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정유경 기자】
【도움말 | 강남을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재원 교수】
바야흐로 고독의 계절 가을이 돌아왔다. 쓸쓸한 바람이 부는 이맘때가 되면 괜스레 외롭고 누군가와 함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부쩍 들 것이다. 만날 사람을 찾으려고 휴대폰 전화번호부를 훑어보기도 하고, 추억이 되어버린 옛사람을 떠올리기도 한다. 나름대로 고독을 벗어나려고 애써보는 것이다. 그런데 꼭 고독을 거부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고독도 고독 나름의 존재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많은 정신건강의학자, 심리학자, 예술가 등을 중심으로 고독을 귀하게 여기라는 메시지가 쏟아지고 있다. 벗어나야만 좋은 줄 알았던 고독의 실체를 알아본다.
PART 1. 어두운 고독의 그림자 “오랜 고독은 해로워~”
고독, 왜 느낄까?
고독을 쉽게 말하면 너무 외롭고 쓸쓸해서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라고 볼 수 있다. 고독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감정이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본능적으로 다른 사람과 함께 있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혼자라면 고독할 수밖에 없다.
강남을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재원 교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며 “사회적 경험이 없는 갓난아이도 사람을 좋아하고, 다른 물체보다 사람에 관심을 보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누구나 사람과 어울리려고 하고 다른 사람을 신경 쓴다. 고독을 느끼는 것은 곧 소통을 원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고독은 인간이라면 감당해야 할 감정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고독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
혼자라면 고독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지만 고독한 채로 마냥 살아서는 안 된다. 오랫동안 지속되는 고독은 우리의 건강을 위협한다.
이재원 교수는 “우리 뇌는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고 소통하면서 기능이 활발해지는데 이런 과정 없이 혼자 오래 있으면 몸의 노화가 빨라진다.”고 설명한다. 인지 기능의 저하가 심해져 치매가 빨리 오고 수명도 단축되는 것이다. 고독에 몸부림칠 때는 괴로워하거나 사이버 세상에 의지하지 말고 소통하러 밖으로 나가야 한다.
특히 청소년은 고독해서는 안 된다. 청소년기는 사회성이 급격하게 발달하는 시기이며, 사회성은 사람을 많이 만나야 발달한다. 이재원 교수는 “청소년기에 또래와 어울리지 않고 인터넷을 많이 한 사람은 나중에 대인관계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풍요 속 고독을 극복하는 법
어떤 사람은 여럿이 함께 있어도 고독하다고 느낀다. 그곳에는 진짜 내 사람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한 사람이라도 나와 비슷한 사람과 소통하는 것이 좋다. 사고방식이 비슷하고 내 이야기를 공감해줘서 내 편이 되어줄 사람 말이다. 고독이 싫다면 이것저것 재지 말고 진심으로 다가가자. 행복한 소통은 언제나 그렇게 시작된다.
PART 2. 고독, 나를 돌아보는 귀중한 시간 “짧은 고독으로 머릿속을 정리하자! ”
오랜 고독도 문제지만 고독할 시간이 없는 것도 문제다. 이재원 교수는 “사람을 만나 관계를 맺었다면 그 관계에 대해 정리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이 정리할 시간이 바로 잠깐의 고독한 시간”이라고 말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흔하게 나오는 장면이 있다. 평소 싸움이 잦았던 연인은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로 한다. 그리고 잠시 혼자 그동안의 추억을 떠올리다가 상대의 진심을 깨닫는다. 고독을 적절하게 활용한 결과다.
항상 여럿이 있다 보면 나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없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어떤 사람인지,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진 않았는지, 상대를 어떻게 즐겁게 해주었는지를 정리하지 않은 채 또 다른 관계를 맺게 된다.
반대로 고독한 시간에 나의 모습을 돌아보면 고쳐야 할 점, 유지하면 좋은 점 등을 알 수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인간관계를 맺으면 더 매력적인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현대인은 혼자가 되면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을 꺼내 정보의 바다로 들어간다. 고독이 들어올 틈을 잠시도 주지 않는 셈이다.
자존감 쑥쑥 올리는 고독
이재원 교수는 “끊임없이 일하느라 고독할 시간이 부족한 사람은 여러 가지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말한다. 인생이 일에 휘둘리다 보면 인생에서 나는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지 못하고 대인관계도 삐걱거리기 쉽다. 항상 일이 잘못될까 불안하고 초조해서 심할 경우 우울증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우리 몸에 상처가 생기면 딱지가 앉고 그 위로 새살이 차오른다. 자연치유력 덕분이다. 우리 뇌에도 이러한 자연치유력이 있다. 다름 아닌 고독이다. 이재원 교수는 “스트레스를 받은 우리 뇌는 고독을 즐기는 과정을 통해 그 스트레스를 해소한다.”고 설명한다.
‘사람은 자기 잘난 맛으로 산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사람에게는 우월감 착각이라는 것이 있다. 이재원 교수는 “우월감 착각이란 여러 사람이 있을 때 ‘내가 여기에서 중간 이상은 간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고독할 시간이 없고 뇌가 충분히 쉬지 못한 사람일수록 이러한 우월감 착각이 적게 나타난다. 이는 고독을 즐기지 못하면 자신감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고독을 적절히 활용하자. 이재원 교수는 “고독을 벗어나려고 인간관계를 맺고, 잠깐의 고독을 통해 자기를 돌아보고, 다시 인간관계를 맺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더욱 멋진 내가 되어 있을 것”이라고 덧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