전했다. 김 씨처럼 때늦은 후회를 하고 싶지 않다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있다. 망가진 간을 다시 건강한 간으로 회복시키는 노력이다. 그 노하우를 소개한다.
우리나라는 간암 공화국
우리나라는 간암에 의한 사망률이 인구 10만 명당 28.4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압도적인 1위다. 2위인 일본에 비해 두 배 이상 높다. 간은 주먹만 한 혹이 생겨도 느낌이 없는 ‘침묵의 장기’다. 20%만 남아 있어도 사는 데 지장이 없다. 최악이 된 다음에야 건강이 나빠졌음을 안다는 얘기다.
간질환의 고위험군은 40대 이상 중년, 특히 남성이다. 지나친 음주가 지방간으로 이어지면서 간경변이나 간암이 올 수 있다. 또 비만, 고지혈증, 당뇨 등 성인병이 생기면서 비알코올성 지방간염이 오고 간경변이나 간암으로 진행될 수 있다. 더욱이 B형간염 국민 예방접종이 1995년에야 시작돼 예방접종을 제대로 받지 못한 중년 남성들이 많다. C형간염 바이러스 보유율 역시 40~50대 이상 연령층이 높다.
그런데 간은 망가진 다음에도 건강해질 수 있는 장기다. 간세포는 신경세포와 달리 재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말기 간경변 환자가 술을 완전히 끊으면 1년, 2년 후 정상적인 간 상태나 간염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최근 연구결과 B형간염, C형간염도 항바이러스제 복용으로 정상이 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간경변(간경화)은 간이 오렌지 껍질처럼 딱딱해지고 쓸모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피부에 상처가 나 흉터로 변하면 이 부위는 땀도 나지 않고 털도 나지 않는다. 이런 딱딱한 간세포가 되살아나는 것이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안상훈 교수는 “바이러스성 간염 환자에게 항바이러스제를 거의 5년 이상 꾸준히 복용하면 간경변 환자의 70~80%는 간경변이 아닌 상태로 변한다.”며 “알코올성 간경변도 술을 끊은 지 몇 개월만 지나도 상당히 좋아진다. 어떤 간질환이든 원인 질환을 없애면 상당부분 정상으로 회복된다.”고 설명했다.
비알코올성 지방간 환자도 운동이나 식사 조절로 체중을 10% 이상 줄이면 지방이 서서히 빠지면서 나빠진 간이 말랑말랑해진다는 것이다.
안상훈 교수는 이를 그리스 신화에 비유했다. 제우스로부터 몰래 불을 훔쳐다가 인간에게 준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분노로 산 절벽에 묶여 독수리가 간을 쪼아 먹는 형벌을 받는다. 그런데 하루 종일 파 먹힌 간이 밤새 다시 돋아나 이튿날이면 다시 독수리의 먹이가 된다. 프로메테우스 신화에 나오듯 간은 재생력이 강하다.
간질환에 대한 오해와 편견
1 간암의 주요 원인은 술?
▶ No ! 주당들만 간암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간암의 주요 원인은 바이러스성 간염이다. B형간염이 60~65%, C형간염이 15%를 차지하고 알코올은 15%에 불과하다. 매년 전 세계 150만 명이 바이러스성 간염으로 죽는다. 이는 에이즈로 인한 사망 숫자와 비슷하다.
바이러스성 간염에서 간경변, 간암으로 진행하는데 일부는 간경변으로 가지 않고 바로 간암으로 넘어간다. 바이러스성 간염이 아닌 경우도 간경변 없이 바로 간암으로 진행할 수 있다. 간암 환자를 보면 간경변 동반이 80%, 간경변 없이 간암에 걸리는 비율이 20%에 이른다.
주당들은 보통 간경변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 복수와 황달이 생기거나 식도정맥류출혈, 간성혼수 등 간경변 합병증으로 목숨을 잃게 된다.
2 간수치가 정상이면 건강한 간?
▶ No ! 간수치는 간에 생긴 염증을 말한다. 간경변이나 간암 환자도 간수치가 정상인 경우가 많다. 물론 간수치가 높다면 간에 이상이 있다는 신호다. 하지만 건강검진에서 간수치가 정상으로 나와도 이는 염증이 없다는 것일 뿐 간 건강은 아무도 모른다. 국가 건강검진으로 혈액검사만 해보곤 ‘내 간은 문제없어. 건강해!’라고 믿다가는 큰코다친다. 전문의를 찾아 반드시 간 초음파검사, 복부 초음파검사를 해야 간암 발병 여부를 알 수 있다.
