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이은혜 기자】
“먹거리 바꾸고 마음도 바꾸니 암과 친구가 됐어요”
언제나 불행은 예고가 없다. 한 남자의 아내로, 또 한 아이의 엄마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박시자(46세) 씨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왼쪽 가슴에 몽우리가 잡히면서 그녀의 삶은 180도 달라졌다. 길고 긴 암과의 싸움에서 이제는 암과 친구처럼 살아가고 있는 박시자 씨의 조금 특별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1998년 그녀 나이 서른 여섯, 자상한 남편과 초등학교에 갓 들어간 아들 하나를 둔 박시자 씨는 행복했다. 결혼 전부터 해오던 인쇄업을 남편과 함께 하면서 하루하루 정말 열심히 살았다고 한다. 다만 아내로, 엄마로, 또 직장인으로 늘 동동거리며 살아야 하는 것이 조금 벅찰 뿐이었다. 그래도 그녀는 하루하루 바쁘게 사는 것이 좋았다고 말한다.
그러던 그 해 여름 어느 날,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려던 그녀는 깜짝 놀랐다. 얼핏 가슴을 스친 손끝에 작은 몽우리가 잡혔던 것이다. ‘별 것 아니겠지.’ 애써 담담하게 받아들였지만 결국 그녀는 가까운 병원을 찾게 되었다. 진료를 마친 의사는 “가슴에 많이 생기는 섬유선종같다.”며 크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보다 확실한 것을 알기 위해 수술을 하기로 했다. 이럴 경우 대개 90% 이상은 암이 아닌 것으로 판명된다는 의사의 말에 큰 위안을 받으며 조직검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조직검사 결과는 청천벽력이었다. 유방암 초기로 판명됐던 것이다. 한 번도 자신이 암에 걸릴 줄, 그것도 유방암에 걸릴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는 박시자 씨.
부랴부랴 병원에서 시킨 대로 유방암 수술을 했다. 다행히 초기라 크게 걱정하지 말라는 의사의 말은 그녀의 두려움을 많이 줄여주었다. 그리고 재발도 잘 안 되는 케이스라고 해서 그나마 다행이라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렇게 해서 그녀의 유방암은 수술로 일단락됐다. 그 후 힘든 항암주사는 남아있었다. 한 달에 두 번은 꼭꼭 맞아야 했다. 항암주사를 맞은 날은 밥 한 숟가락이 태산같이 많아 보이더라는 박시자 씨. 입맛이 없고 오심, 구토에 속은 쓰리고 아팠다. 그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것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고통스런 항암주사를 6개월 동안 맞았을 때 그녀의 몸에서 암세포는 사라져 있었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운도 좋았다. 박시자 씨는 다시금 바쁘게 살았던 예전의 일상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암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나 그녀 나이 40세 되던 해, 담배도 피우지 않는 그녀의 몸에는 폐암이 또아리를 틀기 시작했던 것이다.
또 다시 시련은 찾아오고
‘아무 걱정 안 해도 된다더니…재발은 걱정 말라고 했는데…’ 그 말이 무색하게도 1.2cm 정도 되는 폐암은 그녀의 몸에서 떠억 하니 자리를 잡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젠 정말 죽었구나’ 싶더군요. 암은 재발하면 못 고친다고 그러잖아요. 다니던 병원에서는 수술 대신 항암주사를 맞자고 그러더군요. 전이된 암이라 수술을 하더라도 여러 군데 자잘하게 퍼져있는 암세포를 모두 다 제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거였어요.”
믿을 수 없었다. 유방암 수술로 끝난 줄 알았는데, 또 다시 암이라니? 다른 방법이 없을까? 암 전문병원인 암센터에 가보기로 했다. 진단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나이가 젊고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유방암 수술 경력이 있기 때문에 95% 재발로 보아야 한다.”며 수술할 것을 권했다. 결국 수술날짜를 잡았다. 그러나 박시자 씨는 수술대에 눕지 않았다. 수술 대신 조금 색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의사에게 물어봤어요. 지금 당장 수술하는 것과 한 달 후에 수술하는 것에 큰 차이가 있냐고? 그랬더니 의사는 별 차이가 없다고 그러더군요. 그래서 한 달 동안 제 나름대로 암과 한 번 싸워볼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그녀가 선택한 곳은 공주에 있는 한 요양원이었다. 자연요법을 실천하는 곳으로 유명했다. 유방암 수술 후 이것저것 건강정보를 접하면서 암을 이기는 비결이 혹 자연요법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도 그녀가 이 같은 결정을 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요양원 생활. 박시자 씨가 알려주는 그곳 생활은 일반인에게는 많이 낯설다. 먹는 것, 생활하는 방식 등 모든 것이 다 색다르다. “처음 이 같은 생활을 접하고 ‘참 희한하게 사는 방법도 다 있구나’ 싶었지만 한 번 따라해보기로 결심하고 정말 열심히 실천했어요. 오직 내 살 길은 이것뿐이라는 심정으로 했으니까요.”
