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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테라피] 혹시 나도 실패 불안증? 실패에 당당해지는 법

2014년 12월 건강다이제스트 축복호 66p

【건강다이제스트 | 박현아 기자】

【도움말 |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병수 교수】

올해 마흔여섯 살인 김우정 씨(경기도 수원시)는 40대에 접어든 후 되는 일이 없어 늘 의기소침하다. 오랫동안 내집 마련을 꿈꿔온 김 씨는 수년간의 고민 끝에 수도권의 아파트를 구입했으나 그때부터 집값이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가 소유한 아파트 역시 거래조차 쉽지 않아 ‘하우스 푸어’ 신세가 돼야 했다. 회사에선 프로젝트에 실패한 후 승진에서 계속 누락하는 바람에 ‘욱’하는 마음에 사표를 썼다. 그런데 이직이 쉽지 않았다. 김 씨는 “하는 일마다 실패하니까 매사 불안하다. 걱정도 습관이라는데….”라며 우울해 했다.

한두 차례 실패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드물다. 겉으로는 잘 나가는 것 같아도 속마음이 아프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그래도 실패가 반복되면 우울과 불안이 쌍둥이처럼 따라붙는다. 자기조절능력이 떨어지면서 의존적인 성향도 갖게 된다. <사모님 우울증>(문학동네刊)을 쓴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병수 교수는 “40∼50대에 실패가 반복되면 만회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고, 죽음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나이라서 더욱 충격적이고 아프다.”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흔쯤 넘으면 젊은이보다 아프고 괴로운 일을 더 많이 겪는 것이 정상이라고 여겨야 한다.”고 말했다.

실패를 반복하면 그 느낌이 습관화되고 실패에 대한 예기불안이 생긴다. “다음에는 성공하겠지.”라고 말은 해도 ‘또 실패하면 어쩌지?’ 하는 마음이 생기고, 도전해야 할 일이 생겨도 ‘또다시 실패할 것’이라는 생각이 앞서간다.

인간은 학습의 동물이다. 실패의 경험을 학습하고 똑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라는 생각에 예기불안을 느낀다. 불안한 마음이 생기니 선택 장애도 겪는다. 우울해지면서 과거에 대한 후회가 뇌리를 떠나지 않는 것도 인간의 본성이다. 자기 확신감이 부족한 사람은 실패를 반복하면 의존적인 성향이 더욱 강해진다. 이런 실패 불안증을 내버려둘 수는 없는 일이다. 실패에 당당하게 맞서고 인생에 다시 도전할 수 있는 노하우를 취재했다.

당신의 감정 상태를 인식하라

자신의 감정이 어떤 상태인지 인식하는 게 가장 먼저 할 일이다. 그래야 감정을 좇다 오염되거나 왜곡된 선택을 하지 않는다. ‘내가 마음이 불안하구나.’ ‘우울해서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라고 인식할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된다. 실패에 대한 불안이나 우울 때문에 지나치게 모든 일을 나쁘게 예측하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확인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실제로는 가능성이 50%인데 불안하고 우울하면 가능성이 20%라고 느끼거나 아예 없다고 느낀다. 실패로 인한 불안한 감정을 객관화시킬 수 있는 세 가지 방법을 알아보자.

언어화시키기

“아, 내가 지금 우울하구나.” 이렇게 말로 언어화시켜라. “초조해. 잠도 못 자고 미치겠어.”가 아니라 “아, 내가 지금 불안한 마음을 갖고 있구나. 내가 불안한 마음을 갖고 있구나. 내가 불안한 마음을 갖고 있구나.”라고 여러 차례 반복해서 읊조리면 감정의 힘이 떨어진다. 불안감으로 타오르던 느낌이 줄어든다.

지나치는 기차처럼 바라보기

이렇게 언어화시키면 감정을 약간 떨어뜨려놓고 보는 것이 가능하다. 감정을 지나가는 기차처럼 보라. 감정은 모두 고유한 기능이 있다. 불안한 감정, 우울한 감정, 초조한 감정 모두가 나름의 기능이 있다. 예컨대 불안감은 또 다른 실패를 막기 위해 내 마음이 보내는 신호다. 다만 그것이 너무 과도해져서 예전의 실패를 되짚어보는 나쁜 습관으로 이어진 것이다. 힘을 떨어뜨려놓고 감정을 바라보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 그 다음에는 자신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골똘히 생각하는 단계로 넘어가면 된다.

김병수 교수는 “부정적인 생각을 없애려고도 하지 말라.”며 “무조건 긍정적으로 바꾸는 게 정답도 아닐 뿐더러 그렇게 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조급하게 달라지려고 덤벼들기 때문에 오히려 에너지가 많이 빠진다.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잠시 기다려야 한다.