염증이 오래 가면 간경변이 생긴다. 앞서도 말했듯 간경변 없이도 간암은 생길 수 있다. 그래서 간수치가 정상이라고 간 건강을 맹신해선 안 된다. 안상훈 교수는 “특히 과거에 B형간염이나 C형간염 보유자로 진단받은 적이 있으면 간 수치와 상관없이 간 건강 상태를 정기적으로 검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만성간질환 환자, 예컨대 B형간염이나 C형간염 바이러스 보유자, 비알코올성 지방간염이나 다른 알코올성간질환이 있는 만성간질환 환자는 6개월에 한 번씩 혈액검사와 복부초음파검사를 해야 한다.
일반인도 매년 혈액검사와 복부초음파검사를 해야 한다. 20대인 경우도 B형간염이나 C형간염 바이러스 보유자는 매년 혈액검사와 복부 초음파검사를 받아야 하고 바이러스 보유자가 아니면 2~3년에 한 번씩 검사를 하면 된다.
3 여성은 간경변, 간암에 안 걸린다?
▶ No ! 간암 환자의 남녀 비율은 8대 2나 7대 2다. 여성들도 나이가 들면서 비만이나 고지혈증으로 지방간이 생겨 간경변, 간암으로 진행될 수 있다. 물론 간질환은 남성들이 많이 걸리고 예후도 좋지 않은 편이다.
4 숙취 해소 음료가 간에도 좋다?
▶ No! 숙취해소 음료는 알코올을 분해하는 데 도움을 줄 뿐 실제 간을 보호하거나 간세포를 재생해주진 않는다. TV 프로그램에 나오는 건강 정보는 검열할 필요가 있다. 잘못된 정보가 많아서다. 최근 올리브유와 식염수를 마셔 담석을 포함한 간의 노폐물을 제거해준다는 ‘간 청소법’이 방영된 적이 있다. 안상훈 교수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간 건강을 지키는 생활습관 4가지
1 지나친 음주를 피하고 균형 잡힌 식사를 한다
간에 좋은 식사는 고단백, 고칼로리, 고비타민식이다. 비타민이 많이 함유된 음식을 섭취하면 좋다. 비타민은 간 세포막을 보호하고 간 재생을 돕는다. 하지만 간질환이 있는 환자는 전문의와 상의할 필요가 있다. 지방간이 있는 환자가 고칼로리식을 하면 지방간이 더 생기고, 간경변이 심해 간성혼수가 일어난 환자가 고단백식을 하면 혼수가 더 심해질 수 있다.
2 과격한 운동은 간에 해롭다
운동은 몸에 좋을 뿐 간에는 휴식이 더 좋다. 운동을 하면 혈액이 근육으로 가고 간에는 많이 못 간다. 눕거나 다리를 올려 혈액이 간으로 충분히 가도록 하는 게 좋다. 적절한 운동이 간에 나쁘지는 않지만 등산이나 마라톤, 테니스 등 과격한 운동은 간에 부담을 준다.
3 면도기, 칫솔, 손톱깎이를 공용으로 쓰지 않는다
혈액이 묻을 수 있는 면도기, 칫솔, 손톱깎이 등 생활용품을 가족이 함께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A형간염에 걸리지 않으려면 손씻기와 끓인 음식 섭취 등 개인위생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 B형간염이나 C형간염은 혈액으로 감염될 수 있다. 감염자들의 혈액이 묻어 있을 수 있는 생활용품을 공용으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B형간염이나 C형간염은 성생활로도 감염이 된다.
4 A형과 B형간염 예방접종을 잊지 않는다
A형간염은 2회 예방접종, B형간염은 3회의 예방접종으로 예방할 수 있다.
안상훈 교수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아시아 태평양 간암학회 학술위원장을 지냈으며 현재 대한간학회 홍보이사 겸 간경변임상연구소 총무간사로 있다. 아시아태평양바이러스간염퇴치운동본부 창립 멤버로 간염 퇴치 활동에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