그랬던 덕분이었을까? 한 달 정도가 지났을 때 박시자 씨의 몸은 조금 변해 있었다고 한다. 폐암 선고를 받고는 잠도 못 자고 춥고 그렇게 떨리던 증상이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보았다. 그 결과는 희망적이었다. 암 크기가 그대로라는 진단 결과가 나왔던 것이다.
“그제서야 비로소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곧바로 요양원으로 다시 내려갔어요. 가족들에게는 미안했지만 제가 다시금 건강해지는 것이 가족들을 돕는 길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렇게 3개월 정도 요양원 생활을 끝냈을 때 그녀의 삶은 많이 변해 있었다. 생각도 삶의 방식도 예전과는 사뭇 달라졌다.
‘왜 나에게 암이야!’하는 울분도 없어졌고, 죽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없어져 있었다고 한다. 생활방식도 180도 달라졌다. 요양원에서 했던 방식 그대로를 계속해서 실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생활은 5년이 지난 지금까지 쭉 계속되고 있다.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집 근처에 있는 인천 석바위 공원으로 산책을 나간다.
조금 빠른 걸음으로 걷기를 한 시간 30분 정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식전에 생즙 400cc를 짜서 마신다고 한다. 케일이나 신선초, 샐러리, 양배추 등으로 즙을 짜 먹으면 생기가 도는 것 같다고 한다. 먹거리는 주로 생식 위주다. 아침식사는 더덕, 도라지 등 뿌리채소를 위주로 하되 살짝 데친 브로콜리나 전자렌지에 살짝 익힌 마늘 등을 주로 먹는다. 콩도 빼놓을 수 없는 영양식. 검은콩을 밥 앉힐 때 한 줌 넣어 밥이 익으면 콩만 걷어내 씹어먹으면 다시없는 건강식이 된다고 한다.
점심 식단도 마찬가지이다. 몇 가지 잎채소가 위주가 되고 밤이나 호두, 아몬드 등의 견과류를 주로 먹기 때문이다. 저녁은 과일 위주로 주로 먹는다고 한다. 이런 생활이 벌써 5년째다. 그 덕분일까? 화장기 전혀 없어도 박시자 씨의 얼굴은 반짝반짝 윤기가 나고 표정은 해맑다.
비록 오른쪽 겨드랑이 밑에는 폐암이 크지도 않고 증상도 없이 자리하고 있지만 그녀는 수술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 그저 친구처럼 그렇게 살고 있다. 한 번씩 꾸욱 누르는 듯한 느낌은 들지만 그럴 때마다 자신을 되돌아볼 계기가 된다고 한다.
“혹 지나친 욕심을 부리지는 않았는지? 몸이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한 건 아닌지 한 번씩 체크해볼 수 있는 시금석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 말의 긴 여운이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언제나 희망을 찾아가는 그녀의 삶이 부럽기 때문은 아닐까?
박시자 씨가 건강을 되찾기 위해 요양원에서 실천한 자연요법
1. 이른 아침에 일어나 체조를 하고 아침식사는 뿌리채소 5~6종류로 대신해요.
고구마, 더덕, 당근, 도라지, 무, 대추 등을 깨끗이 씻은 뒤 껍질째 꼭꼭 씹어먹었습니다. 이들 채소들은 텃밭에서 직접 기른 것들이에요.
2. 아침 식사가 끝나면 황토방 찜질과 숯가루 냉온욕을 수차례 반복합니다. 숯가루 냉온욕은 숯가루를 욕조에 풀어 뜨거운 목욕 3분, 차가운 목욕 1분 하는 식으로 해요.
3. 점심은 잎채소를 주로 먹습니다. 상추, 양배추, 토마토를 주로 먹었는데 먹기 힘든 것은 사과소스를 곁들여 먹으면 맛이 아주 좋습니다. 여기에다 현미와 콩, 잡곡 등을 볶아 가루로 만든 생식가루를 꿀에 개어 먹으면 하루가 든든해요.
4. 점심 식사 후에는 숯가루 파스를 암 부위에 붙여서 팩을 합니다.
5. 하루 두 번은 꼬박꼬박 뒷산을 오르내리는 운동도 함께 병행했어요.
6. 하루의 마감과 함께 저녁은 과일 3~4 가지를 중심으로 간단하게 먹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