스크린에 흘려놓고 보기

자신의 상황을 영화나 스크린에 흘려놓고 제3자처럼 바라보라. 당신이 불안한 모습을 영화로 촬영해서 본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실패할 것처럼 불안해서 안절부절못하고 정신도 못 차리는 모습을 3인칭 시점에서 본다면 어떨까? 자신이 얼마나 초조해하는지 제대로 알 수 있다. 자기 문제를 제3자의 시각에서 보면 감정이입이 줄어든다.

실패 불안이 그릇된 선택 부른다

당신이 실패에 대한 불안에 사로잡혀 있다면 합리적인 선택을 하기 어렵다. 불안감이 심해지면 현실적으로 선택지가 10개가 있어도 한두 개밖에 없는 것처럼 시야가 좁아진다. 선택 이후 일어날 좋지 않은 결과나 실패 가능성을 더 크게 인식한다. 이때 떠오르는 생각은 믿을 게 못 된다. 김병수 교수는 “‘빨리 무엇인가 선택해야지’ ‘문제를 해결해야지’ 하며 달려들어선 안 된다.”며 “우선 감정을 편안하게 하는 데 초점을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실패할까봐 불안한 감정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다섯 가지 방법을 알아보자.

생활리듬을 유지하라

승진에서 누락했다고 술 마시고 잠도 안 자고 “저 인간 때문에 승진 못했다.”며 원망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정도는 살면서 당연히 겪을 수 있는 실패다. 이때는 마음을 다잡고 평소대로 생활해야 한다. 김우정 씨의 경우처럼 섣불리 이직한다거나 급격하게 삶을 바꿔선 안 된다. 실패를 경험하면 에너지가 떨어지므로 올바른 판단을 못할 가능성이 크다. 실패를 빨리 만회하려고 큰일을 벌이다가 오히려 잘못된 계약을 해서 실패를 더 경험하게 된다. 평소 하지 않던 큰일을 꾀하는 것은 좋지 않다.

기운이 없어도 저녁이면 평소처럼 운동하고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승진에 실패하면 부끄럽고 창피해서 사람들을 만나기 싫어진다. 하지만 승진한 것처럼 당당히 사람들을 만나면서 생활을 일정하게 유지해야 한다. 기분이 가라앉고 편안해질 때 다음 계획을 세워야 한다.

한 달가량 아무 일도 하지 마라

물론 언제까지 아무 일도 안할 수는 없다. 자신이 기간을 정해두고 이때는 에너지를 보충하는 데만 신경을 쏟으라는 얘기다. 뭔가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도 일부러 기다려라. 대신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평소처럼 운동도 하고 지내라. 그 기간이 지나면 설령 에너지가 부족해도 무조건 뭔가 해야 한다. 몸이 따라주지 않아도 다른 일을 도모해야 한다. 기간은 대체로 한 달 전후가 바람직하다.

수면 리듬을 잘 지켜라

생활습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면리듬의 유지다. 실패에 대한 불안으로 밤에 고민하고 사업계획을 세운다며 밤을 새는데 이럴 때일수록 잠자는 시간을 늘 일정하게 유지해야 한다. 잠이 오지 않아도 일정한 시간에 잠자리에 들고 일정한 시간에 기상해야 한다.

꾸준히 운동하라

운동은 몸과 마음의 건강관리에 효과가 있다. 다만 운동을 한 번 하면 단박에 기분이 좋아지고 잠도 잘 것이라는 조급한 기대를 하지 말아야 한다. 운동을 꾸준히 반복하는 게 핵심이다.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강도로 매일 반복하라. 효과는 서서히 나온다. 김병수 교수는 “우울하고 불안한 감정과 운동 강도, 빈도는 비례한다.”며 “정말 좋아지고 싶으면 운동량을 서서히 계속해서 늘려야 한다.”고 당부했다. 운동 강도가 커지면 커질수록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있는 효과는 높아진다.

외상 후 성장의 발판으로 삼아라

실패가 반드시 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암 진단을 받은 후 삶을 돌아보고 생활습관을 확 뜯어고쳐 훨씬 건강해진 경우도 많다.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더 나은 미래를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실패를 외상 후 성장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외상의 깊이가 강할수록 성장의 넓이도 커진다. 실패를 극복하는 과정이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믿음을 갖자.

김병수 교수는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같은 병원 건강증진센터 스트레스클리닉에서 정신건강증진, 스트레스, 우울증 분야의 진료를 맡고 있다. 현재 한국정신신체의학회 이사, 한국인지행동치료학회 이사 등으로 활동 중이다. <사모님 우울증>(문학동네刊)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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