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허미숙 기자】
“오늘 이 행복을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려요”
가슴 한 켠에 무거운 바윗덩이를 올려놓은 듯 늘 개운치 않은 걱정 하나를 안고 살았다는 장분순 씨(62세). 십수 년 궤양성 대장염이라는 질병으로 고통스러워 했던 그녀가 이제 그 고통이 사라진 자리에서 행복해하고 있다. 그 이야기 속으로 한 번 들어가보자.
장분순 씨에게 있어 요즘의 하루하루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정 좋은 남편은 늘 믿음직한 보루와도 같고, 1남 2녀의 자식들과 한 집에 오순도순 모여 살 수 있는 여건 또한 말할 수 없이 만족스럽다.
무엇보다도 가족 모두가 건강한 것이 그녀에게는 최고의 행복이다. 누구보다도 건강의 소중함을 알기에 더더욱 그러하다.
그것은 그녀의 특별한 경험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지금으로부터 십수 년 전쯤으로 거슬러올라간다.
“어느 날부터인지 확실치는 않지만 종종 변만 보면 항문에서 피가 묻어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때로는 변기에 빨간 피가 뚝뚝 떨어지기도 했어요.”
그러나 처음에는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으레 치질이려니 여기고 약국에서 치질 좌약을 사서 넣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 친하게 지내던 분이 느닷없이 대장암 선고를 받고 운명을 달리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것은 장분순 씨에게 커다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분의 증상이 저와 너무도 흡사했기 때문입니다.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그래서 부랴부랴 모대학병원의 최고 전문의라고 알려진 의사 선생님을 찾아가게 되었어요.”
진단 결과는 치질이 아니었다. 궤양성 대장염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항문에서 안으로 5cm 까지 헐었다는 진단이 나왔던 것이다. 그것은 1988년도의 일이었다.
궤양성 대장염이라는 진단을 받고
불행 중 다행으로 암은 아니었지만 궤양성 대장염이라는 다소 생소한 진단을 받자 장분순 씨의 마음은 착잡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만 해도 궤양성 대장염은 한국에서는 희귀병에 속했다. 약도 많지 않았을 뿐더러 완치가 불가능한 병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 이때부터 장분순 씨는 약물요법과 좌약으로 궤양성 대장염과의 기나긴 사투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 병의 뿌리는 결코 만만치가 않았다. 약을 먹을 때는 조금 낫다가도 또다시 재발했다. 그런 악순환이 끊임없이 반복됐다.
그러기를 십수 년. 그 만큼의 세월이 흘러도 장분순 씨의 병은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아니 증상은 점점 더 심해져 갔다. 한동안 치료를 쉰 적도 있었는데 그 때문인지 종내에는 궤양된 부위가 15cm까지 늘어났던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너무도 오랫동안 약물을 복용한 탓인지 약물에 따른 부작용도 심했다. 얼굴은 팅팅 부어오르기 일쑤였고, 수시로 머리가 아프면서 어지러웠다.
삶의 즐거움이 사라진 자리에서 장분순 씨의 고통은 깊어만 갔다. 무엇보다 힘든 것은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죽을 때까지 안고 가야 할 병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어요. 사람이 희망을 빼앗기면 왜 살 수 없는지 비로소 이해가 되더군요. 그것은 정말 심연을 알 수 없는 절망감이었어요.”
그런 그녀에게 2004년 1월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달이다.
자연요법을 시작하면서 희망은 생기고
너무도 오랫동안 시달려온 궤양성 대장염으로 하루하루 사는 것이 힘들었던 장분순 씨.
그런 그녀에게 2004년 1월은 축복과도 같은 달이다. 십수 년 동안 고통받아온 질병으로부터 벗어날 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갖게 됐기 때문이다.
그것은 조금 의외의 곳에서 이루어졌다. 독실한 크리스찬이었던 정분순 씨는 그 날도 교회에 갔다.
그런데 그곳에서 그녀는 조금 뜻밖의 말을 듣게 된다. 교인 가운데 한 분이 오랫동안 앓아온 그녀의 병명을 듣고 한 가지 제안을 했던 것이다.
