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조아름 기자】
“투병에 최선을 다하니까 암이 사라졌어요”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 경기도 일산에서 유명하다는 추어탕집을 찾았다. 누가 보면 추어탕 한 그릇 먹으러 갔나 생각할 수 있겠지만, 기자가 그곳을 찾은 이유는 조금 특별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15년째 추어탕집을 운영 중인 곽희정 씨(50세)는 스스로를 ‘암이 행복을 준 여자’라고 소개했다. 기자에게 “암을 앓았던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활기차죠?”라고 되묻던 그녀. 그렇게 그녀와의 인터뷰가 시작됐다.
갑자기 부어오른 목, 그리고 암
그녀가 이상 징후를 처음 느낀 것은 2010년 3월 초였다.
“목이 부어올라 동네 이비인후과에 갔어요. 갑상선 문제 같다며 약을 처방해 주더군요. 그런데 처방약을 먹으면 괜찮다가도 자꾸 다시 목이 부어올랐어요. 그게 두세 달 정도 지속됐어요. 덩달아 귀도 물이 찬 것처럼 먹먹해지니까 도저히 불편해서 못 참겠더라고요. 결국 근처 대학병원을 찾았는데, 담당의사가 증상을 듣고는 ‘혈액암’인 것 같다고 검사를 받아보라고 했어요. 그 순간 너무 놀라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그냥 곁에 있던 남편 얼굴만 바라봤던 것 같아요.”
다음날 곧장 CT를 찍었고, 6월 12일 암 진단을 받았다. 병명도 생소한 ‘비호지킨 림프종 2기’라고 했다. 우리 몸의 면역을 담당하는 림프절 혹은 림프기관(비장, 편도선 등)에서 발생하는 암이 바로 림프종임은 그 후에 알았다.
그녀의 귀와 코, 인대 이렇게 세 군데에서 종양이 발견되었지만, 제거수술은 불가능했다. 워낙에 복합적인 부위였고 더군다나 얼굴이었기 때문이었다. 방법은 단 하나! 항암치료뿐이었다. 하지만 망설였다. 항암치료만큼은 하고 싶지 않았다.
“친정아버지, 남편의 친한 선배가 고통스럽게 항암치료 받는 것을 쭉 지켜봤어요. 두 분 다 항암치료 중 돌아가셨고, 당시 제 머릿속에는 ‘항암하면 죽는다.’는 생각이 또렷하게 박혀 있었어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녀는 다시 좀 더 큰 상급병원으로 옮겨 골수검사, 혈액검사, PET검사 등 정밀검사를 받았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이제 암을 받아들이고 어떻게 치료할지 선택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대체요법에 몸을 맡기다
항암치료를 외면한 그녀가 기댈 곳은 별로 없었다. 자연스럽게 대체요법 쪽으로 눈을 돌렸다. ‘대체요법으로 암을 이겨보리라.’ 마음먹었다.
그런 그녀가 산속 깊숙이 위치한 한의원을 찾은 것도 그 일환이었다. 그곳에서 맨발 산책과 쑥뜸, 한증막, 족욕, 황토방 취침 등 다양한 자연요법을 실천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름도 생소한 암에 걸린 것도 그동안 음식점을 운영하면서 생긴 스트레스와 바쁜 생활, 불규칙한 식사 탓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우선 면역력이 약해진 몸을 건강하게 만들기에 심혈을 기울였다.
하지만 그 생활은 40여 일을 넘기지 못했다. 귀가 먹먹해지고 고열과 두통에 시달리면서 다시 부랴부랴 서울로 올라오게 되면서 끝이 났다. 병원에 가서 귀에 튜브 삽관을 하자 열도 내리고 마음도 안정을 찾았다. 그리고 다시금 재검사를 받았다. 우려와는 달리 종양은 더 이상 커지지 않았고 그대로였다. 하지만 이 일을 계기로 응급상황에 대비해 서울 근교에서 대체요법을 실천하고 싶었다. 그래서 서울 근교에 위치한 요양병원을 수소문해 입원했다.
