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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1. 알코올 중독에서 탈출한 2인방의 체험기

2013년 11월 건강다이제스트 결실호 104p

【건강다이제스트 | 이은혜 기자】

술술 잘 넘어가는 술. 그래서 누구나 좋아하는 술. 술맛에 취해, 분위기에 휩쓸려 한 잔 두 잔 술잔을 기울이는 우리들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너무도 무서운 것이 술의 덫이다. 한 번 빠지면 좀체 빠져나오기 힘든 사슬 알코올 중독. 그 지옥 같은 굴레를 끊고 새로운 삶을 되찾은 2인방의 알코올 중독 탈출기를 소개한다.

CASE 1. 알코올 중독자 김 씨의 단주 적응기

“알코올 중독자 김입니다.” 첫마디부터 많이 낯설다. 올해 예순다섯이라고 나이는 제대로 밝혔지만 이름은 그저 ‘알코올 중독자 김’이라고 말하는 사람. 그는 2013년 9월 현재 술을 끊은 지 1년 5개월째로 접어들었다며 스스로를 대견해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것은 지난 30여 년간 계속돼온 끈질긴 악연과의 사슬을 끊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란다. 때로는 달콤한 환청으로 유혹하고, 때로는 알 수 없는 분노로 회유하는 술의 마성에 이제는 결코 굴복할 수 없다고 말하는 알코올 중독자 김 씨(65세)의 단주 적응기를 들어봤다.

술은 음식의 하나였다!

충남 홍성에서 부농의 자식으로 태어난 알코올 중독자 김 씨.

그의 집에서는 늘 밀주가 빚어졌다. 조부, 부친 대부터 밀주를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그에게 있어 술은 일종의 음식이었다. 밥처럼 반찬처럼 아주 익숙한 음식이었다.

그런 탓에 군 제대 후 친구들과 어울려 처음 술을 마시기 시작하였을 때도 술에 대한 거부감은 전혀 없었다. 술맛도 좋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마시는 것도 즐거웠다. 그렇게 시작된 술은 점점 더 마시는 횟수도 늘어났고, 마시는 양도 늘어났다.

“서른을 넘기고부터는 거의 매일 술을 마셨던 것 같아요. 그것도 한 번 마시기 시작하면 소주 2~3병을 마셔야 직성이 풀릴 정도였으니 술도 셌고, 자주 마시고…그야말로 알코올 중독자의 기질을 타고 난 셈이었죠.”

알코올 중독자 김 씨의 말에 의하면 “병이 나면 안 마셨을까 거의 매일매일 술을 마셨다.”고 한다. 평소 술을 즐겼던 조부와 부친이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일도 그의 술 사랑을 막진 못했다.

그렇게 10년이 흐르고 20년이 흘렀다. 30년 쯤 되었을 때 그의 주량은 소주 3~4병으로 늘어나 있었고, 손을 떠는 수전증으로 술잔 쥐기도 쉽지 않았다.

“그쯤 되자 그동안 별 말이 없었던 아내도 술 좀 줄이라고 성화를 부리더군요. 하지만 그때는 이미 제 힘으로 술을 자제할 여력이 남아 있지 않았어요.”

술의 노예가 돼버렸다는 것, 그것은 삶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달콤한 재앙이었다.

퇴원 하루 만에 다시금 술

하루도 술을 마시지 않은 날이 없을 정도로 술맛에 탐닉돼 살던 알코올 중독자 김 씨.

그런데 2011년 8월 들어서면서부터 자주 울컥울컥 헛구역질을 하는 날이 많아졌다. 걱정돼 찾아가게 된 내과병원에서는 검사를 하더니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정신과에 한 번 가보라는 거였다. 술을 많이 마셔서 나타난 증상 같다는 거였다.

“그렇게 해서 서울 수유리에 있는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됐어요. 그때가 2011년 9월이었는데 예순셋의 나이에 알코올병동에 갇힌 신세가 됐던 겁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등골이 오싹해진다고 말하는 김 씨. 지옥이 따로 없었다. 자유가 전혀 없는 그런 생활이었다. 하루가 열흘 같았다. 그곳에서 한 달 정도 지냈을 때 그는 가족들에게 애원했다. 술 끊을 자신 있다고, 제발 퇴원시켜 달라고….

