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이정희 기자】
【도움말 | 경희대 강남경희한방병원 뇌·신경센터 김용석 교수】
얼마 전 첫째 딸의 결혼을 며칠 앞두고 갑자기 얼굴이 마비된 박순정 씨(55세). 딸 결혼 준비로 긴장한 채 분주한 나날을 보냈는데,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입과 눈이 비뚤어진 것. “이러다간 딸 결혼식에도 못 가겠다.”며 울먹이는 그녀. 어떻게 해야 할까?
갑자기 한쪽 얼굴이 마비돼 눈을 완전히 감을 수 없고, 이 닦을 때 물이 흐르게 되면 두려움이 엄습한다. ‘혹시 중풍은 아닐까?’ 물론 중풍인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말초성 안면신경마비다. 한의학에서는 구안와사라고 한다. ‘눈과 입이 비뚤어지고 기울어진다’는 뜻이다. 이밖에 와사풍, 와벽, 구와, 구금안합이라고도 한다.
말초성 안면신경 마비는 대뇌의 7번째 뇌신경인 안면신경이 마비돼 한쪽 안면 표정근이 갑자기 완전히 혹은 부분적으로 마비된다. 인구 10만 명당 10명 내지 30명 정도가 발병한다. 어린이에서 임산부, 노인까지 연령에 관계없이 생긴다. 성별은 여자가 남자보다 1.5:1로 약간 많이 걸린다.
환절기 급격한 온도변화 조심
한의학에서 안면신경 마비는 정기가 허약한 상태에서 차가운 바람을 쏘여서 주로 발생한다고 본다. 경희대 강남경희한방병원 뇌·신경센터 김용석 교수 연구팀은 안면신경 마비의 발생과 기후와의 관계를 알아보고자 1년간 안면신경 마비로 치료를 받기 위해 내원한 서울거주 환자 463명(남자 227명, 여자 236명)을 연구 관찰했다. 기상청에서 매일 발표하는 기상자료에 준하여, 발병일과 발병 전 2일간의 평균기압, 평균기온, 최저-최고온도 차이, 평균습도, 평균풍속, 평균운량雲量과 일조시간을 분석했다. 그 결과 이들이 안면신경 마비의 발병과 관련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김용석 교수는 “특히 급격한 온도변화가 있을 때 안면신경마비를 조심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안면신경 마비의 원인에 대해서는 혈관허혈성설, 바이러스설, 유전설, 자가면역설 등 다양한 주장이 있다. 김용석 교수는 “동맥수축으로 인해 안면신경으로 가는 혈액공급에 장애가 생기고 그 결과 안면신경관속의 신경에 부종이 생겨 마비를 초래한다.”며 “부종으로 인한 압박 때문에 마비가 생긴다는 혈관허혈성설이 가장 유력하다.”고 말한다.
아직 원인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임상에서 보면 대개 몸이 피로하거나 신경을 많이 쓴 후 혹은 찬바람을 쏘인 후 생겼다고 하는 환자가 많다고 덧붙인다.
증상 보이면 최대한 빨리 치료해야
비교적 증상은 뚜렷한 편이라 얼굴 곳곳에서 진단할 수 있다. 김용석 교수팀의 조사에 따르면 실제로 안면신경 마비에 걸린 사람들은 얼굴 표정근의 마비 외에도 귀 뒤쪽 통증과 눈물분비 장애가 각각 23.8%로 드러났다. 미각장애는 16.8%, 두통은 11.9%, 청각과민은 9.0%, 항통(목덜미 통증)은 7.1%, 안면통증은 4.0%, 안구 건조는 3.0%가 증상을 보였다.
치료하려면 우선 발생한 마비가 중추성인지 아니면 말초성인지 판단해야 한다. ▶중추성은 뇌종양, 뇌혈관장애, 뇌염 등으로 안면신경로를 침범했을 때 일어난다. 같은 쪽 편마비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이마의 주름살을 짓는 것은 가능하지만 코를 찡긋하거나 입을 벌리거나 오므리는 운동은 마비가 된다. 미각이나 청각 장애가 없고, 혀는 마비된 쪽으로 치우친다.
