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강진우 기자】
유방암 진단, 마취되지 않은 채 진행된 수술, 그리고 희귀병 진단까지. 커다란 시련이 연이어 불어 닥쳤다. 심신은 마구 휘청거렸고 눈물이 속눈썹 처마에 가득 맺혔다. 그때 그녀 입에서 예상치 못한 두 마디가 흘러나왔다. “하나님, 저를 어떻게 쓰시려고 이런 고난을 주시나요? 진심으로 기대되네요.” 그 말을 기점으로 그녀는 분연히 중병을 떨치고 일어섰고, 죽음에 대해 깊이 고찰했고, 웰다잉 강사로서 사람들에게 삶의 진정한 가치를 전파하고 있다. 자타 공인 ‘행복천사’라 불리는 그녀, 김영숙 씨(62세)의 가슴 벅찬 사연을 들어봤다.
불쑥 찾아온 불청객, 유방암
여러 가지 일로 한창 스트레스를 받을 무렵이었다. 왼쪽 가슴께가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따끔거렸다. 김영숙 씨의 손이 그쪽으로 향했다. 작은 멍울이 만져졌다. 10여 년 전, 한 병원에서 양성으로 판명된 종양이었다. 암으로 변이될 수 있으니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아야 한다던 의사의 말이 떠올랐다. 일상에 치여 검사를 못 받은 지 어느덧 3년째였다. 불길한 예감이 관자놀이를 스쳤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정기검진을 신청하고 동네병원으로 향했다.
“유방암 같습니다. 큰 병원으로 가보셔야겠어요.” 내심 별일 아닐 거라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던 터! 의사의 말은 그래서 더 충격이었다. 2004년 10월, 그녀 나이 49세에 벌어진 일이었다.
김영숙 씨는 떨리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큰 병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다양한 검사를 했다. 유방암이 확실했다. 보다 정확하게는 멍울을 떼어내는 수술을 한 뒤 조직검사를 해봐야 한다고 했다.
선택의 여지는 별로 없었다. ‘이왕 벌어진 일, 뒷수습을 잘해야겠다.’고 마음먹고 곧바로 수술대 위에 누웠다. 마취 주사가 환부 주변에 놓아졌고, 의사가 메스를 들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수술의 고통이 그대로 전해졌다. 아프다는 그녀의 말에 마취약이 더 투입됐다.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고심하던 의사가 “이미 수술을 시작했으니 끝을 내야 한다.”고 했다. 어쩔 도리가 없었다. 말 그대로 생살을 찢는 아픔이 그대로 느껴졌다. 이를 악물어야 했다. 행여 수술에 방해될까 싶어 소리도 맘껏 지르지 못했다.
그렇게 한 시간 반이 흘렀을 때 달걀 반 쪽 크기와 대추알 크기의 암 덩어리 두 개가 그녀의 몸 밖으로 나왔다. 온몸은 초주검이 되어 있었지만 종양을 떼어냈다는 안도감 하나로 버틸 만했다. 그러나 그것은 섣부른 착각이었다. 병마는 쉽게 그녀를 놔주지 않았다.
절망의 끝에서 건져 올린 희망
떼어낸 종양을 조직검사한 결과 김영숙 씨는 유방암 2기로 진단받았다. 왼쪽 가슴 전체를 도려내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다시금 2차 수술을 위해 입원을 했다.
그런데 수술을 하루 앞둔 날 오후, 의사가 그녀를 진료실로 불렀다. 의사 표정이 무거웠다. 덜컥 겁이 났지만 의사 앞에 앉았다. 입을 연 의사는 청천벽력 같은 사실을 전했다. 수술을 진행할 수 없다는 거였다.
“면역력이 너무 떨어져 있고 혈액 쪽에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저에게만 있는, 심지어 병명도 정해지지 않은 희귀병이 발견됐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수술을 못 한다고요. 절박한 심정으로 다른 방법이 없겠냐고 물었지만 죄송하다는 말만 되돌아올 뿐, 아무런 소용이 없었어요. 다리가 후들거려서 병원 복도에 주저앉았죠. 그리고 그 무서운 와중에도 하늘을 향해 이렇게 기도했어요. ‘하나님, 저를 어떻게 쓰시려고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참 기대됩니다.’ 그리곤 다음날 퇴원해서 산 속 기도원으로 들어갔어요.”
사실상의 죽음 준비가 시작됐던 것이다. 지난날을 곰곰이 뒤돌아보면서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그런데 그 절망적인 때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죽음과 마주하자 하루하루의 소중함이 절절하게 느껴진 것이었다.
바람결에 살랑거리는 풀들의 군무, 머리 위로 쏟아지는 햇살, 주변을 둘러싼 신선한 공기가 고마움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충만한 행복을 느꼈다. 그렇게 한 달 동안 ‘감사’라는 두 단어를 심장 깊이 새기고 하산한 뒤 다시금 병원을 찾았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기쁜 소식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술이 가능한 몸 상태가 됐다는 진단을 받은 것이다.