그렇게 해서 겨우겨우 퇴원을 했지만 가족들에게 맹세했던 그 다짐은 채 몇 시간을 넘기지 못했다. 집으로 가는 기차를 타기 몇 분 전, 가족들에게는 화장실에 간다고 둘러댄 그는 술 한 병을 사서 공중전화박스에서 마셨다고 한다. 한 달 동안 못 먹었던 술은 더 달았고, 입에 더 착착 감겼다. 환장할 정도로 강렬한 맛이었다.

한 달간 지옥 같은 병원생활을 견뎌내며 단주했던 노력은 한순간에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이때부터 그는 오히려 전보다 더 강렬해진 술의 유혹에 못 이겨 가족들 눈을 피해 집안 구석구석, 차안 틈새마다 술을 숨겨 두고 마셨다고 한다.

아내의 죽음 앞에서도 술은 못 끊고

가족들의 눈을 피해 여전히 술에 취해 살던 알코올 중독자 김 씨에게 2012년 3월은 결코 잊을 수 없다.

“아내가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면서 쓰러져 말 한 마디를 못하는 거예요. 뇌졸중이었어요. 부랴부랴 앰뷸런스를 부르고 장장 10시간 동안 수술을 했지만 생존할 확률은 0.1%라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 어찌 제 정신일 수 있겠어요?”

충격적인 통보 앞에서 알코올 중독자 김 씨가 기댈 곳은 하나밖에 없었다. 술이었다. 아내가 수술실에서 생사의 기로에서 헤맬 때 그는 술로 슬픔을 달랬고, 절망을 다독였다. 그리고 끊어진 기억이 다시금 이어졌을 때 그는 정신과 병동에 있었다. 술 때문에 인사불성이 된 그를 가족들이 입원을 시켰던 것이었다.

한 병원에서 각각 병실 하나씩을 차지하며 입원하는 신세가 된 아내와 그. 어느 정도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빌고 또 빌었다고 한다. 아내만 살려준다면 술도 끊으리라 독하게 결심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바람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어느 날 아침 사위가 와서 아내가 운명했다고 하는데 하늘이 노래지대요. 말 한마디 없이 그렇게 가버린 게 믿어지지가 않았어요.”

아무런 준비도 없이 맞게 된 이별, 그 후유증은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겨우겨우 장례가 치러졌고, 삼우제가 남아있었지만 그의 한계는 거기까지였다. 다시금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그 후의 일은 그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없다. 다시금 정신을 차렸을 때는 경기도 의왕에 있는 알코올 치료 전문병원이었다.

알코올 전문병원서 새희망을 보다

2012년 4월 12일, 알코올 치료 전문병원에서 눈을 뜬 알코올 중독자 김 씨.

정신을 차리자 또다시 선명해진 절망이 그를 힘들게 했다. 너무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아내의 빈자리가 그렇게 크게 느껴질 수가 없었고, 혼자 남겨진 슬픔 또한 차마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세상을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술밖에 생각나는 게 없었다.

하지만 그의 몸은 알코올 전문병원의 관리병동에 있었다. 그야말로 철저하게 관리를 받는 생활을 해야 했다.

“또다시 자유를 구속당하는 몸이 되자 처음에는 참기 힘들었어요. 제발 퇴원시켜 달라고 자식들한테 애원도 해보고 화도 내보다가 어느 순간 ‘지금 내가 뭣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대요.”

멀쩡한 육신을 가진 사람이 술 때문에 병원에 갇힌 신세가 됐다는 게 자식들 보기도 민망하고 자신에게도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병원에서 체계적으로 해준 단주 프로그램이 큰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술에 대한 생각을 많이 바꿀 수 있게 됐으니까요.”

술이 왜 해로운지, 알코올 중독이 왜 무서운지 그 실체를 제대로 알게 됐던 것이다. 그래서 결심했다. ‘자식들한테 짐이 되는 아비는 되지 말자.’고.

“무섭게 결심하고 병원 프로그램을 따라하니 관리병동에서 개방병동으로 내려오고, 개방병동에서 적응훈련을 하면서 술은 서서히 제 삶에서 멀어졌어요.”

그로부터 1년 5개월이 지난 2013년 9월 현재, 알코올 중독자 김 씨는 이제 술이라면 쳐다도 안 본다. 17개월째 단주를 하면서 술에 대한 생각은 잊고 산다.