항암주사와 대체요법을 병행하다
그러나 다시 한 번 고비가 찾아왔다. 11월 20일 남편과 이동 중에 부은 기도가 막히면서 호흡곤란으로 정신을 잃고 다시금 응급실에 실려 가게 된 것이다. 결국 항암주사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요양병원에서의 생활을 유지하면서 11월 22일 1차 항암주사를 시작으로 그녀는 3주 간격으로 총 8번을 받았다. 예상대로 항암주사의 부작용은 무서웠다. 머리카락이 다 빠지고, 손·발톱, 피부도 새까맣게 변했다. 암 진단을 받기 전만 해도 68kg에 육박하던 그녀의 몸무게는 46~47kg까지 줄어 있었고, 몸에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독한 냄새도 났다. 그래도 ‘곧 나을 것이다.’라는 믿음의 끈은 놓지 않았다.
“그 믿음이 있었기에 무엇이든 해볼 수 있는 것은 다 해보자고 생각했어요. 항암주사를 맞는 동안 몸의 독소를 빼준다는 숯 패치, 냉온수욕, 특히 고주파 온열치료를 열심히 했어요. 그러면서 소변횟수나 물 마신 횟수, 몸의 변화 등을 꼼꼼하게 작성했어요. 그때 습관으로 지금도 매일 3줄 일지는 꼭 써요.”
3줄 일지? 조금 생소하지만 별 건 아니다. 그날그날 몸의 변화를 간단하게 요약 정리한 노트란다.
이런 노력 덕분이었을까? 그 해를 넘기고 이듬해 2011년 4월 5일 항암주사 6차 후 PET 검사 결과 그녀는 믿을 수 없는 소식을 들었다. 종양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나?’ 믿기지 않아 묻고 또 물어도 대답은 같았다. 한 마디로 기적이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동안 곁을 지켜준 남편과 딸에게 고마웠죠. 종양이 보이지 않는다는 의사의 소견은 정말 새 생명을 얻은 기분이라고 할까요?”
이에 탄력을 받은 그녀는 고주파 온열 치료도 더 열심히 받고, 운동할 때도 “나는 암을 꼭 이긴다! 나는 행복하다!”를 열심히 외쳤다고 한다.
암으로 인해 삶의 소중함 깨달아
그렇게 항암주사와 대체요법을 병행하며, 그녀는 점점 생기를 되찾았다. 그리고 드디어 2011년 6월 29일 그녀는 암과 작별인사를 했다. 이로 인해 그녀는 항암치료가 무조건 나쁘다는 선입견을 버렸다고 한다.
“어떤 암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제 경우 항암치료가 효과적이었어요. 하지만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스스로 몸 관리에 소홀하면 안돼요. 항암치료를 견뎌낼 만큼 체력이 뒷받침되고, 면역력도 강해야 되니까요. ‘암 환자는 궁극적으로 굶어죽는다.’는 말이 괜한 말은 아니거든요.”
그리고 그녀는 기자에게 자신이 효과를 봤다는 천연 항암제를 추천해 줬다. 바로 야채수프와 현미차였다.
“제가 암에 걸린 이후에 줄곧 마셔온 것들이에요. 남편이 직접 유기농 재료들을 구해와 손질해 만들어 줘요. 지금도 이걸 물처럼 꾸준히 마시고 있어요.”
최근 정기검진 결과 그녀의 몸은 정상. 그래도 건강관리에 소홀하지 않는다. 매일 아침 붕어운동과 모관운동, 간단한 스트레칭과 30분 정도의 풍욕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리고 식당운영에도 가능한 마음을 편하게 먹고 무엇이든 즐거운 마음으로 임한다.
암으로 인해 삶이 더 소중해졌다는 그녀. 이제는 남편과 댄스스포츠를 배우고, 시낭송 모임, 자기계발 모임 등도 열심히 다니며 지금의 인생을 더 즐기려고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