이처럼 극적인 과정 끝에 그녀는 2004년 12월 4일, 왼쪽 가슴 절제술을 받을 수 있었다. 여성으로서 상실감은 컸지만 견딜 수 있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단지 수술 받고 살 수 있다는 희망과 그런 몸을 만들어 준 주위의 모든 것에 대한 감사, 그 두 가지 감정만이 충만했다.
건강 되찾고 ‘제2의 인생’ 시작
수술은 완벽하게 끝났다. 2차 수술 때는 전신마취로 진행되었기에 고통도 느끼지 못했다. 수술 후 붕대를 푸는 시간, 가족들의 걱정 어린 시선이 김영숙 씨에게 모여들었다. 기나긴 수술 자국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녀가 가족들에게로 눈길을 돌리며 입술을 뗐다.
“어? 나 조폭마누라 됐네? 다들 앞으로 나한테 까불지 말고 잘해!” 그녀의 농담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우울’ 대신 ‘감사’를 택한 결과였다.
일주일 뒤 퇴원한 김영숙 씨는 삶의 근본부터 하나씩 바꿔나갔다. 모든 초점이 몸을 관리하는 데 맞춰졌고, 꼭 그만큼 활기를 되찾았다. 무엇보다 모든 것에 감사하는 습관을 가지려 애썼다. 몸과 함께 마음까지 다스리는 현명한 선택을 한 것이다. 그녀가 실천한 ‘제2의 인생 가동 계획’의 세부 사항은 다음과 같다.
1. 식생활을 전면적으로 개선했다.
현미잡곡밥과 신선한 야채, 담백한 나물 위주로 식단을 짰다. 부족한 단백질은 기름기 없는 살코기나 생선으로 채웠다. 수술 후 5년 동안은 외부 일정이 있을 때도 고집스럽게 자신만의 ‘건강 도시락’을 싸서 다녔다.
2. 음식을 조리할 때 각별히 신경 썼다.
튀기고 굽는 등 기름이 들어가거나 식재료가 탈 수 있는 조리법은 절대 쓰지 않았다. 대신 삶기, 찌기, 데치기 등 영양소 파괴를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요리를 만들어 먹었다.
3. 운동을 꾸준하게 병행했다.
걷기에서부터 시작해 등산, 탁구 등으로 점차 운동 수위를 높였다. 또한 틈만 나면 움직이려고 노력했다. 움직이는 것 자체를 운동이라고 생각하다 보니 매사 활력이 돌고 컨디션이 점점 제자리를 찾아갔다.
4. 늘 ‘감사’와 ‘행복’을 느끼려 애썼다.
매일 일기를 쓰면서 감사할 만한 일을 적는 ‘감사 노트’를 작성했다. 그런가 하면 항상 긍정적인 마음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려고 했고, 다양한 봉사활동을 병행했다.
이처럼 하루하루를 즐겁고 행복하게, 몸 상태에 집중하면서 살아간 결과는 놀라웠다. 발병 10년째인 2014년, 유방암 완치 판정을 받은 것이다. 김영숙 씨는 “건강은 긍정적인 마음가짐과 그에 합당한 땀방울에 달려 있음을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행복’을 연기하다!
유방암 완치 판정을 받았지만, 여전히 물음표로 남아 있는 희귀병은 여전히 김영숙 씨의 아킬레스건이다. 이 병 때문에 한 번 염증이 생기면 쉽게 낫지 않는다. 호흡이 제대로 되지 않아 응급실에 실려 간 적도 여러 번! 그러나 김영숙 씨는 자신이 희귀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살아가려 노력한다. 희귀병 때문에 전전긍긍하기에는 하루하루가 너무나 소중하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암 하나만으로도 힘든데, 저는 힘든 상황을 두세 배로 겪었잖아요. 그래서인지 숨 쉬는 이 순간이 저에게는 정말 꿈만 같아요. 이 귀한 시간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들을 위해 쓰기도 바쁜데, 병 걱정할 시간이 어디 있겠어요? 늘 행복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답니다!(웃음)”
죽음과의 조우는 김영숙 씨에게 깊은 깨달음을 줬다. 죽음 쪽으로 한 발짝 발을 옮김으로써 진정한 삶의 가치와 방향에 대해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수술 후 첫 번째 행보로 ‘죽음 공부’를 택했다. 한 복지재단에서 운영하는 웰다잉 과정을 3년간 공부한 뒤 웰다잉 강사가 됐다. 웰다잉 연극단에 들어가 주연 자리도 꿰찼다. 게다가 넘치는 끼를 살려 스스로 각본을 쓰고 연출, 주연까지 맡은 모노드라마 <행복한 여행>도 만들었다.
김영숙 씨는 “암이라는 친구가 나에게 찾아온 덕분에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고 말한다. 암의 치료 과정을 통해 삶의 이정표를 새롭게 세울 수 있었던 건 지금도 축복으로 여긴다. 그래서 암은 그녀에게 전화위복이다.
오늘도 ‘인생’이라는 무대의 막이 닫히는 그 순간까지 ‘행복’을 연기하고 싶다고 말하는 김영숙 씨. 그 바람처럼 늘 행복천사의 미소를 잃지 않기를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