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허미숙 기자】
“비우고, 내려놓고 감사하며 사는 것이 최고의 항암제입니다”
7년째다. 이제 더 이상의 갈등은 없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도 없다. 그녀는 믿고 있다. 자신의 선택을 존중하고, 설사 그것이 잘못된 선택이었을지라도 후회는 없다. 그동안 숱하게 들어온 말은 “무모하다.”는 거였다. 그녀도 ‘그럴지도 모른다.’며 흔들린 적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자기 소신껏 살아온 사람. 인천에 사는 김정란 씨(54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그녀가 이번호의 주인공이 된 데는 그녀의 고집 때문이다. 그녀는 유방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했다. 여기까지는 여느 암환자와 별반 다를 게 없다. 하지만 그 후의 선택은 조금 무모해보인다. 현대의학에서 말하는 암의 표준치료를 끝끝내 거부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암 수술 후 패키지처럼 따라붙는 항암요법, 방사선치료를 그녀는 거부했다. 물론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몸 곳곳으로 전이까지 된 상황에서도 그녀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러면서 7년이다. 그래도 전혀 후회가 없다는 김정란 씨. 그녀의 용감무쌍한 지난 7년의 임상보고서를 들어봤다.
2007년, 47세 때의 악몽
김정란 씨의 결혼생활도 별로 행복하지 못했다. 갈등이 심했다. 그로 인한 스트레스도 많았다. 부부 사이가 최악으로 치닫던 2007년 5월 어느 날, 가슴에 통증이 느껴졌을 때도 스트레스 때문인 줄 알았다. 그래서 그냥 넘겼다.
그러나 8월 어느 하루, 샤워를 하다가 그녀는 흠칫했다. 가슴에서 만져지는 딱딱한 느낌!
그 후의 일은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것이다. 병원 예약을 하고 검사도 받았다. 그리고 좀 이상하다며 조직검사를 해보자는 말도 들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 조직검사 결과를 들으러 간 날 김정란 씨는 해머로 뒤통수를 한 대 얻은 맞은 느낌이었다고 말한다. 한 번도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던 일!
“암이라고 했어요. 유방암이라고 했어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수술 스케줄부터 잡아야 한다고 했어요.”
이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내가 왜?’ ‘열심히 산 것밖에 없는데 내가 왜?’
원망과 절망을 교대로 겪으며 그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데 병원에서는 수술 스케줄을 잡고, 항암 일정도 조율해야 한다며 숨가쁘게 몰아부쳤다.
“그래서 조용히 알았다고 하고 병원문을 나섰어요. 수술 스케줄도 잡지 않았어요.”
2007년 8월 하루, 김정란 씨는 그녀 생애에서 가장 많은 눈물을 흘려야 했다.
수술은 하자!
수술 스케줄도 잡지 않은 채 병원문을 나섰던 김정란 씨. “그저 생각을 좀 하고 싶었다.”는 게 그녀의 이유다. “병원에서 하라는 대로 끌려가기 싫었다.”는 게 그녀의 말이다.
그것은 그녀가 피부숍을 운영하면서 경락을 공부하고 대체의학에도 조예가 있었다는 사실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였을까? 유방암 진단을 받았던 그녀가 병원치료를 미루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먹거리부터 바꾸는 일이었다.
좋아하던 육류를 끊고 채식 위주로 돌아섰다. 100% 현미식을 시작했고, 유방암에 좋은 식품을 공부해가며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버섯, 마늘, 토마토, 청국장을 즐겨 먹었다. 운동도 열심히 하고 면역력을 높여준다는 제품도 수소문해서 먹었다.
김정란 씨는 “대체요법을 써서 조금이라도 암세포가 줄어들었다는 진단이 나오면 수술을 하지 않고 그 방법을 써볼 참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한 달 뒤, 김정란 씨는 다시 병원을 찾았다. 그동안 열심히 노력했으니 암세포에 변화가 있지 않을까 기대도 했다.
하지만 그녀의 암세포는 변화가 없었다. 그대로였다. 담당의사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결국 왼쪽 가슴을 부분 절제했다. 불행 중 다행이었을까? 위치가 좋았다는 말도 들었다. 수술을 통해 5cm 크기의 암세포를 떼어냈고, 임파선도 15개나 제거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임파선 3개에 전이가 돼 있었다고 한다.