“물론 가끔씩 생각이 날 때도 있죠. 그럴 때는 하고 있는 일에 몰입을 합니다. 책을 보고 있다면 책을 보는 데에 정신을 집중하죠. 10분 정도 그렇게 몰입을 하면 그 고비를 넘길 수 있습니다.”

언제든 재발할 수 있는 것이 알코올 중독의 속성임을 너무나 잘 알기에 술 한 잔의 유혹에도 결코 넘어가지 않는다.

무엇보다 술을 끊고 나니 정신도 맑아지고 매사 긍정적으로 살고, 건강도 좋아지고 좋은 점이 너무 많다며 지난 세월을 후회한다.

그런 그가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단다. “모두들 너무도 쉽게 생각하는 술, 기분 좋아 마시고, 분위기에 휩쓸려 마시는 술이 때로는 인생을 좌초시키는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주었으면 합니다.”

특히 혼자 먹기 시작하는 술은 이미 중독의 길로 들어선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게 알코올 중독자 김 씨의 말이다. 이때는 자기 의지만으로는 끊기 힘들다며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것이 좋다고 당부한다.

오늘도 술의 유혹에 다시금 넘어가지 않기 위해 단주 모임을 찾아다니고 알코올중독자 모임에도 참석해 술과의 끈질긴 악연을 끊어내고 있는 알코올중독자 김 씨.

알코올 중독은 죽을 때 끝나는 무서운 병이라고 말하는 그는 우리 모두가 술의 위험성에 경각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말로 긴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CASE 2. 알코올 중독자 강 씨의 단주 성공기

건설현장 감독자로 평생을 살아왔다고 자신을 밝히는 알코올 중독자 강 씨(67세). 그의 첫 마디도 “알코올 중독은 무덤에 가야 끝난다.”는 거였다. 알코올 중독의 무서움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평생 술과 함께 살아온 인생에서 술 없이 산 지 어느덧 1년 7개월. 종종 꿈속에서 술 먹는 꿈을 꾸기도 한다고 말하는 알코올 중독자 강 씨. 그런 그가 밝히는 1년 7개월의 단주 성공기를 들어봤다.

일곱 살의 추억

알코올 중독자 강 씨가 술맛을 알게 된 것은 아주 어릴 때였다.

“일곱 살 때 집에서 담근 술을 고모가 한두 잔 먹였나봐요. 그걸 먹고 취해서 동네 고추 말린 것 다 엎어버리고 휘젓고 다녔던 기억이 있으니까요.”

그 또한 술에 관대한 집안 환경을 많이 받은 케이스다. 술을 접할 기회도 많았고, 유전적으로 술도 셌다. 그런 그에게 청년기에 시작된 사회생활은 술과의 악연을 끈끈하게 다지는 계기가 됐다.

“전공이 토목공학이다 보니 건설현장 감독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죠. 그러니 술 좋아하는 저는 고기가 물을 만난 격이었죠.”

점심때는 반주로 술을 마셨고, 저녁때는 본격적으로 술을 마셨다. 매일매일 술판은 이어졌고, 어느 순간부터 술은 그의 삶 대부분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좋았다. 부어라 마셔라 세월 가는 줄 몰랐다.

그런 그의 삶에 브레이크가 걸린 것은 40대 중반이었다. 간에 이상이 생기고 손이 떨리는 수전증이 나타나면서 비로소 그는 술의 무서움과 첫 대면을 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병원 입원도 허사로 끝나고…

술을 좀 줄여볼 욕심으로 자의반 타의반 춘천에 있는 알코올 치료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됐다는 강 씨.

생전 처음 가본 알코올 병원은 적응하기 힘든 곳이었다. 자유가 주어지지 않는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어쩌다가 이런 상황이 되었을까?’ 후회도 되었다.

그런 때문이었을까? 병원에서 3개월 정도 치료를 받고 퇴원을 할 즈음에는 술을 끊겠다는 결심도 했다.

그러나 그 결심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한 달이 고비였다. 퇴원한 지 한 달 만에 다시금 술을 먹기 시작하면서 3개월간의 병원 치료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설상가상 부작용까지 동반하여 나타났다. 그동안 먹지 못한 술을 보충이라도 하듯 전보다 더 많이 마셔야 했고, 더 자주 마셔야 직성이 풀렸던 것이다.

