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서울메디칼랩 김형일 의학박사】
도매업을 하는 P 사장은 남대문과 동대문 시장통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젊었을 때는 경기도와 서울 근교에 여러 개의 공장을 굴렸지만 지금은 대리인들을 시키며 비교적 편안하게 지내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 중국 여행 중에 넘어져 긴급히 병원으로 실려갔다. 뇌혈관장애(중풍)나 신경기능장애가 의심되어 침도 맞고 뜸도 뜨고 탕약도 먹어 호전되는 듯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P 사장은 배도 아프고 소변이 탁하고 거품도 심하였다. 피곤증, 현기증, 두통, 구역질이 계속되었다. 이튿날 또 다시 MRI촬영을 하였다. 그것을 받고 나니 이제는 더 죽을 것만 같았다. 눈이 노랗고 얼굴이 홀쭉하여 체중이 4kg이나 줄었다.
혈액검사에서는 몇몇 검사항목 수치가 약간 올라가 있었고, 당뇨병이 간헐적으로 반복되었다. 고혈당증 치료를 시작하자마자 이내 증세가 호전되었다. 그러나 수일이 지나자 다시 피곤증이 더 심해지고 체중은 더 줄었다. 혈당치도 더 올라갔다.
P 사장은 얼른 귀국하여 정밀혈액검사를 하였더니 췌장선암(腺癌)으로 판명되었다. 그래서 췌장기능이 떨어지고 인슐린이 부족해 당뇨병이 되었다 한다. 피로와 두통, 복통과 체중저하는 췌장암의 단순한 증상들에 불과했던 것이다.
P 사장은 수술의 필요성이 적은 초기암이었으므로 우선 항암제 치료를 받기로 했다. 화학요법치료를 받는 동안은 다소 괴로웠으나 그 후 병세는 놀라울 정도로 호전되었다. 화학요법만으로도 암이 관리되었던 것이다. 수년이 지난 요즘도 그는 가끔씩 혈액정밀검사를 받아볼 뿐이다.
가장 큰 사망 원인은 뇌혈관장애와 악성종양 그리고 성인병이 Big 3로 되어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의 첫 시작 증상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처음엔 그저 체중저하와 만성피로 정도가 나타날 뿐이다. 기능과 성분의 변화가 생겨 중요한 장기의 성능과 크기, 무게와 세포 수가 줄어드는 전신기능 저하가 가만히 찾아올 뿐이다. 체중저하는 필요 없는 부분이 빠져나간 것이 아니라, 생명유지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오장육부가 쪼그라든 결과인 것이다.
쪼그라든 세포와 암세포는 정상세포 시절에는 내보내지 않던 특유의 정보 기미(scent), 흔적 등을 핏속으로 흘려 내보낸다. 이런 것들을 ‘암표지자’라 한다. 이 흔적을 추적하여 암을 재빨리 알아내는 방법을 바로 ‘혈액정밀검진’이라고 하며 초기암 발견에 이용되고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체중저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더 비싸고 어렵고 힘들고 거대한 검사를 해야만 암을 찾는 것인 줄로 착각하고 있다. 실상 CT나 MRI 등은 암이 훨씬 더 커진 다음에야 확인될 수 있는 것이다. 큰 사고가 없는 한 인간은 대부분 암과 성인병으로 인생을 마감하게 되어있다. 이것은 혈액정밀검사로 그 시작과 진행을 알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