자연요법을 한 번 실천해보라는 권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병이 좋아졌으면 좋아졌지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신에 차서 하던 말은 그녀의 뇌리에 진한 여운을 남겼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태릉에 있는 모한방병원이었어요. 이곳에서 자연요법을 실천한다길래 물어물어 찾아갔죠.”
이렇게 시작된 장분순 씨의 치료 일정은 조금 색다른 것이었다. 금식을 하는 것부터 치료가 시작됐다. 그런 다음 커피관장을 했다. 그리고 ‘하루만’이라는 물약을 2시간 간격으로 복용했다.
“그랬더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 일어났어요. 온갖 이상한 몸속의 찌꺼기들이 변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검은색 변도 나오고 녹색 변도 나왔어요. 또 동글동글한 알갱이도 나오고 미역 이파리 같이 검은 것도 나오더군요. 제 몸속에 있었다고는 생각하기 싫은 온갖 노폐물들이 술술 배설되는 데 정말 믿기지 않더군요.”
이렇게 해서 어느 정도 몸속의 노폐물을 배설시킨 후에도 여러 가지 자연요법이 행해졌다. 금식을 계속하면서 산야초 주스로 허기를 달랬고, 탈수되지 않도록 죽염은 수시로 먹었다고 한다. 또 배 위에는 뜨끄뜨끈한 두부팩을 해주면서 장속의 노폐물이 남김없이 배설되도록 도와주었다. 이런 방법을 일주일 동안 계속했다고 한다.
“사실 금식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그러나 오래된 제 고질병이 나을 수만 있다면 일주일의 금식은 얼마든지 견딜 수 있는 일이었어요. 십수 년 간 먹어온 약도 끊고 정말 열심히 따라했어요.”
그렇게 일주일이 흘러갔다. 그리고 일주일 후부터는 맑은 미음부터 시작해 조금 된 미음→조금 더 된 미음→야채죽을 먹었다. 6일째 되는 날부터 비로소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몸무게가 5kg이나 줄어들어 있었다고 장분순 씨는 말한다.
퇴원, 그리고 식생활 변화
2주 동안의 자연요법을 마친 장분순 씨는 한 달 정도 지난 뒤 병원에 가서 내시경을 한 번 찍어보라는 의료진의 말을 뒤로 하고 퇴원을 했다.
그런 그녀가 집에 돌아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세 끼 식단을 바꾸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그녀의 집 식탁은 야채 중심으로 꾸며졌다. 상추쌈, 아채 샐러드, 과일 등 되도록 생야채식을 생활화 하기 시작했다. 고기는 되도록 쪄서 먹거나 삶아서 먹었다.
그리고 한 달 정도가 지났을 때 원래 다니던 모대학병원에 가서 내시경을 찍었다고 한다.
“그런데 검사 결과를 본 담당 의사 선생님이 깜짝 놀라더군요. 너무 좋아졌다는 거예요. 항문 끝부분에 증상이 조금 남아있을 뿐 장이 전반적으로 깨끗해졌다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더군요.”
장분순 씨는 감히 말한다. 정말 기적같은 일이었다고. 십수 년 동안 괴롭혀 왔던 고질병이 아니었던가? 그 고질병이 그렇게 쉽사리 좋아질 줄이야….
그런 그녀는 지금 자연요법 전도사가 되어 있다. 먹는 것의 중요성도 설파하는 데 누구보다 열심이다.
그녀는 믿고 있다. 우리 몸을 자연 그대로 돌려주는 자연요법이야말로 생명을 살리는 건강법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조금만 신경 쓰면, 혹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심해지던 그녀의 궤양성 대장염 증상은 현재 95% 정도 개선된 상태다. 사는 데 불편함이 없고, 고통도 별로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나머지 5%는 제 할 탓에 달려 있다는 걸 압니다. 제 노력 여하에 따라 완전히 완쾌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를 알기에 장분순 씨의 하루하루는 소박하다. 늘 감사하는 마음, 기쁜 마음으로 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또 하나! 건강은 늘 챙긴다. 그것이 자신을 즐겁게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즐거움을 주는 일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