그래서 포기했다. 술과 함께 하루를 보내고, 또 새로운 하루를 맞았다. 10년이 그렇게 또 흘러갔을 때 그에게는 또 다른 불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위암 수술, 그래도 끊지 못한 술

알코올 중독자 강 씨가 55세 되던 해의 일이다. 울릉도로 여행을 떠났던 그는 몸의 이상을 느꼈다.

“밥을 먹을 수가 없었어요. 뭘 먹어도 소화가 안 되고 설사를 하는 바람에 밥 대신 술만 먹었죠.”

그래서 받게 된 내시경 검사는 충격이었다. 일주일 후 암이라는 판정이 나왔던 것이다. 위암이라고 했다. 술이 원인이라고도 했다. 하루라도 빨리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위 전체를 다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어요. 다행히 초기여서 수술만 하면 괜찮다고 했는데 문제는 위치가 나빠 위 전체를 다 잘라내야 했어요.”

담담히 이야기하지만 위암 진단은 그에게 적잖은 충격이었다. 그 좋아하던 술도 끊을 결심을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결심 또한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위 전체를 잘라내는 대수술이어서 죽을 고생을 했는데 퇴원을 하고서 며칠 지나니 못 참겠더라고요. 그래서 타협점을 찾은 게 하루에 포도주 한 잔만 먹자 했는데 그것이 일주일 뒤에는 한 병이 되고 한 달 뒤에는 소주 3병으로 되돌아가버렸어요. 술은 한 모금이라도 입에 대면 그것으로 끝이라는 사실을 그때 뼈저리게 느꼈죠.”

모질게 결심하다

위암 수술까지 했지만 술의 마력을 끊어내지 못했던 알코올 중독자 강 씨.

또다시 술은 그의 절친이 됐고, 소주 3~4병을 마시는 일은 늘 하루 일과가 됐다. 날로 수전증은 심해져 밥숟가락도 못 들 지경이 됐지만 차마 술을 끊을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래서 집안의 애경사에 갈 때는 꼭 술 한 잔을 마신 후 가곤 했어요. 술을 마시지 않으면 수전증으로 악수조차 못할 지경이니까요.”

심지어 결혼을 앞둔 아들의 상견례 자리에도 술을 마시고 참석했던 일화를 털어놓으며 눈물을 찍어낸다.

“병원에 갈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에요. 정신과 치료를 받아보기도 했어요. 무엇보다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어서 고통스러웠어요. 술 힘을 빌어 잘 수 있는 시간은 딱 2시간밖에 안돼요. 그 외의 시간은 꼬박 깨어 있게 되니 그 괴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예요.”

그래서 수면제도 처방받을 겸 알코올 치료도 할 겸 정신과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지만 하루하루 여전히 술과 전쟁은 치러야 했다.
“아침에 일어날 때는 ‘오늘은 술 안 마시고 지내야지.’하고 결심합니다. 그러나 그 결심은 점심때까지입니다. 오후가 되면 저도 모르게 술을 사서 마시고 있어요. 안 그러고 싶어도 그게 안돼요.”

매일매일 술과 씨름하고 또 굴복하는 일상의 반복. 그래서였을까? 언제부턴가 우울증도 오고, 자살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이해가 됐다. 알코올 중독자 강 씨는 65세 때의 그 봄볕이 너무 싫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결심했어요. ‘더 이상 추한 모습을 보이지 말자.’ 경기도 의왕에 있는 알코올 전문병원에 입원을 했어요.”

그랬던 그의 선택은 지금 가슴 벅찬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고 너무나 좋아한다. 그리도 끊기 힘들었던 술을 끊은 지 1년 7개월째 접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술 마시지 않고도 지낼 수 있게 된 게 꿈만 같다고 말한다.

“비록 꿈속에서 자주 술을 먹기도 하지만 어쨌든 술을 끊고 하루를 보낼 수 있게 된 것이 믿어지지 않아요.”

그런 그가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단다. 적어도 방송에서 음주 장면만은 여과 없이 내보내지 말아달라는 당부다.

“흡연 장면은 규제도 되고 하는데 음주 장면은 여과 없이 내보내고 있어 참기 힘든 유혹을 느낍니다. 담배보다 더 끊기 힘든 것이 술이고, 담배보다 더 해악을 끼치는 것이 술입니다. 그 점을 좀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멋모르고 입에 대기 시작한 술은 종종 무덤까지 갖고 가야 할 천형의 형벌을 주기도 한다는 사실을 꼭 기억했으면 한다는 그의 말은 긴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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