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정소현 기자】
물 맑고 산 좋은 강원도 횡성의 산골 마을에서 산의 포근함을 닮은 사람, 모든 것이 풍요로워서 인자한 가을빛을 닮은 사람, 풍족하지 않아도 마음은 언제나 즐겁고 모든 것에 감사하다는 사람을 만났다. 67세의 나이를 잊은 채, 노모와 함께 농약을 뿌리지 않고 농사를 지으며 삶에 애걸복걸하지 않는 정춘자 씨의 세상 사는 이야기엔 배울 점이 많다.
교회의 수석집사로 동네의 소소한 일을 챙기랴, 또 노모를 모시면서 고추·땅콩·조·깨 농사를 짓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팽팽한 피부와 정정한 모습에 바라보는 이를 의아하게 만드는 정춘자 씨. 지금은 누구보다 건강하게 살고 있지만 20여 년 전 어느 누구도 그녀가 이렇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부족한 것 없는 세상이라지만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이 있었다. 속옷도 못 챙겨 입을 정도로 가난했던 모진 세월의 무게를 버텨온 60대 이후의 세대처럼 정춘자 씨의 삶도 그녀가 아프기 전까지는 가난 속에서 헤어 나오기 위한 삶이었다.
10남매의 맏이로 태어난 정춘자 씨. 가난을 벗어나고자 서울에서 식모살이까지 해봤지만 식모생활도 그리 녹록치 않았다.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하면 삶도 조금은 여유로울 것이란 생각에 신앙 안에서 눈이 선한 사람과 결혼을 했다. 그러나 도시생활은 건강이 좋지 못했던 남편에게 독약이나 다름없었고 하는 수 없이 산골마을에 터를 잡게 되었다. 가난한 그들에게 산골은 더욱 척박했다. “없이 살았지만 난 정말 남의 물건에 탐 안 내고 정직하게 살았어요.” 다른 것은 몰라도 그것 하나는 남 앞에서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단다.
그래서였을까? 그녀의 고고한 가난은 영혼을 살찌웠을지 몰라도 그녀의 육체를 괴롭혔다. 영양실조로 쓰러지기도 수차례.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자신은 제대로 먹지 못했던 탓이다. 갖은 장사를 했어도 정직하게 하니 큰 이문이 남지 않았고 가난은 그녀의 주변을 맴돌았다.
터질 게 터지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부터 소변을 볼 때 불편하고 허리도 아팠지만 몸이 고돼서 그렇겠거니 하며 생활의 여력이 되지 않아 참고 또 참고 있던 터였다.
결국 43살 무렵 터질 게 터졌다. 출산의 고통보다 더한 허리의 통증으로 일어나 걸을 수조차 없었다. 겨우 앉아서 요강에 쏟아낸 소변은 짙은 갈색이다 못해 빨갛게 보였다. 보다 못한 지인들의 도움으로 병원에 간 정춘자 씨. 병원에서는 그녀의 신장을 어떻게 손 써 볼 도리가 없다는 답변뿐이었다. 고통을 완화하기 위한 약을 지어준 것이 전부였다. 그나마 돈이 없어서 지속적인 약 복용도 어려웠다. 방법이 없었다. 임시방편으로 부엌을 개조하여 밥 짓는 일만 앉아서 할 수 있을 뿐이었다. 빨래도, 집안 일도 남편과 아이들의 몫이었다.
할 수 있었던 것은 생즙과 현미잡곡밥
모든 것을 체념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남편과 아이들을 위한 기도는 놓을 수 없었다. 와중에 생즙이 좋다는 얘기를 듣고는 남편과 아들이 구해다 준 상추와 케일, 쑥 뿌리 등을 돌절구에 빻아 즙을 내어 마셨다. 그리고 현미, 좁쌀, 수수, 보리, 조, 콩, 팥을 이용한 현미잡곡밥을 꾸준히 먹다보니 2년 정도 지났을까?
“내 목숨이 아닌 목숨, 사는 데까지 아이들과 남편을 위해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의 기도에 하늘도 감탄했는지 집밖에 나가 채소를 직접 뜯어올 수 있게 되었고 채소도 직접 가꿀 수 있을 정도로 몸이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가난을 벗어나야겠다는 그녀의 조급증도 서서히 녹아내렸다고.
“지금 생각해도 정말 기적이지요. 제가 한 일은 현미잡곡밥과 생즙을 먹은 것밖에 없었거든요.”라고 말을 잇는다. “특별한 게 있다면 모든 반찬에 들깨가루를 많이 사용한다는 것 이외에 정말 별 것 없다.”며 여름에는 가지·오이·호박, 겨울에는 나물 말린 것을 반찬으로 먹고 된장국, 무국 등을 주로 먹었다고.
그러나 일절 주전부리도 안 하고 육류를 즐겨하지 않는 어렸을 때부터 몸에 배인 그녀의 건강한 식생활도 한 몫 단단히 했을 터.
특히 지리적인 특성을 이용해 사시사철 온갖 나물을 반찬 삼아 먹으며 농약을 뿌리지 않고 직접 재배한 콩, 고추, 옥수수, 각종 야채, 곤드레·취나물·머위 나물 등을 먹었다. 간장, 된장, 고추장 등 모든 장도 직접 담가 먹는 그녀에게 그나마 주전부리라면 농사지은 콩으로 두유를 만들어 먹는 일이다. 그리고 공복에 물 한 컵을 마시고 식전 30분 전에 물을 마신 후 이후 수시로 물을 마시니 하루에 1리터 이상의 물을 마시는 것이 그녀의 오래된 습관이다.
이렇게 특별한 것 없이도 수십 년 간 건강한 식단을 지켜온 그녀의 건강상태는 어떨까? 아프고 나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은 적은 없지만 국가무료검진이나 의대생들의 의료봉사활동 시 검진을 받아보면 신장도, 혈압도 모두 정상으로 나온다고. “요즘 몸은 바쁘게 살지만 어느 때보다 마음만큼은 여유롭고 느리게 살고 있어요. 인생의 절반 이상을 나를 위해 살았으니 덤으로 주어진 인생은 남을 위해 살고 싶어요.”라며 건강 독자를 위해서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단다.
“자기 병에 대해 절대로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전전긍긍하지 마세요. 마음을 비우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활동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건강이 찾아온답니다.”
TIP. 정춘자 씨의 두유 만드는 법
1. 직접 재배한 토종 콩을 물에 푹 불린다. (콩이 원래 크기의 3배 정도로 커질 때까지 불리는 것이 포인트)
2. 팔팔 끓는 물에 푹 불린 콩을 넣고 물이 넘치면 뚜껑을 열고 1분 정도 놔둔 후 철사 바구니에 받쳐 찬물로 헹구어내는데 이때 콩 삶은 물은 버리지 않는다.
3. 콩 삶은 물이 식으면 콩 삶은 물과 콩을 갈아서 마시면 자연 두유가 탄생한다.(부드러운 느낌을 원하면 콩을 갈아 거즈에 받쳐 마시면 된다. 기호에 따라 볶은 소금을 넣어 마시면 좋다.)