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전용완 기자】
【도움말 | 인제대 스트레스센터 최한 박사】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리멤버>를 보면서 꾸역꾸역 치솟는 분노를 잠재우기 힘들었을 것이다. “내가 법”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재벌 2세의 안하무인 캐릭터도 공분을 샀지만 분노조절장애까지 앓고 있는 것으로 설정되면서 그야말로 희대의 악역 캐릭터가 만들어졌다. 화를 참지 못해 살인을 저지르고, 분노를 삭이지 못해 주먹을 날리던 주인공….
그런데 문제는 그런 사람이 드라마 속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데 있다. 한없이 선량해 보이던 평범한 사람도 끼어들기 했다고 보복운전으로 맞서기도 하고, 말다툼 끝에 피를 나눈 형제간에도 칼부림이 일어나기도 한다. 우리 본성 깊숙이 자리 잡고 있으면서 언제든지 활화산처럼 분출할 수 있는 화 혹은 분노! 그것을 참지 못하여 화근이 되는 분노조절장애, 그 위험한 덫으로부터 벗어날 묘책은 과연 없을까?
너도나도 욱하는 사회, 왜일까?
‘욱’해서 충동적으로 분노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사소한 일에도 다짜고짜 화부터 내고 핏대부터 올리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우리 사회는 지금 거대한 화 혹은 분노의 용광로가 된 듯하다. 개인들 사이에도, 이웃 간에도, 심지어 계층 간, 세대 간에도 좁혀지지 않은 불만 혹은 불평으로 화 혹은 분노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다. 우리 사회 전반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화 혹은 분노의 감정은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걸까?
이 물음에 인제대학교 스트레스센터 최한 박사는 “욱 하거나 버럭 화를 내는 감정인 분노조절장애는 의학적으로 ‘간헐적 폭발 장애’ 또는 ‘외상 후 울분장애’라고 명명한다.”며 “이러한 분노조절장애는 정신적 충격을 받은 이후 모멸감, 수치심 등의 부정적인 감정들이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못하게 되면 결국 타인을 밀어내게 되고, 자신이 사랑 받거나 인정받지 못해 분노감에 휩싸이게 되면서 분노의 연결고리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성된 분노는 끝없이 순환되는 사이클을 지닌다. 분노는 또 다른 분노를 부르고 결국에는 폭발하고 마는 수순을 밟게 되기 때문이다.
최한 박사는 “분노감은 결국 적대감 또는 폭력적인 표현의 창구를 통해 외부로 표출되고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는 속성이 있다.”며 “그것은 건강뿐만 아니라 우리 삶 전체를 파괴시킬 수 있는 파급력까지 갖추고 있다.”고 말한다.
욱! 하는 분노, 내 몸에는 최악!~
욱 하면 시원한 느낌 때문에 참는 것보다 훨씬 더 건강에 좋다고 말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정말 그럴까? 최한 박사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오히려 잦은 분노와 적대감은 심장병 위험을 높이는 주원인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분노를 느낄 때 우리 몸은 불안과 공포를 느낄 때와 비슷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온몸은 긴장상태에 빠져들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분비는 증가한다. 자율신경의 균형은 깨져 교감신경만 강하게 자극시켜 혈압을 오르게 하고 맥박을 빨리 뛰게 한다. 이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우리 몸은 그야말로 초비상 상태가 된다. 그런 상태가 건강에 이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 의대 연구팀이 발표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화를 잘 내는 사람들은 ‘호모시스틴’이라는 화학물질의 수치가 비교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호모시스틴은 심장에 아주 해로운 화학물질로 알려져 있다.
화 잘 내는 나! ?혹시 나도 분노조절장애?
평소 화를 잘 내거나 이유 없이 분노가 자주 치솟는다면 걱정스럽다. 혹시 나도 분노조절장애는 아닐까? 다음 문항을 체크를 해보자.
□ 01. 성격이 급하며 금방 흥분하는 편이다.
□ 02. 내가 한 일이 잘한 일이라면 반드시 인정받아야 하며 그러지 못하면 화가 난다.
□ 03. 온라인 게임에서 자신의 의도대로 되지 않아 화가 난 적이 여러 번 있다.
□ 04. 자신이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쉽게 포기하고 좌절감을 느낀다.
□ 05. 타인의 잘못을 그냥 넘기지 못하고 꼭 마찰이 일어난다.
□ 06. 다른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는 것 같고 억울하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 07. 화가 나면 상대방에게 거친 말과 함께 폭력을 행사한다.
□ 08. 화가 나면 주변의 물건을 집어 던진다.
□ 09. 분이 쉽게 풀리지 않아 우는 경우가 종종 있다.
□ 10. 내 잘못도 다른 사람의 탓을 하면서 화를 낸다.
□ 11. 중요한 일을 앞두고 화가 나 그 일을 망친 적이 있다.