▶말초성 마비는 얼굴 표정을 짓는 근육이 모두 마비된다. 이마의 주름을 만들 수 없다. 눈도 감을 수 없기에 눈을 감으려면 안구가 위쪽으로 올라가 흰자위가 보이게 된다. 입은 처지고 입을 벌릴 때 마비된 쪽이 일그러지며 입이 비스듬한 난원형이 된다. 혀는 건강한 쪽으로 치우치며 청각이나 미각에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말초성 안면신경마비로 진단되면 적외선 체열 측정기, 경락 측정기, 맥진기를 통해 일차 증상과 징후를 평가한 다음 치료는 기혈을 소통시키는 침, 뜸, 건부항, 한약, 마사지 등으로 치료한다. 가장 많이 치료하는 수단은 침치료다. 1회용 침으로 환자가 득기감(침을 맞을 때 짜릿한 느낌)을 느끼도록 자극하고 마비된 쪽 경혈에 알맞게 침을 놓는다. 적외선 치료도 병행한다. 목 뒤쪽과 어깨 부위에 걸쳐 근육의 긴장감을 나타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근육 긴장을 풀어주면 안면의 자각증상도 쉽게 완화된다.
마사지는 쑥찜팩으로 마비된 쪽 얼굴을 아래쪽에서부터 위로 치켜 올리면서 따뜻하게 하는 것이 좋다. 한쪽만 계속하는 것보다는 7대 3 정도로 마비되지 않은 쪽도 마사지를 한다.
김용석 교수팀은 안면신경 마비 환자 44명을 대상으로 치료한 후 정리한 결과 47.7% 정도가 3주 내에 회복했다고 밝혔다. 5주 내에는 68.1%, 7주 내에는 86.4%가 후유증 없이 나았다. 회복하는 데 평균 3.7주가 걸렸다는 것. 물론 고혈압이나 당뇨병이 있거나 환자의 나이가 많은 경우, 혹은 갑자기 완전한 마비가 올 때, 중추성으로 오는 중풍에서 안면마비가 나타나는 경우는 회복이 늦다.
김용석 교수는 “단순한 안면신경마비는 발병 후 4~5일 내에 치료를 시작하면 빠르고 쉽게 완치가 되지만 발병하고 시간이 오래 지나면 좋은 치료효과를 얻기 힘들다.”며 “최대한 빨리 치료할 것”을 강조했다.
가정에서도 마사지와 운동요법 효과
병원에서 치료하는 것 외에 가정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동의보감> 풍風문에서는 구안와사가 오면 “급히 인중人中 부위를 문질러 주며 귓불 밑에 뜸을 3∼5장 떠준다.”고 했다.
김용석 교수는 마사지와 운동요법을 권한다. 마사지는 피부와 근육의 탄력을 유지하기 위해 마비된 근육을 손가락으로 매일 5분 이상 부드럽게 한다.
운동치료는 근력을 유지시키기 위해 거울을 보면서 근육이 피로하지 않을 정도로 한 번에 5번씩 하루에 두 번 정도 하는 것이 좋다. 운동방법은 눈을 꼭 감기, 미소 짓기, 입을 꼭 다물기, 휘파람불기나 촛불 끄기, 풍선불기, 윗입술 올리기, 이 드러내며 웃기, 앞이마에 수직 혹은 수평주름 잡기, 콧구멍 확장하기, 얼굴 전체 찡그리기, ㅁㆍㅂㆍㅍ 같은 입술소리 발음하기 등이 있다. 빨대나 풍선불기, 껌 씹기도 좋다. 그 외 지압방법도 활용할 수 있다.
김용석 교수는 주의사항으로 “약초를 지져서 얼굴이나 손목에 붙여 물집을 만드는 민간요법을 하는 환자들이 종종 있다.”면서 “이는 안면신경마비의 치료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안면 피부에 큰 손상을 준다.”고 경고한다. 또 안면부위를 부항으로 과도하게 떠 피를 죽이는 일도 삼가라고 당부한다.
TIP. 구안와사 생활 속 예방법
-규칙적인 생활습관을 들인다.
-꾸준한 운동이 저항력을 길러준다.
-과음과 과식, 자극이 강한 음식의 섭취를 피한다.
-얼굴은 위장의 기운이 흐르는 곳이므로 소화가 잘 되는 식사를 한다.
-당뇨와 고혈압을 철저히 관리한다.
-몸을 따뜻하게 한다.
-새벽 찬바람을 조심한다.
김용석 교수는 미네소타 주립대학 교환교수를 지냈고, 세계침구학회연합회 집행위원, 대한한방체열의학회 회장, 대한침구학회 국제이사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