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이명선 기자】
은주는 올해로 만 9살이다.?어떻게 저 어린 소녀가 ’암’이라는 무섭고 큰 병을 2번이나 이겨냈을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은주는 밝고 건강한 모습이다. ?장래 요리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큰 소리로 말하는 은주의 용감한 투병기를 들어본다.
이제 막 세상을 박차고 나온 갓난아기에게 암은 믿을 수 없는 사실이었다. 고작 10개월 된 아기를 키우는 어머니에게 그것은 가혹하리만치 무서운 선고였던 것이다.
“애가 감기에 걸렸는지 콧물이 계속 흐르기에 가까운 병원에 데려갔었어요. 그런데 의사선생님이 우리 애가 다른 애들에 비해서 이상하게 배가 크다고 하시더군요.”
집에 돌아와 생각하니 여간 찜찜한 것이 아니었다. 갓난아기 배가 다 그렇지 않겠느냐 내심 치부하고 싶으면서도 부모 마음이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의사의 ?조금 이상하다’는 말이 내내 신경에 거슬렸고, 마음속에 걸림돌로 남았다.
아닌게 아니라 실제로 만져보았을 때 은주 오른쪽 옆구리에 이상한 덩어리가 확실히 잡혀지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싶어 부랴부랴 서울에 있는 큰 대학병원을 찾았다. 그리고 은주는 소아암 중에서도 가장 무섭다는 ‘신경모세포종’ 3기라는 진단을 받았다.
2살배기 몸으로 28번의 항암치료
신경모세포종은 자율신경계의 하나인 교감신경에서 발생하는 악성 종양으로 암을 제거하는 대수술을 받는 것은 물론이요, 항암제 투여를 하는 것이 치료의 원칙이다. 물론 방사선 치료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은주는 이미 3기까지 암이 진행된 상태라 수술을 한다 해도 그 결과에 대해서 장담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수술 받아서 살아난 애가 있냐 물으니 사례가 없다고 하시더군요. 그래도 은주를 포기할 순 없었어요. 일단은 수술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했죠.”
큰 병 아닐 것이라 믿고 포대기로 싸 업고 간 애가 그날로 입원 수속을 밟았고 수술이 감행됐다. 콩팥 옆에 자리한 커다란 종양제거 수술을 마치자 항암치료에 들어갔고, 은주는 28번의 항암치료를 받았습니다.”
고작 2살배기 어린 아이에게 가혹한 치료였다. 살려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집중치료를 받았고 그해 97년 11월에 최종 치료를 끝내고 은주는 퇴원했다. 어린 것이 견뎌준 것이 고마웠고, 그래도 죽을 운명은 아니었던가 싶어 안심하며 한시름 덜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집에 돌아온 은주는 어쩐 일인지 점점 혈색을 잃어갔고, 미열이 계속되었다.
“얼굴이 누렇게 뜨면서 혈소판 수치가 급격히 떨어졌어요. 애가 이상하면 지체하지 말고 다시 병원을 찾으라는 의사의 말에 당장 들쳐업고 또 병원을 갔지요.”
병원에서 의사는 은주가 골수 백혈병으로 재발했다는 말을 남겼다. 실로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골수 백혈 찾아오고 2번째 암 선고
“백혈병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이미 너무 많은 항암치료를 받은 터라 작고 어린 몸이 견딜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며 의사는 1주일간 은주에게 휴가를 주더군요. 집에 다녀오라고 의사는 말을 전하는데 그렇게 눈물이 날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말을 듣고 식구들은 은주를 데리고 놀이공원을 찾았다고 한다. 한참 놀이동산을 좋아할 나이에 아이는 마냥 신나고 즐거워하는 모습으로 놀이기구를 타고, 솜사탕을 먹었다. 그것을 지켜보는 온 가족의 가슴은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져 차마 볼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은주는 백혈병을 치료하기 위해 컬럼(여과기기)을 이용해 피를 걸러 조혈모세포 이식수술을 받았지만 결과는 부작용만을 남겼다.
심장이 비대해져 숨을 쉴 수 없었던 은주는 급기야 사경을 헤맸고, 어린 딸을 지켜보는 어머니의 심정은 이제 비장해지기 시작했다.
한방치료를 결심하다
“이렇게 중환자실에서 호스를 꽂은 채로 자식을 보내느니 밥 한술이라도 내 손으로 먹여 보내자는 생각에 퇴원을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퇴원하는 그 순간까지도 많이 망설였다. 우리나라 최고의 병원에서도 못 고치는데 어디서 고치겠냐는 생각이 들어 끝까지 망설였다는 것.
게다가 은주가 투병하는 골수백혈은 치료를 중단하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병이었기에 더욱 그 불안감은 컸다고 한다. 그러나 어머니의 결단으로 은주는 인천의 모 한방병원으로 옮겨져 통원하며 뜸과 한약처방을 받기 시작했다. 치료를 받은지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 은주의 혈색은 대번에 좋아졌고 병원을 찾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뜸으로 땀을 빼고 한약으로 면역을 키우면서 잃었던 체력을 보충했습니다. 그리고 일절 인스턴트 식품을 끊었어요. 당장 무공해 음식이 필요했고, 집 뒤에 텃밭을 일궈가기 시작했죠.”
애들이 좋아할 법한 햄이나 라면, 콜라와 튀김류는 일절 내놓지 않았고 대신 고구마와 상추 샐러드를 간식으로 내어놓기 시작했다. 고추며 배추, 열무 등을 집에서 직접 키워 먹였고 조미료와 흰설탕의 사용은 완전히 배제했다. 잡곡으로 밥을 하되 검은콩을 필수로 넣었다고 한다.
“크는 애들이라 고기를 안 먹을 수는 없고, 먹기는 먹되 기름 부위는 제거하고 고기 3, 야채 7로 먹는 습관을 들여주고 있습니다.”
지금은 하루 세끼 꼬박 먹는 식사가 보약이라는 생각이고 아이도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은주의 꿈은 요리사
은주는 내년 2월이면 항암치료를 끊은지 5년째에 접어들어 완치 수준이라는 판정을 받았고 현재도 피검사를 해보면 백혈구가 모두 정상수치를 나타낸다고 한다.
“한 달에 한 번은 환우회에 나가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정보도 얻고 환자 소식도 들었는데, 이제는 우리가 더 많은 정보를 전달해 주는 입장이에요. 살다보니 이런 날도 있네요”
노란색 유치원 버스에 아이를 태워보는 것이 소원이라던 은주 어머니는 지금이 꿈만 같고, 더 바랄 것이 없다고 말한다.
대견한 듯이 은주를 쳐다보자 종알종알 말이 많은 은주도 한마디 거든다. 병원은 끔찍하고 싫었지만 지금은 주사 맞은 지가 하도 오래 되어서 한 번쯤 맞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폭소가 터져 나왔다. 용감하다 못해 아무 것도 모르는 녀석의 천진함에 병도 이길 수 없었겠다는 생각이 순간 스치기도 했다.
입담이 좋고, 춤도 곧잘 춰 동두천 초등학교에서는 이미 분위기 메이커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는 은주는 장래 요리사가 되는 것이 꿈이고, 자신이 가꾼 무공해 채소를 요리해 친구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라고 전한다.
요즘은 피아노가 무척 배우고 싶다고 말하는 은주의 얼굴에는 이제 병마의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고, 여느 초등학생들처럼 공부라면 질색하고 컴퓨터 게임이라면 화색이다.
작은 몸으로 당당하게 소아 암을 이겨내고 이제는 건강한 모습인 은주가 앞으로 더 많은 꿈을 키워나가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