항암치료 대신 선택한 항암생활은…
수술은 잘 됐다고 했다. 그래서 몸을 추스르는 대로 퇴원하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수술 일주일 후부터 항암치료를 독촉받기 시작했다. 재발을 막기 위해서 꼭 해야 한다고 했다. 간호사들까지 항암치료 안 하면 죽는다고 겁을 줬다.
“하지만 암 진단을 받았을 때부터 항암은 안 할 생각이었어요. 항암제는 치료약이 아니라 치료보조제일 뿐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거든요.”
병원의 끈질긴 설득에도 고집을 꺾지 않았던 김정란 씨는 2007년 9월 가슴에 물주머니를 차고 퇴원을 했다.
?그리고 시작했다. 항암치료 대신 항암생활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남편과의 오랜 인연도 끊어냈다. 한 가지 생각만 했다고 한다. ‘어떻게든 암 재발만은 막자!’
이때 김정란 씨가 하나하나 공부해가며 적극적으로 실천한 일명 ‘김정란표 항암생활’은 크게 두 가지다.
?1 옛날 밥상으로 먹거리 바꾸기
?● 육류는 끊고 채식 위주로 먹기
제철에 나는 채소를 다양하게 많이 먹었다. 되도록 단맛, 쓴맛, 신맛, 떫은맛, 매운맛 등 5가지 맛이 나는 신선한 채소를 골고루 배합해 샐러드나 쌈으로 먹었다.
?● 아침식사는 고구마요법으로 하기
고구마 100g+5가지 야채+3가지 과일로 먹는 것을 말한다. 주로 고구마+브로콜리+사과+당근+토마토+가지나 적양배추 등 오색 컬러푸드를 먹으려고 노력했다. 고구마는 살짝 쪄서 먹고, 브로콜리는 살짝 데쳐서 먹고, 토마토는 올리브유에 살짝 볶아서 먹고, 나머지 채소와 과일은 생으로 먹었다. 암 환자들에게 좋다고 알려진 요법이어서 적극적으로 실천했다.
?● 된장, 청국장 늘 먹기
샐러드에 된장을 올려서 먹기도 하고 청국장 분말을 뿌려서 먹는 걸 좋아했다.
?● 하루 마늘 10쪽 먹기
마늘은 항암성분뿐 아니라 해독작용도 있다고 해서 적극적으로 먹었다. 마늘초절임으로 해서 먹기도 하고 올리브유로 살짝 볶아서 먹기도 했다. 흑마늘로 만들면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매끼 식사 때 5쪽씩 먹어 하루 10쪽 정도를 먹었다.
?2 오전 10시 산에 올라 오후 4시 내려오기
이혼 후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보험설계사 일을 시작했지만 언제나 건강은 최우선 순위에 두는 생활을 했다. 아침에 출근만 하고 도시락 하나 싸서 곧바로 산으로 향했다. 암은 산소를 싫어한다는 걸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오전 10시에 산에 올라 오후 4시까지 운동도 하고 피톤치드도 많이 마시는 생활을 했다. 특히 산에 가면 다른 암환우들도 많이 만날 수 있어 서로 정보도 교환하고 슬픔도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8개월의 결실, 희망과 절망 사이
8개월 만의 종합검사 결과 아무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왔던 것이다. 담당의사는 말했다. “이제 항암요법은 안 해도 되겠어요. 그동안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관리를 참 잘한 것 같아요. 그 방법대로 쭉 하세요.”
?의사의 이 말을 듣는 순간 만세를 부르고 싶었다는 김정란 씨. “이제 됐다 싶었어요. 자신감도 생겼어요. 그래서 새로운 일에 도전도 했어요. 집집마다 방문해서 물건을 파는 홈파티 일을 시작했어요.”
?그 일은 적성에도 맞았고 재미도 있었다. 그래서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열심히 일했다. 그러면서 자연히 암에 대해서는 잊어갔다. 항암생활은 어느새 뒷전으로 밀렸다. 운동도 시들해졌다. 일에 쫓기다 보니 시간이 없어서, 피곤해서 몸을 제대로 관리할 수가 없었다. ‘좋아졌는데 별일 없겠지?’ 위안을 받으며 먹고 사는 문제에 매달려 살았다. 하지만 그렇게 산 1년은 김정란 씨에게 뼈저린 후회를 남겨주었다.
골반으로 전이, 항암을 안해서?
2010년 5월, 다시금 병원을 찾았던 김정란 씨는 절망했다. “암세포가 골반으로 전이됐다고 했어요. 항암요법을 안 해서 그렇다면서 꼭 항암 6회, 방사선 32회를 해야 한다는 처방이 내려졌어요.”