□ 12. 분노의 감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1~3점: 어느 정도 감정조절이 가능한 단계
4~8점: 감정조절 능력이 약간 부족한 단계
9개 이상: 분노조절이 어렵고 공격적인 상태로 전문가와의 상담 또는 정신건강 전문의 상담이 필요한 단계
욱하는 내 마음 잠재우기 요령
욱하는 분노의 감정은, 혹은 사소한 일에도 벌컥 화부터 내는 감정은 누가 뭐래도 내 삶에 독이 된다. 어떻게든 욱하는 내 감정을 다스려야 한다. 화부터 내는 내 감정을 다독여야 한다. 그 방법을 묻는 질문에 최한 박사는 ‘욱하는 감정 잠재우기 요령 5가지’를 추천한다.
1 피할 수 있으면 피하자!
분노나 격한 감정의 에너지는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형태로 외부로 표출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평상시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상황을 스스로 인식하고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분노를 느낄 경우 일단 그 자리를 떠나는 것이 좋다. 감정적으로 대비를 하여 최대한 그 상황을 피하고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한 상태에서 해결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2 시간이 약일 수 있다
폭발 직전의 분노는 1~3분 내 사라진다. 많은 연구에서 분노를 조절하려면 분노의 상황을 잠시 피하고 크게 심호흡을 하며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어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권한다. 대부분의 상황에서 분노를 경험하게 되면 분노의 근원을 찾고 이에 합당한 해결방안을 마련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좋다. 분노가 잘못 표출되면 엉뚱한 희생양을 삼아 분풀이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분노했던 상황을 최대한 떠올리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때로는 시간이 약이 된다. 또한 다양한 삶의 경험을 통해 잊어버릴 수도 있다.
3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관찰하자
얼굴은 마음의 거울과도 같다. 화가 치밀어 얼굴이 벌게지고 미간이 잔뜩 찡그려져 있는 얼굴은 불편한 마음을 반영한다. 또한 주변 사람들도 이러한 모습 때문에 불편하게 된다.
분노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분노는 전염성이 강하다고 말한다. 화가 났을 때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자.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비치는 나의 모습을 관찰하고 잠시 자신을 되돌아보자. \
그리고 자신이 행복했을 때나 즐거웠던 때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자. 긍정적인 추억이 담긴 사진은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게 할 수 있다.
4 자연과 함께 하자
도시 환경은 각종 공해와 소음, 여기에다 스트레스 자극까지 많다. 또한 한국 사회의 과도한 경쟁 구도는 직무, 육아 스트레스 등 우리의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숲은 그 자체로 다양한 생명체가 숨 쉬고 활동하며 생명의 기운이 넘친다. 따라서 숲 환경 자체가 스트레스를 줄이는 역할을 한다. 피톤치드와 음이온이 풍부한 숲 환경은 부교감신경을 자극하여 심신을 안정시키고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엔도르핀을 활성화시킨다.
특히 베타 엔도르핀(beta-endorphin)의 활성은 정신 안정 작용을 통해 우리의 몸을 이완시켜준다.
최한 박사는 “스트레스연구소에서 2014년 근로자를 대상으로 산림치유 효과에 대한 연구를 한 적이 있다.”며 “연구결과에 따르면 산림치유 프로그램에 참가한 근로자의 스트레스 반응 중 하나인 분노 증상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한다.
평소 화가 잘 나거나 자주 분노감을 느낀다면 가까운 공원이나 숲을 찾도록 하자. 자연 속에서 내 마음의 찌든 때를 씻어내자. 만약 그것이 여의치 않다면 사무실에 식물을 두는 것도 도움이 된다. 식물을 기르면 긍정적이 되고, 감정 조절에도 도움이 돼 대인관계로부터 발생되는 각종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힘도 생기게 된다.
5 분노를 놀이로 표출하자
때로는 분노를 참고 억누르는 것이 최선이 아니다. 상황에 따라 건강하고 안전하게 표출하는 것이 좋다. 감정이 상한 채로 상대방과 시시비비를 가리거나 분쟁의 씨앗을 키우기보다는 내가 원하는 바를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상대방에게 나의 마음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 어렵거나 도무지 화가 난 영문을 모를 경우, 이를 건강하고 안전하게 표현 할 수 있는 방식이 필요하다.
이때 미술치료를 활용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지점토나 고무 찰흙은 훌륭한 분노 표출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뚜렷한 형태의 최종 작품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기보다는 일단 점토를 힘껏 두드리고 주무르며 내재된 분노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좋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신의 분노를 통제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 분노조절장애 아동에게 지점토를 활용하여 미술치료를 실시한 결과 분노 증상이 감소되었고 대인관계가 좋아졌다는 연구 결과도 있으니 참고하자.
최한 박사는 호주 멜버른대학교를 졸업하였고, 영국 에딘버러 퀸마가렛대학교 미술심리치료를 전공하였다. 현재 인제대학교 스트레스연구소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2014년부터 <산림치유의 임상학적 효과 규명> 연구 및 다양한 정신건강 연구들을 수행하고 있으며 삼육대학교에 출강한 바 있다. 번역서로서 <사회행동과 미술치료>(시그마프레스, 2016)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