많이 흔들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암치료를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항암치료 대신 하던 일을 정리했어요. 다시금 예전의 항암생활을 실천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상황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예전에 없었던 통증이 수시로 찾아왔다. 우울했다. ‘항암을 해야 하는 건 아닐까?’ 갈등하고 번민하는 날도 많아졌다.
그래도 마음을 다잡으며 1년이 지났고, 정기검진 결과는 더 나빠져 있었다. 암 사이즈가 커졌다고 했다. 통증도 수시로 오고…사이즈도 커지고….
?“최악의 상태였지만 이 즈음 단식을 하게 되면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어요. 순천에 있는 조계산 힐링센터에서 9박 10일의 단식 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통증을 다스릴 수 있게 됐어요.”
?신기했다. 단식을 하자 몸이 가벼워지면서 거짓말처럼 통증이 사라졌다. 몸도 마음도 모두 비워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단식은 지금도 김정란 씨의 통증 해결사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2014년 8월 현재, 진정한 치유를 느끼며…
2014년 8월 현재, 김정란 씨는 유방암 수술을 한 지 꼭 7년째를 맞고 있다. 지금의 그녀는 모든 갈등을 내려놓은 자리에서 하루하루가 행복하다고 말한다.
끝끝내 항암요법은 하지 않았다. 이제는 더 이상 갈등도 하지 않는다.
?“2013년 정기검진에서는 골반 쪽 암세포는 작아졌는데 척추로도 암세포가 간 것 같다고 하더군요.”
?이런 상황에서도 항암을 거부하고, 심지어 갈등도 하지 않는 배짱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제 무거운 짐을 하느님께 모두 맡겨버렸기 때문입니다. 2013년 척추로 전이까지 됐다는 말까지 듣자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어요. 그때 구원자가 되어준 것은 신앙이었어요.”
?너무도 절박한 마음으로 성당으로 향했다는 김정란 씨. 미사를 올리면서 목놓아 울었다.
?“하느님 저 힘듭니다. 제 무거운 짐을 하느님께 봉헌합니다. 하느님이 함께 나누어주세요.”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그러자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고 한다. 인간적인 생각의 끈을 모두 놓을 수가 있었다고 말한다.
?“그 순간부터 항암, 방사선이라는 말은 제 머릿속에서 지워져버렸어요. 더 이상의 갈등도 하지 않게 됐어요. 그러면서 제 인생의 순간순간은 새로운 기쁨이 되었어요.”
?모든 걸 내려놓은 곳에서,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겨버린 자리에서 김정란 씨는 진정한 치유가 시작됐다고 말한다. 이제 항암, 방사선의 긴 터널에서도 말끔히 벗어났다. 그 대신 돈도 별로 안 들고 자신의 능력 내에서 할 수 있는 방법대로 나름의 항암생활을 한다.?
● 제철에 나오는 채소와 과일을 많이 먹는 생활을 하고 오전 8시 30분이면 산에 가서 11시 30분 쯤 내려온다.
● 아침은 여전히 찐 감자나 고구마, 다양한 컬러의 채소와 과일을 배합해 먹고 육류는 입맛이 당길 때 삶아서 먹는다.
● 여전히 현미식을 기본으로 하고 청국장은 즐겨 먹으며
● 저녁은 단일식품으로 간단히 먹되 견과류는 빠지지 않고 먹는다.
● 특히 야채스프를 손수 만들어 늘 마신다.
● 백화사설초도 끓여서 차처럼 늘 마신다.
오늘도 그녀를 향한 주변의 질타는 여전하다. 무모하다고 대놓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이렇게 사는 것도 제 나름의 제 몸 사랑법이에요. 수술로 한 번 힘들게 했는데 여기에다 독한 항암제, 독한 방사선까지 쬐고 싶지 않아요.”
그녀의 선택에 대해 옳다 그르다 어느 누구도 말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그리고 웬만한 용기가 없으면 따라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다만 김정란 씨는 그 길에 후회는 없다고 말한다. 후회하는 대신 기타를 배워서 아들 결혼식에 축가를 부르며 잊혀지지 않는 추억 하나라도 더 만들기에 열심이다.
너 없인 못 살겠다면 결혼을 하지만 평생 동안 행복하게 살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크고 작은 트러블을 겪으면서 때로는 서로에게 깊은 상흔을 남기기도 한다. 항암치료 대신 시작했던 항암생활은 김정란 씨에게 최고의 선물이 되어 주었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